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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한 소식, 러시아에 대한 모든 것 (우크라이나,월드컵,러시안블루,인구)

by 채은아빠 202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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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롬스의 최근 이슈 

러시아

1. 개요

 

러시아 전경

 

2. 상징

 

 

2.1. 국기

 

러시아 국기 러시아 국기(Kremlin.r...
러시아 국기(1991-1993...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1991년부터 1993년까지의 국기
러시아 SFSR 시절 국기

 

2.2. 국장

 

러시아 제국에서 유래한 국장인 쌍두독수리를 사용한다.
러시아 제국은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동생의 딸과 결혼한 이반 3세가 이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자신의 국새에 쌍두독수리를 쓰기 시작하면서 쌍두독수리를 국장으로 사용한다.
이는 동로마 제국의 혈통을 받아들이면서 러시아가 동로마 제국, 즉 로마 제국의 계승자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계승자임을 주장했던 것이다.
방패 한가운데의 은빛 갑옷에 망토를 두른 채 용을 무찌르는 기사는 성인 게오르기우스이다.
이는 자유와 독립 수호를 위한 러시아 시민들의 결심과 용기를, 쌍두독수리 세 왕관은 러시아 연방과 그 주체들의 주권을 대표하며, 독수리의 발톱이 움켜쥐고 있는 금빛 구슬과 지팡이는 통일된 러시아 연방과 러시아 연방의 권력을 상징한다.

 

3. 역사

 

러시아의 역사
История России

 

4. 자연환경

 

 

 

4.1. 야생동물

 

영토가 넓어서 불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고 인도 다음으로 야생 호랑이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형 초식동물 말코손바닥사슴도 널리 서식하며, 비교적 온화한 극동부에는 자라와 가물치도 서식한다.
또한 북극권하고도 가까워서 북극곰이나 바다코끼리도 서식한다.
여담으로 공룡화석이 많이 발굴되는 이웃나라 몽골과 중국, 바다 건너 아메리카 대륙과는 달리 이 나라에선 특이하게 페름기에 살던 단궁류의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수궁류인 이노스트란케비아나 에오티타노수쿠스, 울레모사우루스 등의 수많은 단궁류들이 러시아에서 발굴되었다.
그 외 스쿠토사우루스같은 파충류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에는 많은 수의 페름기 생물들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4.2.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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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 지역에서 시계를 2011년 이전같이 1시간 전으로 돌려서 모스크바와 한국의 시차가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었으며, 한국보다 2시간 빨랐던 블라디보스토크는 1시간 빠르게 되어 시차가 줄었다.
  • 이외에 자바이칼 지방은 한국보다 1시간이 빨랐던 것이 한국보다 1시간이 느리게 조정되었으며, 마가단은 한국보다 3시간 빠른 시간대에서 한국보다 2시간 빠른 시간대로 조정되었다.
  • 사마라주,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캄차카 지방, 추콧카 자치구는 종전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사마라주는 결과적으로 모스크바보다 1시간 빨라지게 되어 사마라 시간이 부활했고, 한국보다 3시간 빠른 시간대인 '마가단 시간'은 캄차카 시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4.3. 기후

 

