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출생 : 1968년 6월 23일 (54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 대한민국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본관 : 경주 이씨
직업 : 기업인
현직 : 삼성그룹 총수삼성전자 부회장
학력 : 경기초등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 /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박사과정 수료)
부모 : 아버지 이건희, 어머니 홍라희
형제자매 : 여동생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자녀 : 장남 이지호(2000년 12월 14일생)장녀 이원주(2004년 03월 27일생)
신체 : 182cm, B형
병역 : 전시근로역 (추간판 탈출증)
종교 : 무종교
재산 : 92억 달러 (한화 약 11조 2,200억원)
2.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그룹 총수.
3. 생애
1968년 6월 23일에 태어났고,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87학번)를 졸업했다.
이후 게이오기주쿠대학 MBA를 취득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과 관련해서 첨언하자면, 조부인 이병철 회장이 "경영학은 나중에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유해 동양사학과에 입학한 것이라고 한다.
그와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처음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했던 점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이재용이 동양사학과를 전공한 건 당시 경제대국이던 일본에 관심이 많던 부친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학사 논문도 일본의 산업 공동화에 대한 것이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당시 중국사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일이긴 하다.
다만 그래서인지 이재용도 아들은 상하이 외국인 학교에 보낸다는 말도 나오는 등 중국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 외 경쟁률 스나이핑 때문에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1987학년도 서울대 학과별 지원상황을 보면 당시 동양사학과는 2대 1의 제법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에 그것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울대 평균 경쟁률이 1.6:1이었고, 동양사학과는 문과 계열 중 5번째, 문이과 합쳐서(예체능 제외) 7번째로 경쟁률이 높았다고 한다.
1987년도 학력고사 배치표상에서도 동양사학과는 296점 이상으로 서울대 문과 계열 쪽에서는 4번째 구간 이었으니 단지 서울대 입학만을 위해 무작정 과를 고른 게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재용의 대학 생활은 동기들 얘기 등을 종합해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벌집 도련님하곤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일단 부자 티를 별로 안내서 학적부처럼 아버지 직업란을 적는 곳이 있으면 회사원이라고 기입했다고 한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주변인들은 그가 재벌집 자제라는 것 정돈 알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건 80년대 당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는 운동권으로 유명한 학과였다는 것이다.
상기했듯 중국사 관련으로도 유명하다 보니 당시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공부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학과 자체가 서민친화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운동권적 성향이 강했고, 그런 곳에서 무난히 지냈으니 성격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실제 지금도 동기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재용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같은 과 1년 선배였던 최영인과 연인인 척 손을 잡고 시위에 참가해서 최루탄 맛을 경험하기도 했고, 전방 입소 거부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대학생이라면 크게 낯설진 않은 풍경이기도 하지만, 무려 삼성 후계자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과 MT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 당시 동기들과 각종 논쟁에 대한 토론도 즐겼다고 한다.
당시 동기생들에게 이재용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 이미지였다고. 이재용, 이 사람이 아버지를 이기는 길.한편으로는 그 역시 평범한 당시 20대 청년답게 흠모하던 여학생과 몇개월 연애도 해보고, 승마 선수 경력을 살려 상무에 입대할지 아님 학사 장교로 입대할지 등 병역 문제 고민도 했다고 한다.
종국엔 1991년 11월 허리 디스크로 면제되긴 했지만. 그리고 한달 후인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삼성전자 내에서 경영기획팀 상무보, 경영기획팀 상무, 전무,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등을 역임하며 승진했다.
1998년에는 조미료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이자 9세 연하인 임세령과 결혼했지만 2009년 합의 이혼했다.
현재 임세령은 대상그룹의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2005년에는 막내 여동생 이윤형 양이 유학 중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겪게 된다.
본인은 지금도 가슴이 아리는 일인 듯.2014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병으로 입원한 이후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총수가 되었다.
2015년 5월 15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이후 책임을 지고 등기이사의 자리에 올라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고 국정논란 의혹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명목상으로 삼성전자 부회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기업 1인자이다.
