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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장국영에 대한 많은 정보 소개 (유서,사망,리즈,당학덕)

by 채은아빠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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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장국영
張國榮|Leslie Cheung
본명
Leslie Cheung Kwok-wing (레슬리 청 쿽윙)
중국명
張國榮 (정궉윙, Zoeng1 gwok3 wing4)
출생
1956년 9월 12일
영국령 홍콩 구룡반도
사망
2003년 4월 1일 (향년 46세)
홍콩섬 중서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위패
홍콩 Sha tin 311, Pai tau street Po Fook Hill Cemetery
(보선사)
국적
 
영국령 홍콩
홍콩
 
캐나다
 
본적
광둥성
신체
175cm | 70kg | O형
직업
가수, 배우, 작곡가, 영화감독
데뷔
1977년 앨범 <I Like Dreamin'>
학력
리즈 대학교 (섬유학 / 중퇴)
가족
4남 6녀 중 막내
종교
무종교
언어
광둥어, 영어, 보통화
별명
꺼꺼(哥哥), 십자(十子)
취미
요트, 배드민턴, 음악, 골동품, 독서
대표작품
패왕별희(霸王別姬)
영웅본색(英雄本色)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아비정전(阿飛正傳)

1. 개요

 

홍콩의 배우 겸 가수. 1977년 가수로 먼저 데뷔했으며 이 후 배우로도 활동했다.
가수와 배우, 양 분야에서 모두 최정상급의 인기를 얻은 스타이다.
장국영의 한자 표기는 張國榮(간자체로는 张国荣). 영어로는 Leslie Cheung(레슬리 청)이었다.
레슬리 라는 이름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애슐리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레슬리 하워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중성적인 이름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광동어식 예명을 살려서 Leslie Cheung Kwok-wing(레슬리 청궉윙)이라 하기도 한다.
홍콩 영화계를 빛낸 여러 스타들의 동판이 있는 홍콩 스타의 거리에는 한자와 영어 이름만 있어서, 그의 영어 이름과 한자를 모른다면 못 알아보기도 한다.
레슬리(Leslie) 이전에는 바비(Bobby)라는 예명을 썼다.
언론에서는 표준중국어의 표기법을 따라 장궈룽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대중들은 압도적으로 장국영 내지는 레슬리 청이라고 부른다.
다.

 

2. 인기 및 위상

 

1980년대와 199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홍콩 영화와 홍콩 느와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배우와 가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홍콩 스타였다.
특히 홍콩 영화가 아시아권에서 가진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시아권에서는 주윤발, 성룡, 매염방, 적룡 등과 함께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스타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인기를 얻었던 소위 '무적 3인방'(장국영, 알란탐, 매염방) 중 1명이며 이들은 90년대에 등장한 홍콩 사대천왕(장학우, 유덕화, 곽부성, 여명)보다 선발주자로 분류된다.
홍콩 영화가 인기가 많았던 대한민국답게, 한국에서도 장국영의 인지도와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웅본색>, <동사서독>, <아비정전>, <종횡사해>, <패왕별희>, <금지옥엽>, <해피투게더>, <이도공간> 등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은 대한민국 박스오피스에서 큰 히트를 기록했고 여러 비디오와 DVD로 불티나게 팔렸다.
장국영은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총 6번 내한했는데, 내한할 때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과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해외스타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자신이 묵고 있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 객실에서 투신하여 향년 46세로 생을 마감했다.
홍콩 영화계의 톱스타였던 장국영의 죽음은 전 세계에서 엄청난 파장과 충격을 일으켰으며, 특히 그의 팬층이 집중되어 있던 아시아권에서는 쇼크와도 가까운 일이었다.
장국영이 투신자살한 뒤 6명의 팬이 함께 투신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나고, 여러 뉴스에서 특보로 보도하는 등 그의 죽음이 준 충격과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이 넘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2005년에는 중국영화 100주년 기념 가장 사랑받는 남자배우 1위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매년 4월 1일 홍콩에서는 그를 기리는 성대한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다.