러시아는 시베리아로 대표되는 추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동장군이란 말이 본디 러시아의 겨울을 이르던 말임은 물론이다.
대부분 지역이 추운 것은 사실이되,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답게 남부는 외려 따뜻한 곳도 있다.
가령,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흑해 연안 소치의 2월 평균기온은 6℃이며 아열대기후로 제주시의 6.4℃와 비슷하다.
게다가 여긴 일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고 연간 강수량도 1,700mm를 넘어 한국 기준으로도 다우지에 속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여 차나무가 자라기 좋아 러시아 국산 차를 생산하는 지방이기도 하다.
내륙의 모스크바 역시 서울특별시보다는 춥지만 강원도 대관령,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 라선시와 비슷한 정도(1~2월 평균기온 -7.5℃)의 기온으로, 극한의 환경까지는 아니다.
북아시아(시베리아)도 인구 대개가 몰려 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선 지역은 그리 춥지는 않다.
모허 국경지역은 -30℃ 내외로 엄청나게 춥다.
반대로 한반도에 한파가 닥칠 때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잠시 기온이 낮을 때가 있어 러시아 겨울날이 별것 없다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다 해도 습도 역시 높아 빠르게 체온이 떨어져 얼어죽기 딱 좋고, 목숨이 지장이 갈 정도가 아니더라도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만 러시아가 전체적으로 겨울이 조금 길기는 하지만, 1년 내내 추운 것도 아니고 여름은 충분히 덥다.
30℃를 넘는 지역도 많고, 2010년 7월 칼미키아의 우타에서는 45.4℃라는 러시아 역사상 최고기온이 기록되었다.
오이먀콘에서 기록된 최저기온이 -71.2℃이니 무려 116.6℃의 차이가 난다!소련 이전 러시아 제국 시절, 그리고 현재 러시아는 세계적인 곡물 수출국이다.
즉, 황무지만 있는 게 아니라 농사 짓기 좋은 땅도 많다.
물론 북극권에 가까운 시베리아 북쪽으로 올라가거나 동쪽으로 갈수록 극한의 추운 기후를 자랑한다.
야쿠츠크의 1월 평균 기온은 -40℃, 베르호얀스크는 -45.9℃, 오이먀콘은 -51.3℃다.
각 도시의 위엄에 대해서는 문서를 참조. 한국의 추운 겨울의 원인이 바로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시베리아 기단 때문이다.
러시아는 9월 중하순부터 5월까지 겨울일 정도로 추운 나라인데도 워터파크가 있다.
물론 100% 실내이다.
지구 온난화의 수혜를 보는 나라이다.
일단 시베리아 남쪽부터 농사 가능한 온대지역이 북상 중인 추세인데 캐나다나 알래스카보다 영향을 받는 곳이 훨씬 넓어 이득을 제일 많이 보고 있다.
더구나 점점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의 통행세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동아시아의 한중일이 싱가포르행 남쪽 항로보다 훨씬 가까운 지름길이 될 북극항로의 주 수혜자가 될 예정이다.

 

5. 인문환경

 

동방과 서방이라는 두 역사의 물결은 러시아에서 충돌했다.
러시아는 바로 이 둘이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서있었다.
러시아 민족은 단순한 유럽인도, 그렇다고 아시아인도 아니다.
러시아 정신에는 동방과 서방 두 가지 요소가 영원히 서로 경쟁할 것이다.
- 러시아의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다.

 

