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프롬스의 최근 이슈
유인태
대한민국 제32대 국회사무총장
유인태 柳寅泰 | Ryu In-tae |
|
출생
|
1948년 9월 5일 (74세)
|
충청북도 제천군
(현 충청북도 제천시) |
|
본관
|
문화 류씨
|
재임기간
|
참여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
2003년 2월 25일 ~ 2004년 2월 13일
|
|
제32대 국회사무총장 (장관급)
|
|
2018년 7월 16일 ~ 2020년 6월 28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제32대 국회사무총장.다.
2. 생애
1948년 충청북도 제천군(현 제천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4년 5개월 동안 복역하였다가 1978년 석방되었다.
석방 뒤 기업체를 경영하였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4년 5개월 동안 복역하였다가 1978년 석방되었다.
석방 뒤 기업체를 경영하였다.
2.1. 정계 활동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백남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자유당 신오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 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김대중을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설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노무현, 원혜영, 김원기 등과 국민통합추진회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가 공천에서 배제되는 푸대접을 받자 국민회의를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도봉구 을 한나라당 공천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으나 결국 출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한다.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이때 튀는 언행으로 "엽기수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선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컷오프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순순히 승복하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승복 인터뷰에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삶의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으며, 그 동안 당이 어려워서 물러나지 못했다는 변을 밝혔는데, 사실상 정계 은퇴 선언으로 봐도 무방할 듯.정계은퇴 후로는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정치 평론을 하고 있는데, 민주당 출신이었으나 민주당에도 따끔하게 지적을 하면서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패널이라는 평이다.
2018년 1월부터는 CBS 뉴스쇼의 꼭지 '월간 아무개'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2018년 고향인 제천시가 포함된 제천시·단양군 선거구의 자유한국당 권석창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2018년 재보궐선거 출마설이 나왔으나 본인이 부인했다.
2018년 7월 16일,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제32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
국회 특수활동비의 전면 투명화나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러한 입장은 보수정당에 대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같이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제21대 국회 개원 이후 2020년 6월 29일,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지명을 받은 김영춘 국회사무총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면서 퇴임해 원소속이었던 더불어민주당으로 자동 복당하였다.
다가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부겸 후보 캠프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하였다.
아마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함께했던 인연 때문인 듯 하다.
윤석열 사태에 대해서, 추미애 전 장관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가 검찰개혁의 본질을 흐리고 정권에 부담을 줬다고 주장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지난 8월에도 추 장관이 아들의 군 복무 관련 논란에서 '소설 쓰시네' 발언을 한 것과 민주당이 상임위를 독식한 것을 우려한 바 있다.
2021년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대패로 끝나자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오만에 빠진 당이 강성 지지층만 챙기다가 중도층을 잃고 쪼그라들었기에 대패한 것이며, 박영선과 김영춘도 선거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발언을 했다.
노컷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영춘이 본인에게 당헌 고치지 말고 후보 내지 말라고 당에 좀 말해달라고, 그래야 자신이 선거를 피할 수 있다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2021년 6월에는 대선 출마를 발표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놓고 윤석열에게 빛을 쏴주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8월 말 민주당이 언론개혁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자충수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자유당 신오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 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김대중을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설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노무현, 원혜영, 김원기 등과 국민통합추진회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가 공천에서 배제되는 푸대접을 받자 국민회의를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도봉구 을 한나라당 공천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으나 결국 출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한다.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이때 튀는 언행으로 "엽기수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선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컷오프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순순히 승복하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승복 인터뷰에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삶의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으며, 그 동안 당이 어려워서 물러나지 못했다는 변을 밝혔는데, 사실상 정계 은퇴 선언으로 봐도 무방할 듯.정계은퇴 후로는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정치 평론을 하고 있는데, 민주당 출신이었으나 민주당에도 따끔하게 지적을 하면서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패널이라는 평이다.
