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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삼국시대의 여성 한복. 기본 치마저고리 위에 포(袍)를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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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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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복삼총사 | 한복사총사 |
2. 한복 관련 정보
2.1. 바느질
- 전통 바느질 방법홈질, 박음질(온박음질, 반박음질), 감침질(두 가지 방식이 있다.), 공그르기, 시침질, 사뜨기, 휘갑치기 등이 있다.
- 홈질, 박음질(온박음질, 반박음질), 감침질(두 가지 방식이 있다.), 공그르기, 시침질, 사뜨기, 휘갑치기 등이 있다.
- 가장 기본적인 시접 처리 방식은 물겹 바느질이다. 조선 초기에 깎은 바느질이 등장했으며, 중기에 누비, 후기에 깨끼가 등장했다는 언급이 있는 신문 기사가 있다. 1986년 4월 11일 경향신문 기사
- 시접 처리 방식물겹: 시접을 넉넉히 남겨 빨래나 수선 등이 용이하다. 주로 두꺼운 소재에 사용한다. 깨끼(곱솔): 재단선을 한 번 박음질한 후 꺾어 접어서 먼저 한 바느질선에 최대한 가깝게 박은 뒤 시접을 최대한 잘라내고, 다시 접어서 박는다. 박음질을 총 세 번 한다. 저고리의 경우 치수 수선이 안된다. 모시나 얇은 소재에 많이 사용한다. 조선 인조 때 인물의 묘에서 출토된 한복에도 깨끼 바느질이 사용되었다가름솔: 올을 따라 호아서 갈라 다린 뒤, 조금 풀을 발라 다리고 겉으로도 뒤집어 다린다.쌈솔: 두 겹으로 혼 뒤 꺾어 접어서 박고, 시접을 앝게 잘라내고 꺾어 접는다.뒤웅솔: 겉에서 박아 꺾은 뒤 시접을 얕게 잘라내고, 자른 시접이 솔기 안으로 들어가게 접은 뒤 박고 꺾어 접는다.
- 물겹: 시접을 넉넉히 남겨 빨래나 수선 등이 용이하다. 주로 두꺼운 소재에 사용한다.
- 깨끼(곱솔): 재단선을 한 번 박음질한 후 꺾어 접어서 먼저 한 바느질선에 최대한 가깝게 박은 뒤 시접을 최대한 잘라내고, 다시 접어서 박는다. 박음질을 총 세 번 한다. 저고리의 경우 치수 수선이 안된다. 모시나 얇은 소재에 많이 사용한다. 조선 인조 때 인물의 묘에서 출토된 한복에도 깨끼 바느질이 사용되었다
- 가름솔: 올을 따라 호아서 갈라 다린 뒤, 조금 풀을 발라 다리고 겉으로도 뒤집어 다린다.
- 쌈솔: 두 겹으로 혼 뒤 꺾어 접어서 박고, 시접을 앝게 잘라내고 꺾어 접는다.
- 뒤웅솔: 겉에서 박아 꺾은 뒤 시접을 얕게 잘라내고, 자른 시접이 솔기 안으로 들어가게 접은 뒤 박고 꺾어 접는다.
- 누비: 직물 사이에 솜을 넣거나 넣지않고 바느질로 고정시킨다. 옷감의 날실 한 가닥을 일정한 간격으로 당겨 누비선을 표시한 뒤 그 선을 따라 누빈다.솜 여부에 따라솜누비: 솜을 넣어 누빈 것. 목화솜이나 명주솜을 넣었다.겹누비: 솜을 넣지 않고 옷감 두 겹만을 누빈 것.누비 간격에 따라잔누비(세누비): 누비 간격이 0.5cm에서 1cm로 촘촘한 것.중누비: 누비 간격이 2.5cm 내외인 것.드믄누비(광누비): 누비 간격이 5cm 내외인 것.선 모양에 따라직선누비곡선누비바느질에 따라홈질누비 박음질누비수단에 따라손누비: 사람이 직접 만든 것.기계누비: 기계로 박은 것.
- 솜 여부에 따라솜누비: 솜을 넣어 누빈 것. 목화솜이나 명주솜을 넣었다.겹누비: 솜을 넣지 않고 옷감 두 겹만을 누빈 것.
- 솜누비: 솜을 넣어 누빈 것. 목화솜이나 명주솜을 넣었다.
- 겹누비: 솜을 넣지 않고 옷감 두 겹만을 누빈 것.
- 누비 간격에 따라잔누비(세누비): 누비 간격이 0.5cm에서 1cm로 촘촘한 것.중누비: 누비 간격이 2.5cm 내외인 것.드믄누비(광누비): 누비 간격이 5cm 내외인 것.
- 잔누비(세누비): 누비 간격이 0.5cm에서 1cm로 촘촘한 것.
- 중누비: 누비 간격이 2.5cm 내외인 것.
- 드믄누비(광누비): 누비 간격이 5cm 내외인 것.
- 선 모양에 따라직선누비곡선누비
- 직선누비
- 곡선누비
- 바느질에 따라홈질누비 박음질누비
- 홈질누비
- 박음질누비
- 수단에 따라손누비: 사람이 직접 만든 것.기계누비: 기계로 박은 것.
- 손누비: 사람이 직접 만든 것.
- 기계누비: 기계로 박은 것.
2.2. 원단
- 구분법: 태웠을 때 재가 남지 않고 모조리 바스라지면 본견, 재가 엉기면서 남아있으면 화학섬유다.
- 이중직: 이중으로 직조한 원단.
- 선염: 먼저 실을 염색한 후 직조한 원단. 균일한 염색이 가능하다.
- 홍두깨: 홍두깨(다듬이)질을 하여 물결무늬를 내는 것. 기계 염색으로는 불가능하다.
- 비단(본견=실크): 명주실로만 짠다. 다른 실을 섞지 않는다. 자외선에 약하며, 물에 닿으면 얼룩이 생긴다. 흡수성이 높아 습한 곳에 보관하면 형태가 변하고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흡수제거제나 방충제는 화학 성분이라 안좋다. 한지를 먼저 두른 뒤 방충제를 닿지 않게 넣어야 한다.옥사: 누에에서 뽑은 실 중 가장 거친 것을 반쯤 삶아 만든다. 염색할 때 염료를 많이 먹어 색을 진하게 하기에 좋다. 거칠고 빳빳한 느낌이 살아있다.견방사: 생사가 아닌, 자투리를 엮고 뽑아서 만든다. 옥사에 비해 구김에 강하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명주: 고운 명주실로 만든다. 옥사보다 두껍고 견방사보다 광택이 난다.갑사: 고운 명주를 꼬아서 만든다. 실이 뭉치지 않고 무늬를 잘 살려준다. 생초견: 삶지 않은 생사로 짠다. 염료를 잘 먹으며, 다듬이질을 하면 좋다.양단: 가늘고 고운 명주로 직조한다. 다른 원단에 비해 실이 많이 들어간다. 한복 원단 중 광택이 제일 강하다. 주로 겨울 한복에 사용한다.선염이중옥사: 먼저 색을 염색한(선염) 두 가지 색의 원사(이중)를 직조하여 만든다. 씨실과 날실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이 보인다. 염색 방식: 자연 염료가 아닌 이상, 산성 염료를 사용한다.자연 염색(천연 염색): 자연 염료로 염색하는 것.손염색: 색감이 진하고 고급스럽다. 염색하는 사람과 온도, 습도, 바람, 일조량 등에 따라 미세한 유동성이 있다. 기계 손염색: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염색한 것.사람 손염색: 사람이 직접 염색한 것. 가장 비싸다.기계염색: 기계만으로 염색한 것. 고열에서 염료를 압착하여 코팅한다. (본견인 경우)단백질인 원단에 높은 열을 가하기 때문에 원단이 약해진다.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똑같이 고르게 염색할 수 있지만 손염색에 비해 색감이 떨어진다.
- 옥사: 누에에서 뽑은 실 중 가장 거친 것을 반쯤 삶아 만든다. 염색할 때 염료를 많이 먹어 색을 진하게 하기에 좋다. 거칠고 빳빳한 느낌이 살아있다.
- 견방사: 생사가 아닌, 자투리를 엮고 뽑아서 만든다. 옥사에 비해 구김에 강하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
- 명주: 고운 명주실로 만든다. 옥사보다 두껍고 견방사보다 광택이 난다.
- 갑사: 고운 명주를 꼬아서 만든다. 실이 뭉치지 않고 무늬를 잘 살려준다.
- 생초견: 삶지 않은 생사로 짠다. 염료를 잘 먹으며, 다듬이질을 하면 좋다.
- 양단: 가늘고 고운 명주로 직조한다. 다른 원단에 비해 실이 많이 들어간다. 한복 원단 중 광택이 제일 강하다. 주로 겨울 한복에 사용한다.
- 선염이중옥사: 먼저 색을 염색한(선염) 두 가지 색의 원사(이중)를 직조하여 만든다. 씨실과 날실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이 보인다.
- 염색 방식: 자연 염료가 아닌 이상, 산성 염료를 사용한다.자연 염색(천연 염색): 자연 염료로 염색하는 것.손염색: 색감이 진하고 고급스럽다. 염색하는 사람과 온도, 습도, 바람, 일조량 등에 따라 미세한 유동성이 있다. 기계 손염색: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염색한 것.사람 손염색: 사람이 직접 염색한 것. 가장 비싸다.기계염색: 기계만으로 염색한 것. 고열에서 염료를 압착하여 코팅한다. (본견인 경우)단백질인 원단에 높은 열을 가하기 때문에 원단이 약해진다.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똑같이 고르게 염색할 수 있지만 손염색에 비해 색감이 떨어진다.
- 자연 염색(천연 염색): 자연 염료로 염색하는 것.
- 손염색: 색감이 진하고 고급스럽다. 염색하는 사람과 온도, 습도, 바람, 일조량 등에 따라 미세한 유동성이 있다. 기계 손염색: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염색한 것.사람 손염색: 사람이 직접 염색한 것. 가장 비싸다.
- 기계 손염색: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염색한 것.
- 사람 손염색: 사람이 직접 염색한 것. 가장 비싸다.
- 기계염색: 기계만으로 염색한 것. 고열에서 염료를 압착하여 코팅한다. (본견인 경우)단백질인 원단에 높은 열을 가하기 때문에 원단이 약해진다.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똑같이 고르게 염색할 수 있지만 손염색에 비해 색감이 떨어진다.
2.3. 실루엣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3국은 전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치가 다른 만큼, 옷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전체적인 선에서 드러난다.
중국은 옛부터 몸에 최대한 붙어서 '신체미'를 강조했고. 일본은 직사각형의 단조롭고 깔끔한 '지조미'를 지향했다면 한국은 정 반대로 "크다". 특히 하의를 엄청난 면을 써가며 풍성미를 지향했다.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청의 사신은 '조선의 바지 한벌로 청의 바지 두벌은 만들 수 있다.
'며 충격을 먹을 정도로 하체의 풍성미를 추구했다.
신라시대 때부터 상의가 아닌 하의를 정체성으로 삼고 노략질을 하는 놈들도 있었으니 1000년을 넘는 미의식인 셈이다.
쉽게 말해서 중국과 일본,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이 ■의 형상을 취한다면 조선은 ▲의 형상을 취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알고 있는 포대자루같이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의 실루엣은 최소 구한말에 정립된 형태이며, 한민족은 여태껏 옷을 입은 이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은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 선이 드러나 엉덩이를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한복은 흔한 인식과는 정반대로 조선 초부터 시대가 흘러갈수록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조선시대 여성 저고리의 변천사상의 저고리가 점점 타이트해지며 짧아지더니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려서 가슴가리개라는 것을 허리에 두르지 않으면 가슴 아래 선이 전부 노출돼 버렸다.
신윤복의 풍속화 연소답청에 표현된 가슴가리개. 허리에 넓은 천을 두르고 띠로 고정시킨 것이다.
초기의 브래지어처럼 가슴을 가리고 조이는 역할을 하는, 상의의 맨 아래에 착장하는 속옷이다.
저고리가 너무 짧아져 이 속옷이 노출되는 지경에 이르자 가슴가리개는 가슴부터 허리까지 꽁꽁 가리고 조이는, 맨 아래에 착장한 한복 속옷이다.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퓨전 한복이나 한복 드레스에서 오픈숄더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치마의 말기 부분이다.
기생들은 여기에 자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수를 놓은 가슴가리개는 전해지는 유물은 없고 이영희 디자이너가 현대에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한말,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들의 사진이 유명한데, 이는 일제가 "미개한 조선을 우리가 개화해줬다"는 의도로 연출한 날조된 사진이다.
19세기 말 당시 사진엽서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는데, 식민지의 모습을 찍은 엽서도 자연스럽게 유행했다.
그리고 일제는 조선의 미개하고 가난한 모습만을 골라 지배국의 시선을 투영했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박애주의적인 선택이었다는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하층민 중 아이를 낳은 여성이 수유를 쉽게 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는 임산부라는 특별한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평민 여성이나 양가집 규수가 공공연하게 밖에서 가슴을 드러낼 리가 없다.
애초에 조선은 부녀자들이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만 드러내고는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나라였다.
(SBS 스페셜 일제 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그러나 실제 일제와 상관없는 구한말 외국인들이 조선인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속에도 가슴이 노출되는 부녀자 복장이 종종 나오고 한국에 우호적이던 외국인들의 여행기에도 아들을 낳은 여인들만 가슴을 드러낸다는 설명도 공통적으로 있는것을 보아 일시적으로 하층민들 사이에 유행한 풍습일 가능성이 더 크다.
