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프롬스의 최근 이슈
아일랜드
1. 개요
아일랜드 소개 홈페이지.영국의 서쪽 아일랜드섬 대부분을 통치하는 서유럽의 섬나라이다.
수도는 더블린이다.
수도는 더블린이다.
2. 국가 상징
2.0.1. 아일랜드의 부름
3. 역사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
History of the United Kingdom and Ireland
Stair na Ríochta Aontaithe agus na hÉireann
|
4. 인구
시기
|
전체 인구
|
1950년
|
2,969,000명
|
1955년
|
2,921,000명
|
1960년
|
2,834,000명
|
1965년
|
2,876,000명
|
1970년
|
2,950,000명
|
1975년
|
3,177,000명
|
1980년
|
3,401,000명
|
1985년
|
3,541,000명
|
1990년
|
3,506,000명
|
1995년
|
3,601,000명
|
2000년
|
3,849,000명
|
2005년
|
4,213,000명
|
2010년
|
4,627,000명
|
2015년
|
4,700,000명
|
2018년
|
4,804,000명
|
4.1. 출생 인구
시기
|
출생 인구
|
2000년
|
56,000명
|
2005년
|
61,000명
|
2010년
|
74,000명
|
2015년
|
66,000명
|
4.2. 기대 수명
시기
|
기대 수명
|
1965년
|
70세
|
1970년
|
71세
|
1975년
|
71세
|
1980년
|
72세
|
1985년
|
73세
|
1990년
|
74세
|
1995년
|
75세
|
2000년
|
76세
|
2005년
|
78세
|
2010년
|
80세
|
2015년
|
81세
|
4.3. 출산율
시기
|
출생율
|
1965년
|
4.07명
|
1970년
|
3.77명
|
1975년
|
3.82명
|
1980년
|
3.25명
|
1985년
|
2.76명
|
1990년
|
2.18명
|
1995년
|
1.91명
|
2000년
|
1.94명
|
2005년
|
1.97명
|
2010년
|
2.00명
|
2015년
|
2.00명
|
5. 치안
아일랜드의 치안은 전반적으로 매우 안전한 편이다.
다만 아일랜드 마피아가 마약 밀수나 무기 밀수, 갈취 같은 조직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다만 아일랜드 마피아가 마약 밀수나 무기 밀수, 갈취 같은 조직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6. 종교
6.1. 가톨릭
종교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지배적이었으나 근 30여 년에 걸친 사회적 세속화로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처음 가톨릭이 융성하게 된 이유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파트리치오 주교가 아일랜드의 골칫거리였던 뱀들을 모두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가톨릭의 인기가 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빙하기 시기 모조리 얼어죽은 후, 해빙기 때 바다로 둘러싸여 뱀이 상륙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아일랜드는 지금도 뱀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켈트족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유럽에서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등과 함께 굳건히 가톨릭 비율이 80% 이상인 나라다.
다른 유럽 나라들은 세속화가 진행되었지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곳이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기 때문에 성공회를 믿는 잉글랜드인, 장로회 신앙의 스코틀랜드계 켈트인들(청교도)들과의 갈등이 심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회/장로회와의 대립은 잉글랜드/영국에 핍박받으며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앙에 부여된 민족 정체성과 영국의 종교 차별이 결합되어 나타난 대립이었다.
어쨌든 아일랜드 자유국 시절부터 가톨릭의 안티테제 이미지가 있었던 성공회/장로회는 오랫동안 신자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아일랜드는 2018년까지는 OECD에서 낙태가 가장 어려운 나라였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은 고사하고, 그 낙태가 어렵다고 소문난 유럽국가인 폴란드보다도 더 어려운 상태였다.
이는 가톨릭의 영향이다.
하지만 2018년 5월 26일 낙태죄를 폐지하는 개헌국민투표에서 낙태죄 폐지에 66%가 찬성하였고, 개정 헌법에 따라 관련 법률도 개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사실상 사문화된 신성모독금지를 명시한 헌법 조항도 국민투표로 삭제시킬 예정이다.
그리고 국민투표에서 헌법에 신성모독조항이 삭제되기로 결과가 나오면서 신성모독조항은 헌법개정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점점 세속적인 국가로 가던 중에 성폭행 재판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속옷이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정황 증거'로 제시되고 결국 가해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과 비난이 커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몸에 딱 달라붙거나 피부가 드러나는 옷을 금지하는 지침을 마련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다.