 

3. 전반적인 생애

 

 

3.1. 아시아의 톱스타

 

 

 

3.2. 커밍아웃

 

장국영(오른쪽)과 그의 오랜 친구 당학덕(왼쪽).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 적은 없지만, 인터뷰 중 연예인의 양성애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만일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 상대방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치 않다.
만일 남녀 모두 ok라면, 기회는 두 배가 되는데 뭐가 안 좋다는 것인가"라고 한 발언과 2000년 《타임》지에 본인이 "나는 '양성적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등의 발언들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커밍아웃했다.
공연을 할 때 빨간 하이힐을 신고 나온 적이 있다.
본인은 데이비드 보위의 퍼포먼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으나 정작 보위는 훗날 자신의 양성애가 사실 컨셉이었고 흑역사라고까지 밝혔다.
하지만 장국영은 의상 디자이너가 컨셉을 잡아주자 "이런 걸 해봐도 괜찮을 듯?"이라 생각하였다고 한다.

 

3.2.1. 반론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 확연하게 동성애자다, 양성애자다라고 확정지어 말한 적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남녀를 떠나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는 점을 세간에서 상업적으로 이용했으며 그로 인해 판매부수를 늘린 찌라시 언론사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매염방이 장국영 사후 <명보>와 가졌던 인터뷰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황색언론이 과도하게 집착하는 그의 성 지향성은 단순 가십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이며 사후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장국영이 청소년 때 끈질기게 꼬셔서 사귄 사람도 여성이었고, 배우로 성공 후 같은 영화에 출연한 홍콩 여자 배우와도 사귀었는데 장국영은 그녀에게 결혼 프러포즈까지 했지만 거절당하여 결국 헤어졌다.
모든 장국영의 가족과 지인들도 대부분 남자와 여자 모두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데이비드 보위의 퍼포먼스를 따라한 것도 그냥 겉모습만 따라한 것일 수도 있기에 모호하다.
데이비드 보위 특유의 인터섹슈얼한 이미지는 장국영뿐만 아니라 일본의 사와다 켄지도 시도한 적 있었다.
게다가 보위는 실제 양성애를 컨셉으로 잡은 적은 있으나 젊은 시절 한때 일이고 행적을 보면 이성애자에 가까웠다.
상술했듯 말년에는 심지어 "양성애는 음악 활동을 위한 컨셉이었다.
"고 주장하였다.
또한 장국영은 당학덕을 연인으로 인정한 적이 없고 항상 부정했으며 동성연애는 모두 당학덕이 언급한 것들이다.
당학덕은 1983년 1월 초부터 연인관계가 시작되었다고 추도사에서 밝혔으나 장국영은 당시 꾸준히 여자친구가 있었으며, 모순균 이외에도 프로포즈를 한 여성도 더 있었다.
실제로 연예계 데뷔 후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모순균은 장국영에게 사랑의 열병과 함께 아픔을 준 여인이다.
RTHK에서 1977년 방영한 《애정고사지: 19세》에 서로의 파트너로 연기를 펼쳤고 장국영이 모순균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다.
장국영 20세, 모순균 17세 때의 일인데, 장국영은 어떻게든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드라마 고위간부 찬스를 써서 그녀의 연락처와 취향 등을 알아내고는 프로포즈 성공을 위해 열심히 물밑 작업을 한다.
모순균의 가족들에게도 온갖 정성을 보였고 특히 남동생이나 아버님을 집중 공략하여 프로포즈 성공률을 높이려 하였다.
하지만 친해진 지 몇개월 되지 않아 바로 프로포즈 모드로 들어갔고, 모순균이 "우린 아직 어리다"는 말로 프로포즈를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 땐 정말 죽고 싶었다고. 2001년, 모순균의 토크쇼에 출연해 만일 당신이 내 프로포즈를 허락했다면 지금쯤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참고로 장국영뿐만 아니라 모순균도 또한 2번의 이혼과 3번의 결혼으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홍콩 언론지였던 '명보'에서 1980년, 장국영과 '설이'의 스캔들을 직접 취재한 적이 있다.
솔직한 장국영은 당연히 쿨하게 인정했다.
그 후, RTV에서 대놓고 커플로 밀고 나가서 화제성을 잡으려고 했던 모델 출신 배우 '예시배'와 약 2년 간 사귄 적도 있다.
예시배와는 《요철신탐》, 《첨첨입사미》, 《대대호》에서 호흡을 맞추었으며, 그 드라마들이 끝나서 애정이 식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헤어진 후엔 예시배가 다른 에이전시와 계약하여 대만으로 갔다.
그런데 그 후 장국영이 《영웅본색》 시상식 참가 때문에 대만으로 가서 기자회견을 하였을 때, 어떤 기자가 "예시배와 헤어진 후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고, 장국영은 연락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내심 본인에게 아직도 미련이 있다는 식의 말을 해줬으면 하였으나 위의 단호한 인터뷰 때문에 그가 본인에게 미련이 없다고 느끼자 예시배는 자살시도를 하였다.
다행히도 실패.또한 장국영이 은퇴하고 캐나다로 간 것도 좋아하던 이성이 미국에서 유학한다고 하자 그쪽에서 잘해서 결혼까지 하기 위해 따라갔던 게 큰 이유. 이 부분은 고별콘서트 당시 한국 기자와 인터뷰하며 드러난 사실이다.
아마 진숙분이 그가 연예계로 돌아올 거라고 확신한 것도 그 여성과 장국영이 잘못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당학덕 말대로 진짜 둘이 연인 관계였다고 하면 그것은 꾸준히 장국영의 여자친구였던 사람들을 물먹이는 행동밖에 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당학덕과 장국영이 연인 사이라는 증거 자체가 없으며 2000년 열정 투어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기 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당학덕도 같이 가는 거냐?"라고 물었을 때, 장국영은 여러번 관계를 부정했음에도 또 이런 질문이 나오자 "나는 당선생 말고도 친한 친구가 많다.
"며 크게 화낸 부분도 있다.