5.1. 인구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1억 4,624만 명(크림반도 제외시 1억 4382만)으로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하지만 그 넓은 국토에 비하면 적다.
미국 인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며 방글라데시보다 인구가 적다.
국가별 인구 순위와 국가별 인구 밀도 순위를 참조한다.
멕시코와 인구수가 비슷한데 러시아가 약 1600만 명 더 많다.
면적과 인구를 대비해 보면 인구 밀도는 km²당 8.36명으로 한국의 1/60 정도로 굉장히 낮다.
물론 국가 전체로 일반화하면 곤란하다.
사하 공화국은 인구밀도가 km²당 0.3명이고 싱가포르보다 4,300배나 넓은데 인구는 싱가포르의 1/5도 못 된다.
유럽 부분의 인구밀도는 km²당 27명으로 비교적 높다.
어쨌든 한국 같은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인구밀도가 낮긴 낮아서 서울, 델리와 마닐라의 km²당 인구밀도가 각각 17,000명, 25,500명, 42,000명인 것과는 달리 모스크바 시의 인구밀도도 km²당 4,000명에 불과하며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스크바주의 인구밀도도 km²당 150명 정도다.
참고로 충청북도의 인구밀도가 km²당 210명이다.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이유는 대부분의 국토가 미국, 유럽에 비하면 무척 척박하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된 인구감소도 한몫한다.
1987년 2.2명이던 출산율이 1988년부터 조금씩 떨어져 1991년 소련 붕괴 후 의료보건체계와 사회보장제도가 붕괴하고 고물가에 따른 예금가치의 추락이 겹쳐 출생률 감소가 가속화해 평균수명도 같이 줄어들어 1993년엔 출산율 1.5명선이 붕괴하고 사망자수도 연 200만 명선을 넘어 매년 -0.4%~-0.6% 정도의 인구감소 추세가 2008년까지 이어졌다.
2009년부턴 출산율의 증가와 평균 수명의 증가, 구 소련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자 유입으로 인구가 증가한다.
이후 2013년부터 이민을 제외하고도 인구가 증가세였으나 2016년부터 다시 줄어든다.
크림 반도의 인구는 제외한다.
1999년 1.17명으로 저점을 찍은 출산율은 2000년부터 오르고 마침 고유가로 재정이 풍족해 출산장려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2008년까지 인구 감소는 사망률 때문이고 2000년부터는 사망률은 감소하고 출산율은 증가한다.
2009년에 다시 인구가 증가하고 출산율도 2014년 1.75명대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율이 막장을 찍은 나라와 비교하면 석유빨이 크게 작용했어도 해도 출산율이 밑바닥에서 이 정도까지 올라온 건 분명히 성과가 있다.
그러나 출산율이 큰 폭으로 올라도 여전히 수치가 낮아서 대체출산율(2.1명)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거기에 2차 세계대전부터 1950년대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수가 적은 1990년대-2000년대 중반 출생자가 노동인구로 편입해 출산율의 추가적인 증가가 없으면 출생아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져 인구가 일정 기간 동안 감소하고 앞으로 2030년까지 적은 노동 인구로 늘어나는 아동층과 노년층을 부양해야 해 러시아의 인구학적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실제로 2016년부터 다시 인구가 감소하고 2016년에 2천명, 2017년에 13만, 2018년에 22만, 2019년에 32만, 2020년에 52만 명 등등 감소 폭도 시간이 갈수록 크다.
크림 사태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악화해 급속도로 출산율이 감소해 2019년 1.48명까지 떨어진다.
2019년 러시아의 출생아는 1,481,074명으로 2015년보다 24.7% 가량 적다.
출생률로 보면 2015년 러시아의 1,000명당 출생율은 13.3명에서 2019년엔 10.1명이고 이것은 한국(8.6명)보다 높지만 중국(12.1명), 미국(12.4명)보다 낮다.
아무튼 201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이 브레이크 없이 감소해 장기적으로 인구가 감소한다.
2017년 러시아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젊은 가구에게 64억 파운드를 준다.
2020년 1천만 외국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준다.
러시아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저출산에도 평균 수명이 낮아 고령화 문제는 유럽이나 일본보다 덜하나 2010년대 이후로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평균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2022년 고령 인구가 16%로 이미 고령 사회다.
중위 연령 역시 2022년 40.8세로 40대다.

 

