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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인싸 정보

by 채은아빠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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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1. 개요

 

언어별 명칭

 

2. 정의

 

정규 혹은 계약직 공무원의 일종으로 직접 채용하는 모병제 혹은 징병제하에서 자원 입대한 정규 군인은 용병이 아니다.
따라서 외국인이 타국 군대에 복무한다고 해서 무조건 용병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또한 개인이라든지 전문적인 집단이 아니라 봉건 영주가 금전적 이익을 목표로 용병처럼 고용되는 경우들 또한 있었다.
일반적인 직업군인과, '용병'으로 칭하는 집단과의 차이는 국가에 직속되어 있는가와 금전적 계약을 중시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용병은 보수만 주어지면 의뢰주와의 약속대로 의뢰받은 업무를 해주기 때문에, 의뢰주가 누구든 관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당연히 직업 특성상 대부분 군사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일하며, 따로 옵션으로 이것도 수행해주겠다고 사전에 계약을 맺거나 혹은 계약을 중도 변경하지 않는 한 일반적인 정규군이 하는 재난 구호 업무 등은 시킬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일반적인 직업군인은 '직업 공무원'이라면 용병은 '기업', 그것도 '민간 기업'에 비유할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애매한 부분도 많지만 스페인 내전의 국제 여단이나 무자헤딘 같은 의용군도 원칙적으로 용병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이익 관계와 급여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적, 이데올로기적, 신념적 이유로 남의 전쟁에 자진해서 뛰어든 것이며, 이들의 경우도 대부분 어떤 방식으로든 해당 분쟁이 끝나면 민간인 신분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용병은 순전히 금전적 이유로, 장기 복무하는 전문 군인들을 의미한다.

 

3. 역사

 

전쟁을 왜 하느냐고 군인들에게 묻는다면 "내 나라와 민족, 그리고 내 가족을 지키려고 싸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오로지 돈을 벌려고 전쟁터에 뛰어든다.
이들이 바로 '용병'이다.
용병의 역사는 오래됐다.
2,200년 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40마리의 코끼리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넘어갈 때 많은 용병을 데려갔다.
로마 제국 본토로 쳐들어가 무려 15년 동안 싸웠던 한니발의 군대는 카르타고 출신보다 용병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외인 용병들이 없었다면 한니발의 위대한 군사적 업적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용병이 있다.
가장 많은 용병을 쓰는 나라가 미국이다.
민간보안기업에 고용된 무장 경비원들이 중동 지역에서 요인 경호, 시설 경비 등을 한다.
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용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보안 요원'이라 한다.
대부분은 특수부대원 출신으로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이라크에서는 한창 많을 땐 1만 명쯤 있었다.
용병들의 활동무대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콜롬비아 등 분쟁 지역이다.
용병들은 전쟁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이권을 둘러싼 내전이 벌어졌던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예가 그랬다.
1991년 혁명연합전선(RUF)이 반란을 일으킨 뒤, 다이아몬드가 반군 지배 아래 들어갔다.
반군들은 살육과 성폭력을 일삼았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를 보면, 도끼로 사람들의 손목을 자르는 끔찍한 모습이 나온다.
1994년 수도 프리타운에서 20km까지 반군이 진격해 들어오자, 헬리콥터와 탱크를 탄 백인 전투원들이 나타나 반군을 몰아냈다.
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용병들이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분쟁 지역의 일부 국가들은 용병에게 유전 또는 광산의 경비를 맡기면서, 그 대가로 채굴권을 넘기기도 한다.
시에라리온, 콩고, 앙골라 등 풍부한 자연자원의 이권을 둘러싼 내전은 용병들에게 돈벌이 기회를 주었다.
김재명, 병역 징병제냐 모병제냐, 80~81.다.

 

3.1. 고대

 

용병은 고대 국가 시절부터 존재해 온, 인류가 가진 오래된 직업 중 하나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용병의 대가에 대해서도 규정해놓았다.
고대 이집트도 용병대를 운용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또한 용병을 많이 사용했다.
중장보병 위주였던 그리스는 주로 스키타이 출신의 기병과 크레타 섬 출신 궁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잘 써먹었고, 반대로 궁병이나 기병이 강했던 페르시아에서는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나 그 식민도시 출신의 중장보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일이 많았다.
이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페르시아의 왕자 小 키루스가 고용한 1만여 명의 그리스 용병대다.
이 용병들은 반란을 일으킨 키루스를 따라 제국의 서쪽 끝인 리디아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행군했고, 그곳에서 왕의 군대와 맞붙었다.
그러나 고용주인 키루스는 전투 중 전사하고, 남은 용병들은 티그리스 강을 따라 방향을 돌려 아르메니아, 캅카스 지역을 통해 흑해 연안으로 탈출한다.
적지 한가운데에서 페르시아군 추격대를 따돌리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토착민들의 공격을 버텨내며 행군한 이 과정은 용병대의 장교들 중 한 명이었던 저술가 크세노폰이 남긴 책 아나바시스(Anabasis)를 통해 매우 유명해졌다.
그리스 이후 용병으로 유명해진 고대 국가는 역시 고대 카르타고다.
카르타고는 상업 국가로, 물론 자체적인 시민병이나 상비군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병력을 용병에 의존했다.
카르타고가 용병으로 주로 고용했던 것은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들과 켈트족, 그리고 누미디아 기병대였다.
이들은 상당히 잘 싸웠지만, 월급 문제로 인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용병에 의존하는 것의 취약점을 드러내게 하기도 했다.
물론 오랫동안 용병들을 다뤄본 경험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도 조기에 제압하는 등 용병단의 발호로 나라가 휘청인 적까지는 없었다.
상비군 중심의 편성을 고집했던 로마군 역시 적지 않은 용병들을 고용했다.
강력했던 보병, 공병에 비해 기병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탓에 누미디아 기병, 갈리아 기병, 게르만 기병을 수시로 고용하여 기병 전력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투석병, 투창병, 궁수같이 상대적으로 고도로 숙련된 특수한 기술이 요구되던 병과들이 용병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로도스섬 출신 투석병은 그리스군·마케도니아군에서, 발레아레스 섬 출신 투석병들은 로마군에서 그 명성을 떨쳤다.
다만 예시로 든 발레아레스 투석병이나 갈리아 기병대, 소아시아의 궁병대 등은 로마의 정복이 완료된 이후에는 속주병 혹은 보조병이 되었으며, 보조병은 용병과는 전혀 다른 로마 정규군이었다.
제정 말기에는 이미 공화정 말기에 진행된 중산 계급의 몰락과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용병의 비중이 올라갔는데,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저술가들은 이들 용병들의 정치적 타락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취급했으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용병들의 발호를 로마 몰락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더 가깝게 보고 있다.
애당초 말기의 로마가 국방을 용병에게 의존했다는 썰부터가 붕괴한 지 오래다.
게르만족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병대가 아니라 그냥 로마 정규군으로서 복무한 것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로마에서 찾았지 게르만족에서 찾지 않았다.
당장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기둥이라 불린 스틸리코와 아에티우스도 게르만족 혈통이었지만 로마의 장군답게 살다 죽었다.