 

3.2.2. 의문점

 

  • 경찰은 '장국영의 유서가 발견되었다'라고 밝혔지만, 이 유서는 현재까지 전문(全文)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간체자로 작성되어 있었지만, 홍콩은 정체자를 사용한다.
  • 장국영은 심한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24층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국영을 아는 사람들과 팬들은 모두 믿지 않았다. 실제로 장국영은 비행기를 탈 때가 가장 무섭다고 언급한 적도 있고, 실제로 같이 탔던 사람들은 장국영이 이 정도로 심한 고소공포증인가 싶어 놀랐다고 한다. 또한 2~3층 높이의 바닷가 바위나 나즈막한 옥상에서도 촬영하는 걸 힘들어했다.
  • 장국영이 24층에서 투신한 호텔은 중간 부분이 튀어 나온 구조라서 정상적으로 떨어져 죽은 것이라면 호텔 앞에서 시신이 발견돼야 정상이지만 장국영의 시신은 마치 멀리뛰기라도 한 듯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발견되었다.반박: 법의학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에 생겨난 오류이다. 각종 법의학 교양 서적들 때문에 제법 알려진 사실인데, 자살자가 투신할 때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래를 보면서 그대로 몸을 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땅을 보면서 그대로 몸을 던지는 일은 엄청난 공포를 유발하기 때문에 제정신으로는 실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투신자살자는 추락지점 한참 뒤에서 달려와서 앞으로 점프하듯이 뛰어내리기 때문에, 이 항목에 적힌 장국영의 사례처럼 ‘마치 멀리뛰기라도 한 듯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추락사 하는 쪽이 오히려 정상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의혹이라고 할 수 없다.재반박: 실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보면, 튕겨나갈 부분이 헬스장 창문 열고 나오면 24층 바로 아래 넓은 공간이 하나 있고, 또 떨어지다보면 3층 높이에 카페 발코니가 하나 있으며, 그 아래는 택시가 모여있거나 하는 블로킹 구역이 하나 더 나온다. 그런데도 추락사 후에도 30여분간 호흡이 붙어있었고, 피가 적게 쏟아졌고, 추락사의 경우, 몸에서 무거운 머리가 먼저 떨어지며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아니, 모두 다 뇌수와 함께 많은 피들이 터진다. 상대적으로 머리가 온전했다는 점은 의심할 만 하다.
  • 반박: 법의학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에 생겨난 오류이다. 각종 법의학 교양 서적들 때문에 제법 알려진 사실인데, 자살자가 투신할 때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래를 보면서 그대로 몸을 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땅을 보면서 그대로 몸을 던지는 일은 엄청난 공포를 유발하기 때문에 제정신으로는 실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투신자살자는 추락지점 한참 뒤에서 달려와서 앞으로 점프하듯이 뛰어내리기 때문에, 이 항목에 적힌 장국영의 사례처럼 ‘마치 멀리뛰기라도 한 듯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추락사 하는 쪽이 오히려 정상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의혹이라고 할 수 없다.
  • 재반박: 실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보면, 튕겨나갈 부분이 헬스장 창문 열고 나오면 24층 바로 아래 넓은 공간이 하나 있고, 또 떨어지다보면 3층 높이에 카페 발코니가 하나 있으며, 그 아래는 택시가 모여있거나 하는 블로킹 구역이 하나 더 나온다. 그런데도 추락사 후에도 30여분간 호흡이 붙어있었고, 피가 적게 쏟아졌고, 추락사의 경우, 몸에서 무거운 머리가 먼저 떨어지며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아니, 모두 다 뇌수와 함께 많은 피들이 터진다. 상대적으로 머리가 온전했다는 점은 의심할 만 하다.