처음 가톨릭이 융성하게 된 이유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파트리치오 주교가 아일랜드의 골칫거리였던 뱀들을 모두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가톨릭의 인기가 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빙하기 시기 모조리 얼어죽은 후, 해빙기 때 바다로 둘러싸여 뱀이 상륙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아일랜드는 지금도 뱀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켈트족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유럽에서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등과 함께 굳건히 가톨릭 비율이 80% 이상인 나라다.
다른 유럽 나라들은 세속화가 진행되었지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곳이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기 때문에 성공회를 믿는 잉글랜드인, 장로회 신앙의 스코틀랜드계 켈트인들(청교도)들과의 갈등이 심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회/장로회와의 대립은 잉글랜드/영국에 핍박받으며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앙에 부여된 민족 정체성과 영국의 종교 차별이 결합되어 나타난 대립이었다.
어쨌든 아일랜드 자유국 시절부터 가톨릭의 안티테제 이미지가 있었던 성공회/장로회는 오랫동안 신자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아일랜드는 2018년까지는 OECD에서 낙태가 가장 어려운 나라였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은 고사하고, 그 낙태가 어렵다고 소문난 유럽국가인 폴란드보다도 더 어려운 상태였다.
이는 가톨릭의 영향이다.
하지만 2018년 5월 26일 낙태죄를 폐지하는 개헌국민투표에서 낙태죄 폐지에 66%가 찬성하였고, 개정 헌법에 따라 관련 법률도 개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사실상 사문화된 신성모독금지를 명시한 헌법 조항도 국민투표로 삭제시킬 예정이다.
그리고 국민투표에서 헌법에 신성모독조항이 삭제되기로 결과가 나오면서 신성모독조항은 헌법개정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점점 세속적인 국가로 가던 중에 성폭행 재판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속옷이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정황 증거'로 제시되고 결국 가해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과 비난이 커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몸에 딱 달라붙거나 피부가 드러나는 옷을 금지하는 지침을 마련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다.
6.1.1. 흑역사
아일랜드는 대부분의 학교가 미션스쿨이고 종교에 따라서 가톨릭이나 개신교 학교로 진학한다.
이 가운데 가톨릭을 믿는 서민층의 교육은 아일랜드 신부를 중심으로 조직한 크리스천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라는 기관에서 세운 학교가 주로 담당한다.
그런데 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신부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교의 남학생을 장기간에 걸쳐서 성추행한 사실을 2002년도에 폭로했다.
이것 말고도 아일랜드 신부가 저지른 온갖 섹스 스캔들이 사회 이슈로 떠올라 아일랜드 가톨릭의 사회적 신뢰도는 폭락하고 젊은 층은 급속도로 가톨릭에 등을 돌린다.
골 때리는 것은 그 반대로 아일랜드에서 성공회 교인은 증가하고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막장 짓거리에 분노한 신자들이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로 간다.
아일랜드에서 신부는 특별한 종교적 권위가 있다는 인식을 대다수의 신자가 가지는데 가톨릭은 교황 이하의 성직자는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성직자(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는 교리가 있으며 만인제사장설을 거부해 일반 신자에 대한 신부의 권위와 신부들끼리 계급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하다.
아일랜드의 경우 1640년대 킬케니 가톨릭 연맹의 봉기를 올리버 크롬웰이 때려 잡고 1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공식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면서 가톨릭이 다수 종교이면서도 지하 종교가 되어 버리는 역사를 거쳤다.
이에 비밀리에 열리는 미사를 이끄는 신부를 개인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유독 심해져 신부는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진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괜찮은데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성직에 봉사하기에 신학적, 인격적 소양이 한창 모자란 인간들이 신부 노릇을 해 먹으며 그 지역 공동체 내의 유지 노릇을 한다.
그리고 신부가 이를 악용하여 성추행을 저지른다.
그 대상은 남자 어린이, 더블리너스 멤버인 에이먼 캠벨도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아동 성추행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여성도 성적학대의 피해자가 되어 그 유명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이 벌어진다.
2015년 아일랜드는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의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
찬성 62%, 반대 38%고 주로 젊은 층의 찬성이 많다.
이전까지 세계적으로 18개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나 어디까지나 모두 의회 입법이나 법원 판결을 통해서다.
이에 대해 유명인사인 팬티 블리스는 "아일랜드가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변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한 것"이라며 "아일랜드는 이제 더 이상 가톨릭교회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한다.