2021년 8월 가석방되었다.
2022년 7월 형집행 완료 처분이 되면 3대 회장 직함을 달 가능성이 높다.
4. 경영 능력
요약하면 2010년대 부회장 취임 이전과 이후의 평가가 완전히 상반되는 편이다.
부친 이건희 회장이 일선에서 활동하던 황태자 시절엔 경영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오죽하면 당시 안티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도 '마이너스의 손'이었을 정도. 다만 그 이건희 회장도 황태자 시절엔 본인이 손댔던 사업에서 실패를 겪어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사업이었다.
결국 제대로 경영에 나서지 않은 상황이었을 뿐, 국내 1등 기업이라는 삼성의 특성과 그 위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던 이건희 회장이 직접적으로 현장에 나섰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그렇게 형성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5. e삼성
당시 이재용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고 의심받은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e삼성 실패였다.
일반인들은 e삼성 운운하는 얘기는 제법 들어봤겠지만 정작 e삼성 실패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를텐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2000년 당시 33세였던 이재용은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창업한다.
이재용이 직접 지분 60%의 대주주로 출자했고, 나머지 지분은 삼성 계열사와 특히 당시 삼성 2인자인 이학수와 김인주까지 참여한 사실상 삼성 수뇌부가 단단히 베팅한 사업이었다.
이렇게 설립한 e삼성은 IT 벤처사업 투자를 목표로 국내 투자는 e삼성, 해외 투자는 e삼성인터내셔널로 나누어 진행했다.
e삼성의 설립 배경은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이재용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성과지표이자 이건희 못지않은 능력자 이미지 구축, 미국의 거대 IT 기업 아마존닷컴, Microsoft, 구글처럼 상장 대박나면 비싼 상속세 낼 필요없이 삼성 지분 사들여서 경영권 승계, 삼성그룹의 IT 사업 확장 등 성공만 했으면 이재용의 미래가 크게 바뀌는 사업이었다.
훗날 승계 문제로 된통 당하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이런 IT, 4차산업 투자로 대박난 기업 중 하나가 소프트뱅크이다.
이렇게 보면 이재용과 달리 손정의 회장은 베팅에서 제대로 대박을 친 케이스.e삼성의 경영이 어땠는지에 대해선 여러 말이 많은데,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에서도 구체적인 정황이 많이 언급된다.
하여튼 2001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선 e삼성을 위한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 부당지원을 조사하고 경고까지 주는 등 초반부터 경영이 좋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공정위의 철퇴에 결정적으로 당시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e삼성은 폐급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2001년 e삼성인터내셔널은 설립 첫해부터 투자회사들의 적자로 76억 원의 손실을 냈고, e삼성과 나머지 해외법인, 투자한 모든 회사의 적자를 합치면 도합 173억의 적자를 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e삼성이 말아먹은 손실을 삼성 계열사로 전가했다는 것인데, 이재용의 보유 지분을 제일기획이 208억에 사들였으며, 다른 사업의 지분도 삼성SDS, 삼성SDI, 에버랜드 등 계열사가 사들이게 된다.
즉 이재용은 173억의 적자를 낸 회사를 208억에 팔고 손을 뗀 셈이다.
다만, 당시 사업체들을 전부 말아먹은 것은 아니어서 일부가 2020년대까지도 계열사의 자회사 형태로 존속하고 있으며, 멀티캠퍼스(구 크레듀), 시큐아이, 미라콤아이앤씨가 그런 회사들이다.
멀티캠퍼스, 시큐아이의 2020년 기준 시가총액에서 e삼성의 지분가치로 환산하면 지금은 어느정도 수익권이긴 하다.