 

3.2. 중세

 

서로마가 붕괴되어 게르만족이 서유럽을 채우던 중세 초기부터, 중세 성기에 해당하는 12세기까지도 유럽의 주력 병력은 봉건제 원칙에 따라 소집된 자유민이었다.
게르만족은 자기자신의 무장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재산을 충분히 소유한 자유민들은 전사로써 역할을 겸하는 상무적 전통을 이어왔는데, 이런 전통이 기존 서로마의 습속과 결합해 나타난 것이 봉건주의였다.
서로마가 붕괴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유럽 땅에 살던 로마인들이 갑자기 다 죽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다 농노가 된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자유민으로 편입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자유민은 농노보다는 낫다 해도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고, 투구와 방패와 창 혹은 활 정도만 간신히 갖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좀 더 부유하면 흉갑 등 다른 갑옷도 갖춰입어서 중보병이 되는 식.기사의 원래 유래는 이 시대의 비자유 예속민이었다.
일단 봉건주의 원칙 하에서 부족민이 부족장을 위해 전사로 봉사하는 날은 1년에 40일이었다.
8세기 이래로 야만족의 침입이 상시화되어 각지에서 자율적으로 방어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프랑크의 군주들은 그 방어에서 손을 놔버리고 각지의 유력자들에게 관직을 주며 알아서 막게 해 군주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때 각지의 유력자들이 스스로 방어하는 와중에 이 징집령 40일이 턱없이 부족하자, 자유민을 동원하는 대신, 자기가 전부 먹여살려주고 있는 예속민을 무장시켜 전문 병사로 활용한 것.그러다 소위 중세 성기로 분류되는 10세기-12세기에 봉건주의 심화 과정으로 인해 봉토를 급여로 받는 대신 전문직으로 일하는 관습이 퍼져 나간다.
기사는 점점 비자유 예속민이 아닌 봉토를 가진 준귀족 전문직 군인으로 변해갔다.
또 자유민 중 군인이 아닌 다른 전문직으로써 봉토를 수여받은 이들은 서전트로써, 징집령이 내려지면 기사에 대한 보조병으로써 일했다.
그리고 12세기 중반 이후로는 벌써 봉토가 바닥나기 시작하여(...) 예속민 출신들이 기사로 서임되는 것을 막는 법이 유럽 곳곳에서 제정된다.
또 중세 성기를 거치면서 법학과 행정이 발전하면서, 군주들은 기사를 자신들의 직속 가신으로써 행정관으로써 삼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에 따라 기존의 기사들 사이에서는 평민기사(milites gregarii)와 귀족기사(milites nobiles)로 구분이 시작되었다.
봉토는 없고, 예속민제는 끝났고, 이도저도 아니게 된 기사 지망생들이 이 시기에 늘어났다.
기사(역사) 항목에서 현실 문단에서 말하는 날강도 기사들이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무장을 갖췄고 전투 훈련을 받은 전문적인 군사력으로써 활용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러던 와중, 영주 중에서는 자기 집에 얹혀 사는 병사들을 놀리는 게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자유민들 중에서는 농사 지을 땅은 모자란데 무장은 있으니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아주 자연스럽게 봉건 계약에 의해 병역 의무를 부가받지 않으나 병역을 수행이 가능한회색 지대 인력이 생성되었다.
이렇게 정부의 직접적 통제를 받지 않은 병역 자원을 두고 Free Company (자유 부대)라고 불렀다.
영주가 자신의 영향 하에 있는 인력을 요령껏 운용하는 경우는 "자유"롭지 않으므로 자유 부대라 하지 않았으나, 봉건 영주 vs. 자유 도시 같은 경우 처럼 실상 마케팅 표현(?)이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병역 자원"이란 점에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 개념은 21세기에 와서도 아직까지 유효하다.
동아시아에서 자유 부대와 가장 비슷한 형태의 용병이 있는데 바로 왜구들이다.
실제 서유럽의 자유 부대도 말이 좋아 자유 부대지 실상은 그냥 날강도 산적떼에 불과했고, 일부 극히 유명한 용병단을 빼면 그냥 일확천금 노리고 모인 싸움 좀 하는 어중이 떠중이들이었는데, 종종 용병업을 뛰던 왜구들이 이 자유 부대와 일맥 상통한다.
실제로 자유 부대들은 평소에 일거리가 없으면 그대로 산적으로 돌변해 약탈을 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프랑스어를 보면 더 노골적인데, 이들을 약탈자라는 의미로 écorcheurs(에코르셔)라고 불렀기 때문. 백년 전쟁 동안 약탈하는 쪽인 영국과 달리 용병단들에게 약탈당한 기억이 더 많은 프랑스에서는 용병단에 대한 시선이 더 나빴던 것. 심지어 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전투와 소집령도 왕왕 내려졌다.
이후 좀 더 조직화된 용병 사업이 발전한 이후부터는 고용주가 돈 안 줄 때 도적떼로 돌변하는 수준으로 안정화 되었지만, 본질이 결국 싸움 좀 한다는 어중이 떠중이라는 것은 아예 국가적으로 용병 사업을 펼친 게 아닌 한 변하지 않았으며, 바로 이것이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 용병 사업이 궤멸한 원인이 되었다.
14세기에 들어서 왕국의 영역이 안정되자 현대의 총력전 수준은 아니어도 왕국대 왕국급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에 봉건 영주들에게서 찔끔찔끔 40일 동안 병사가 동원되는 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게 되자 저런 용병대들의 활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또한 군주들은 중앙 집권을 강화하여 이전 시대에 있던 징집령을 부활시키기 시작한다.
'왕국의 방어를 위한 명백한 필요가 있을 때' 신민들을 동원하여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저러한 '회색지대 용병단'도 '봉토를 받은 기사'도 아닌, 군주와 직접 계약하여 급여를 받고 복무하는 새로운 형태의 군인들도 나타난다.
이들이 바로 맨앳암즈라고도 불리는 이들이다.
이제 돈이 필요해진 군주들 때문에 소위 '방패세'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봉건 계약 상 병력 제공 및 병역 이행 의무를 면제하는 대신 돈으로 때우는 계약 방식이었다.
서양 중세의 역사가 복잡한 만큼 용병의 활용 방식이나 유명한 용병 부대도 무수히 많으며, 국가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도 천차만별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위에서 말한 프리 컴퍼니 혹은 루티예라고 불리는 용병단이 주역이었으며, 스코틀랜드 출신들인 갤로우글래스(Gallowglass)들도 활용되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계약자라는 뜻의 콘도티에리(Condottieri)들이 나타난다.
이 와중에 돈으로 사는 떠돌이 전투원 수준을 넘어 뛰어난 무예와 전술, 집단 대오, 적에 대한 무자비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성, 그리고 고용주에 대한 신의성실성까지 겸비한 중세 용병의 완성형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가 바로 합스부르크와 오랜 교전으로 다져진 스위스 용병이다.