물론 당연히 아일랜드 가톨릭 교계는 이에 대해 "아일랜드 교회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 간의 결합으로 정의한다"며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정의를 바꾸지 못한다"고 반발한다.
물론 이에 대한 젊은 층의 반응은 "너나 잘하세요~"정도다.
2018년 낙태를 합법화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국민 투표 결과 찬성 66% 반대 33%로 더블스코어다,다만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2019년의 Eurobarometer 통계에서 아일랜드는 무신론자의 비율이 포르투갈보다 낮으며 폴란드와 비슷하다.
젊은층의 통계로 보더라도 아일랜드에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지하는 비율은 가톨릭 비율이 압도적인 포르투갈보다 높으며 2016년 기준 아일랜드 공화국의 종교 통계를 보면 아일랜드 성공회는 겨우 2.6%, 장로교는 0.5%의 압도적 소수다.
1922~1998년 아일랜드의 미혼모 시설에서 사망한 영아 및 어린이가 9천 명이다.
다.
이 가운데 가톨릭을 믿는 서민층의 교육은 아일랜드 신부를 중심으로 조직한 크리스천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라는 기관에서 세운 학교가 주로 담당한다.
그런데 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신부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교의 남학생을 장기간에 걸쳐서 성추행한 사실을 2002년도에 폭로했다.
이것 말고도 아일랜드 신부가 저지른 온갖 섹스 스캔들이 사회 이슈로 떠올라 아일랜드 가톨릭의 사회적 신뢰도는 폭락하고 젊은 층은 급속도로 가톨릭에 등을 돌린다.
골 때리는 것은 그 반대로 아일랜드에서 성공회 교인은 증가하고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막장 짓거리에 분노한 신자들이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로 간다.
아일랜드에서 신부는 특별한 종교적 권위가 있다는 인식을 대다수의 신자가 가지는데 가톨릭은 교황 이하의 성직자는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성직자(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는 교리가 있으며 만인제사장설을 거부해 일반 신자에 대한 신부의 권위와 신부들끼리 계급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하다.
아일랜드의 경우 1640년대 킬케니 가톨릭 연맹의 봉기를 올리버 크롬웰이 때려 잡고 1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공식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면서 가톨릭이 다수 종교이면서도 지하 종교가 되어 버리는 역사를 거쳤다.
이에 비밀리에 열리는 미사를 이끄는 신부를 개인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유독 심해져 신부는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진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괜찮은데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성직에 봉사하기에 신학적, 인격적 소양이 한창 모자란 인간들이 신부 노릇을 해 먹으며 그 지역 공동체 내의 유지 노릇을 한다.
그리고 신부가 이를 악용하여 성추행을 저지른다.
그 대상은 남자 어린이, 더블리너스 멤버인 에이먼 캠벨도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아동 성추행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여성도 성적학대의 피해자가 되어 그 유명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이 벌어진다.
2015년 아일랜드는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의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
찬성 62%, 반대 38%고 주로 젊은 층의 찬성이 많다.
이전까지 세계적으로 18개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나 어디까지나 모두 의회 입법이나 법원 판결을 통해서다.
이에 대해 유명인사인 팬티 블리스는 "아일랜드가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변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한 것"이라며 "아일랜드는 이제 더 이상 가톨릭교회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한다.
물론 당연히 아일랜드 가톨릭 교계는 이에 대해 "아일랜드 교회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 간의 결합으로 정의한다"며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정의를 바꾸지 못한다"고 반발한다.
물론 이에 대한 젊은 층의 반응은 "너나 잘하세요~"정도다.
2018년 낙태를 합법화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국민 투표 결과 찬성 66% 반대 33%로 더블스코어다,다만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2019년의 Eurobarometer 통계에서 아일랜드는 무신론자의 비율이 포르투갈보다 낮으며 폴란드와 비슷하다.
젊은층의 통계로 보더라도 아일랜드에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지하는 비율은 가톨릭 비율이 압도적인 포르투갈보다 높으며 2016년 기준 아일랜드 공화국의 종교 통계를 보면 아일랜드 성공회는 겨우 2.6%, 장로교는 0.5%의 압도적 소수다.
1922~1998년 아일랜드의 미혼모 시설에서 사망한 영아 및 어린이가 9천 명이다.
다.
6.2. 개신교
아일랜드에 있는 개신교는 아일랜드 성공회가 최대 교단이다.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Anglo-Irish)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 19세기까지는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교로서 가톨릭을 탄압하였으나, 국교 해제 이후에는 오랫동안 교세가 감소 상태였다.