  • 사람이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굉장히 큰 소리가 나야 하는데, 정작 호텔 현관 앞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관 도어맨은 아무 소리도 못 들어서 신원이 불분명한 행인이 시신을 최초로 발견했다.
  • 투신해서 죽은 것 치고는 혈흔이 너무 적었다. 다만 의사나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투신해서 죽어도 혈흔이 꼭 많지는 않다고 한다.
  • 24층 정도의 높은 높이에서 낙하하면 보통 신체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인 머리로 떨어지게 되는데,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이 TV에 중계되었을 때 잠시 노출된 장국영의 시신은 머리 부분에 외상이 거의 없었다. 이에 논란이 일자 당시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발부터 떨어져서 그렇다고 밝혔다.
  • 그의 매니저였던 진숙분 역시 "장국영은 사망 전 스케줄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라며 보통 자살할 사람의 행적이 아닌 평상시와 다름없는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 또한 진숙분은 사망 당일 그가 사망하기 10분 전인 오후 6시 30분에 장국영과 통화했는데, 그는 주차장에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장국영은 차를 주차한 뒤 곧바로 계단을 이용해 24층까지 뛰어 올라간 뒤 바로 투신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장국영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남자가 실험해봤는데, 주차장에서 지하도를 거쳐서 호텔 입구까지 오는 데만 9분이 걸렸다고 한다. 항간에는 호텔 주변에 있는 스타페리 주차장이면 10분 안에 도착할 확률이 높아진다고는 한다. 물론 장국영이 주차장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을 확률이 더 높아보인다. 다만, '(진숙분의 증언) "5분 뒤에 정문에서 보자"였을 뿐, "지금 지하주차장"이란 말은 없었다.'라는 말이 있어 정말 지하주차장에 장국영이 있었는지 검증이 필요할 듯 하다. 해당 영상 6분경
  • 사건 당일 그의 친구이자 유산상속인이었던 당학덕의 행적 또한 여러 점에서 의문을 갖게 했다. 장국영 사망 당시 당학덕은 그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장국영이 사망하던 날 그와 배드민턴을 치기로 약속했었다고 알리바이를 댔지만 그가 말한 시간은 이미 장국영과 매니저가 2004년 장학우 콘서트 게스트 출연에 관한 내용을 상의하기 위한 약속을 잡아 놓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관리인이나 응급 구조요원의 말을 종합해보면, 장국영의 첫째 누나인 장녹평이나 당학덕이 병원에 왔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어디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응급 구조요원은 3명이 병원에 왔었는데, 한 명은 장국영의 로드매니저 격인 '케네스', 그리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보낸 책임자,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 한 명이 왔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 여성은 진숙분일 가능성이 크다. 여튼 장국영이 사망하기 얼마 전에는 당학덕과 장국영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장국영의 죽기 전 마지막 생일파티에 진숙분과 함께 참여하지 않은 사실도 있고 장국영 사망 며칠 전 당학덕과 장국영이 심하게 싸우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나타났다.