 

3.3. 중세 후기

 

 

 

3.3.1. 유럽 이외의 지역

 

지금까지 글을 보면 대부분 유럽 위주로 나와있지만 북아프리카도 유럽인 용병을 고용하고 고대 유럽도 북아프리카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또한 아시아와 다른 대륙도 용병이 없을 리 없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명나라군에도 용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흑인에서 백인까지 골고루 있었으며 이들은 돈을 받고 명나라군에서 싸웠다.
류성룡은 이런 인종을 직접 보는 게 처음이라 신기해했는데 명나라 장수는 놀리듯이 좀 뻥을 쳤고 이걸 고스란히 징비록에 기록했는데 "이들은 보통 한족과 달리 강인하고 한참 굶어도 힘이 딸리지 않으며 화낼 때 무섭게 싸운다오." 라는 투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런 아예 다른 곳에서 온 용병은 매우 드문 케이스이고, 역사적으로 중국이 가장 많이 고용한 용병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유목민족 기병이다.
특히 몽골 기병을 즐겨 썼다.
그 밖에 태국도 용병으로 스페인과 네덜란드 백인 용병을 고용해 싸웠고, 이들이 유럽으로 가서 태국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게 남아있다.
용병들은 코끼리를 타면서 총을 쏘며 버마군(현재 미얀마)과 격돌했던 일을 쓰고 있는데 이들의 기록을 봐도 당시 태국군 군대 체제가 상당히 잘 잡혀있으며 전략이나 여러 요소에서도 유럽 강대국 못지않게 잘 잡혀 있었기에 아시아 야만족 전쟁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가 고생했고 되려 많이 배웠다고 적혀있다.
또한 태국 등 동남아에서는 일본 에도 막부 체제 하에서 살기 힘들어져 해외로 떠나온 로닌 무사들도 용병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다.
또한 무굴제국도 일부 백인 용병을 고용하여 싸웠다.
여기서 백인 용병들은 야만인이라고 무굴 제국군을 우습게 보다가 큰 코다쳤다고 할 정도였고, 고아를 비롯하여 아시아 일부를 식민지삼던 포르투갈이 무굴제국으로 쳐들어가려고 할 때 무굴제국에서 용병으로 참전한 포르투갈인 일부가 포르투갈로 돌아가서 거리도 멀거니와 중남미랑 다르게 그들의 힘이나 무기들은 결코 포르투갈에 밀리지 않으니 우리만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반대했을 정도였다.
즉 용병들은 이 당시 돈 벌기 위하여 아시아로 간 게 아니라 밀정으로서 임무를 띄고 파병되기도 했다.
오세아니아에서도 여러 나라들 전쟁에 백인들이 용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좀 더 고대로 가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묵자가 조직한 용병대가 존재하며, 삼국시대 무렵에 나오곤 하는 객장은 어떻게 보면 변형된 용병단으로 볼 수 있다.
다.

 

3.4. 근대

 

17세기가 지나고 18세기가 되어서까지도 용병은 유럽의 군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물론 이전 세기의 발렌슈타인처럼 유력한 귀족 한둘이 용병대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없어졌고, 중앙정부가 군사 업무에 관한 권한을 확실히 장악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군대의 성질을 국민군으로 바꿔놓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비교적 민족 의식이 강했던 프랑스를 봐도, 프랑스 혁명 이전의 경우 전체 보병 연대의 무려 3분의 1이 외국인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도 민족적 정체성이 약했던 독일의 영방국가들이나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보다도 더 심했다.
사실 민족주의 자체가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했던 기존 기득 세력을 엿먹였다고 봐도 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주장은 용병들에게 민족주의가 심리적인 타격을 입힌 후에야 현실이 되었다.
또한 근대 용병집단들 중 특기할 만한 곳이 있으니, 독일의 헤센-카셀 방백국이다.
헤센-카셀은 본래 독일의 소규모 연방국가 중 하나였는데, 17세기 말엽부터 18세기에 걸쳐서 용병업을 국책사업으로 삼았다.
본래 농업국가였는데, 30년 전쟁의 여파로 국토가 초토화되어 먹고 사는 것조차 힘겨워지고 활용할 자원이 인력뿐이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 즉 전격 현실판 용병 국가. 헤센-카셀은 고작해야 도시 한두 개 정도 크기의 아주 작은 연방국가였지만 대대적인 징집으로 전 국민의 무려 7% 정도를 계속 군인으로 유지했으며 이를 유럽 각국의 여러 영주들에게 용병으로 대여해주며 외교적 안정과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7년 전쟁 때는 또 국토가 초토화되었는데, 이 여파로 군국주의화는 한층 더 심화되었다.
그리고 7년 전쟁 이후에는 일반 병사들도 장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급료는 꽤 많이 받았고 복무하면 가족들의 세금은 면제되었지만, 문제는 세금을 못 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고 기간이 무려 24년이었다는 점이다.
징병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다.
약탈은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실제로는 약탈을 할 수 있으면 했으며 특히 미국 독립전쟁에서는 약탈로 악명이 높았다.
또 헤센 카셀은 신교도 국가에만 고용된다는 원칙이 있었고, 이슬람 세력을 상대할 때만 예외였다.
헤센군이 유명해진 것은 당대의 강국인 영국과 자주 계약을 하면서 바로 그 미국 독립전쟁에도 참전했기 때문인데, 이때문에 미국에서 헤센인은 용병과 동의어로 쓰였다.
미국 독립전쟁에는 다른 지역 독일 병사들도 참전했는데 헤센 출신들이 숫자가 다수고, 유명하다 보니 그냥 통칭해서 헤센인이라 불렸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로도 헤센-카셀은 여전히 용병업을 계속했으며, 프랑스 혁명 전쟁에도 참전했고, 1798년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도 영국편으로 참전했다.
헤센-카셀이 용병업을 그만둔 것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헤센-카셀을 점령한 뒤의 일이다.
이후 헤센 카셀은 선제후국이 되었지만 빌헬름 9세가 쫓겨나고 베스트팔렌 왕국이 되었으며,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빌헬름 1세도 복귀했지만 용병업은 그만두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각국에 불어닥친 민족주의의 바람과 함께 이러한 국가 용병 군대의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용병은 유럽의 군사 제도 속에서 주목할 만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도 영국군은 군 내부에 독일인 병사들로 이루어진 KGL(King's German Legion)을 유지하고 있었고, 일종의 기업군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인도 회사군은 아예 영국 정규군의 명령 체계를 따르지 않는 사설 군대였다.
또한 프랑스도 프랑스 외인부대를 창설해 식민지 전쟁에 선봉대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3.5. 20세기 이후