(https://m.blog.naver.com/CommentList.nhn?blogId=tomtomkor&logNo=221292923422) 일제가 제국주의적으로 이용했다고 이러한 복식사의 변천에대한 제대로된 연구없이 왜곡으로만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고 또한 상류층의 복식 기준으로만 연구가 진행돼서도 안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한복은 구한말에 유행하던 스타일인데,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허리에서 여며지던 치마를 길게 만들어 가슴 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구한말의 여성해방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는 일단 조인다.
기능만 보자면 가슴조이개에 더 가깝다.
코르셋이 허리를 조인다면, 이건 가슴에서 허리까지 꽉꽉 다 조인다.
이는 여아들의 2차 성징에도 지장을 주어, 현대에 들어 가슴가리개&치마말기를 유지하고 있는 퓨전한복은 가슴둘레에 맟춰 제작함으로써 가슴부분을 조이지 않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저고리가 남성의 것처럼 길고 한복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인체구조상, 치마가 허리부터면 대강 둘레만 맞으면 적어도 밑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그런데 저고리가 짧아지고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가 생기니, 이젠 죄지 않으면 치마가 그대로 벗겨진다.
구한말부터 유행한 치마는 치마에 어깨끈이란 안전장치를 달아, 짧은 저고리는 유지하면서도 여자들이 마음놓고 좀 뛰어도 괜찮게 하였다.
조끼허리 혹은 어깨허리라 하여, 점퍼스커트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어 여민다.
이 형태는 개화기 때 이화학당의 미국인 여교장 J.월터가 위의 가슴가리개가 청소년기 소녀들의 건강상 좋지 못한 것도 있고 체조와 농구 같은 운동를 하거나 뜀뛰기를 할때마다 치마가 흘러내렸기 때문에 개량해 보급한 것이다.
저고리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복 치마 형태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어깨끈을 달며, 통치마로 만들어 여밀 필요가 없게 하고, 치마 길이는 땅에 쓸리지 않게 짤막히 하는 게 최고다.
즉 현재 북한의 한복 치마 형태나, 유관순이 입은 한복 치마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이화학당 등 구한말 여학교들 중심으로 활동성 높은 통치마 입기를 권장했고, 이렇게 몸매를 드러내는 가슴가리개 한복에서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펑펑한 한복 형태로 바뀌어갔다.
묘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만들어지고 있는(더욱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한복은 대다수가 이렇게 상하의 구분선을 생략하고 치마가 겨드랑이까지 올라가는 형태이다.
실생활에서 이러한 형태의 개량한복을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기회는 바로 결혼식장인데, 컨벤션센터 위주의 현대 혼례에서도 신랑•신부의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것이 정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예 통치마 형태의 개량형 치마를 혼주치마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한복의 절제되면서도 가리는 멋과 치마의 풍성한 선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일부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이 디자인을 포대자루 같다며 까기도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이쪽이 수요가 워낙 많고, 가격대 역시도 만만치 않아서 이쪽으로 디자이너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이러한 긴 치마를 응용한 한복 드레스도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은 옛부터 몸에 최대한 붙어서 '신체미'를 강조했고. 일본은 직사각형의 단조롭고 깔끔한 '지조미'를 지향했다면 한국은 정 반대로 "크다". 특히 하의를 엄청난 면을 써가며 풍성미를 지향했다.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청의 사신은 '조선의 바지 한벌로 청의 바지 두벌은 만들 수 있다.
'며 충격을 먹을 정도로 하체의 풍성미를 추구했다.
신라시대 때부터 상의가 아닌 하의를 정체성으로 삼고 노략질을 하는 놈들도 있었으니 1000년을 넘는 미의식인 셈이다.
쉽게 말해서 중국과 일본,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이 ■의 형상을 취한다면 조선은 ▲의 형상을 취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알고 있는 포대자루같이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의 실루엣은 최소 구한말에 정립된 형태이며, 한민족은 여태껏 옷을 입은 이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은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 선이 드러나 엉덩이를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한복은 흔한 인식과는 정반대로 조선 초부터 시대가 흘러갈수록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조선시대 여성 저고리의 변천사상의 저고리가 점점 타이트해지며 짧아지더니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려서 가슴가리개라는 것을 허리에 두르지 않으면 가슴 아래 선이 전부 노출돼 버렸다.
신윤복의 풍속화 연소답청에 표현된 가슴가리개. 허리에 넓은 천을 두르고 띠로 고정시킨 것이다.
초기의 브래지어처럼 가슴을 가리고 조이는 역할을 하는, 상의의 맨 아래에 착장하는 속옷이다.
저고리가 너무 짧아져 이 속옷이 노출되는 지경에 이르자 가슴가리개는 가슴부터 허리까지 꽁꽁 가리고 조이는, 맨 아래에 착장한 한복 속옷이다.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퓨전 한복이나 한복 드레스에서 오픈숄더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치마의 말기 부분이다.
기생들은 여기에 자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수를 놓은 가슴가리개는 전해지는 유물은 없고 이영희 디자이너가 현대에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한말,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들의 사진이 유명한데, 이는 일제가 "미개한 조선을 우리가 개화해줬다"는 의도로 연출한 날조된 사진이다.
19세기 말 당시 사진엽서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는데, 식민지의 모습을 찍은 엽서도 자연스럽게 유행했다.
그리고 일제는 조선의 미개하고 가난한 모습만을 골라 지배국의 시선을 투영했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박애주의적인 선택이었다는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하층민 중 아이를 낳은 여성이 수유를 쉽게 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는 임산부라는 특별한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평민 여성이나 양가집 규수가 공공연하게 밖에서 가슴을 드러낼 리가 없다.
애초에 조선은 부녀자들이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만 드러내고는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나라였다.
(SBS 스페셜 일제 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그러나 실제 일제와 상관없는 구한말 외국인들이 조선인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속에도 가슴이 노출되는 부녀자 복장이 종종 나오고 한국에 우호적이던 외국인들의 여행기에도 아들을 낳은 여인들만 가슴을 드러낸다는 설명도 공통적으로 있는것을 보아 일시적으로 하층민들 사이에 유행한 풍습일 가능성이 더 크다.
(https://m.blog.naver.com/CommentList.nhn?blogId=tomtomkor&logNo=221292923422) 일제가 제국주의적으로 이용했다고 이러한 복식사의 변천에대한 제대로된 연구없이 왜곡으로만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고 또한 상류층의 복식 기준으로만 연구가 진행돼서도 안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한복은 구한말에 유행하던 스타일인데,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허리에서 여며지던 치마를 길게 만들어 가슴 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구한말의 여성해방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는 일단 조인다.
기능만 보자면 가슴조이개에 더 가깝다.
코르셋이 허리를 조인다면, 이건 가슴에서 허리까지 꽉꽉 다 조인다.
이는 여아들의 2차 성징에도 지장을 주어, 현대에 들어 가슴가리개&치마말기를 유지하고 있는 퓨전한복은 가슴둘레에 맟춰 제작함으로써 가슴부분을 조이지 않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저고리가 남성의 것처럼 길고 한복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인체구조상, 치마가 허리부터면 대강 둘레만 맞으면 적어도 밑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그런데 저고리가 짧아지고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가 생기니, 이젠 죄지 않으면 치마가 그대로 벗겨진다.
구한말부터 유행한 치마는 치마에 어깨끈이란 안전장치를 달아, 짧은 저고리는 유지하면서도 여자들이 마음놓고 좀 뛰어도 괜찮게 하였다.
조끼허리 혹은 어깨허리라 하여, 점퍼스커트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어 여민다.
이 형태는 개화기 때 이화학당의 미국인 여교장 J.월터가 위의 가슴가리개가 청소년기 소녀들의 건강상 좋지 못한 것도 있고 체조와 농구 같은 운동를 하거나 뜀뛰기를 할때마다 치마가 흘러내렸기 때문에 개량해 보급한 것이다.
저고리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복 치마 형태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어깨끈을 달며, 통치마로 만들어 여밀 필요가 없게 하고, 치마 길이는 땅에 쓸리지 않게 짤막히 하는 게 최고다.
즉 현재 북한의 한복 치마 형태나, 유관순이 입은 한복 치마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이화학당 등 구한말 여학교들 중심으로 활동성 높은 통치마 입기를 권장했고, 이렇게 몸매를 드러내는 가슴가리개 한복에서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펑펑한 한복 형태로 바뀌어갔다.
묘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만들어지고 있는(더욱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한복은 대다수가 이렇게 상하의 구분선을 생략하고 치마가 겨드랑이까지 올라가는 형태이다.
실생활에서 이러한 형태의 개량한복을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기회는 바로 결혼식장인데, 컨벤션센터 위주의 현대 혼례에서도 신랑•신부의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것이 정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예 통치마 형태의 개량형 치마를 혼주치마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한복의 절제되면서도 가리는 멋과 치마의 풍성한 선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일부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이 디자인을 포대자루 같다며 까기도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이쪽이 수요가 워낙 많고, 가격대 역시도 만만치 않아서 이쪽으로 디자이너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이러한 긴 치마를 응용한 한복 드레스도 만들어지고 있다.
2.4. 말기와 가슴가리개
말기나 가슴가리개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치맛허리/바짓허리라고 사이시옷을 쓸데없이 넣어 표기하지 않는다.
또한 '고름'은 상의를 여밀 때 쓰는 끈을 지칭하는 것이지, 말기에 달린 끈을 고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치맛고름/바짓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 책에도 없고 학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용어이다.
남자 바지를 여미는 끈은 말기에 같이 달린 끈이 아닌 분리가 가능한 허리띠이며, 여자의 속옷으로 쓰이는 바지에 달린 끈도 그냥 '바지끈', '바지말기 끈' '바지허리 끈'으로 부르지 바짓고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는 없다.
조끼허리(어깨허리)식 말기가 생겨나기 전 띠허리식 말기의 치마끈은 상의의 옷고름보다 넓고 길어서, 치마를 여민 뒤 남는 부분을 저고리 밑 치마 위로 늘어뜨리고 다녔다.
구한 말 사진이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치마끈을 마치 고름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치마끈은 반드시 물들이지 않은 무명이나 마(삼베, 모시)재질로 만들었고, 자수 장식은 하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출토복식부터 구한말까지 내려오는 전세유물까지, 치마끈이나 말기에 자수 장식을 한 물건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수 장식은 현대의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말기나 가슴가리개 항목을 참조.말기는 치마나 바지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국어사전)이다.
즉, 치마허리나 바지허리. 별개의 의복이 아니다.
말기는 저고리에 동정, 길, 섶 등이 있는 것처럼 하의 속옷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치마에서는 한복 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부분이다.
조끼허리식 풀치마의 경우 어깨끈이 달린 그 부위. 이 경우 말기 부분이 가슴에 온다.
이 조끼허리식 풀치마가 혼동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원래 전통적인 치마는 띠허리풀치마라 치마를 허리에 둘렀으며, 어깨끈은 달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말기는 허리에 위치했다.
말기에 두르고 남는 말기끈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복드레스에서 상의 부분으로 활발히 개량되는 것은 이 말기 부분을 가슴가리개처럼 보기도록 굉장히 넓게 개량한 말기치마를 다시 개량한 것이다.
가슴가리개는 가장 안쪽에 착장하는 상의 속옷이다.
'대자'라고도 부르는 그것. 위의 속옷 단락이나 항목 참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가슴가리개가슴가리개가 말기에 흡수되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오히려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져 가슴가리개가 더욱 중요해졌으며, 치마말기는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애초에 치마는 허리에 두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기는 가슴가리개의 아래쪽 절반 가량과 겹치게 된다.
게다가 말기는 허리를 고정할 정도면 됐고, 속옷 역할을 할 정도로 넓지 않다.
다시 한 번 작성하지만,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에 천을 다시 덧대어 허리에 두르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따로 분리되거나 속옷과 흡수된 적 자체가 없다.
저고리에서 동정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과 같은 소리다.
애초에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양 선교사인 이화학당의 교장 미스 월터에 의해 서양 복식 재단법을 일부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구한말에 생긴 것으로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이 받아들여 입었던 것은 맞다.
애초 그들을 가르치던 서양인 선교사가 고안하여 전파한 것이다.
조선식 의복의 가슴가리개와 그 위를 여러 겹 동여매는 하의의 허리말기가 신체를 압박하여 여성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활동성을 저해한다고 여겨, 어깨끈이 있고 가슴을 안정적으로 감싸주는 조끼허리를 고안하여 보급한 것이다.
조끼허리의 패턴 자체가 서양 의복의 몸통(토르소)을 만드는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입체재단의 일부이다.
현대까지도 이런 조끼허리식 풀치마를 주로 착용하는데다 옛 복식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흉내내겠다며 말기의 폭을 대폭 늘린 말기치마나 치마 위에 두르는 말기대같은 것들이 새롭게 탄생하니 이런 혼란과 착오가 생기게 된다.
더군다나 말기치마와 말기대는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을 흉내내려는 목적에서 탄생되었으나,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칭하는 말기가 버젓이 이름으로 붙어버렸다.
예로부터 입어온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띠허리식 풀치마로, 허리에 두르는 랩스커트 형식이었다.
현대에 주로 입는 가슴 위로 올라오고 어깨끈이 달린 것은 조끼허리식 풀치마로, 띠허리식 풀치마에 비하면 비교적 현대에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말기 부분은 허리에 오게 된다.