현재 신자는 인구 대비 2.6% 가량이다.
아일랜드 성공회의 역사적 유명 인사로는 성공회 성직자였던 조너선 스위프트와 기네스 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가문과 아일랜드 초대 대통령인 더글러스 하이드가 있다.
그 밖에 소수 교단으로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도 있다.
아일랜드 성공회를 비롯하여 아일랜드에 있는 모든 개신교 교단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를 같은 총회에서 관할한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영국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초창기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적지 않은 초창기 아일랜드 독립운동 명사들이 성공회 신자였다.
그렇지만 독립운동의 지지 기반은 어디까지나 아일랜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톨릭 신자들이었고 일선 운동가 대다수 또한 가톨릭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아일랜드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가톨릭교회를 선택하는 경향이 독립운동 내에 강해지자 성공회 신자의 아일랜드 독립운동 내 입지는 축소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부터는 무종교 성향 좌파 세력의 성장으로 성공회 신자의 독립운동 내 입지는 더 축소되었다.
더군다나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 상당수는 여전히 영국 정부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도시 상류층과 중산층이었고 독립 후에는 독립 반대파 신자 중 상당수가 영국으로 이민가고 나머지 신자 사이에서도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전역에서 성공회 교세가 크게 감소했다.
여기에 더해 30년대에는 가톨릭 색채를 띤 민족주의 풍조가 다시 한 번 횡행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톨릭 색채를 띈 민족주의 풍조가 한 풀 꺽이고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내 기득권 세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면서 아일랜드 성공회의 어수선한 상황은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후에도 오랫동안 교세 감소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 수는 증가 추세로 돌아섰는데 이는 아일랜드 사회의 변화와 가톨릭교회의 권위 약화가 맞물린 결과이다.
1990년대부터 아일랜드 세속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가톨릭교회 추문이 대대적으로 폭로되면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교회에서 이탈했고 이 중 일부는 아일랜드 성공회로 개종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종교인이 되거나 다른 교단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인이 되었고, 가톨릭 신자 이탈이 성공회 신자 증가로 많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2011년 후부터는 아일랜드 성공회도 다시 신자 감소 추세에 들어섰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고교회파 영향이 짙었고 지금도 고교회파 영향이 남아있다.
하지만 69년 가톨릭 전례개혁을 본받아 전례를 쇄신했기 때문에 바오로 6세 전례와 유사해져서 옛 고교회파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으며,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이적한 신자 다수가 특별히 옛 성공회 고교회파 전례에 관심있는 것도 아니다.
아일랜드에서 장로교는 성공회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신자 감소 추세였다가, 1991-2011년에 가톨릭 신자 이탈의 수혜를 입어 신자 증가 추세로 돌아섰지만, 2011년 후부터는 성공회처럼 다시 신자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감리교 역시 성공회처럼 오랫동안 신자 감소 추세였다가 1991-2001년에 신자 증가 추세를 맞았지만 후에 오히려 큰 폭으로 신자 수가 감소했다.
아일랜드 개신교 중 가장 급속히 성장 중인 교파는 독립교회이다.
아일랜드 개신교의 50%가 독립교회인데, 이들은 1982년 아일랜드 성경 학원(Irish Bible Institute)라는 초교파 신학교육 기관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한 목사들이 목회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한 이들 중 무종교인이 되지 않은 다수도 이러한 독립교회로 이적했다.
아일랜드에서 독립교회 외에는 오순절교회와 루터교와 침례교가 성장했는데, 특히 2002년 3천여 명에 불과했던 오순절 교회 신자는 2011년 1만 4천여 명으로 크게 증가해다.
루터교 또한 2002년 3천여 명에서 2011년 5600여 명, 침례교는 2002년 2200여 명에서 2011년 3500여 명으로 증가했다.
다.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Anglo-Irish)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 19세기까지는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교로서 가톨릭을 탄압하였으나, 국교 해제 이후에는 오랫동안 교세가 감소 상태였다.
현재 신자는 인구 대비 2.6% 가량이다.
아일랜드 성공회의 역사적 유명 인사로는 성공회 성직자였던 조너선 스위프트와 기네스 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가문과 아일랜드 초대 대통령인 더글러스 하이드가 있다.
그 밖에 소수 교단으로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도 있다.