 

민족주의의 시대 동안 사그라들었던 용병이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봇물 터지듯 잇달았던 신생 독립국 붐에 의해서다.
다수 신생국이 정비되지 못한 군대 체계를 대신하여 용병을 필요로 했고 현대 병기에 익숙한 유럽의 전직 군인들이 그 수요를 충당시켰다.
대표적인 사례로 콩고 내전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백인우월주의와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갈등 속에서 흑인들과 벌인 전쟁이 크게 터졌고, 공산 국가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용군이나 원조군이라는 명목 아래 용병들을 만들어서 온갖 전쟁들에 뛰어들었다.
특히 쿠바 내무성 정보관리국 제5과가 대표적이며, 아프리카와 남미 등지에서 사주하지도 않은 공산혁명을 일으키는 제3세계 국가들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맹주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은 냉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가끔 이들의 영향 아래 있는 국가들에서 대리전이 벌어졌고, 그들이 흩뿌린 용병들은 어딘가에서 거의 항상 싸우는 것이 진정한 냉전기의 모습이었다.
특히 50 ~ 70년대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과 내전은 모조리 용병이 관련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장은 넘쳐났으므로, 냉전 시기에 유행한 '현대적 용병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또한 이들은 신생국 정부뿐만 아니라 구 종주국 정부와도 계약을 맺고 경제적 이권 보장, 거류민 보호 등에 종사하였으며 이것이 현재의 민간군사기업(PMC)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4. 장단점

 

 

4.1. 장점

 