한복은 전통 의상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기 때문에 현대에 입는 한복이 아닌 전통적인 한복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요즘에는 한복을 입더라도 가슴가리개를 비롯한 전통 속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조끼허리식 풀치마형으로 나온 샤 등의 재질로 만든 속치마를 많아봐야 두 겹 입는게 전부다.
저고리도 전통식과 양장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러니 한복에 관심이 있더라도 전통 한복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한복은 원래 하의는 허리에 둘러서 입지, 가슴 부근이나 그 위로 올라오지 않는 복식이다.
말기는 애초에 섶, 길, 고름, 동정, 화장, 선처럼 의복을 구성하는 부분요소의 이름이기 때문에 독립된 별개의 속옷과 혼동되거나 합쳐질 이유가 없다.
치마말기는 엄연히 치마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가슴가리개는 브래지어,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이다.
벨트나 단추가 있는 그 부분.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 매어 치마나 바지를 여미고 고정한다.
또한 '고름'은 상의를 여밀 때 쓰는 끈을 지칭하는 것이지, 말기에 달린 끈을 고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치맛고름/바짓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 책에도 없고 학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용어이다.
남자 바지를 여미는 끈은 말기에 같이 달린 끈이 아닌 분리가 가능한 허리띠이며, 여자의 속옷으로 쓰이는 바지에 달린 끈도 그냥 '바지끈', '바지말기 끈' '바지허리 끈'으로 부르지 바짓고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는 없다.
조끼허리(어깨허리)식 말기가 생겨나기 전 띠허리식 말기의 치마끈은 상의의 옷고름보다 넓고 길어서, 치마를 여민 뒤 남는 부분을 저고리 밑 치마 위로 늘어뜨리고 다녔다.
구한 말 사진이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치마끈을 마치 고름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치마끈은 반드시 물들이지 않은 무명이나 마(삼베, 모시)재질로 만들었고, 자수 장식은 하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출토복식부터 구한말까지 내려오는 전세유물까지, 치마끈이나 말기에 자수 장식을 한 물건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수 장식은 현대의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말기나 가슴가리개 항목을 참조.말기는 치마나 바지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국어사전)이다.
즉, 치마허리나 바지허리. 별개의 의복이 아니다.
말기는 저고리에 동정, 길, 섶 등이 있는 것처럼 하의 속옷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치마에서는 한복 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부분이다.
조끼허리식 풀치마의 경우 어깨끈이 달린 그 부위. 이 경우 말기 부분이 가슴에 온다.
이 조끼허리식 풀치마가 혼동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원래 전통적인 치마는 띠허리풀치마라 치마를 허리에 둘렀으며, 어깨끈은 달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말기는 허리에 위치했다.
말기에 두르고 남는 말기끈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복드레스에서 상의 부분으로 활발히 개량되는 것은 이 말기 부분을 가슴가리개처럼 보기도록 굉장히 넓게 개량한 말기치마를 다시 개량한 것이다.
가슴가리개는 가장 안쪽에 착장하는 상의 속옷이다.
'대자'라고도 부르는 그것. 위의 속옷 단락이나 항목 참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가슴가리개가슴가리개가 말기에 흡수되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오히려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져 가슴가리개가 더욱 중요해졌으며, 치마말기는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애초에 치마는 허리에 두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기는 가슴가리개의 아래쪽 절반 가량과 겹치게 된다.
게다가 말기는 허리를 고정할 정도면 됐고, 속옷 역할을 할 정도로 넓지 않다.
다시 한 번 작성하지만,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에 천을 다시 덧대어 허리에 두르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따로 분리되거나 속옷과 흡수된 적 자체가 없다.
저고리에서 동정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과 같은 소리다.
애초에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양 선교사인 이화학당의 교장 미스 월터에 의해 서양 복식 재단법을 일부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구한말에 생긴 것으로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이 받아들여 입었던 것은 맞다.
애초 그들을 가르치던 서양인 선교사가 고안하여 전파한 것이다.
조선식 의복의 가슴가리개와 그 위를 여러 겹 동여매는 하의의 허리말기가 신체를 압박하여 여성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활동성을 저해한다고 여겨, 어깨끈이 있고 가슴을 안정적으로 감싸주는 조끼허리를 고안하여 보급한 것이다.
조끼허리의 패턴 자체가 서양 의복의 몸통(토르소)을 만드는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입체재단의 일부이다.
현대까지도 이런 조끼허리식 풀치마를 주로 착용하는데다 옛 복식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흉내내겠다며 말기의 폭을 대폭 늘린 말기치마나 치마 위에 두르는 말기대같은 것들이 새롭게 탄생하니 이런 혼란과 착오가 생기게 된다.
더군다나 말기치마와 말기대는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을 흉내내려는 목적에서 탄생되었으나,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칭하는 말기가 버젓이 이름으로 붙어버렸다.
예로부터 입어온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띠허리식 풀치마로, 허리에 두르는 랩스커트 형식이었다.
현대에 주로 입는 가슴 위로 올라오고 어깨끈이 달린 것은 조끼허리식 풀치마로, 띠허리식 풀치마에 비하면 비교적 현대에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말기 부분은 허리에 오게 된다.
한복은 전통 의상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기 때문에 현대에 입는 한복이 아닌 전통적인 한복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요즘에는 한복을 입더라도 가슴가리개를 비롯한 전통 속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조끼허리식 풀치마형으로 나온 샤 등의 재질로 만든 속치마를 많아봐야 두 겹 입는게 전부다.
저고리도 전통식과 양장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러니 한복에 관심이 있더라도 전통 한복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한복은 원래 하의는 허리에 둘러서 입지, 가슴 부근이나 그 위로 올라오지 않는 복식이다.
말기는 애초에 섶, 길, 고름, 동정, 화장, 선처럼 의복을 구성하는 부분요소의 이름이기 때문에 독립된 별개의 속옷과 혼동되거나 합쳐질 이유가 없다.
치마말기는 엄연히 치마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가슴가리개는 브래지어,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이다.
벨트나 단추가 있는 그 부분.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 매어 치마나 바지를 여미고 고정한다.
2.5. 동아시아의 전통복식과 비교
일본의 기모노와 중국의 한푸와 만주의 치파오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고, 각자 제조법도 남다르지만, 그중에서 한국의 한복이 가장 견고하고 만들기 까다롭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한복이 가장 어렵다.
일단 치파오는 서양복식에 가까운 형태, 한푸와 기모노는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지만 한복은 안감과 겉감을 '창구멍' 이란 구멍을 통해 뒤집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재단도 복잡하다.
하지만 만드는 데에 정성을 쏟은 만큼, 입는 절차와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복이 가장 간편하다.
특히 여성 복장의 경우 활동성은 한푸, 기모노와 차이가 크다.
또 한가지 큰 차이는 호복의 영향을 받기 전의 한푸와, 기모노의 코소데나 후리소데가 한 벌 통옷인 반면, 알타이계 호복이 기초가 된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나뉘고 여성도 치마 안에 반드시 속바지를 착용한다.
삼국시대 한복은 한푸, 정확히는 호복의 영항을 받은 한푸나 기모노와 상당히 접점이 많다.
이 시절의 한복, 한푸, 기모노의 기본 형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하다.
백제, 가야 쪽 한복은 아스카 시대 기모노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도 있다.
때문에 2020년대 들어서 일종의 문화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한복과 기모노를 중국의 전통 복식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유하다면 '한반도에서 건너가 발전했으니 기모노도 한국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급의 논리이다.
한복과 기모노가 한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어떤 복식이든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상술했지만 한푸조차도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서역에서 발생한 호복의 일종이었던 단령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관복으로 쓰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옷깃이 목을 감싸느냐 감싸지 않느냐로 구분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미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 깃이 섶과 구분되도록 재단하는 형태가 유행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깃의 형태에서 기모노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2000년대 쌍화차 코코아라는 여초카페의 모 유저가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 글(스크랩본 링크)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옷깃이 목을 바싹 감싸고 동정이 있는 것이 조선시대 한복의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모노와 구분하긴 어렵다.
해당 글은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기모노를 낮잡아 보면서 한복을 띄우는 한편, 한국 만화의 한복 왜곡 사례로 동양 판타지인 하백의 신부를 들거나, 허리띠를 뒤에 묶는 방식은 일본이 유일하다거나, 쾌자를 도포라고 하는 등, 한복에 대해 극히 한정적이면서 편향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지만,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고 엽혹진,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퍼지면서 한복의 특징에 대해 알리는 데에 공헌하는 한편, '한복=(후기) 조선시대 복장'이라는 선입견을 고착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심지어 2010년도인 현재에도 여기저기 스크랩되면서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절찬리에 알리는 중이다.
중국에서 한복이 명나라에서 비롯하였다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려양으로 원나라 때에 고려의 풍속이 당시 원나라로 갔던 환관, 공녀들을 통해 유행하기 시작한 영향이었던 것이다.
자세한건 고려양 항목 참고. 한나라 이후 중국의 복식은 옷 폭이 넓지 않고 통이 좁은 데 반해, 한복은 고대부터 꾸준히 속옷을 여러 겹으로 받쳐 입어 풍성하다.
옷 자체도 한푸는 통옷에서 출발해 하의에 치마를 입었고, 한복은 설령 치마를 입더라도 바지를 필수적으로 입는다.
중세 이후, 각국의 복식은 전체적인 실루엣 자체가 다르다.
이후 명나라에서는 고려양이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되었다.
고려양 자체가 한족이 몽골에 주권을 빼앗긴 원나라에서 비롯된 풍습이기에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치욕스러운 역사인지라, 중국에서는 이를 부정하며 고려양 한푸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오군(袄裙), 혹은 유군(襦裙)이라는 복식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한푸 문서에도 고려양 한푸가 오군(袄裙)이라 소개되었다.
그러나 유군은 원래 이렇게 생긴 옷으로, 짧은 윗옷에 긴 치마를 입는 복식을 뜻한다.
한복과는 전혀 다른 복식이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지리가 가까운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에 생긴 유사점도 있다.
특히 관리의 공복이나 고려, 조선의 궁중 예복이 그렇다.
다만, 애초에 동아시아의 관복으로 널리 쓰인 단령조차 서역의 호복이 건너온 것이다.
어쨌든 고려 이후로는 왕이나 관리들이 입는 공식 의관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거의 동일했다고 보면 되며 왕의 관과 옷은 명나라에서 직접 내려주기까지 했다.
명나라가 후금에 망한 후 강제 변발 시행과 치파오를 입게되고, 그 후 청나라에 온 조선 사신들의 옷차림(단령과 사모)을 보고 중국인(중에서도 한족)들이 "중화의 아름다운 풍속을 조선에서 지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복의 기본 복식이 한푸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진성여왕 때 중국 공복을 도입한 이후 고유 복식과 중국 공복이 공존하는 이분적 복식제를 유지하였고 왕이나 관리들도 일상에선 기본 한복을 입었다.
예외적으로 명나라 복식은 고려양의 영향 때문에 이후 폭은 좁아졌어도 한복 같은 투피스 형태는 유지되었기에 비슷하게 보이는 탓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한푸도 처음엔 남방계 복식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였고 한복은 아예 처음부터 북방계 호복에서 시작하였으며 기모노는 한복과 한푸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옷이다.
한복의 시작이 한푸라는 것은 애초에 한국의 독자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중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한복이 가장 어렵다.
일단 치파오는 서양복식에 가까운 형태, 한푸와 기모노는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지만 한복은 안감과 겉감을 '창구멍' 이란 구멍을 통해 뒤집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재단도 복잡하다.
하지만 만드는 데에 정성을 쏟은 만큼, 입는 절차와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복이 가장 간편하다.
특히 여성 복장의 경우 활동성은 한푸, 기모노와 차이가 크다.
또 한가지 큰 차이는 호복의 영향을 받기 전의 한푸와, 기모노의 코소데나 후리소데가 한 벌 통옷인 반면, 알타이계 호복이 기초가 된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나뉘고 여성도 치마 안에 반드시 속바지를 착용한다.
삼국시대 한복은 한푸, 정확히는 호복의 영항을 받은 한푸나 기모노와 상당히 접점이 많다.
이 시절의 한복, 한푸, 기모노의 기본 형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하다.
백제, 가야 쪽 한복은 아스카 시대 기모노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도 있다.
때문에 2020년대 들어서 일종의 문화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한복과 기모노를 중국의 전통 복식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유하다면 '한반도에서 건너가 발전했으니 기모노도 한국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급의 논리이다.
한복과 기모노가 한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어떤 복식이든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상술했지만 한푸조차도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서역에서 발생한 호복의 일종이었던 단령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관복으로 쓰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옷깃이 목을 감싸느냐 감싸지 않느냐로 구분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미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 깃이 섶과 구분되도록 재단하는 형태가 유행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깃의 형태에서 기모노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2000년대 쌍화차 코코아라는 여초카페의 모 유저가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 글(스크랩본 링크)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옷깃이 목을 바싹 감싸고 동정이 있는 것이 조선시대 한복의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모노와 구분하긴 어렵다.
해당 글은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기모노를 낮잡아 보면서 한복을 띄우는 한편, 한국 만화의 한복 왜곡 사례로 동양 판타지인 하백의 신부를 들거나, 허리띠를 뒤에 묶는 방식은 일본이 유일하다거나, 쾌자를 도포라고 하는 등, 한복에 대해 극히 한정적이면서 편향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지만,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고 엽혹진,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퍼지면서 한복의 특징에 대해 알리는 데에 공헌하는 한편, '한복=(후기) 조선시대 복장'이라는 선입견을 고착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심지어 2010년도인 현재에도 여기저기 스크랩되면서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절찬리에 알리는 중이다.