아일랜드 성공회를 비롯하여 아일랜드에 있는 모든 개신교 교단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를 같은 총회에서 관할한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영국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초창기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적지 않은 초창기 아일랜드 독립운동 명사들이 성공회 신자였다.
그렇지만 독립운동의 지지 기반은 어디까지나 아일랜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톨릭 신자들이었고 일선 운동가 대다수 또한 가톨릭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아일랜드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가톨릭교회를 선택하는 경향이 독립운동 내에 강해지자 성공회 신자의 아일랜드 독립운동 내 입지는 축소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부터는 무종교 성향 좌파 세력의 성장으로 성공회 신자의 독립운동 내 입지는 더 축소되었다.
더군다나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 상당수는 여전히 영국 정부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도시 상류층과 중산층이었고 독립 후에는 독립 반대파 신자 중 상당수가 영국으로 이민가고 나머지 신자 사이에서도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전역에서 성공회 교세가 크게 감소했다.
여기에 더해 30년대에는 가톨릭 색채를 띤 민족주의 풍조가 다시 한 번 횡행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톨릭 색채를 띈 민족주의 풍조가 한 풀 꺽이고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내 기득권 세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면서 아일랜드 성공회의 어수선한 상황은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후에도 오랫동안 교세 감소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 수는 증가 추세로 돌아섰는데 이는 아일랜드 사회의 변화와 가톨릭교회의 권위 약화가 맞물린 결과이다.
1990년대부터 아일랜드 세속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가톨릭교회 추문이 대대적으로 폭로되면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교회에서 이탈했고 이 중 일부는 아일랜드 성공회로 개종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종교인이 되거나 다른 교단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인이 되었고, 가톨릭 신자 이탈이 성공회 신자 증가로 많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2011년 후부터는 아일랜드 성공회도 다시 신자 감소 추세에 들어섰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고교회파 영향이 짙었고 지금도 고교회파 영향이 남아있다.
하지만 69년 가톨릭 전례개혁을 본받아 전례를 쇄신했기 때문에 바오로 6세 전례와 유사해져서 옛 고교회파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으며,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이적한 신자 다수가 특별히 옛 성공회 고교회파 전례에 관심있는 것도 아니다.
아일랜드에서 장로교는 성공회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신자 감소 추세였다가, 1991-2011년에 가톨릭 신자 이탈의 수혜를 입어 신자 증가 추세로 돌아섰지만, 2011년 후부터는 성공회처럼 다시 신자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감리교 역시 성공회처럼 오랫동안 신자 감소 추세였다가 1991-2001년에 신자 증가 추세를 맞았지만 후에 오히려 큰 폭으로 신자 수가 감소했다.
아일랜드 개신교 중 가장 급속히 성장 중인 교파는 독립교회이다.
아일랜드 개신교의 50%가 독립교회인데, 이들은 1982년 아일랜드 성경 학원(Irish Bible Institute)라는 초교파 신학교육 기관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한 목사들이 목회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한 이들 중 무종교인이 되지 않은 다수도 이러한 독립교회로 이적했다.
아일랜드에서 독립교회 외에는 오순절교회와 루터교와 침례교가 성장했는데, 특히 2002년 3천여 명에 불과했던 오순절 교회 신자는 2011년 1만 4천여 명으로 크게 증가해다.
루터교 또한 2002년 3천여 명에서 2011년 5600여 명, 침례교는 2002년 2200여 명에서 2011년 3500여 명으로 증가했다.
다.
6.2.1. 흑역사
아일랜드의 성공회의 포교의 역사는 폭력에 의한 강압적 강요로 시작되었다.
헨리 8세는 잉글랜드인과 스코틀랜드 성공회 신도들을 북아일랜드 지역으로 이주시키며 성공회를 장려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에서도 일부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대기근으로 위기에 빠진 아일랜드인에게 성공회 개종을 강요하며, 성공회로 개종을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며 차별하였다.
성공회로 개종하지 않은 아일랜드인들을 몰래 도와준 영국인 및 아일랜드인 성공회 신자는 그러한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마찬가지로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다.
18세기 가톨릭 교도들의 정치 참여는 금지했으며, 이후 이는 영국 성공회 교도가 아닌 다른 비국교도 전체로 정치참여 금지를 확산하여 성공회 교도가 아닌 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을 전부 탄압한다.
그러던 와중 아일랜드 성공회 신도들로만 이루어진 국회에서 영국과의 합병에 동의한다.
이에 1800년도 영국은 연합법을 선포한다.