현대 노동경제학에서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징병제와 모병제보다는 용병 고용이 그 사회에 최대한의 효율을 가져다준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용병의 오랜 시간에 걸친 학습(learning by doing)과 기술 개발을 통해 군사 직종에 최적화된 노동력이라는 특징 때문. 용병을 활용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이론이 상당부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근대적인 개념의 민족국가(nation state)가 등장하고 국민군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전근대의 국가들은 그 정도의 군대를 항상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경우가 드물었으며, 특수한 능력과 기술을 다른 민족들에서 '구입'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누미디아족의 기마술, 갈리아족과 게르만족의 완력과 체력, 로도스 섬과 발레아레스 섬의 투석, 제노바의 쇠뇌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전쟁터에서 구르다보니 전투력이 좋고 일반적인 징집병보다 사기도 높으며, 체력이나 용맹함 등 용병이 갖춘 덕목은 일반적인 병사들보다 훨씬 유용했다.
이러한 특징은 종종 특정 민족의 특기로 간주되었다.
예컨대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 용병을 고용해서 잘 써먹었고(문제는 내전에서 그 짓을 했다는 것), 스파르타 용병대장 크산티포스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레굴루스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며, 한니발도 갈리아 용병을 잘 활용했고, 누미디아 기병들은 포에니 전쟁 시기 카르타고와 로마 모두에서 고용되어 전쟁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동로마 제국 역시 페체네그 기마궁수, 노르만 중기병 등의 용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를 토착군대와 조합시켜 주변국을 캐관광 태우는데 성공했다.
중국에서도 사실상 후한대에서부터 당나라 시대까지 기병의 핵심 전력을 차지한 것은 북방 유목민족 용병이었던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봉건제 사회인 중세 유럽에서 용병들은 상비군으로 활용되기 좋은 군대였기 때문에 영주와 국왕들에게 자주 고용되었으며 카탈루냐 용병대 같은 경우 초창기 오스만 제국과 동로마 제국을 둘 다 버로우시켰고 16세기 헝가리의 용병대인 검은 군대는 보헤미아, 폴란드와 2대 1로 싸우고도 가볍게 승리했으며 급기야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그 수도인 빈을 함락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30년 전쟁 당시의 발렌슈타인으로, 용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30년 전쟁 중 독일 최고의 실력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국민군을 창설한 것으로 유명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군대도 상당수는 용병으로 채우고 있었다.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잘 관리된 용병 집단은 용맹성과 신뢰성은 어느 시대이든지 믿을 수 있는 요소다.
크고 작은 전쟁들이 수시로 일어났고 수많은 용병단이 신규 설립되거나 해체되는 때였다.
당연히 용병단간에 서로 부유한 왕조, 가문들과 계약을 이뤄내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만일 어떤 용병단에 대해 비겁하거나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용병을 필요로 하는 고용주들에게 퍼질 경우엔 계약을 맺을 수 없으며, 계약하더라도 열약한 조건 하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용맹성, 신뢰성이 우수하다고 알려지면 자신들과 계약하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높은 보수나 선불 지급, 장기 계약 같은, 더 나은 고용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용병단의 수입이 올라가고 소속 병사들에게 더 나은 급여와 근무조건도 제시할 수 있는데 실력있는 병사 영입에도 유리해지며 용병단의 질적 상승에도 연결된다.
이러한 긍정적 순환효과 때문에 용병단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용맹하며 신뢰성이 있는지를 국가와 가문들에 어필하고 다녔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전에서 증명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스위스 용병, 네팔 구르카 용병이다.
이렇게 잘 관리된 용병 집단은 자신들의 출신지에 대한 소속감, 자존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용병으로서 비겁한 모습,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유럽사를 기준으로 보면 중세 후기부터 아예 '용병 수출'을 국가 산업으로 육성했다 할 만큼 용병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지방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세 후기에는 스위스, 근세에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와 우크라이나, 발칸반도, 그리고 헤센같은 독일계 공국 등 지역적인 연고가 확실히 있고, 근세 후기로 넘어가면 이런 용병 수출의 전통이 자국 내의 상무적 이데올로기, 사회적 자의식 (ethos)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끼쳤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용병 배출 지방에서 나온 용병들이 비겁하거나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 그 민족 용병 전체의 위신에 흠집을 내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고향 후배들의 '취직'길까지 막아버리기 때문에 이런 용병 수출의 전통은 부대, 개인 단위로 내려가면 더더욱 열심히 싸울 동기 기제가 된다.
그래서 보통 이들은 자신의 용병 부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코 디 로마 사건 당시에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189명 중 42명만이 살아남은 스위스 근위병이나(이 사건 이후 대대로 바티칸 경비병은 스위스 용병을 쓴다), 프랑스 혁명 때 튈르리 궁을 지키고 있다가 몰살당한 786명의 스위스 근위병. 또한 용병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충성심을 자랑한 바랑인 근위대나 중세 헝가리 왕국 최후의 명군이었던 마차시 1세의 용병이자 근위대였으며 상비군이었던 검은 군대 같은 사례도 있다.
때문에 한탕 해먹고 튀는 양아치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용병집단'을 고용할 경우, 급료만 제대로 지불한다면 정규군 못지 않게 믿을만한 군대를 얻을 수도 있다.
즉 중세봉건시대에 주군에게 충성하는 기사도, 무사도와는 다른 용병단 특유의 프로의식이라는 것도 생겨났는데, 돈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은 해야 한다는 상도(商道)와 많이 비슷하다.
당장 이라크 전쟁 중 팔루자 전투 당시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시내의 미군을 지원하기 위한 증원 전력의 최선봉에는 악재가 있었지만 스스로 나선 블랙워터들이 있었다.
현대의 PMC들도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가 활동하던 시기의 아프리카 같이 고용주와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으로만 계약이 되는 경우에는 정부와 용병 사이에 깊은 신뢰가 생기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현재의 강대국 산하 PMC들은 해당 국가, 혹은 동맹국의 군경 출신으로 구성원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신뢰 문제를 불식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돈이 지급되는 동안은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역으로 근위대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흔했다.
자국의 정치세력에 휘둘릴 수 있는 자국민보다 돈이면 되는 용병이 더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도 정규군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용병이 싸고 또 용병을 고용하면 용병의 군사활동은 정규군의 것과는 별도로 계산되기 때문에 자국 내의 반전여론을 억제하기 쉽다.
다만 PMC 수준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정규군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기는 한다.
물론 일반적인 육군이나 해병대 병사들을 동원하는 정규 작전보다 돈이 더 들어간다는 것이지 비싸기로 소문난 용병조직의 대표적 사례인 블랙워터를 이용한다고 하면 그 비교대상은 델타포스나 네이비씰이 되어야 한다.
넵튠 스피어 작전 같은 걸 기획하는 CIA, 실행하는 데브그루 등은 유지비 많이 들어가기로 유명한 조직이라 이런 수준의 작전을 외주화할 수 있다면 비용 낭비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여전히 정규군과는 달리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제약이 덜해서 많이 계약한다.
특히나 보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성향 탓에 정규군은 엉덩이가 무겁고 뭘 하든 간에 규정과 절차가 복잡한데, 민간군사기업은 매우 발빠르게 움직이는 장점이 있다.

 

4.2. 단점

 