중국에서 한복이 명나라에서 비롯하였다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려양으로 원나라 때에 고려의 풍속이 당시 원나라로 갔던 환관, 공녀들을 통해 유행하기 시작한 영향이었던 것이다.
자세한건 고려양 항목 참고. 한나라 이후 중국의 복식은 옷 폭이 넓지 않고 통이 좁은 데 반해, 한복은 고대부터 꾸준히 속옷을 여러 겹으로 받쳐 입어 풍성하다.
옷 자체도 한푸는 통옷에서 출발해 하의에 치마를 입었고, 한복은 설령 치마를 입더라도 바지를 필수적으로 입는다.
중세 이후, 각국의 복식은 전체적인 실루엣 자체가 다르다.
이후 명나라에서는 고려양이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되었다.
고려양 자체가 한족이 몽골에 주권을 빼앗긴 원나라에서 비롯된 풍습이기에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치욕스러운 역사인지라, 중국에서는 이를 부정하며 고려양 한푸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오군(袄裙), 혹은 유군(襦裙)이라는 복식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한푸 문서에도 고려양 한푸가 오군(袄裙)이라 소개되었다.
그러나 유군은 원래 이렇게 생긴 옷으로, 짧은 윗옷에 긴 치마를 입는 복식을 뜻한다.
한복과는 전혀 다른 복식이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지리가 가까운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에 생긴 유사점도 있다.
특히 관리의 공복이나 고려, 조선의 궁중 예복이 그렇다.
다만, 애초에 동아시아의 관복으로 널리 쓰인 단령조차 서역의 호복이 건너온 것이다.
어쨌든 고려 이후로는 왕이나 관리들이 입는 공식 의관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거의 동일했다고 보면 되며 왕의 관과 옷은 명나라에서 직접 내려주기까지 했다.
명나라가 후금에 망한 후 강제 변발 시행과 치파오를 입게되고, 그 후 청나라에 온 조선 사신들의 옷차림(단령과 사모)을 보고 중국인(중에서도 한족)들이 "중화의 아름다운 풍속을 조선에서 지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복의 기본 복식이 한푸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진성여왕 때 중국 공복을 도입한 이후 고유 복식과 중국 공복이 공존하는 이분적 복식제를 유지하였고 왕이나 관리들도 일상에선 기본 한복을 입었다.
예외적으로 명나라 복식은 고려양의 영향 때문에 이후 폭은 좁아졌어도 한복 같은 투피스 형태는 유지되었기에 비슷하게 보이는 탓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한푸도 처음엔 남방계 복식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였고 한복은 아예 처음부터 북방계 호복에서 시작하였으며 기모노는 한복과 한푸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옷이다.
한복의 시작이 한푸라는 것은 애초에 한국의 독자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중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2.6. 입는 순서
- 양반 남자 기본: 속적삼ㆍ속고의 → 속바지 → 저고리ㆍ바지 → 버선ㆍ 대님 → 행전 → 중치막 → 대창의 → 도포 (→ 쾌자/전복/답호 등) → 세조대(많이들 세조대가 허리띠인 줄 아는데, 절대 아니다. 즉, 허리에 매는 것이 아니다. 옷고름 위에 매는 것이 정석이다.)관복 착용시: 중치막이나 대창의 위에 관복을 착용했다. 중치막은 조복이나 겉옷의 아래에 받쳐입었고, 대창의는 관복 아래에 받쳐 입었다. 소창의는 중치막이나 대창의를 겉옷으로 입을 때에 그 아래에 입었다.출토 유물을 보면 사폭바지를 입기 전에는 남자도 개당고, 합당고, 세가닥바지 등의 형태인 하의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
- 기본: 속적삼ㆍ속고의 → 속바지 → 저고리ㆍ바지 → 버선ㆍ 대님 → 행전 → 중치막 → 대창의 → 도포 (→ 쾌자/전복/답호 등) → 세조대(많이들 세조대가 허리띠인 줄 아는데, 절대 아니다. 즉, 허리에 매는 것이 아니다. 옷고름 위에 매는 것이 정석이다.)
- 관복 착용시: 중치막이나 대창의 위에 관복을 착용했다. 중치막은 조복이나 겉옷의 아래에 받쳐입었고, 대창의는 관복 아래에 받쳐 입었다. 소창의는 중치막이나 대창의를 겉옷으로 입을 때에 그 아래에 입었다.
- 출토 유물을 보면 사폭바지를 입기 전에는 남자도 개당고, 합당고, 세가닥바지 등의 형태인 하의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
- 양반 여자기본: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치마 → 저고리궁중: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대슘치마→ 겉치마 → 저고리 → 당의/단삼/장삼
- 기본: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치마 → 저고리
- 궁중: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대슘치마→ 겉치마 → 저고리 → 당의/단삼/장삼
- 고름 매는 법긴 고름 위로 짧은 고름을 교차시킨 뒤 위쪽으로 통과시킨다위쪽에 놓인 짧은 고름을 (자신 기준)왼쪽으로 둥글게 돌려잡아 매듭고를 만든다.긴 고름을 매듭고 속으로 넣어 왼쪽 고대 끝까지 잡아 빼면서 짧은 고름을 아래로 당겨 고정시킨다.고름을 아래쪽으로 늘어뜨리고 예쁘게 정돈한다.
- 긴 고름 위로 짧은 고름을 교차시킨 뒤 위쪽으로 통과시킨다
- 위쪽에 놓인 짧은 고름을 (자신 기준)왼쪽으로 둥글게 돌려잡아 매듭고를 만든다.
- 긴 고름을 매듭고 속으로 넣어 왼쪽 고대 끝까지 잡아 빼면서 짧은 고름을 아래로 당겨 고정시킨다.
- 고름을 아래쪽으로 늘어뜨리고 예쁘게 정돈한다.
2.7. 관리하는 법
- 원단에 따라 보관법과 세탁법, 다리는 법 등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원단별 특징 및 주의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 한복은 평면재단이기 때문에 절대 옷걸이에 걸면 안된다.
- 깨끼(곱솔) 바느질로 지었을 경우, 절대 세탁기로 빨거나 비틀어 짜면 안된다. 바느질한 것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시접에 맞춰 박음질한 다음 꺾어접어 재봉선에 가깝게 박은 뒤 시접을 모조리 잘라내고 또 접어서 그 위를 박음질한 것이라, 실이 뜯기거나 손상되면 수선이 어렵고 힘들다. 시접이 없는데다 여러 번 접어가며 박아야 하는데 과연 쉽겠는가.
- 보관할 때 빛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다. 원단은 빛에 노출되면 색이 변한다. 원단에 따라 색이 날아가는 기묘한 현상을 볼 수도 있다.
- 본견인 경우, 특히 빛에 노출되거나 습하지 않아야 한다. 빛에 노출되면 바래며, 습하면 형태가 변형되고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방충제나 흡수제거제는 화학 성분이기 때문에 직접 노출되면 역시 안좋다. 한지로 옷을 잘 감싼 뒤 방충제를 옷에 닿지 않게 잘 배치해서 보관한다.
- 종이로 심을 넣은 전통 동정인 경우, 색이 바래거나 찢어지고 물이 들 수 있으므로 오래 보관해야 할 경우 신경써서 교체해야 한다.
- 개는 법한복의 경우 저고리에서 동정이 가장 중요하다. 동정이 꺾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여자 저고리: 저고리를 펼친 뒤 고름을 가지런히 모아 서너 번 접는다. 소매는 옆선에 맞춰 깃 방항으로 접는데, 소매가 어깨폭보다 길면 두 번 접는다.남자 저고리: 저고리를 펼친 뒤 아랫길을 몸통의 3분의 2 지점까지 접어올린 뒤 소매를 옷깃 쪽으로(안쪽으로) 접는다. 치마: 가운데가 겹치지 않게 세로 방향으로 3등분을 한 뒤 다시 3등분 해서 접고 가로로 반 접는다. 가능하면 말기 부분의 주름이 접히지 않게 한다.바지: 밑위선을 중심으로 세로로 반 접고 가로로 반씩 두 번 접는다.
- 한복의 경우 저고리에서 동정이 가장 중요하다. 동정이 꺾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여자 저고리: 저고리를 펼친 뒤 고름을 가지런히 모아 서너 번 접는다. 소매는 옆선에 맞춰 깃 방항으로 접는데, 소매가 어깨폭보다 길면 두 번 접는다.
- 남자 저고리: 저고리를 펼친 뒤 아랫길을 몸통의 3분의 2 지점까지 접어올린 뒤 소매를 옷깃 쪽으로(안쪽으로) 접는다.
- 치마: 가운데가 겹치지 않게 세로 방향으로 3등분을 한 뒤 다시 3등분 해서 접고 가로로 반 접는다. 가능하면 말기 부분의 주름이 접히지 않게 한다.
- 바지: 밑위선을 중심으로 세로로 반 접고 가로로 반씩 두 번 접는다.
- 보관한복은 평면 재단이기 때문에 옷걸이에 걸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 옷함이 없다면 상자에 잘 개서 빛에 노출되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한다. 방충제나 제습제를 넣으면 좋다. 다만, 본견인 경우 먼저 한지로 잘 감싸야 한다.가장 무거운 옷을 아래에 넣고 그 위로 가벼운 옷을 차례차례 쌓는다. 여자 한복의 경우 치마가, 남자 한복의 경우 도포같은 포 종류가 맨 아래에 놓인다. 많은 옷에 눌리면 모양이 변할 수 있으니 주의한다.박으로 장식된 부분은 흰 종이로 보호한다.
- 한복은 평면 재단이기 때문에 옷걸이에 걸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 옷함이 없다면 상자에 잘 개서 빛에 노출되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한다. 방충제나 제습제를 넣으면 좋다. 다만, 본견인 경우 먼저 한지로 잘 감싸야 한다.
- 가장 무거운 옷을 아래에 넣고 그 위로 가벼운 옷을 차례차례 쌓는다. 여자 한복의 경우 치마가, 남자 한복의 경우 도포같은 포 종류가 맨 아래에 놓인다. 많은 옷에 눌리면 모양이 변할 수 있으니 주의한다.
- 박으로 장식된 부분은 흰 종이로 보호한다.
- 다림질반드시 다림천을 덧댄다. 스팀 다리미인 경우 스팀을 끄고 다린다.다림천: 한복과 소재와 색이 같은 것으로 한다. 여의치 않다면 거즈도 괜찮다.저고리: 뒤집어서 안감부터 다린다. 도련이 밀려 겉으로 나오지 않게 정리한 뒤 한 번 더 다린다. 곡선 부분이 늘어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겨드랑이 부분은 물수건을 대고 두세 번 다린다.치마: 안자락 단을 먼저 다리고 치마폭을 아래쪽부터 다린다. 너무 누르면서 다리면 치마의 풍성함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한다. 주름이 있는 경우 주름을 세워 다리지 않는다.바지: 뒤집어서 허리와 부리가 밀려나오지 않게 넣어가며 다린다. 다시 뒤집어 허리와 부리, 솔기를 다린다. 솔기는 누리지 않고 살짝 잡아서 다려야 한다. 그 뒤 대님과 허리띠를 다린다.자수: 세탁 후 마르면서 수축할 수 있어 반 정도 말랐을 때 다림질해서 말린다.박: 다림천을 대고 낮은 온도에서 다린다. 열에 매우 약해서 고온일 경우 녹는다.
- 반드시 다림천을 덧댄다. 스팀 다리미인 경우 스팀을 끄고 다린다.
- 다림천: 한복과 소재와 색이 같은 것으로 한다. 여의치 않다면 거즈도 괜찮다.
- 저고리: 뒤집어서 안감부터 다린다. 도련이 밀려 겉으로 나오지 않게 정리한 뒤 한 번 더 다린다. 곡선 부분이 늘어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겨드랑이 부분은 물수건을 대고 두세 번 다린다.
- 치마: 안자락 단을 먼저 다리고 치마폭을 아래쪽부터 다린다. 너무 누르면서 다리면 치마의 풍성함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한다. 주름이 있는 경우 주름을 세워 다리지 않는다.
- 바지: 뒤집어서 허리와 부리가 밀려나오지 않게 넣어가며 다린다. 다시 뒤집어 허리와 부리, 솔기를 다린다. 솔기는 누리지 않고 살짝 잡아서 다려야 한다. 그 뒤 대님과 허리띠를 다린다.
- 자수: 세탁 후 마르면서 수축할 수 있어 반 정도 말랐을 때 다림질해서 말린다.
- 박: 다림천을 대고 낮은 온도에서 다린다. 열에 매우 약해서 고온일 경우 녹는다.
- 빨래설령 드라이클리닝이라 해도 세탁을 자주 하는 것이 좋지 않다. 그 어떤 소재든 물빠짐은 필수 불가결하니, 한복을 빨 생각이라면 물빠짐 현상을 막는 것은 일찌감치 마음 접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괜히 옛 선조들이 빨래 한 번 할 때마다 옷 염색과 바느질을 다시 한 것이 아니다.두세 번 깨끗하게 입고 동정만 바꾸는 것이 좋다.전체 세탁 시에는 드라이클리닝을 한다.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말린다.박이 찍힌 한복을 드라이클리닝 하면 박이 녹아내린다.