사실상 조국을 영국에다가 판 것. 때문에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탄압에서 성공회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괜히 아일랜드인들이 수백년간에 달하는 영국의 지배에도 성공회로의 개종이 적은 게 아니다.
그나마 조상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공회로 개종한 후 영국에 적극적으로 부역하지는 않은 경우라면 동정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영국에 부역하여 성공회 신자가 된 아일랜드인의 후손들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철저한 배척의 대상이다.
그나마 최근에 과거의 악감정이 아일랜드 독립 등으로 진정이 됐고, 믿어왔던 가톨릭의 성추문들이 대거 터지면서 늘어난 것이다.
애초부터 강압과 협박, 불이익으로 시작한 포교 강요였고 이러면 이럴수록 기존의 아일랜드인들이 성공회를 싫어할 것이 뻔하다는 것을 영국과 성공회 교도, 성직자들은 너무나도 무지했다.
그나마 이 시기 성공회의 선행이 있다면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다.
보통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성공회는 개종해야 도와줬다는 말이 있지만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 개종여부 관련없이 도와줬다고 한다.
또한 위에서 설명했듯이 성공회~개신교도인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도 존재했다.
헨리 8세는 잉글랜드인과 스코틀랜드 성공회 신도들을 북아일랜드 지역으로 이주시키며 성공회를 장려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에서도 일부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대기근으로 위기에 빠진 아일랜드인에게 성공회 개종을 강요하며, 성공회로 개종을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며 차별하였다.
성공회로 개종하지 않은 아일랜드인들을 몰래 도와준 영국인 및 아일랜드인 성공회 신자는 그러한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마찬가지로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다.
18세기 가톨릭 교도들의 정치 참여는 금지했으며, 이후 이는 영국 성공회 교도가 아닌 다른 비국교도 전체로 정치참여 금지를 확산하여 성공회 교도가 아닌 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을 전부 탄압한다.
그러던 와중 아일랜드 성공회 신도들로만 이루어진 국회에서 영국과의 합병에 동의한다.
이에 1800년도 영국은 연합법을 선포한다.
사실상 조국을 영국에다가 판 것. 때문에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탄압에서 성공회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괜히 아일랜드인들이 수백년간에 달하는 영국의 지배에도 성공회로의 개종이 적은 게 아니다.
그나마 조상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공회로 개종한 후 영국에 적극적으로 부역하지는 않은 경우라면 동정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영국에 부역하여 성공회 신자가 된 아일랜드인의 후손들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철저한 배척의 대상이다.
그나마 최근에 과거의 악감정이 아일랜드 독립 등으로 진정이 됐고, 믿어왔던 가톨릭의 성추문들이 대거 터지면서 늘어난 것이다.
애초부터 강압과 협박, 불이익으로 시작한 포교 강요였고 이러면 이럴수록 기존의 아일랜드인들이 성공회를 싫어할 것이 뻔하다는 것을 영국과 성공회 교도, 성직자들은 너무나도 무지했다.
그나마 이 시기 성공회의 선행이 있다면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다.
보통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성공회는 개종해야 도와줬다는 말이 있지만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 개종여부 관련없이 도와줬다고 한다.
또한 위에서 설명했듯이 성공회~개신교도인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도 존재했다.
7. 행정 구역
아일랜드의 행정 구역 |
|||||
렌스터 |
|||||
더블린 주 |
위클로 주 |
웩스퍼드 주 |
|||
칼로 주 |
리시 주 |
미스 주 |
|||
라우스 주 |
킬데어 주 |
킬케니 주 |
|||
롱퍼드 주 |
웨스트미스 주 |
오펄리 주 |
|||
먼스터 |
|||||
클레어 주 |
티퍼레리 주 |
워터퍼드 주 |
|||
코크 주 |
케리 주 |
리머릭 주 |
|||
얼스터* |
|||||
캐번 주 |
모나한 주 |
도니골 주 |
|||
코노트 |
|||||
골웨이 주 |
로스커먼 주 |
리트림 주 |
|||
메이요 주 |
슬라이고 주 |
||||
* 페르마나, 타이론, 데리, 앤트림, 다운, 아르마는 북아일랜드로 영국이 점유
|
- 더블린(55만 명)
- 코크(12만 명)
- 리머릭(9만 명)
- 골웨이(8만 명)
- 워터퍼드(5만 명)
내용이 도움이 되셨으면 공감 버튼 꼬옥 눌러주세요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