20년 동안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손해를 받았고 겨우 2019년부터 흑자로 반전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성이란 뒷백을 두고도 e삼성을 말아먹었기 때문에 당시 이재용은 경영 능력에 큰 의심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도 배임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어찌어찌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 사실 검찰 측에서 강하게 몰아붙였으면 어찌 됐을지는 이하 생략. 게다가 e삼성의 실패로 이재용의 승진길도 전무, 부사장에 머무르는 동안, 물론 개인적인 사이는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동생 이부진이 당시 기준 일반인과의 결혼, 신라호텔 사업의 성과 등으로 부각되었기에 사뭇 비교되면서 세간의 의구심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6. 부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이건희가 갑작스레 쓰러지고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부터, 이재용은 상기한 e-삼성 실패로 일각의 우려를 받았으나 이로부터 몇년이 훌쩍 지난 2022년 현재 상황을 놓고 평가를 해보자면 삼성을 아주 잘 이끌고 있다.
삼성 역시 매우 우수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2018년에는 기록적인 반도체 호황을 기록하며 무려 영업이익 58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아버지 때도 못 이룬 업적. 반도체 호황이 끝나가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2020년 기준으로도 삼성전자의 2019년 4분기 실적은 영업이익 7조원을 넘어가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0년 3분기 발표에서 무려 영업이익 12조 3,000억의 서프라이즈를 경신하며 초호황이 끝나고도 괜찮은 경영 실적을 거두었다.
물론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코로나 사태 이후 호황인 전자산업이기 때문에 이런 실적이 나왔다고 비판할수있다.
스마트폰 경쟁사인 Apple과 비교하자면, 혁신의 아이콘이던 스티브 잡스가 죽었지만 후계자인 팀 쿡이 안정적인 경영과 탄탄한 재무운용을 바탕으로 잡스 시절과 비교가 안될 만큼 애플의 성장을 이끌고 있듯, 삼성도 이병철이 창업하여 국내 대기업으로 키워낸 것을 이건희가 공격적인 경영으로 글로벌 대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면, 이재용은 이를 지키고 굳히는 수성형에 가까운 타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삼성은 이미 초거대 기업으로 도박성이 섞인 공격적인 경영만 하다간 오히려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사이즈에서는 역으로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재용은 마이너스의 손이라던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준수한 실적을 올리며 삼성을 이끌고 있다.
7. 개선할 부분
현재 이재용한테 필요한 능력은 사업을 조정하고, 오너인 자신이 없어도 사업체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이건희 자신이 신뢰한 몇 명의 경영진만을 내세워 삼성그룹을 통제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큰 삼성이 더 커져버린 상황에서 이건희의 측근들만으로 경영하기에는 그들이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좋게 보면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경영진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무슨 일이라도 나서 이건희를 비롯한 측근과 삼성 요직들이 자리를 비우면 아래 업무들은 그야말로 멈춤 상태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
한마디로 리스크도 크고 무엇보다 구시대적이다.
그래서인지 이재용은 자신의 측근 외에도 많은 경영진을 뽑았고, 실제로 삼성은 이재용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전무, 상무급 임원진이 크게 늘었다.
그리고 이재용의 임원진급 승진 인사 인선 과정에서 딱히 문제될 점은 없었다.
이후 이재용식 인사를 통해 뽑힌 경영진과 그 경영진들이 뽑은 사원들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이건희 시대보다 더 커진 초대기업임에도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의 몇몇 고질적인 비판점들도 개선해야 할 부분인데, 바로 부친 시대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무노조 경영이나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편법/불법 승계 문제같은 것들이다.
현재 이재용은 하단에 후술할 내용들을 덧붙혀 이와 결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삼성이 완성형 기업에 위치한 만큼 이젠 사회적인 요구에 발 맞춰서 제대로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21세기 글로벌 기업에서 아직도 거론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2020년 5월 이재용 본인이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직접 기자회견까지 했듯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지하고 여기에 더불어서 시민사회와 소통을 추진, 특히 삼성의 성역이었던 경영권 승계 문제에 본인이 직접 자식 승계는 없을 것이라고 추가적인 결단을 내린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물론 실제 행동을 봐야 정확히 평가가 되겠지만, 이재용 본인은 이것을 본인대에 해결하는 것이 자신이 선대를 뛰어넘는 업적을 가질 수 있는 한 잣대로 판단하는 모양이고, 실제로 해당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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