- 설령 드라이클리닝이라 해도 세탁을 자주 하는 것이 좋지 않다. 그 어떤 소재든 물빠짐은 필수 불가결하니, 한복을 빨 생각이라면 물빠짐 현상을 막는 것은 일찌감치 마음 접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괜히 옛 선조들이 빨래 한 번 할 때마다 옷 염색과 바느질을 다시 한 것이 아니다.
- 두세 번 깨끗하게 입고 동정만 바꾸는 것이 좋다.
- 전체 세탁 시에는 드라이클리닝을 한다.
-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말린다.
- 박이 찍힌 한복을 드라이클리닝 하면 박이 녹아내린다.
- 원단에 따라비단: 열에 약하고, 물에 닿으면 얼룩이 생긴다. 면과 마: 물빨래 가능. 다릴 땐 원단 뒷면을 가볍게 다린다.화학섬유: 약칭 화섬. 열에 약해 드라이 다림질을 해야 한다. 물에 닿아도 줄어들지 않는다.
- 비단: 열에 약하고, 물에 닿으면 얼룩이 생긴다.
- 면과 마: 물빨래 가능. 다릴 땐 원단 뒷면을 가볍게 다린다.
- 화학섬유: 약칭 화섬. 열에 약해 드라이 다림질을 해야 한다. 물에 닿아도 줄어들지 않는다.
2.8.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 시접 처리 방식깨끼(곱솔)인지, 물겹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다른 방식도 있으나, 이 두 가지 방식이 가장 알려져 있다. 깨끼는 시접을 남기지 않아 치수 수선을 할 수 없지만 얇은 원단인 경우 시접이 남지 않아 깔끔하고 세 번 박음질하기 때문에 튼튼하다. 하지만 박음질한 실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겹은 시접을 넉넉히 남기기 때문에 치수 수선을 할 수 있으며 빨래나 보관이 그나마 용이하다.
- 깨끼(곱솔)인지, 물겹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다른 방식도 있으나, 이 두 가지 방식이 가장 알려져 있다. 깨끼는 시접을 남기지 않아 치수 수선을 할 수 없지만 얇은 원단인 경우 시접이 남지 않아 깔끔하고 세 번 박음질하기 때문에 튼튼하다. 하지만 박음질한 실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겹은 시접을 넉넉히 남기기 때문에 치수 수선을 할 수 있으며 빨래나 보관이 그나마 용이하다.
- 저고리깃 종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배래 종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동정 심지 재질: 전통적으로는 종이(한지)를 사용하나, 보관할 때에도 여러모로 신경써야 하는데다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에는 접착 심지를 사용하거나 나일론, 폴리에틸렌, 인조견 등을 겹치기도 하며, 혹은 아예 빳빳한 심지를 넣지 않기도 한다. 영구동정도 있다고 한다.속고름: 요새는 똑딱단추로 많이 하지만, 전통 방식대로 속고름으로 하는 편이 태가 더 산다. 편의대로 똑딱단추로 할 수도, 속고름을 달 수도 있다.
- 깃 종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
- 배래 종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
- 동정 심지 재질: 전통적으로는 종이(한지)를 사용하나, 보관할 때에도 여러모로 신경써야 하는데다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에는 접착 심지를 사용하거나 나일론, 폴리에틸렌, 인조견 등을 겹치기도 하며, 혹은 아예 빳빳한 심지를 넣지 않기도 한다. 영구동정도 있다고 한다.
- 속고름: 요새는 똑딱단추로 많이 하지만, 전통 방식대로 속고름으로 하는 편이 태가 더 산다. 편의대로 똑딱단추로 할 수도, 속고름을 달 수도 있다.
- 원단본견일 경우: 옥사인지, 견방사인지, 명주인지 등 종류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똑같이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들었지만 엄연히 다르다.손염색일 경우: 사람 손염색인지, 기계 손염색인지 확인해야 한다.
- 본견일 경우: 옥사인지, 견방사인지, 명주인지 등 종류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똑같이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들었지만 엄연히 다르다.
- 손염색일 경우: 사람 손염색인지, 기계 손염색인지 확인해야 한다.
3. 현대 한국에서의 한복
3.1. 현대에서 한복을 입으려는 시도
현재는 정장 자체가 양복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지만 6.25 전쟁 전후 시기만 해도 시골에 가면 대다수 민중의 옷은 흰 한복이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갓과 도포를 비롯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을 종종 볼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양반가 어르신네들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계셨고,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신다.
또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도 한복을 입고 나오는 일이 흔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이 졸업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1980년대 이전 학번에서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한복을 입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전국노래자랑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방송 속에 한복 차림으로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다.
이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이 방송에서 제발 한복 좀 입고 나와달라고 하며 어쩌다가 한복 차림으로 나온다면 카메라가 더 일부러 그 사람을 방송한다고 할 정도였다.
정부에서 1996년부터 매년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했으며 2021년 3월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한복 입기 좋은 날'로 지정했다.
1 2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412회에서는 3살 혜수가 한복만 입어서 화제가 되었고, 870회에서는 전라북도 남원시에 사는 75세 할아버지가 한복만 입었으며, 973회에서는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22개월 여아 김솔이 16개월 때부터 한복만 입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원더풀 금요일에는 한복 전도사 남녀가 나왔으며 직업은 둘 다 회사원이라고 한다.
한국의 한 젊은 여성이 한복을 입고 유럽여행을 해 화제가 되었다.
개량한복을 광인의 천옷이라고 부르는 밈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들 중 개량한복을 입고다니는 교사들 중 상당수가 국수주의, 민족주의 등의 사상에 경도되어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며 체벌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생긴 밈이다.
교육 환경이 변하며 최근에는 이런 교사들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나 이런 교사들에게 시달리던 세대에게 개량한복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반면 이런 싸구려 개량한복에 대한 나쁜 인식과 별개로 2020년대 들어 킹덤 등 사극의 영향, 중국의 한복 동북공정 논란 등으로 한복이 크게 주목받고 어느정도 유행하다보니, 최근에는 젊은층을 타겟으로한 한복브랜드도 늘고 있다.
리슬, 차이킴 등이 대표적이며, 리슬의 경우 국내 SPA 브랜드인 스파오와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메가스터디의 수학 강사 현우진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한복을 입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투스의 사회탐구 강사 이지영은 설날을 맞아 한복을 입고 3시간 동안 수업을 했다.
대학의 국악과에서는 실기 시험을 한복 차림으로 치르는 경우가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곳도 있다.
대개는 학교에 비치된 한복을 입고 실기 시험을 치르지만, 만약 개인 한복이 있을 경우에는 개인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보통 결혼식을 하게 되면 신랑, 신부의 아버지는 정장을 입고 어머니는 주로 한복을 입는다.
군부대에서 대대급 이상의 부대장이 취임을 하게 되면 부대장의 부인이 한복을 입는 경우가 흔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양반가 어르신네들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계셨고,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신다.
또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도 한복을 입고 나오는 일이 흔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이 졸업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1980년대 이전 학번에서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한복을 입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전국노래자랑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방송 속에 한복 차림으로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다.
이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이 방송에서 제발 한복 좀 입고 나와달라고 하며 어쩌다가 한복 차림으로 나온다면 카메라가 더 일부러 그 사람을 방송한다고 할 정도였다.
정부에서 1996년부터 매년 10월 21일을 '한복의 날'로 지정했으며 2021년 3월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한복 입기 좋은 날'로 지정했다.
1 2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412회에서는 3살 혜수가 한복만 입어서 화제가 되었고, 870회에서는 전라북도 남원시에 사는 75세 할아버지가 한복만 입었으며, 973회에서는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22개월 여아 김솔이 16개월 때부터 한복만 입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원더풀 금요일에는 한복 전도사 남녀가 나왔으며 직업은 둘 다 회사원이라고 한다.
한국의 한 젊은 여성이 한복을 입고 유럽여행을 해 화제가 되었다.
개량한복을 광인의 천옷이라고 부르는 밈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들 중 개량한복을 입고다니는 교사들 중 상당수가 국수주의, 민족주의 등의 사상에 경도되어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며 체벌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생긴 밈이다.
교육 환경이 변하며 최근에는 이런 교사들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나 이런 교사들에게 시달리던 세대에게 개량한복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반면 이런 싸구려 개량한복에 대한 나쁜 인식과 별개로 2020년대 들어 킹덤 등 사극의 영향, 중국의 한복 동북공정 논란 등으로 한복이 크게 주목받고 어느정도 유행하다보니, 최근에는 젊은층을 타겟으로한 한복브랜드도 늘고 있다.
리슬, 차이킴 등이 대표적이며, 리슬의 경우 국내 SPA 브랜드인 스파오와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메가스터디의 수학 강사 현우진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한복을 입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투스의 사회탐구 강사 이지영은 설날을 맞아 한복을 입고 3시간 동안 수업을 했다.
대학의 국악과에서는 실기 시험을 한복 차림으로 치르는 경우가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곳도 있다.
대개는 학교에 비치된 한복을 입고 실기 시험을 치르지만, 만약 개인 한복이 있을 경우에는 개인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보통 결혼식을 하게 되면 신랑, 신부의 아버지는 정장을 입고 어머니는 주로 한복을 입는다.
군부대에서 대대급 이상의 부대장이 취임을 하게 되면 부대장의 부인이 한복을 입는 경우가 흔하다.
3.1.1. 여자
한복1 | 한복2 | 한복97 |
한복95 | 한복4 | 한복5 |
3.1.2. 남자
2016년 이후 오버핏 코트가 유행하면서, 품넓은 로브코트를 연상케 하는 전통 방식 두루마기, 도포가 아이돌들 사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두루마기를 개량한 게 아니라 20세기 스타일 검정 두루마기를 그대로 코트처럼 입고 다니는 것이다.
예식용 남성 한복에서 두루마기나 도포 같은 겉옷은 사실상 외면받고 잘 해야 조끼나 마고자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무복으로 입는 쾌자.다.
두루마기를 개량한 게 아니라 20세기 스타일 검정 두루마기를 그대로 코트처럼 입고 다니는 것이다.
예식용 남성 한복에서 두루마기나 도포 같은 겉옷은 사실상 외면받고 잘 해야 조끼나 마고자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무복으로 입는 쾌자.다.
3.2. 단점
명절이거나 경조사 같은날이나 특별히 민족정신을 고취해야 할 이유가 없는 한 한국인들은 한복을 거의 입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기도 한다.
과거 개량한복이 일부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다.
다른 많은 한국의 문화 요소가 그렇듯 실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라기보다는 그저 대외에 쇼윈도우식으로 한국을 돋보이려할 때만 쓰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박제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기도 한다.
과거 개량한복이 일부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다.
다른 많은 한국의 문화 요소가 그렇듯 실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라기보다는 그저 대외에 쇼윈도우식으로 한국을 돋보이려할 때만 쓰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박제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다.
3.2.1. 대량생산의 어려움
전통 한복은 옷본이 입체패턴인 양장과 다른데다 재단이 복잡하며, 만드는 방식이 손이 많이 가고 만드는 법 자체가 어렵다.
가장 기본인 저고리를 잘 만드는지가 한복을 짓는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취급될 정도다.
특히 깃을 얹을 땐 무조건 손바느질로 해야 한다.
공그르기를 하기 때문에 재봉틀로 작업할 수 없다.
의외일지 모르나 반드시 치수에 맞게 만들어야 제대로 태가 나는 옷이기까지 한지라 여러모로 대량생산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를 통해 양산되는 한복은 백이면 백 양장식이다.
얼마든지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양장 옷본을 바탕으로 한복처럼 보이게 디자인해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복을 입으려면 사람이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
남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치마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다른 링크)그 때문에 생활, 퓨전한복을 만드는 몇몇 업체에서는 대량생산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양장 패턴을 도입하면서 한복의 요소들을 넣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이게 한복이긴 하느냐, 원형을 파괴한다, 퀄리티에 비해 너무 비싸서 차라리 시중에서 판매하는 양장 복식을 입는게 낫겠다는 비판과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만 하면 후술할 흑요석의 지적처럼 한복은 박물관 속 박제 문화로 남을 뿐이고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양장패턴을 배척하는 것은 발전을 저해한다는 반론이 공존하고 있다.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으며, 어느 것이 무조건 옳다고 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전통과 원형의 보존도.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과 가격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개량을 통해 생활 속에 녹여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가장 기본인 저고리를 잘 만드는지가 한복을 짓는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취급될 정도다.
특히 깃을 얹을 땐 무조건 손바느질로 해야 한다.
공그르기를 하기 때문에 재봉틀로 작업할 수 없다.
의외일지 모르나 반드시 치수에 맞게 만들어야 제대로 태가 나는 옷이기까지 한지라 여러모로 대량생산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를 통해 양산되는 한복은 백이면 백 양장식이다.
얼마든지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양장 옷본을 바탕으로 한복처럼 보이게 디자인해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복을 입으려면 사람이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
남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치마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다른 링크)그 때문에 생활, 퓨전한복을 만드는 몇몇 업체에서는 대량생산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양장 패턴을 도입하면서 한복의 요소들을 넣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이게 한복이긴 하느냐, 원형을 파괴한다, 퀄리티에 비해 너무 비싸서 차라리 시중에서 판매하는 양장 복식을 입는게 낫겠다는 비판과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만 하면 후술할 흑요석의 지적처럼 한복은 박물관 속 박제 문화로 남을 뿐이고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양장패턴을 배척하는 것은 발전을 저해한다는 반론이 공존하고 있다.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으며, 어느 것이 무조건 옳다고 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전통과 원형의 보존도.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과 가격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개량을 통해 생활 속에 녹여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3.2.2. 트렌드에 집착하여 한복의 원형이 소멸
예복용 한복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기성복으로 쓰기에도 충분히 손색없는 여러 디자인의 생활한복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의 대다수가 양장 패턴을 사용하거나, 아예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은 정도이다.