5.1.1. 평균 수명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WHO 통계에 따르면 72.99세로 이는 북한(72.89세)이나 방글라데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 수준 차이를 고려하면 이해가 가기 힘든데, 이는 러시아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터무니없이 짧아 평균값이 확 내려가서 그렇다.
러시아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78.15세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정상 범위인데 반해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67.62세에 불과해 남녀 평균 수명이 10년이나 차이 난다.
즉, 평균적으로 러시아 여성들은 사별 후 무려 10년 동안 혼자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4~5년보다 훨씬 높다.
러시아에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이유로는 보드카를 비롯한 과음 문화가 많이 꼽힌다.
도수 높은 보드카를 늘 달고 사니. 유튜브나 영상에서 자주 보이는 러시아인의 기행 때문에 러시아 남자들이 빨리 죽는다는 해외의 인식이 있다.
오죽하면 스푸트니크 V 백신이 2개월 금주 권장때문에 러시아 내에서 접종률이 떨어진다고 할 정도. 개발진은 3일만 금주해도 된다고 해명까지 했고, 전문가들도 포도주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서 남는 물량을 해외에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여성들의 평균 수명이 70대 후반 정도는 되기에 노인 인구는 꾸준히 늘어 어느새 전체 인구의 14.3%나 되어 벌써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0~14세 유년층 인구는 전체의 17.1%로 아직은 노인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추월하지는 않았지만 그 격차가 불과 3% 이내로 많이 좁혀진 상황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노년층 인구가 유년층 인구를 추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합계 출산율은 1,000명 당 12명 정도의 수준이고, 합계 출산율은 1.7명 대 정도이지만 결혼을 빨리 하는 편이라 그런지 여성들의 초산 연령은 2009년 기준 24.6세라고 한다.
즉, 러시아 여성들은 결혼을 빨리 하지만 애는 잘 안 낳는 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영아의 장애 발병률이 낮다.
영아 사망률은 1,000명 당 6.8명이다.

 

5.1.2. 성비

 

러시아는 성비가 90.8 : 100이다.
2022년 러시아 인구 1억 4,620만 중 남자가 6,960만이고 여자가 7,660만으로 여자가 700만 명 더 많다.
이는 중년 이상의 성비 때문이다.
0~14세와 15~24세는 각각 106:100, 105:100으로 남초다.
그런데 25~54세 성비는 96 : 100이고 55~64세 성비는 75 : 100이며 65세 이상 성비는 45 : 100이다.
남성의 수명이 여성의 수명보다 많이 짧고 노년층은 독소전쟁으로 90대 이상 남성이 적다.

 

5.2. 종교

 

(러시아의 4대 대표 종교 : 유대교, 정교회, 이슬람, 불교)소련이 1991년 붕괴되고 세워진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다양한 종교 활동이 보장된다.
다만, 1,000여 년의 세월 동안 러시아 민족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의 신자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를 표방하지만, 러시아 정부와 정교회가 매우 사이가 가까우며, 사실상 정교회가 러시아 제1종교이자 국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종교를 믿는 러시아인은 급증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느 정도 혹은 매우 종교적이라고 응답한 러시아 성인들은 1991년 11%에서 2018년에 70%로 증가했다.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응답한 러시아인들은 같은 기간 동안 38%에서 75%로 상승했다.
2016년의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의 종교는 정교회 71%, 무종교 15%, 이슬람 10%, 응답거부 5.5%로 집계되었다.
정교회 신자들은 주로 슬라브계 러시아인(русские)들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무슬림들은 북캅카스, 타타르스탄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소련 시절 국가 무신론 정책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 비율이 높은 편이다.

 

5.2.1. 기독교(정교회)

 


기독교의 총대주교좌
  • 각 총대주교좌 위치 국가에서의 교세 순으로 배열
  • * 1965년 폐지
  • ** 안티오키아의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총대주교가 겸임
  • * 2018년 정교회 분열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좌와 단절

 

5.2.2. 이슬람교

 