"전쟁은 도적을 만들고, 평화는 그들을 교수형에 처한다.
" 마키아벨리나라 꼴이 막장으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봉급이 나오지 않거나 전황이 밀려버리면 우루루 이탈해버리거나, 본국의 정치가 불안정한 때에는 용병대장이 쿠데타로 직접 나라를 접수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용병은 통제가 잘 안되기 때문에 약탈을 비롯한 잔혹행위를 심하게 저지른다.
용병들은 약탈을 비롯한 잔혹행위를 고용주가 막으려 들면 오히려 고용주를 죽이고, 심지어 고용주의 가족들이나 그 영지의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래서 고용주들은 용병들에게 승리하면 며칠간의 자유로운 약탈을 비롯한 잔혹행위를 통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의 방법으로 용병들을 겨우 통제했었다.
그렇지만, 르네상스 당시 이탈리아 용병들은 약탈을 덜 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한데 여기서 계약이 끝나면 그 다음은 누가 그들을 고용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데 시덥잖게 약탈을 시도했다가 척을 지면 앞날이 보장되지 않게 된다.
그냥 당장 좀 벌어보고자 약탈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였지만, 그래도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는 약탈이 비교적 적었다.
더구나 징집병 미화와 달리 민중 십자군 같은 군대는 의외로 전쟁보다 부수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전문적인 군인들은 의외로 전쟁이 밥벌이라 학살이나 약탈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었고 수입에 더 관심이 많아서 전쟁범죄가 어느 정도 억제되었다.
하지만 카를 5세의 군대인 황제군이 로마를 함락시킨 로마의 약탈 무렵, 가장 약탈과 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집단은 독일인 용병들인 란츠크네히트였다.
이유는 그들이 워낙 오랫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4세기 동로마에 고용된 용병들인 카탈루냐 용병들은 고용주인 동로마가 막대한 금화를 털어 월급을 주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높은 봉급을 요구하다가 질려버린 동로마에 의해 대장인 루지에로가 죽임을 당하자, 오히려 대장의 복수와 약탈을 위해 동로마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잔혹한 학살과 약탈을 벌여 동로마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것과 별개로 봉급이 밀리는 경우 이탈하거나 태업을 하며, 최종적으로 봉급을 고용주한테 강제징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건 고용주가 문제긴 하지만.사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민병들은 프랑스 본국의 혼란으로 원활한 보급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그들에게 '해방된' 지역으로부터 보급을 의존했고 잔혹행위와 약탈이 용병들에 비해 적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런 면에서 유명하지만, 아무래도 나폴레옹이 악인들을 뛰어난 군인으로 여겨 총애한 면도 있고 본인부터가 해적 가문의 후예라 그럴 수도 있다.
이러한 현지조달에 의존하는 방식은 비옥한 지역에서는 보급에 얽매이지 않는 기동으로 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가난한 지역인 스페인과 러시아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현재의 PMC(Private Military Company)들은 이런 용병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직원들은 대부분 세계의 유명 특수부대 출신들인데다 대원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각자 전투의 프로라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윤리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일례로 유명한 PMC '블랙워터'의 경우 이라크에서 자신들이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살해되게 하기도 했다.
제일 황당한 케이스는 이라크 시내에서 차 타고 가다가 길이 막힌다는 이유로 도심 한복판에서 차에서 내려, 인근 민간인들 상대로 무차별 난사를 한 사건이다.
이 일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고, 그 때 블랙워터 측에서 내놓은 주장이 '전쟁 중이었으니까 자기 보호를 했다'라는 주장이었다.
블랙워터는 2년간 195건의 총기사건에 휘말렸고, 이는 모두 블랙워터에서 먼저 발포한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과거에서부터 용병들의 고용주로 유명했던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의 용병 사용을 본다면 '전문노동직'이라기보단 '막노동 직종'이라고 보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굉장히 심하게 굴린다.
단순히 자국의 민주화 혹은 인권 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서 타국과의 전쟁에 동원하거나 지연전용 미끼로 던지거나, 아니면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이는 적들에게 어떻게든 맞아라라는 식으로 용병들을 던지는 것에 가까운 운용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보다는 비숙련자들이 더욱 많으며, 보통 이들은 전장에서 빠르게 목숨을 잃는다.
특히 현대에서 용병 중심의 군대를 가진 국가라 한다면 사우디 아라비아가 그 대표주자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다 보니 국민들한테 석유를 팔아서 번 돈을 듬뿍 뿌려주고, 그러다보니 국민들이 기본적인 생계 유지에 문제가 없다보니 군대 같이 위험한 직업에 좀처럼 가서 일하기를 꺼린다.
따라서 사우디는 방글라데시 같은 가난한 이슬람교 국가들의 국민들을 상대로 돈을 주고 용병처럼 고용하여 군대를 꾸려나갈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대립 구도를 보이는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의 국민군 체제와 달리 사우디 아라비아는 철저한 용병 중심의 군대다.
이들은 대체로 무기, 장비, 전략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보다는 용병들을 무지성으로 고용해 누수를 틀어막는 것에 가깝게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 사고들은 전쟁 전문가들을 고용한다기보단 거액의 돈을 미끼로 비합리적인 형태의 징병제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상황은 사우디군을 국방의 주체라기보다는 사실상 용병들의 소굴이나 다름 없는 형태로 만들었다.

 

5. 오늘날의 용병

 