생활 한복을 만든다 하여 찾아보면 대부분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고 차이킴의 허리치마와 철릭 원피스를 모방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복 원단으로 양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복 원단만 사용했을 뿐 아예 양장인데도 한복이라 홍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제로 생활 한복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양장과 차별화가 잘 되지 않을 바에는 굳이 개량 한복을 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대적인 활동성 및 계절 감각(반소매, 민소매, 반바지, 스커트 등)을 차용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멋은 한복 특유의 느낌이 멀리서도 한 눈에 살아나는 것이다.
단순히 셔츠에 고름 좀 단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각종 게임에서 명절 기념 코스튬 및 스킨으로 출시하는 개량형 한복을 생각하면 된다.
한복 특유의 멋은 한눈에 살리면서도 반소매, 민소매, 장신구, 구두 등의 현대적 실루엣 및 핏을 동시에 만족한 예가 많다.
이러한 디자인을 창작물에서만 적용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한다면 한복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이런 생활한복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입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원단과 바느질이 미덥지 못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평도 있다.
특히 전통 한복은 얇은 천으로 옷을 지을 때 곱솔 바느질로 최대한 얇고 깔끔하게 마감하는데, 시중 생활한복은 말아박기로 처리해놓고 '깨끼(곱솔)와 가장 유사하다'고 광고한다.
깨끼는 시접을 모두 자른 뒤 세 번 이상 접어 박기에 튼튼한 정도가 아예 다르다.
이건 그나마 신경 쓴 경우고, 다 비치는 천으로 치마를 만들면서 단을 두껍게 접은 뒤 오버록으로 처리한다.
얇은 감으로 지으면서 두껍게 오버록으로 끝내버리니 겉보기에 깔끔하지 않다.
깨끼 작업과 난이도부터가 크게 차이 날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깨끼가 훨씬 깔끔하고 튼튼하다.
원단도 그리 고급 원단이 아닌 경우가 많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전통한복처럼 제대로 작업하는 것도 아니고, 원단이 고급인 것도 아니고, 작업에 손이 많이 가기는커녕 양장 패턴, 양장 바느질, 양장 작업 방식(말아박기, 오버록 등)으로 만드는데, 그렇다고 바느질의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닌 경우가 무척 많다.
이런데도 10만원에서 30만 원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다.
포 종류로 가면 40만 원~50만 원 이상도 등장한다.
사실 30만 원 이상이면 한복집에서 인견 전통한복 한 벌을 맞출 수 있다.
전통한복 위아래 한 벌이 아닌 단품 맞춤가를 보더라도 원단이 화학섬유라면 생활한복과 큰 가격차가 없는 수준이다.
저고리는 대강 봐도 전통식과 양장식을 구분할 수 있는데, 치마의 경우 대충 허리 달고 주름만 잡아놓고 한복이라고 파는 수준이다.
혹은 한복 특유의 기계 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수제작으로 된 것이 많아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많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니 함부로 입고 다니기에도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의 대다수가 양장 패턴을 사용하거나, 아예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은 정도이다.
생활 한복을 만든다 하여 찾아보면 대부분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고 차이킴의 허리치마와 철릭 원피스를 모방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복 원단으로 양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복 원단만 사용했을 뿐 아예 양장인데도 한복이라 홍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제로 생활 한복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양장과 차별화가 잘 되지 않을 바에는 굳이 개량 한복을 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대적인 활동성 및 계절 감각(반소매, 민소매, 반바지, 스커트 등)을 차용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멋은 한복 특유의 느낌이 멀리서도 한 눈에 살아나는 것이다.
단순히 셔츠에 고름 좀 단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각종 게임에서 명절 기념 코스튬 및 스킨으로 출시하는 개량형 한복을 생각하면 된다.
한복 특유의 멋은 한눈에 살리면서도 반소매, 민소매, 장신구, 구두 등의 현대적 실루엣 및 핏을 동시에 만족한 예가 많다.
이러한 디자인을 창작물에서만 적용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한다면 한복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이런 생활한복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입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원단과 바느질이 미덥지 못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평도 있다.
특히 전통 한복은 얇은 천으로 옷을 지을 때 곱솔 바느질로 최대한 얇고 깔끔하게 마감하는데, 시중 생활한복은 말아박기로 처리해놓고 '깨끼(곱솔)와 가장 유사하다'고 광고한다.
깨끼는 시접을 모두 자른 뒤 세 번 이상 접어 박기에 튼튼한 정도가 아예 다르다.
이건 그나마 신경 쓴 경우고, 다 비치는 천으로 치마를 만들면서 단을 두껍게 접은 뒤 오버록으로 처리한다.
얇은 감으로 지으면서 두껍게 오버록으로 끝내버리니 겉보기에 깔끔하지 않다.
깨끼 작업과 난이도부터가 크게 차이 날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깨끼가 훨씬 깔끔하고 튼튼하다.
원단도 그리 고급 원단이 아닌 경우가 많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전통한복처럼 제대로 작업하는 것도 아니고, 원단이 고급인 것도 아니고, 작업에 손이 많이 가기는커녕 양장 패턴, 양장 바느질, 양장 작업 방식(말아박기, 오버록 등)으로 만드는데, 그렇다고 바느질의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닌 경우가 무척 많다.
이런데도 10만원에서 30만 원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다.
포 종류로 가면 40만 원~50만 원 이상도 등장한다.
사실 30만 원 이상이면 한복집에서 인견 전통한복 한 벌을 맞출 수 있다.
전통한복 위아래 한 벌이 아닌 단품 맞춤가를 보더라도 원단이 화학섬유라면 생활한복과 큰 가격차가 없는 수준이다.
저고리는 대강 봐도 전통식과 양장식을 구분할 수 있는데, 치마의 경우 대충 허리 달고 주름만 잡아놓고 한복이라고 파는 수준이다.
혹은 한복 특유의 기계 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수제작으로 된 것이 많아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많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니 함부로 입고 다니기에도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다.
3.2.3. 고루한 양식으로 인한 대중의 외면
'왜 한복은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통계청 블로그 기사에서 나온 한복을 선호하지 읺는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 쉽게 접할 수 있는 한복은 매우 촌스럽다.
예식용도 잘 해봐야 통짜 치마저고리나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조끼, 마고자 정도이고, 생활한복은 나이 지긋하신 국사선생님이나 스님이 입을 법한 전형적인 형태를 지닌 칙칙한 황토색, 감색 개량한복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참조: 네이버 쇼핑에 '남성 생활한복'을 검색해 본 결과)또한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입는 대부분의 한복들의 대다수가 구한말 스타일이다.
2020년대 들어서야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상당히 세련된 제품들이 점차 나오고 있지만, 전통 장인이 만드는 정장용 맞춤 한복은 십중팔구 구한말 스타일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복식을 재현하기가 수월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점도 있으며, 중국의 한푸 입기 운동처럼 조선 한복을 배제하고 '우리도 고구려 한복을 입자!'는 식의 주장까지 갈 필요는 없고 그런 아집도 위험하지만, 한복의 정의를 굳이 축소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은 한복이라는 복식 자체가 조선시대, 그중에서도 구한말 한복에 한정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짙고, 기술자들이나 디자이너들 역시 출토복식 재현을 제외하면 구한말 한복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재질을 전통적인 비단으로 하면 활동성이 제약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옛날에 농민들이 입었던 옷 같은 경우엔 재질이 빳빳하고 튼튼해서 동적인 활동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한복집에 가도 그런 빳빳하고 튼튼한 한복은 찾기 어렵고 양반들이 입었을 법한 고운 재질의 한복뿐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세탁도 불가능하고, 무조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며 다림질까지 정성들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에 드는 노력이 기성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이 경향이 개량한복에도 반영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이런 요소들도 (개량) 한복을 꺼리게 만들고 있으며, 높은 가격 또한 개량 한복에 대한 접근을 막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예식용도 잘 해봐야 통짜 치마저고리나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조끼, 마고자 정도이고, 생활한복은 나이 지긋하신 국사선생님이나 스님이 입을 법한 전형적인 형태를 지닌 칙칙한 황토색, 감색 개량한복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참조: 네이버 쇼핑에 '남성 생활한복'을 검색해 본 결과)또한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입는 대부분의 한복들의 대다수가 구한말 스타일이다.
2020년대 들어서야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상당히 세련된 제품들이 점차 나오고 있지만, 전통 장인이 만드는 정장용 맞춤 한복은 십중팔구 구한말 스타일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복식을 재현하기가 수월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점도 있으며, 중국의 한푸 입기 운동처럼 조선 한복을 배제하고 '우리도 고구려 한복을 입자!'는 식의 주장까지 갈 필요는 없고 그런 아집도 위험하지만, 한복의 정의를 굳이 축소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은 한복이라는 복식 자체가 조선시대, 그중에서도 구한말 한복에 한정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짙고, 기술자들이나 디자이너들 역시 출토복식 재현을 제외하면 구한말 한복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재질을 전통적인 비단으로 하면 활동성이 제약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옛날에 농민들이 입었던 옷 같은 경우엔 재질이 빳빳하고 튼튼해서 동적인 활동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한복집에 가도 그런 빳빳하고 튼튼한 한복은 찾기 어렵고 양반들이 입었을 법한 고운 재질의 한복뿐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세탁도 불가능하고, 무조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며 다림질까지 정성들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에 드는 노력이 기성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이 경향이 개량한복에도 반영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이런 요소들도 (개량) 한복을 꺼리게 만들고 있으며, 높은 가격 또한 개량 한복에 대한 접근을 막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3.2.4. 대중들의 편협한 인식
- 동정이 없이 y자로 여미는(직령 교임) 옷깃 형태는 기모노에만 있다 - 직령 교임 형태는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매우 일반적인 옷깃 형태이다. 중국의 한푸는 물론 한복의 근간이 되는 호복도 대개 직령 교임이다. 한복에 반드시 있어야 할것 같은 동정 역시 여말선초 대에나 등장한다. 애초에 기모노가 호복과 한푸, 한복의 영향을 고루 받아 발전한 옷이다.
- 허리띠로 옷을 여미는 것은 기모노에만 있다 - 역시 한복에는 옷고름만 있다고 여기는 헛소리.
- 허리띠를 뒤에서 리본처럼 여미는 것과 그 허리띠가 길게 늘어지는 것은 기모노에만 있다 - 상당히 자주 논란이 되는 부분인데 당장 고구려 벽화만 봐도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 여자 예복이나 무복을 보면 뒤에서 긴 허리띠를 묶는다. 그리고 많이들 착각하지만 기모노의 전통적인 오비 중에 매듭이 길게 늘어지는 형태는 마이코의 다라리 오비에서나 사용되지, 전통적인 여성용 기모노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그나마 일본 만화 등에서 등장하는 퓨전 기모노에나 등장하는 편.(ex. 신의 괴도 잔느) 그러니까 심지어 기모노에 대한 지식도 없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매듭이 길게 늘어지는 것은 조선 궁중예복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신윤복의 풍속화 검무를 보면 기녀의 옷에 리본 같이 묶은 허리띠(대대)가 보인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조선시대 여염집 규수 스타일의 치마저고리에는 없는 스타일이라 일반 대중에겐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 폭이 넓은 허리띠는 기모노에나 존재한다 - 고대 중국과 한국 역시 귀족층 이상의 복식에서 흔히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넓은 허리띠가 있었다. 남자 한복의 광대(廣帶)와 전대(戰帶), 여자 한복의 대대(大帶)를 보면 폭이 넓다. 전대와 대대는 길이도 길다. 심지어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보고 오비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말이 안되는 소리. 이건 브래지어를 겉에 드러나는 허리띠로 사용한다는 소리다.
- 넓은 허리띠 위에 좁은 허리띠를 한겹 더 두르는 것(오비지메)은 기모노에만 존재한다 - 오비지메는 일본에만 있지만 굵기가 다른 허리띠를 이중으로 두르는 것은 한중 복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넓은 소매(활수형)는 기모노에만 있고 한복은 좁거나 볼록한 소매(붕어배래)다 - 본문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겠지만 활수형 복식은 한푸 계열 복식에서 들어온 형태로 당나라 복식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한복과 기모노 소매 모두 활수형을 띈다. 그리고 전통 한복의 필수요소 쯤으로 여겨지는 붕어배래는 기껏해야 20세기에나 등장한다.
- 상의를 치마 속에 넣어 입는 것은 기모노에만 있다 - 2010년대에 허리치마와 더불어 유행하는 개량한복을 보고 이런 소리가 자주 나오는데, 아니다. 저고리가 치마 속에 들어가는 형태는 당나라 한푸 스타일이며, 그것을 받아들인 신라-고려에도 유행하던 스타일이고 하카마도 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장 후술할 흑요석이 비판한 기사의 댓글에도 '저고리를 치마에 넣어 입는 복식은 하카마 이외에는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주장하고 있고, 이 기사도 이 블로그도[* 상의를 넣어입는 개량한복 허리치마는 한푸/하카마일 뿐, 개량한복이 아니라고 악착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치마형 하카마는 메이지 유신 때 나온 근현대 개량 복식이다. 결국 현대에 만들어진 개량한복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 그러한 오해를 기정 사실인양 보도했다. 애당초 하카마는 치마가 아니라 통이 넓은 바지이고, 치마 하카마도 메이지 유신 이후에나 등장한다. 허리치마를 위에 입는 건 개량한복조차 아니라고 주장하는 문제의 블로그도 개량한복에서조차 지극히 편협한 시선과 왜곡된 보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3.2.5. 사극의 고증 오류
2000년대 이후의 사극들은 부정확하고 이상한 고증으로 앞의 고급 빵떡과 첩지를 합치더니 여기에 가체까지 합쳐버렸다.