2018년 1월부터는 CBS 뉴스쇼의 꼭지 '월간 아무개'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2018년 고향인 제천시가 포함된 제천시·단양군 선거구의 자유한국당 권석창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2018년 재보궐선거 출마설이 나왔으나 본인이 부인했다.
2018년 7월 16일,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제32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
국회 특수활동비의 전면 투명화나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러한 입장은 보수정당에 대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같이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제21대 국회 개원 이후 2020년 6월 29일,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지명을 받은 김영춘 국회사무총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면서 퇴임해 원소속이었던 더불어민주당으로 자동 복당하였다.
다가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부겸 후보 캠프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하였다.
아마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함께했던 인연 때문인 듯 하다.
윤석열 사태에 대해서, 추미애 전 장관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가 검찰개혁의 본질을 흐리고 정권에 부담을 줬다고 주장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지난 8월에도 추 장관이 아들의 군 복무 관련 논란에서 '소설 쓰시네' 발언을 한 것과 민주당이 상임위를 독식한 것을 우려한 바 있다.
2021년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대패로 끝나자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오만에 빠진 당이 강성 지지층만 챙기다가 중도층을 잃고 쪼그라들었기에 대패한 것이며, 박영선과 김영춘도 선거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발언을 했다.
노컷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영춘이 본인에게 당헌 고치지 말고 후보 내지 말라고 당에 좀 말해달라고, 그래야 자신이 선거를 피할 수 있다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2021년 6월에는 대선 출마를 발표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놓고 윤석열에게 빛을 쏴주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8월 말 민주당이 언론개혁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자충수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3. 기타
-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서 재심을 청구해서 2012년 2월 7일 무려 38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때문에, 사형제 폐지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2004년 17대 국회와 2015년 19대 국회에서 모두 사형제 폐지 법안을 제출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선 유인태 의원의 주도아래 새누리당, 민주당, 정의당 합쳐서 무려 171명이 공동발의했지만 결국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되었다.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다.
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노원 갑
|
한겨레민주당 |
7,575 (8.39%)
|
낙선 (5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도봉 갑
|
민주당(1991년) |
48,603 (40.88%)
|
당선 (1위)
|
초선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도봉 을
|
통합민주당(1995년) |
21,376 (25.91%)
|
낙선 (3위)
|
|
2002
|
상반기 재보궐선거
|
서울 종로
|
새천년민주당 |
8,953 (22.18%)
|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도봉 을
|
열린우리당 |
42,564 (47.37%)
|
당선(1위)
|
재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통합민주당(2008년) |
32,777 (45.94%)
|
낙선 (2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통합당 |
43,784 (51.06%)
|
당선 (1위)
|
3선
|
5.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한겨레민주당 |
1988 - 1991
|
정계 입문
|
무소속
|
1991
|
정당 해산
|
민주당(1991년) |
1991 - 1995
|
입당
|
통합민주당(1995년) |
1995 - 1997
|
합당
|
무소속
|
1997
|
탈당
|
새정치국민회의 |
1997 - 1999
|
입당
|
무소속
|
1999 - 2000
|
탈당
|
한나라당 |
2000
|
입당
|
무소속
|
2000
|
탈당
|
새천년민주당 |
2000 - 2003
|
복당
|
무소속
|
2003
|
탈당
|
열린우리당 |
2003 - 2007
|
창당
|
대통합민주신당 |
2007 - 2008
|
합당
|
통합민주당(2008년) |
2008
|
합당
|
민주당(2008년) |
2008 - 2011
|
당명 변경
|
민주통합당 |
2011 - 2013
|
합당
|
민주당(2013년) |
2013 - 2014
|
당명 변경
|
새정치민주연합 |
2014 - 2015
|
합당
|
더불어민주당 |
2015 - 2018
|
당명 변경
|
무소속
|
2018 - 2020
|
탈당
|
더불어민주당 |
2020 - 현재
|
복당
|
6. 둘러보기
서울특별시 제14대 국회의원
|
내용이 도움이 되셨으면 공감 버튼 꼬옥 눌러주세요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