 

4. 여담

 

  •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데, 장국영은 베를린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바가 있다. 하루 3~4편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봤다고.
  • 연기 스펙트럼이 다양했던 배우로, 그의 필모를 보면 이게 같은 사람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캐릭터에 녹아난 연기를 펼쳤다. 국내에서는 천녀유혼이나 패왕별희에서 보여준 연약한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백발마녀전이나 동사서독에서 보여주듯 그야말로 상남자의 비쥬얼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액션씬도 능숙하게 찍었다고 한다.
  • 해산물을 상당히 좋아했다. 특히 대하를 좋아했다고. 반면에 싫어하는 음식은 멕시코 음식. 끔찍하다고 외칠만큼 싫어했다고 한다.
  • 마작을 굉장히 좋아했으며, 종종 모순균과 날밤을 새어가며 마작을 했다고 한다. 영웅본색 수상과 피날레 직후 음반 스케쥴도 미루고 마작을 했다고 한다.
  • 본인이 맡은 배역 중 가장 연기하기 어려웠던 배역은 의외로 해피 투게더의 '보영'역이라고 한다. 북경어와 경극 연기를 해야 했던 패왕별희의 '데이'역은 역할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반면 '보영'역은 그렇지 못했고 관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출연한 양조위와 의외로 성격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마작을 두고 있는 장국영을 위해 양조위가 차를 끓여 준다며, 티백을 준비하는 시간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리곤 '이 차는 뜨거울 때와 식었을 때의 향이 달라' 라고 하자 장국영은 '그래? 난 코가 막혀서 잘 몰라' 라며 한입만에 호로록 마셔버렸다고 한다.
  • 1989년 방송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배우로 양조위를 언급한 바 있으며 양조위 또한 2008년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장국영을 본인과 가장 잘 맞았던 상대배우로 꼽았다.
  • 친한 연예인으론 나문, 임청하, 매염방, 종초홍, 유가령, 장만옥, 원영의, 양가휘 등이 있으며, 워낙 홍콩 배우들은 다작을 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유가령만 하더라도 함께 출연한 영화가 무려 5편이다. 영웅본색에서 같이 주연을 맡았던 주윤발과도 매우 친했고 성룡이나 유덕화와도 꽤 친한 편이었다. 자신의 대표작인 영웅본색과 연지구에 나오기도 했던 주보의와도 괜찮은 사이였다. 1997년 1월에 장국영은 양가휘와 장만옥과 함께 자선 토크쇼에도 출연했다.영상
  • 남자치고 손과 발이 광장히 작았다. 발 사이즈는 240mm로, 평균 남성들의 발 사이즈가 270mm정도인 것에 비하면 작은 수치이다.
  • 각종 인터뷰에서 결혼 생각이 없음을 확고히 밝혔다. 독신으로 사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으며 자신은 이 생활이 좋다고.
  • 우리나라의 전담성우는 김승준. 부드럽고 젠틀한 목소리가 딱 어울린다는 평이다. 김승준은 한 인터뷰어서 《패왕별희》의 데이의 더빙 연기가 자신이 했던 가장 힘든 역할 중 하나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거의 신인급이던 그가 대선배들 사이에서 가뜩이나 긴장하면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녹음이 8시간을 넘어가고 밤 10시 경에 마지막으로 문화대혁명의 자아비판씬을 녹음할 때는 본인도 이미 데이의 엄청난 괴로움을 같이 느꼈을 정도라고.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여 자신의 노래인 Sleepless Night과 To You를 불렀다. 영상.
  • 왕가위 감독은 SBS '금요일엔 수다다'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면서 장국영과 양조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두 사람을 '음'과 '양'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만약 이 공간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면 제일 먼저 보일 사람이 '장국영'이에요. 모든 사람이 집중하고, 그렇게 주목을 받아야만 하는 배우가 장국영이죠.'양조위'는 이 공간에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눈에 안 띄게 어디론가 숨을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서서히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거예요."
  • 야마구치 모모에를 동경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그 역시 고별 콘서트 마지막 부분에서 마이크를 무대에 놓은 채 퇴장하는 연출로 야마구치 모모에에 대한 오마주를 표한 바 있다.(알다시피,'풍계속취'는 야마구치 모모에의 은퇴 싱글 '이별의 저편에서'를 번안한 곡이다.)
  •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출신 연예인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영어가 유창한 편이었는데,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한동안 유학했던 고학력자였으며, 홍콩에서도 비교적 상류층들이 많이 다니던 서양인 신부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녀서 이 영향으로 영어가 유창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광둥어로 말하고 학교에서는 영어로 말하는 환경에서 나고 자라서 사실상 이중언어 구사자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는 영어가 공용어인 캐나다로 귀화해서 캐나다인이 되었다 그래서 방한했을 당시 한국 매체들과 인터뷰할 때도 주로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공산당 주선율영화(…)였던 홍색 연인에서도 영어가 유창한 공산당원으로 등장하여 극 중 내내 거의 영어로만 연기하기도 했다.
  •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1994년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유명한 허밍곡은 장국영의 무명 시절 영화 속 삽입곡을 표절했다. 장국영이 아직 뜨기 전 절친이었다가 나중엔 갈라선 진백강과 주연으로 출연한 1981년 홍콩 영화 '실업생(失業生)' 중에 호텔 138호 여인이 등장하는 장면에 삽입된 곡을 100% 베껴 만든 표절곡이다. 영화 속 음악 등장씬 그러나 당시 장국영이 무명일때 찍은 작품이었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이 같은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21세기가 되어서야 밝혀졌다.
  • 1998년 신인 시절의 전지현이 장국영이 방한했을 당시 장국영이 머물던 호텔방에 들어가서 기습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전지현은 이 때 장국영에게 어떤 한국어 호칭으로 불러드리면 좋겠냐고 질문을 했고, 장국영은 "아저씨"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니까 "아저씨"라고 불러달라고 대답했다. 그 밖에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김치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5. 출연작