민간군사기업 문서 참조현대에서는 인도주의의 기본이 되는 제네바 조약조차도 용병을 전투원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잡힐 경우 전쟁 포로로 인정해 주지도 않고 있다.
또한 많은 회사들이 편법을 이용해 일부러 용병을 민간인으로 취급한다. 관련 조항은 제네바 협약 제1 의정서에 명시되어 있으며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47조 용병1. 용병은 전투원 또는 전쟁포로가 될 권리를 가지지 아니한다.
2. 용병은 다음의 모든 자를 말한다.
가. 무력충돌에서 싸우기 위하여 국내 또는 국외에서 특별히 징집된 자나. 실지로 적대행위에 직접 참가하는 자다.
근본적으로 사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적대행위에 참가한 자 및 충돌당사국에 의하여 또는 충돌당사국을 위하여 그 당사국 군대의 유사한 지위 및 기능의 전투원에게 약속되거나 지급된 것을 실질적으로 초과하는 물질적 보상을 약속받은 자라. 충돌당사국의 국민이 아니거나 충돌당사국에 의하여 통치되는 영토의 주민이 아닌 자마. 충돌당사국의 군대의 구성원이 아닌 자바. 충돌당사국이 아닌 국가에 의하여 동국의 군대구성원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띠고 파견되지 아니한 자현재는 사적인 용병 조직은 표면상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민간군사기업(PMC)으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2001년 10월 22일 유엔은 ‘용병 모집과 이용, 재정 지원 및 훈련을 금지한 국제협약’을 발효시켜 용병이란 개념 자체를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해당 협약엔 고작 수십 개국만 비준한 상태이고 그나마 미국, 영국, 중국 등 상임이사국과 심지어 국군이 없는 일본조차도 비준을 한 상태가 아니라 유명무실하단 비판이있다.
여하튼 용병에 대해 돈 받고 오는 녀석들이라고 나쁘게 보는 시각도 많아서인지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그 유명한 디엔비엔푸 전투 때 포로가 된 외인부대원들은 베트민에게 더더욱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프랑스군 포로들도 학대당했지만 외인부대는 따로 둬서 더 악랄하게 패고 학대했던 게 돈만 주면 싸우는 녀석들이라고 한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외인부대도 맹렬하게 싸워 무려 1만 명이 넘게 전사했기에 베트민에게는 더더욱 이가 갈렸을 듯 하다.
다만 당시 외인부대는 모집만 용병 형태였지, 소속이나 처우 모두 프랑스 육군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엄연한 국제법 위반이었다.
물론 이런 규정이 있다고 해서 용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병의 대부분이 활동하는 곳은 제네바 협약 따위는 무시하는 집단들이 분쟁을 벌이는 곳이라 정규군이 잡혔다고 해도 잔혹하게 살해되는 것은 똑같기 때문. 애당초 용병으로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정규군이 제 기능을 못하고 전시국제법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목숨을 담보로 큰 돈을 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국이 고용하는 구르카족 용병부대나 프랑스의 외인부대등은 일단 형식적으로는 용병과 다름없다.
다만 구성원들이 용병이고 핵심 지휘관을 자국인으로 쓰며 편제도 일단 정규군으로 운용하기에 국제법상으로는 정식 군인이나 외국인 의용병으로 취급되며 정식 민병대/의용병의 조직은 국제법상으로는 정규군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현대의 스위스 근위대는 본래 스위스 용병이었으나, 위의 국제법 뿐만 아니라 스위스 국내법에서도 용병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형식상 '치안 경찰'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구성원들의 처우나 국제법상 문제 등까지 신경쓰는 PMC들은 계약하는 국가에 계약 기간 중 투입되는 자사 인원들에게 계약직 공무원 신분 부여를 요구하기도 한다.
게임,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서 자주 나타나며 보수에 따라 바로 적이 되는 모습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용병대를 해산하고 새로 결성하지 않는 한, 한쪽의 용병대가 적측에 가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30년 전쟁에서는 보수를 받지 못한 용병대가 고용주를 갈아타는 바람에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례가 한 번 있었지만, 이조차도 보수를 주지 못한 고용주측의 문제였고 같은 신교도 진영 안에서 고용주를 바꾼 것이었지 적측에 붙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스위스 용병대는 뛰어난 전투력과 함께 충성도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16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군이 로마를 공격하자 교황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괴멸된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는 지금도 회자되는 사례이다.
현재의 용병 또한 기본적으로는 이와 다를 바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급여만 제대로 지급해주면 용병이 계약 중에 배신한 역사적 사례는 없다고 보면 된다.
아프리카의 이그제큐브 아웃컴즈 같은 기업은 돈만 주면 어떤 세력과도 계약을 하는 그야말로 돈만 받으면 총 쏴주는 전형적인 용병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지만 대체로 서방의 군사 강국들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국가들에서 운영되는 군사 공급이나 군사 자문 관련 PMC는 해당 국가의 군부, 정보기관, 사법부, 국회 등의 감시를 높은 강도로 받고 있고 어느 정도의 불법 행위를 용인해주는 것은 이 반대급부로 제공되는, 그래서 일종의 공식적으로는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군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어 사실상 목줄이 매진 맹수 같은 처지라고 볼 수 있다.
아래쪽에 있는 수호이의 사례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들이 워낙에 막장이던 시절 정말로 나라에 돈이 없어서(…) 고객 국가 측의 돈을 받아 생계형 용병을 했던 사례이고 2020년대 현재 러시아가 관여하는 전 세계의 전장에서 미국의 블랙워터 만큼이나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바그너 그룹은 철저하게 러시아의 외교 안보의 이익을 위한 분야에만 활동을 집중하고 있고 블랙워터의 주 고객이 미국 정부인 것처럼 바그너 그룹의 수입도 러시아 정부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도 90년대와 같은 짠내 나는 생계형 용병회사를 수출하는 상황은 아니다.
즉 말이 용병단이지 사실상 국가가 운용하는 준정규군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제네바 조약에 포함시켜 전시국제법을 준수하도록 강제하고 대신 정규군에 준하는 보호를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서 서방 국가 PMC가 중국 정부의 의뢰로 신장 위구르 지역의 무력 저항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서방 국가가 국가기간시설의 경비에 중국, 러시아 PMC의 자문을 받는다던가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고, 만약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이미 해당 국가 간의 외교적 레벨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러시아의 우주기업 흐루니체프는 군사위성 발사 및 미사일 개발 용역 수주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PMC에 해당하지만 한국 정부의 KSLV-I 나로 로켓 개발 및 발사에서 엔진 납품 및 기술 자문을 제공한 것은 당연히 흐루니체프의 단독으로 이루어진 결정이 아니다.
용병이 잘 관리되는가는 기본적으로 그 고용주인 정부나 전장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상태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에 용병을 고용하는 지역은 기본적으로 막장 그 자체니 난장판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계약 만료 후 적대 세력에 고용되어 전 고용주에게 총부리를 겨눈 용병도 많으며 반대로 후환이 두려워 용병을 적에게 넘기거나 등 뒤에서 총을 쏜 고용주도 많다.
용병들이 전투 중, 또는 계약 만료 전에는 고용주가 먼저 계약을 어기지 않는 한 적에게 붙지 않으며, 계약을 어겼다 해도 바로 배신하는 일이 적은 이유는 용병 자체도 일종의 사업인 만큼 계약 엄수에 대한 평판이 곧 사업적 신뢰성이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멀거나 고용주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고용주를 배신하는 행위는 해당 용병이나 단체의 경력과 평판에 큰 오점이 되어 새로운 고용주를 찾기 어렵게 하고, 설령 고용된다 해도 고용주측의 지속적인 의심의 눈초리를 사고 다음에 만난 동료들에게도 백안시당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배신당한 고용주가 완전히 몰락한 것이 아니라면 배신한 용병을 응징하려 시도할 수도 있다.
특히 일부 창작물에서 용병단을 '오갈 곳 없는 떠돌이들의 모임'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달리, 용병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철저한 신용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아무리 병력이 급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자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자신의 안전을 맡기는 바보는 없다.
근대 이전까지는 주요 용병 수출국이라는 개념이 있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특정한 국가나 지역의 기존 공동체 단위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서 계약을 위반하여 고용주측의 신뢰를 상실하는 행위는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평판까지 떨어트리는 행위로써 공동체 내부에서도 백안시당하는 행위였다는 것. 주요 용병 수출국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현대에도 주로 특수부대 전역자등이 용병의 주축을 이루면서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평판과 직결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즉, 당장 몇 푼의 이익을 얻기 위해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꾼들이 장기적으로는 신용을 잃어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 더구나 이 거래가 국가나 단체의 안전과 존망이 달린 '전쟁'에 관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고용주는 그만큼 용병부대의 신용도를 철저히 따질 것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자기 목숨 담보로 돈 버는 용병들이, 자기 좋자고 업계 전체의 신용도를 깎아먹는 놈들을 어찌 처리할지 당연하다.
무례한 문명인은 살 수 있지만 무례한 야만인은 살해당한다는 격언은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다.
현대의 용병도 기업이나 계약자 개인이 소속된 국가의 이익에 명백히 반하는 계약과 활동을 하게 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민간인을 해치면 남는 건 경찰서 정모와 콩밥 밖에 없고. 인터폴의 수배자 목록에 오르거나 테러리스트로 국제적인 제재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업계에서 앞으로 살아남는게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특히 민주국가에서는 이런 행위가 정권의 묵인을 받았다고 해도 국회에서 사건을 적발하거나 정권이 교체된다던가 하면 온 나라가 뒤집어지는 초대형 스캔들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
대신 용병은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될 때, 항복 의사를 밝히면 어지간히 잔인한 적장을 만나거나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은 한 포로가 되어 몸값만 지불하면 풀려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때문에 용병이 돈만 밝힌다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빈사의 사자상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용병의 항복을 거부하고 다 죽여버리거나 하면 그 군주는 다른 용병을 고용하기 어려워진다는 측면도 있다.
수호이 전투기 시리즈로 유명한 수호이사가 아프리카에 전투기를 팔면서 전투기를 조종할 조종사와 유지 관리 보수를 해줄 정비사를 포함한 부대를 아예 세트로 판매한 일도 있다.
덕분에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 당시 러시아 출신과 우크라이나 출신 용병이 서로 수호이 전투기를 타고 격돌한 실화가 있다.
그 밖에도《에어리어88》수준의 제트 전투기 부대는 아니어도, 프로펠러기나 헬기 조종사를 구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용병을 고용하고 있기도 하다.
쿠웨이트 공군에서는 F/A-18 전투기의 조종사는 쿠웨이트 공군이 직접 맡지만 정비사는 미국 해군에서 제대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운용하고 있다.
또한 돈 많은 서구국가등에 고용된 용병들은 장비나 제대로 된 보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 등에 고용될 경우 물론 그런 건 없고 본인이 알아서 다 챙겨야 한다.
그 경우에는 급료도 매우 짜서 그 돈을 가지고는 본국으로 돌아와서 넉넉하게 생활하는 것은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 전투는 물론 고용주측의 군대 양성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하거나, 다이아몬드 광산나 금광 등을 둘러싼 분쟁일 경우엔 이들보단 훨씬 많은 급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상대해야 할 적들이 많고 강하기 때문에 무사히 고향에 돌아갈 확률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라는 게 문제이다.
현대에는 다른 나라 정부군이나 특수부대가 정체를 숨기고 내전지역에 용병으로 참전하기도 한다.
사실 현대 열강들의 주된 세력투사 수단 중 하나로, 몇몇 사례는 확실히 드러났지만 공식적으로는 정부군이라는 증거가 없다.
이스라엘군이 앙골라 내전에 용병으로 참전했다든지.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내전의 경우 미국 특수부대가 쿠르드자치정부 무장조직인 페쉬메르가나 YPJ의 국기 패치를 성조기 대신 걸고 겉보기엔 용병인 것처럼 참전하는 경우도 목격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 역시 이런 방식으로 시아파 민병대들 사이에서 목격되는 사례가 많다.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도 사실상 러시아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소속만 형식적으로 바꾼 것이라는 심증이 높다.
그 밖에 타카베 마사키(高部正樹)라는 사람이 항공자위대 출신으로써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첫 용병 생활을 시작한 이후 1990년대에 미얀마 민족분쟁(카렌 민족해방군), 보스니아 내전(크로아티아) 등에 참여했다가 2007년에 은퇴했다.
일본 밀리터리 창작물에서 용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게 된 건 이 사람의 일대기나 회고록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돈바스 전쟁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외국 용병들이 양측에 많이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
다.