이 정체불명의 가체빵떡첩지배씨댕기는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거대해지는 실정이다.
상투같은 경우, 상투관을 쓰고 나올 때에는 안채에서 몰래 꺼내온 듯한 화려한 비녀로 장식하는 것은 기본에 아예 쌍상투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상투는 중국 상투와 달리 단단한 매듭이라 어지간히 머리숱이 적지 않고서는 가운데에 비녀를 가로지르기 어렵다.
더군다나 상투를 틀면 고정시킬 목적으로 동곳이라는 일종의 상투용 비녀를 세로로 꽂는다.
원래 머리숱 많으면 상투를 두 개 틀었다.
젊은 사람은 특히 쌍상투가 흔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와 미적인 이유로 인해 배코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옛 복식과 두식 고증은 이미 다른 고증들과 함께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간 지 오래다.
그리고 상술했지만 가슴가리개에 수를 새기는 것 역시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이지 고증에 맞지 않다.
고려나 삼국시대가 배경인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아예 중국의 한푸나 시대를 초월한 국적 불명의 의상이 버젓이 등장한다.
2000년대 이후의 사극은 고증조차 당당히 씹어먹으며 현대에 생긴 어휘가 사극에 등장하는 판국이다.
옛 복식이나 두식을 공부한다고 사극을 보면 정말 낭패다.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 쉽다.
커뮤니티에서도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가 상당히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게 낫다.
이외에도 여기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참고하자.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간한 왕실문화도감- 조선의 왕실복식이라는 책도 좋은 자료로 참고할만 하다.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황실 복식이긴 하지만 왕족들도 일과가 끝나면 평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조선 말기 양반계층 일반 복식 참고용도로도 사용할만 하다.
이 정체불명의 가체빵떡첩지배씨댕기는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거대해지는 실정이다.
상투같은 경우, 상투관을 쓰고 나올 때에는 안채에서 몰래 꺼내온 듯한 화려한 비녀로 장식하는 것은 기본에 아예 쌍상투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상투는 중국 상투와 달리 단단한 매듭이라 어지간히 머리숱이 적지 않고서는 가운데에 비녀를 가로지르기 어렵다.
더군다나 상투를 틀면 고정시킬 목적으로 동곳이라는 일종의 상투용 비녀를 세로로 꽂는다.
원래 머리숱 많으면 상투를 두 개 틀었다.
젊은 사람은 특히 쌍상투가 흔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와 미적인 이유로 인해 배코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옛 복식과 두식 고증은 이미 다른 고증들과 함께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간 지 오래다.
그리고 상술했지만 가슴가리개에 수를 새기는 것 역시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이지 고증에 맞지 않다.
고려나 삼국시대가 배경인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아예 중국의 한푸나 시대를 초월한 국적 불명의 의상이 버젓이 등장한다.
2000년대 이후의 사극은 고증조차 당당히 씹어먹으며 현대에 생긴 어휘가 사극에 등장하는 판국이다.
옛 복식이나 두식을 공부한다고 사극을 보면 정말 낭패다.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 쉽다.
커뮤니티에서도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가 상당히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게 낫다.
이외에도 여기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참고하자.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간한 왕실문화도감- 조선의 왕실복식이라는 책도 좋은 자료로 참고할만 하다.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황실 복식이긴 하지만 왕족들도 일과가 끝나면 평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조선 말기 양반계층 일반 복식 참고용도로도 사용할만 하다.
3.3. 현대화되면서 생긴 양식
- 향대 - 눈속임용 장식품. 말기끈에 걸쳐서 늘어뜨리는 장식이다. 새색시가 시집갈 때 눈물을 훔쳤다고 해서 눈물고름이라는 설도 떠도는데, 이는 근거가 없으며 반대로 일제가 조선 여성들의 나약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라는 설도 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다. 애초에 눈물고름의 어원 자체에 대한 논문 등의 자료가 없다. 띠허리풀치마에서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매고 늘어뜨린 것을 따라하기 위해 생겼다.
- 말기대 - 말기나 가슴 장식용, 혹은 눈속임용 허리띠. 가슴가리개를 입은 듯한 눈속임을 위해 착용하거나 치마가 가슴 위로 올라오는 경우 말기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착용한다. 자수 등으로 장식된 경우 화려한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치마허리를 둘러맨 말기끈이 없어 전통 한복의 모양새를 따라했다 하기에는 허전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가슴가리개는 원래 속옷인지라 어지간해선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뒤 허리에 두르기 때문에 말기(치마허리)에 의해 허리가 강조되지만 현대에 주로 입는 것은 가슴 위로 올라오는 조끼허리풀치마이기 때문에 전통 한복처럼 허리를 강조하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조끼허리식 풀치마 위에 대어 띠허리식 풀치마를 입은 것 같은 눈속임을 하기도 한다. 이것도 가슴가리개와 혼동하는데, 그건 전통 속옷이고, 이건 현대에 들어 생긴 장식 허리띠다.
- 말기치마 -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하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고안된 것으로 치마말기를 넓혀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치마이다. 말기 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수 놓은 말기치마는 한복디자이너 이영희가 신윤복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했다.출처 이영희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카피해도 제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로 인해 한복이 더 편해졌거나 눈이 더 간다면 그만이며, 디자인을 카피하더라도 거기에 자기 걸 하나 더 얹고 발전시킨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어깨허리식 말기 치마 - 말기에 어깨끈을 단 치마. 옛날에는 어린 아이의 옷에만 어깨끈을 달았다. 이것도 구한말에 조끼허리식 말기 재단법이 보급되고 나서 생긴 것이다.
3.4. 한복의 입는 법
- 나비고름 매는 법외고름(일반 고름)을 맨다.늘어진 고름 중 위에 있는 것을 나비(리본)모양으로 차곡차곡 접는다. 취향에 따라 각 단의 너비를 같게 하거나 점점 작아지게 한다.나비 모양으로 접어둔 고름을 남은 고름으로 감싸맨다.한 번 더, 혹은 여러 번 돌려매어 튼튼하게 고정한다.
- 외고름(일반 고름)을 맨다.
- 늘어진 고름 중 위에 있는 것을 나비(리본)모양으로 차곡차곡 접는다. 취향에 따라 각 단의 너비를 같게 하거나 점점 작아지게 한다.
- 나비 모양으로 접어둔 고름을 남은 고름으로 감싸맨다.
- 한 번 더, 혹은 여러 번 돌려매어 튼튼하게 고정한다.
4. 해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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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치아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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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
|
- 현재는 인터넷 등 통신기술의 발달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렇지 않았던 과거엔 해외, 특히 서양에서 그나마 자기들과 주로 교류가 많았던 중국, 일본 이외에는 동아시아 자체에 별 다른 관심이 없었고, 중국은 한푸에서 치파오로 바뀐지 오래된 데다 일본의 자국 문화 홍보와 선점 효과로 인해 y자 모양 옷깃을 지닌 동아시아 전통의상을 보면 일단 기모노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 2008년 캐나다 모 잡지에서 셀린 디옹이 내한하여 한국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사를 쓴 적 있는데 한복을 기모노로 표기했었다. 다행히 국내 모 블로거가 정정요청을 했지만 미국 할로윈 축제 한국팀 참가 후기 포스팅에서도 목가리개까지 상당히 적절하게 고증한 고구려 갑옷을 사무라이라고 부르거나 한복 전문가 자문 아래 철저히 고증하여 사극에서 활용했던 한복을 게이샤 의상으로 불렀다는 사례가 있는 등 당시엔 해외에서 한복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부족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패션 업계에서 한복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는 1993년 처음으로 파리 컬렉션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한복 컬렉션을 해오며 서양 패션계에서 한복을 알려왔다. 이영희 컬렉션에 영감을 받은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와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방한할 때 이영희의 가게를 찾아 직접 한복을 입기도 했다.기사(영어)
- 2011SS 뉴욕 컬렉션에서 카롤리나 헤레라는 컬렉션 전체를 한복 모티브로 선보였는데, 여성 한복 뿐만이 아니라 갓을 비롯하여 다양한 요소들에서 모티브를 따와 한복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음을 보여준다.
- 미국에서는 김미희(Kim MeHee) 한복 디자이너가 공을 세우고 있는데,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출연하여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명한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산드라 오가 여러 행사와 화보에서 착장하였고, 제시카 알바와 패리스 힐튼의 여동생 니키 힐튼은 내한할 때 김미희 디자이너의 한복 드레스를 입었다.
- 한편으론 이런 해외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통한 새로운 디자인 시도들은 상당수가 오트쿠튀르(맞춤형 고급 의류) 영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복 고유의 패턴과 실루엣을 살리면서 누구나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생활한복이 등장하여 패션계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던 것을 생각해 보면 향후 대한민국 대중들의 인식 변화와 한복의 새로운 재해석을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은 분명하다.
- 2010년대부터 한류가 더욱 성장하며 기존 아시아 시장을 넘어 서구 시장까지 개척해 가고 있는데 주로 K-POP과 드라마 등을 통해 해외에서의 한복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해외 팬이 많기로 손꼽히는 그룹인 방탄소년단과 BLACKPINK가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패션을 선보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여담으로 네덜란드 축구 감독 딕 아드보카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한복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저고리와 마고자를 바꿔 입은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5. 대중문화 속의 한복
-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인영화에서는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고증이 맞는게, 상류층은 치마를 부풀리기 위해서 안에 입는 속치마와 속바지를 몇겹씩 덧입기도 했다.
- MMORPG 《마비노기》에는 남녀 각각 9종류의 한복 세트가 있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한복을 출시했으며 2013년 이후부터는 현대식으로 개량된 디자인의 한복들을 출시하고 있다.05한복의 경우 조선시대 이후의 복식을 토대로 디자인 되어 있다. 여성복은 당의를 기반으로 한 치마저고리이며, 남성복은 마고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06한복은 2005년도 한복에 군데군데 포인트를 주었다. 여성복은 밑동과 곁마기, 소맷부리의 색을 달리하여 포인트를 주었으며, 남성복은 쾌자를 입고 있다. 염색을 잘 하면 예쁘지만 어울리는 복장과 캐릭터가 한정되는지라 인기는 비교적 적다.07한복은 고구려를 위시한 삼국시대의 한복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다. 여성복은 고유의 주름잡힌 치마에 무릎 위까지 오는 긴 저고리를 대(허리띠)로 여민 형태이며, 남성복은 반비(조끼)를 입고 역시 대로 앞섶을 여민 형태를 하고 있으며, 관모도 있다. 이 의상은 북미 서버에도 2011년 추가되었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단순한 이벤트 의상을 너머 평소에 입고다니는 유저도 많았던 복장이다. 또한 일본 유저가 디자인한 양 로브의 디자인도 07한복을 베이스로한 디자인이다.2011년엔 한복이란 이름이 아닌 구군복과 기녀복이 이벤트로 등장했다. 마비노기 특성상 남성 한복의 인기는 여성 한복에 비하면 안습한 수준이었으나 구군복은 마비노기 역사상 여캐 의류에게 비교당해 까이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옷 중 하나다. 특히 남성 자이언트가 염색 잘 된 구군복을 입으면 포풍패기가 느껴지므로 여성유저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기녀복도 한복 이벤트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의류로 손꼽히며 특히 반투명 처리된 무릎 아래 부분에서 나오는 묘한 색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뽑기형 상자에서 나오는 의상이지만 확률도 높은 편이라 구하기도 쉽고 입고다니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2013년에는 고상한 한복과 용포/당의가 등장했다. 고상한 한복은 남성복은 선비 의상, 여성복은 한복 치마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용포와 당의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옷을 모티브로 했다. 2014년에는 남사당패 의상을 모티브로 한 한복을 출시했다. 전용 모션이 있고 귀여운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다.2017년에는 이세계의 한복이라는 명칭으로 현대화된 한복을 출시했다. 현재 출시된 한복 중에서도 디자인이 예쁜 편이다. 키트로 풀리기 전까지는 시세도 비싼 수준이였다.2018년에 출시된 한복은 꽃 낭자/꽃 도령 한복이라는 명칭으로 출시되었다. 화려한 무늬에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현존하는 한복 중에서 시세가 가장 비싸다.2019년에는 한복을 모티브로 한 뉴이어 어반 클래식 웨어를 이벤트로 풀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식 한복을 모티브로 했으며 현존하는 한복 중에서 가장 현대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 05한복의 경우 조선시대 이후의 복식을 토대로 디자인 되어 있다. 여성복은 당의를 기반으로 한 치마저고리이며, 남성복은 마고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 06한복은 2005년도 한복에 군데군데 포인트를 주었다. 여성복은 밑동과 곁마기, 소맷부리의 색을 달리하여 포인트를 주었으며, 남성복은 쾌자를 입고 있다. 염색을 잘 하면 예쁘지만 어울리는 복장과 캐릭터가 한정되는지라 인기는 비교적 적다.