이슬람은 러시아에서 2번째로 세력이 강한 종교로, 2012년 기준 러시아 내 무슬림은 약 940만 명으로 러시아 인구의 6.5%가 무슬림이다.
러시아 이슬람계에 따르면 인구의 20% 이상이 무슬림이라고 주장한다.
현재도 계속해서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
주류 민족인 슬라브계 러시아인보다는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인 타타르족(3.9%)이 대표적으로 이슬람을 믿으며, 그 외에 바시키르인과 북캅카스에 거주하는 민족 대다수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비무슬림 러시아인들은 이슬람에 반감을 가질 때도 많지만, 종종 우호적인 감정을 보여줄 때도 있다.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 이슬람과 관련된 내용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슬람 정명론과 관련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으며,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 같은 소설에도 체르케스인들과 아바르인 무슬림들이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구소련의 유명한 여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같은 경우는 자신의 타타르인 할머니의 이슬람식 성에서 자신의 필명 아흐마토바를 따왔다.
오늘날 러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된 것은 7세기 가량으로, 당시 다게스탄에 처음 선교사를 파견, 이후 주변 민족을 중심으로 전파했다.
10세기 경 볼가 강 유역에 거주하던 불가르 칸국에서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으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멸망한 불가르 칸국을 계승한 카잔 칸국의 볼가 타타르인들도 무슬림이었다.
유대교를 믿었던 하자르 칸국의 수도 아틸 근처에는 튀르크인의 (이슬람) 성지라는 뜻의 하지 타르한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인 아스트라한 칸국이 건설되었다.
16세기 중엽 이반 4세 제위 시기의 루스 차르국이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지배층의 내분을 이용해 병합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타타르인들이 러시아 제국 내로 흡수되었다.
러시아 제국 시절 중앙정부 차원에서 농노제와 러시아 정교를 동시에 강요하면서 무슬림들은 종종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카잔과 아스트라한의 볼가 타타르인들의 경우는 비교적 덜했으나, 캅카스 지역과 크림 반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탄압이 심해, 억압적인 소수민족 정책과 더불어 1817년부터 1864년까지 지속된 캅카스 전쟁같은 무력저항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오스만 제국과 연계된 경우가 많았는데, 체르케스인들의 경우 러시아인들과 전쟁에서 인구 상당수가 사망하고 대부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갔으며,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던 크림 칸국의 경우 수백년 동안 기독교인 노예 인신매매 행각으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다른 타타르인들에 비해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
카자크를 포함한 러시아 군인들이 이들에게 제대로 복수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크림 타타르인들이 이미 어른의 사정으로 사실상 종교만 이슬람인 우크라이나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이후 집권한 소련 정부는 러시아 제국 내에서 탄압받던 무슬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특히 1920년대 중앙아시아에서 실시한 현지화(Коренизация) 정책으로 이들 이슬람 교리가 보장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 스탈린 시기를 거치면서 이슬람은 다른 종교와 함께 다시 위축되었고, 이후 소련 말기까지 정교회와 같이 국가 관리 아래 놓여있게 되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 종교의 자유가 부활하면서 캅카스를 중심으로 무슬림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일단 중동과 거리가 있는 지역인 데다가 비이슬람 국가 시절에 받았던 지배의 영향 때문인지 러시아 내의 무슬림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오늘날 러시아가 러시아 정교회를 중심으로 극우 민족주의화한다는 의견도 일각에 존재하나, 위구르인을 공공연하게 탄압하는 중국 정부처럼 무슬림 소수민족들을 수용소에 감금하고 성고문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다만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을 제외한 현대사에서도 체첸 전쟁 때는 캅카스 자치공화국의 모스크를 소수만 남기고 폐쇄하고 체첸인을 탄압한 전적이 있다.

 

5.2.3. 유대교

 

러시아 제국은 유대인들이 밀집해 살던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일대를 병합한 역사 때문에, 러시아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아슈케나짐 계열 유대인이 많기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지역이었다.
당장 블라디미르 레닌만 해도 유대인 혼혈이고, 레프 트로츠키나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등등 소련 공산당 초기 멤버들 상다수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 자치주는 그 흔적이고, 러시아를 떠난 유대인들 중에서 아직 러시아어가 편한 이스라엘인이 많아서 지금도 이스라엘 정부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이스라엘 관련 사이트에서 러시아어를 지원하는 사이트가 많을 정도다.
그러나 독소전쟁 중 홀로코스트로 큰 피해를 입고 소련 정부도 나치만큼은 아니지만 유대인에 호의적이진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빠져나갔다.
러시아계 유대인들 중에는 거의 다 아슈케나짐 유대인이지만 페르시아계 유대인의 일파인 부하라 유대인과 조지아 유대인 및 현재 극소수가 남아있는 카라임들도 있다.
부하라 유대인과 조지아 유대인은 혹여나 세파르딤, 미즈라힘 유대인으로 인식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적잖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묻혀 가는 편을 선호한다.
여전히 유대교는 명목상 러시아 4대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나 대부분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상태이다.
무신론을 강요한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계 이스라엘인들은 코셔 율법을 별로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이스라엘에 이민와서도 돼지고기를 별 거부감 없이 먹는 편이다.
그 때문에 보수적인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소련 수립 이전 러시아 제국 시절에 서구권으로 망명한 러시아계 유대인의 후손들은 소련 시대 이후 러시아계 유대인들의 돼지고기 섭취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5.2.4. 불교