 

 

5.1. 드라마

 

  • 홍콩 RTV 작품《악어루(鱷魚淚, Crocodile Tears)》(1978) - 방영 당시 빅히트작를 쳤던 작품. 여기에서 장국영은 단역이다.《완화세검록(浣花洗劍錄, The Spirit of the Sword)》(1978)《정인전 (情人箭, The Cupid Strikes)》(1979) - 드라마에 출연은 안 했지만 타이틀 송을 불렀다. 국내에도 VHS로 출시되었지만, 홍콩에서도 재방을 많이 안 해서 자료가 거의 없는 희귀작. 다만, 2013년에 aTV에서 새로 송출을 시작한 세월류성(歲月留聲)이란 채널에서 《정인전》이 언급되었다. 즉 재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지만 그 전에 aTV가 망했다(...). 다행히 TVB가 판권을 사서 현재는 TVB Anywhere에서 VOD로 감상이 가능하다.《부생육겁(浮生六劫, Gone with the Wind)》(1980)《소소심원(小小心願, Make a Wish)》(1980)《대내군영속집 (大內群英續集, Dynasty II)》(1980)《주해효웅(珠海梟雄, Bandits from Canton》(1981)《유협장삼풍(遊俠張三丰, Tai Chi Master II)》(1981)《대대호(對對糊, Four Couples)》(1981)《첨첨24미(甜甜廿四味, Agency 24)》(1981)《요철신탐 (凹凸神探,Cheap Detective)》(1982)
  • 《악어루(鱷魚淚, Crocodile Tears)》(1978) - 방영 당시 빅히트작를 쳤던 작품. 여기에서 장국영은 단역이다.
  • 《완화세검록(浣花洗劍錄, The Spirit of the Sword)》(1978)
  • 《정인전 (情人箭, The Cupid Strikes)》(1979) - 드라마에 출연은 안 했지만 타이틀 송을 불렀다. 국내에도 VHS로 출시되었지만, 홍콩에서도 재방을 많이 안 해서 자료가 거의 없는 희귀작. 다만, 2013년에 aTV에서 새로 송출을 시작한 세월류성(歲月留聲)이란 채널에서 《정인전》이 언급되었다. 즉 재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지만 그 전에 aTV가 망했다(...). 다행히 TVB가 판권을 사서 현재는 TVB Anywhere에서 VOD로 감상이 가능하다.
  • 《부생육겁(浮生六劫, Gone with the Wind)》(1980)
  • 《소소심원(小小心願, Make a Wish)》(1980)
  • 《대내군영속집 (大內群英續集, Dynasty II)》(1980)
  • 《주해효웅(珠海梟雄, Bandits from Canton》(1981)
  • 《유협장삼풍(遊俠張三丰, Tai Chi Master II)》(1981)
  • 《대대호(對對糊, Four Couples)》(1981)
  • 《첨첨24미(甜甜廿四味, Agency 24)》(1981)
  • 《요철신탐 (凹凸神探,Cheap Detective)》(1982)
  • 홍콩 TVB 작품《농본다정(儂本多情, Once Upon an Ordinary Girl)》(1984)《무림세가 (武林世家, The Fallen Family)》(1985)《홍콩 86 (香港八六, Hong Kong '86)》(1985)
  • 《농본다정(儂本多情, Once Upon an Ordinary Girl)》(1984)
  • 《무림세가 (武林世家, The Fallen Family)》(1985)
  • 《홍콩 86 (香港八六, Hong Kong '86)》(1985)
  • 홍콩 RTHK 작품《애정고사지(愛情故事之)》(1977)《한지붕 아래(屋簷下之(15,16); Teenagers)》(1978)《아가적여인(歲月河山之 "我家的女人"》(1980): 장국영이 첫 감독작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고 큰 상심과 우울증이 생기자 2002년 5월 1일에 작가 이벽화가 장국영을 찾아가서는 큰 예산이 필요없고, 당시 시카고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만큼 인정받은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여 감독해보는 건 어떤가 제의했고, 장국영과 약속하여 2003년 5월 1일 크랭크인을 목표로 준비 중인 작품이었다. 장국영은 장백지를 캐스팅하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이 작품의 진전을 생각했으나, 결국 크랭크인 1달을 남기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도적고사 "사지성" (島的故事"砂之城")》(1981)《여인33(臨歧之女人33)》(1983)
  • 《애정고사지(愛情故事之)》(1977)
  • 《한지붕 아래(屋簷下之(15,16); Teenagers)》(1978)
  • 《아가적여인(歲月河山之 "我家的女人"》(1980): 장국영이 첫 감독작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고 큰 상심과 우울증이 생기자 2002년 5월 1일에 작가 이벽화가 장국영을 찾아가서는 큰 예산이 필요없고, 당시 시카고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만큼 인정받은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여 감독해보는 건 어떤가 제의했고, 장국영과 약속하여 2003년 5월 1일 크랭크인을 목표로 준비 중인 작품이었다. 장국영은 장백지를 캐스팅하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이 작품의 진전을 생각했으나, 결국 크랭크인 1달을 남기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 《도적고사 "사지성" (島的故事"砂之城")》(1981)
  • 《여인33(臨歧之女人33)》(1983)
  • 대만 TTV 작품《복록수희 (福祿壽喜)》(1986)
  • 《복록수희 (福祿壽喜)》(1986)