- 07한복은 고구려를 위시한 삼국시대의 한복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다. 여성복은 고유의 주름잡힌 치마에 무릎 위까지 오는 긴 저고리를 대(허리띠)로 여민 형태이며, 남성복은 반비(조끼)를 입고 역시 대로 앞섶을 여민 형태를 하고 있으며, 관모도 있다. 이 의상은 북미 서버에도 2011년 추가되었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단순한 이벤트 의상을 너머 평소에 입고다니는 유저도 많았던 복장이다. 또한 일본 유저가 디자인한 양 로브의 디자인도 07한복을 베이스로한 디자인이다.
- 2011년엔 한복이란 이름이 아닌 구군복과 기녀복이 이벤트로 등장했다. 마비노기 특성상 남성 한복의 인기는 여성 한복에 비하면 안습한 수준이었으나 구군복은 마비노기 역사상 여캐 의류에게 비교당해 까이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옷 중 하나다. 특히 남성 자이언트가 염색 잘 된 구군복을 입으면 포풍패기가 느껴지므로 여성유저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기녀복도 한복 이벤트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의류로 손꼽히며 특히 반투명 처리된 무릎 아래 부분에서 나오는 묘한 색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뽑기형 상자에서 나오는 의상이지만 확률도 높은 편이라 구하기도 쉽고 입고다니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2013년에는 고상한 한복과 용포/당의가 등장했다. 고상한 한복은 남성복은 선비 의상, 여성복은 한복 치마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용포와 당의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옷을 모티브로 했다.
- 2014년에는 남사당패 의상을 모티브로 한 한복을 출시했다. 전용 모션이 있고 귀여운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다.
- 2017년에는 이세계의 한복이라는 명칭으로 현대화된 한복을 출시했다. 현재 출시된 한복 중에서도 디자인이 예쁜 편이다. 키트로 풀리기 전까지는 시세도 비싼 수준이였다.
- 2018년에 출시된 한복은 꽃 낭자/꽃 도령 한복이라는 명칭으로 출시되었다. 화려한 무늬에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현존하는 한복 중에서 시세가 가장 비싸다.
- 2019년에는 한복을 모티브로 한 뉴이어 어반 클래식 웨어를 이벤트로 풀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식 한복을 모티브로 했으며 현존하는 한복 중에서 가장 현대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 던전 앤 파이터에는 몹시 많이 개량된 한복이 나온다.
- 사이퍼즈에서는 미국인이 개량 한복을 입고 나온다. 다만 원작에서의 미국 서부 분위기+동양적 복식 설정을 가져온 것이므로 이상할 것은 없다. 신비의 린과 신령의 하랑의 추석 스페셜 코스튬은 한복이며, 이후 다른 캐릭터들 버전도 출시되었다. 2015년 10월 24일에 공개된 ‘극.한.알.바’ 코스튬을 두 벌 구매하면 이한복 코스튬을 한 벌 줬다. 훨씬 이전에 출시된 코스튬 중에도 ‘강강수월래’라는 한복 코스튬이 있다.
- 세계관에 한국적인 소재를 많이 넣은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도 한복 형태의 옷이 많이 등장한다.
- 네이버 웹툰 '까치 우는 날'은 한복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웹툰 자체는 그냥 묻혔다.
- 네이버 웹툰 별의 유언의 캐릭터들은 전부 한복을 입고 있다. 고증은 조금 미흡한 편이나 캐릭터성에 있어서는 성공한 편에 속한다.
- 네이버 웹툰 둥굴레차!에서 한복을 상당히 정밀한 퀄리티로 표현했다. 참조
-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는 한복을 만드는 것이 주된 소재이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런칭기념 챔피언으로 아리가 추가되어 한복을 입고 나왔다.
- 2014년 EBS의 수학술사 세미가 한복을 입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 비주얼 노벨 작가 지나가던개가 한복 덕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스토리를 담당한 무인세계,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데드엔드 99%, 당신을 기다리는 여우의 등장 여캐들 중엔 꼭 한명 이상은 한복이나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 비주얼 노벨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의 등장인물인 *뮤트가 한복을 입는다.
- 라이트노벨 포목점 은여우의 연애기담은 외세의 간섭 없이 문물을 개방하여 개화를 이룬 가상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여, 한복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화해가는지에 대한 내용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한복 덕후 흑요석의 수려한 일러스트로 재현된 현대적인 한복이 특징으로 2015년 5~6월에 한복 전문 업체인 온지음 옷공방과 협업하여 소설 속 한복을 실제로 제작하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참조
- 설날 시즌이 되면서 한데마스 아이콘에서 임유진이 한복 입은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참조
- 한국 보컬로이드 시유가 나오는 일러스트를 보면 한복을 입은 시유로 나오는 일러스트도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흑요석이 디자인한 일러스트이며, 특히 개량한복을 입은 시유와 화관무 한복을 입은 시유가 유명하다. 참조
-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리 리의 스킨중 달의 축제 리 리 스킨이 색동저고리 형태의 모습으로 나왔다. 무과금 유저도 한번쯤 질러볼까 고민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 라이트노벨 요희전기에서는 동양 느낌이 가득한 세계관과 그에 걸맞는 판타지스럽게 개량된 한복이 등장하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
- 라이트노벨 나와 호랑이님에서 랑이, 세희, 치이 등등 많은 여자 등장인물들이 개량된 한복을 입고 있다.
- 라이트노벨 꼬리를 찾아줘!에서 박월화가 개량된 한복을 입고 있다.
- 고대 한국사 의인화 만화인 천손의 시대에 고대 한복과 관모 등이 상당히 자세한 고증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하의를 배제하고 저고리만 입고 있는 고구려나 속바지를 없애고 주름치마를 미니스커트로 입고 있는 신라, 가야 등 퓨전을 가한 형태도 공존하고 있다.
- 한국 애니메이션 플라워링 하트에서 마법계에서 입는 옷이 한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5화에서는 슈엘이 잠시 입고 나온다.
- 우리나라의 일부 방송의 경우 설연휴, 추석연휴 때는 출연자들이 한복을 입고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 PC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의 경우, 옆나라의 중국과 일본, 영미권 나라들의 게임보다 국내 게임에서 한복 입은 캐릭터가 유독 많다.
5.1. 한복을 입은 캐릭터
- KOF 맥시멈 임팩트 시리즈 - 김갑환, 채림(KOF)
- Sdorica - 공매옥, 공수현 모녀, 동방연방 소속 물 계통 수인 다수.
- SVC카오스 - 드미트리의 미드나이트 블리스를 맞은 김갑환과 최번개
- 가담항설 - 모든 등장인물
- 갓 오브 하이스쿨 - 김웅녀, 나봉침
- 강철의 왈츠 - 유진 크라이슬러, 서리화
- 걸스 레볼루션, 걸스 x 배틀2 - 소교
- 골든체인지 - 여기 나오는 신들의 대부분
- 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 - 하르벤타 제국 사람들, 이벨리아 아르티나, 아가레스
- 길티기어 Xrd -REVELATOR- - 금혜현
- 까치우는날 - 이단아
- 꼬리를 찾아줘! - 박월화
- 나와 호랑이님 - 호랑이, 강세희, 까치, 냥이
- 던전 앤 파이터 - 천계인 대다수(웨스피스,군인 제외) - 남 귀검사,여성 거너, 리아 리히터, 마를렌 키츠카, 네빌로 유르겐, 마리안 유르겐, 에드윈 유르겐, 안제 웨인, 페럴 웨인, 린지 로섬, 휴 피츠래리, 나엔 시거, 여성 메카닉
- 데스티니 차일드 - 자청비
- 둥굴레차! - 현우
- 라스트오리진 - 금란 S7, T-14 미호
- 러브라이브 선샤인 - 쿠로사와 루비 월드 와이드 이미지 걸 투표 대한민국 이미지 걸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사이드 스토리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을 했다.
- 러브 라이브!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 - 미후네 시오리코 전격 G's 매거진 2022년 4월호에서 한국 여행 컨셉과 한복 일러스트가 공개되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 아리의 한복 아리 스킨(영어명 Dynasty Ahri), 샤코의 신바람 탈 샤코 스킨(영어명 Masked Shaco)
- 마법천자문 -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
-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 명정, 명아연, 납작이
- 벽람항로 - 뉴캐슬, 새러토가, 일러스트리어스
- 별의 유언 - 등장인물 대부분
- 블랙서바이벌, 이터널 리턴 - 혜진
- 사이퍼즈 - 신비의 린, 흑영의 테이, 거너 J
- 새와 같이 - 여기 나오는 캐릭터 대부분
- 세미와 매직큐브 - 여기 나오는 캐릭터 대부분
- 소녀전선 - K2, K5
- 소울 칼리버 시리즈 - 성미나: 2편 3P복장, 6편 황성경 소울 크로니클 복장 한정.
- 스매시 레전드 - 라비
- 신 구미호 - 구미호, 옥매향
- 신비아파트 시리즈 - 최강림, 최강림의 어머니, 손각시, 장도한, 유하, 지예, 수진, 정아, 귀도 현
- 신의 탑 - 아낙 자하드, 유한성, 호, 아를렌 그레이스
- 야인시대 - 심영의 어머니, 문예봉 등
- 어비스 호라이즌 - 세종대왕, 광개토대왕
- 엘소드 - 로제(엘소드)
- 오늘은 자체휴강 - 송아람
- 오버워치 - D.Va, 아나, 캐서디, 트레이서
- 은하연인전 - 환성현
- 이런 영웅은 싫어 - 오수
- 인챈트-나람이야기 - 나람
- 전함소녀 - 강원
- 좀비고등학교 - 유빛나, 김원봉
- 차차차 - 유아씨
- 천년구미호 - 반야
- 카운터사이드 - 가은
- 쿠키런 시리즈 - 구미호맛 쿠키, 달토끼맛 쿠키, 의적맛 쿠키, 대파맛 쿠키, 더덕꽃맛 쿠키, 인삼맛 쿠키, 다크카카오 쿠키, 아포가토맛 쿠키, 흑당맛 쿠키, 크런치초코칩 쿠키, 매작과맛 쿠키, 옥춘맛 쿠키, 옥춘사또 쿠키, 약과생쥐
- 탈(웹툰) - 여기 캐릭터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다닌다
- 특수 영능력 수사반 - 강바람
- 플라워링 하트 - 플라워링 왕국의 사람들
- 한복이 너무해!(웹툰) - 소촌
- 훈장 오순남 - 오순남
5.2. 한복 일러스트
- 한복을 자주 사용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김형태, 이명진, 흑요석, 글림자, 우용곡 등이 있다.
- 일본인임에도 한복에 모에하는 작가로는 스메라기 나츠키(블로그)가 있다. 아니, 모에하는 정도가 아니라 작품중 하나인 '이조암행기' 등을 보면 한복의 '선'과 '태'를 너무나도 잘 살려놓았다.
- 천손의 시대로 유명한 싸미(ssami's)는 삼국시대~조선에 아우르는 양식을 다룬다. 주된 그림은 고대한복이지만, 조선한복도 소수 그린다.
- 국내 외 몇몇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한복을 그렸을 때, "이건 한복이 아니라 기모노다"란 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섶을 안 그린다거나, 동정 부분을 속옷을 겹쳐 입은 것으로 그린다거나 하는 식이 대표적인데 한복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인 듯. 물론,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을 보고 기모노라고 착각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장 상당수의 한국인이 접하는 한복은 사극 등에서 등장하는 일부 양식일 뿐. 고대 시절의 한복이 정확히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복에 대해 잘 알고 잘 그리는 작가들도 많다. 요컨데, 그리는 과정에서 샅샅히 조사해서 그리면, 보는 쪽은 평소에 관심도 없다가 "내는 근본없는 한복 안 볼란다!"하고 역정을 내는데... 그림쟁이 입장에선 정말 한숨만 나오는 풍경.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 거 아닐까.
- pixiv에서 韓服으로 검색하면 이것저것 많이 나온다.
- 디비언트아트에도 검색하면 그럭저럭 많이 나온다. 그룹도 생성했다.
- 아야나미 레이와 치요짱의 한복 일러스트가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
- 최근엔 일러들이 다 여캐밖에 없어서 여자 한복은 잘 아는데 남자한복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사극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갓을 쓰고 도포나, 쾌자 등을 입은 선비는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
6. 관련 사건 사고
- 2011년 서울신라호텔에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가 한복을 입고 식당에 들어가려 하자, 한복은 위험한 옷이다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금지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텔 신라 객실에는 유카타가 비치되어있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결국 사장 이부진이 이혜순 디자이너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였다. 자세한건 해당 항목 참고.
-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한밀아 어우동 일러스트 논란: 흑요석은 2013년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한복 여자 캐릭터인 어우동을 출시하였는데, 이때 몇 유저들이 흑요석에게 한복을 성적으로 묘사한다며 비난을 가했다.<흑요석이 그리는 한복 이야기>: 흑요석이 출간한 한복 자료집으로, 이후 자칭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무시한 자료집이라며 가짜뉴스가 생산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흑요석은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을 정도.
- 한밀아 어우동 일러스트 논란: 흑요석은 2013년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한복 여자 캐릭터인 어우동을 출시하였는데, 이때 몇 유저들이 흑요석에게 한복을 성적으로 묘사한다며 비난을 가했다.
- <흑요석이 그리는 한복 이야기>: 흑요석이 출간한 한복 자료집으로, 이후 자칭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무시한 자료집이라며 가짜뉴스가 생산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흑요석은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을 정도.
-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
7.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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