 

6. 용병 목록

 

  • 고중세의 용병다윗 : 사울에게 쫒겨나 이스라엘 남단에서 용병단을 운영하다가 사울 사후에 이스라엘을 접수하여 왕이 되었다.욤스비킹바랑인 친위대노르만 기사루티에제노바 쇠뇌병카탈루냐 용병스위스 용병 - 스위스 근위대헤센 용병대프리랜서란츠크네히트콘도티에리 - 이탈리아의 용병단의 대장들로,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밀라노 공국의 상속녀와 결혼해 공작 작위를 꿰찬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있다. 그외 알렉산더 파르네제도 유명한 인물이다.사이카슈아부레모노(溢物)반데 네레: 이탈리아의 용병 대장인 루도비코 디 지오반니 데 메디치(Ludovico di Giovanni de Medici)가 1517년에 만든 용병 부대.묵자 -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강력한 군사기술을 보유한 용병단을 만들어 운영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물리쳐 평화를 지킨다는 것을 목표로 하여 각지에 사람을 보내 방어전을 펼쳤다. <묵공>이라는 만화에서도 이를 제법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 다윗 : 사울에게 쫒겨나 이스라엘 남단에서 용병단을 운영하다가 사울 사후에 이스라엘을 접수하여 왕이 되었다.
  • 욤스비킹
  • 바랑인 친위대
  • 노르만 기사
  • 루티에
  • 제노바 쇠뇌병
  • 카탈루냐 용병
  • 스위스 용병 - 스위스 근위대
  • 헤센 용병대
  • 프리랜서
  • 란츠크네히트
  • 콘도티에리 - 이탈리아의 용병단의 대장들로,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밀라노 공국의 상속녀와 결혼해 공작 작위를 꿰찬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있다. 그외 알렉산더 파르네제도 유명한 인물이다.
  • 사이카슈
  • 아부레모노(溢物)
  • 반데 네레: 이탈리아의 용병 대장인 루도비코 디 지오반니 데 메디치(Ludovico di Giovanni de Medici)가 1517년에 만든 용병 부대.
  • 묵자 -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강력한 군사기술을 보유한 용병단을 만들어 운영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물리쳐 평화를 지킨다는 것을 목표로 하여 각지에 사람을 보내 방어전을 펼쳤다. <묵공>이라는 만화에서도 이를 제법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 근현대의 용병식민지인 부대세포이외인부대구르카프랑스 외인부대스페인 외인부대플라잉 타이거즈카자크인 용병로디지아군Executive Outcoms 블랙워터와일드 기스쿠바 내무성 정보관리국 제5과자유 시리아군바그너 그룹
  • 식민지인 부대세포이
  • 세포이
  • 외인부대구르카프랑스 외인부대스페인 외인부대
  • 구르카
  • 프랑스 외인부대
  • 스페인 외인부대
  • 플라잉 타이거즈
  • 카자크인 용병
  • 로디지아군
  • Executive Outcoms
  • 블랙워터
  • 와일드 기스
  • 쿠바 내무성 정보관리국 제5과
  • 자유 시리아군
  • 바그너 그룹

 

7. 같이보기

 

  • 봉건주의
  • 사병
  • 민간군사기업(PMC)
  • 준군사조직
  • 군벌
  • 의용군
  •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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