 

5.2. 영화

 

연도
작품
배역
1977
홍루춘상춘
 
1978
구교구골 (狗咬狗骨)
 
1980
갈채 (喝采)
지코
1981
실업생 (失業生)
1982
양과여소용녀(楊過與小龍女)
양과
충격21 (衝激21)
열화청춘 (烈火青春)
루이스
영몽가락 (檸檬可樂)
잭슨
1983
고수 (鼓手)
첫사랑 (第一次)
1984
연분 (緣扮)
성탄쾌락 (聖誕快樂)
 
삼문치 (三文治)
 
1985
위니종정 (為你鍾情)
푸수이
H2O 용봉지다성 (龍鳳智多星)
구애반투성 (求愛反斗星)
빌리•레슬리
1986
영웅본색 (英雄本色)
송자걸
우연 (遇緣)
루이
1987
영웅본색 2 (英雄本色2)
송자걸
천녀유혼(倩女幽魂)
영채신
1988
연지구 (胭脂扣)
진진방
살지연 (殺之戀)
척지광
1989
최가박당 (新最佳拍檔)
 
1990
천녀유혼 2 인간도(倩女幽魂II人間道)
영채신
아비정전 (阿飛正傳)
아비 (욱자)
1991
종횡사해 (縱橫四海)
제임스
호문야연 (豪門夜宴)
 
1992
가유희사 (家有喜事)
상소
시티보이즈 (藍江傳之反飛組風雲)
아비
1993
동성서취(東成西就)
황약사
백발마녀전 1, 2 (白髮魔女傳)
탁일항
패왕별희 (霸王別姬)
청데이
화전희사 (花田囍事)
데이비드 카퍼필
1994
동사서독 (東邪西毒)
구양봉
금지옥엽 (金枝玉葉)
금수전정 (錦繡前程)
임초영
대부지가 (大富之家)
로버트
기득향초성숙시 2 - 초련정인(記得香蕉成熟時II初戀情人
 
1995
금옥만당 (金玉滿堂)
조항생
야반가성 (夜半歌聲)
송단평
1996
금지옥엽 2 (金枝玉葉 2)
대삼원 (大三元)
종국강
신 상해탄 (新上海灘)
허문강
색정남녀 (色情男女)
풍월 (風月)
우충량
1997
가유희사(97家有囍事)
 
해피 투게더
하보영
1998
친니친니 (安娜瑪德蓮娜)
편집장
구성보희 (九星報喜)
마인장
홍색연인 (紅色戀人)
1999
유성어 (流星語)
이조영
성월동화 (星月童話)
타츠야 / 가보
2000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여아휘 / 본인
오키나와 랑데뷰(戀戰沖繩)
지미
스피드 4초(倉王)
팽혁행
2002
이도공간(異度空間)
2008
동사서독 리덕스 (東邪西毒 Redux)
구양봉

 

6. 수상 내역 - 영화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77년
제 2회 아시아 송 콘테스트
2위
American pie
1982년
제 30회 영화평론활동부문
남우조연상
실업생
1988~1989년
제이드 솔리드 골드 시상식
인기 남자배우
-
1991년
제 10회 홍콩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
아비정전
1992년
제 30회 대만금마장영화제
주제가상
백발마녀전
1993년
중국영화 표연예술학회
특별공헌상
패왕별희
1994년
일본 영화 평론가협회 외국영화
남우주연상
패왕별희
1994년
제 1회 홍콩영화 평론가협회
남우주연상
동사서독
1995년
홍콩영화 비평가협회
최고배우상
동사서독
1995년
제 14회 홍콩 금상장 시상식
주제가상
금지옥엽
1999년
중문 금곡 반장 음악회
1위
-
1999년
제이드 솔리드 골드 시상식
인기 남자배우
-
2002년
연예동력대장
남우주연상
이도공간
2003년
20세기 중국 10대 문화우상
선정
-
2005년
중국영화 100주년 기념 가장 사랑받은 남자배우
1위
-

 

7. 수상 내역 - 음악

 

  • 1983년경가 제2분기 금곡 - 풍계속취경가 제4분기 금곡 - 일편치
  • 1984년경가 제3분기 금곡 - MONICA경가 제4분기 금곡 - 유정밀의, H2O, 지파불재우상십대경가금곡 - MONICA제 7회 십대중문금곡 - MONICA
  • 1985년경가 제2분기 금곡 - 불기적풍, 소녀심사, 아원의경가 제3분기 금곡 - 제일차, 전뢰유니십대경가금곡 - 불기적풍제 8회 십대중문금곡 - 불기적풍
  • 1986년경가 제1분기 금곡 - Stand Up, 수령니심치경가 제2분기 금곡 - 흑색우야, 타개신상경가 제3분기 금곡 - 당년정경가 제4분기 금곡 - 애화, 유수공명십대경가금곡 - 당년정, 유수공명십대경가금곡 금상 - 유수공명제 9회 십대중문금곡 - 당년정
  • 1987년경가 제1분기 금곡 - 애모경가 제3분기 금곡 - 공동도과, 무심수면십대경가금곡 - 무심수면십대경가금곡 금상 - 무심수면제 10회 십대중문금곡 - 무심수면십대중문금곡 CD 대상 - Summer Romance 87십대중문금곡 전년소양군관대상 - Summer Romance 87십대중문금곡 창의가곡상 - Summer Romance 87
  • 1988년경가 제1분기 금곡 - 열랄랄경가 제2분기 금곡 - 첩신, 침묵시금경가 제3분기 금곡 - 무수요태다십대경가금곡 - 첩신, 침묵시금십대경가금곡 최고인기 남자가수상제 11회 십대중문금곡 - 첩신, 침묵시금십대중문금곡 IFPI 대상질타악단유행방 남자가수 금상
  • 1989년경가 제1분기 금곡 - 측면경가 제2분기 금곡 - 유령개시십대경가금곡 - 유령개시십대경가금곡 최고인기 남자가수상제 12회 십대중문금곡 - 측면 질타악단유행방 남자가수 금상질타악단유행방 IFPI 대상 - 측면
  • 1999년 십대경가금곡 영예대상 (공로상)제 22회 십대중문금곡 - 좌우수 십대중문금곡 20세기 십대금곡 - MONICA질타악단유행방 지존금곡 - 좌우수신성경폭가곡 가곡 대상 - 좌우수
  • 2000년십대경가금곡 사대연반음악대상 - Lesile Untitled제 23회 십대중문금곡 - 대열 질타악단 전업추개가곡 4위 - 노과청정
  • 2002년제 25회 십대중문금곡 - 영예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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