 

대부분은 티베트 불교로, 시베리아 등 러시아 동부에 사는 몽골이나 튀르크 계열 아시아계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다.
불자는 대부분 투바 공화국, 자바이칼 지방과 부랴티야 공화국,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에 거주한다.
불교 공동체와 사원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있지만,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불교의 전통과 역사, 정신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시베리아에 가봐야만 한다.
이 곳 역시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시대에 상당한 탄압을 받았고,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의 사원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러시아 서부, 즉 유럽 지역에서도 칼미키야 공화국은 티베트 불교가 대세이다.
애초에 여긴 유럽의 유일한 불교 국가다.

 

5.2.5. 기타 종교

 

정교회와 비슷한 기독교이지만, 서방교회로 분류되는 가톨릭과 개신교, 인도 종교인 힌두교, 중국 종교인 도교를 믿는 경우도 있는데 힌두교를 믿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그 외 러시아 소수 민족들을 중심으로 원시 신앙을 믿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신이교주의자들이 슬라브 신화나 기타 다른 토속신앙을 복원하려고 하지만 규모도 작고 기성종교 집단에게 탄압을 받거나, 이러한 민족 신앙이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네오나치 사상의 기반이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5.3. 기행

 

 

 

6. 행정구역

 


러시아의 행정구역

 

6.1. 국력

 

병력수는 징병제로 90만 명의 상비군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5위) 액티브 국방비 지출은 2020년 기준 8위다.
핵무기 보유량 1위 국가고 ICBM SLBM 기술 모두 가지고 있으며 ,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인우주선, 우주도킹, 과 우주정거장 개발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나라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상호확증파괴를 유지할 수 있는 대규모 핵무기와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러시아가 미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핵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의 유일한 존재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고 말했다.
군사무기 수출은 2위이다.
특히 AK-47는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모잠비크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반서방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GDP는 11위 정도인데 출처, 다음 GDP IMF 순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로 인한 서방의 경제제재와 셰일가스와 사우디의 증산에 따른 유가 파동 여파가 크다.
PPP는 6위다.
IMF 투표권 9위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금 보유고 5위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AIIB에서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발언권이 높다.
외환보유고 4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데,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미국 다음이다.
전체적인 국력 자체는 중국이 우위에 있지만 중국은 자국 이익을 제외하면 러시아보단 대외 개입을 자제하는 편이다.

 

6.2. 항공산업

 

Su-47, 2001년 MAKS 에어쇼러시아는 소련 때부터 군 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항공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고, 소련 자체가 위낙에 넓었던데다가 비행기값도 왕창 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민수용으로도 수요가 많았다.
비록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많이 밀렸지만, 과거 소련 시절에는 공산권 및 제3세계에 투폴레프, 안토노프, 일류신을 비롯한 여객기 및 수송기를 적극적으로 수출하고 미그, 수호이, 야코블레프 등 고등전투기를 설계할 만큼 뛰어난 항공산업을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미국, 유럽계 항공회사들이 민항기 시장을 완전히 독점하면서 민항기로는 시장성을 많이 잃은 상황이고, 옛 공산권뿐 아니라 러시아 본국조차도 서방 비행기를 점차 많이 사고 있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으로 엔진이나 항공전자 부문의 기술 투자가 전무했기 때문으로, 그 뒤에 나온 러시아의 항공기는 핵심 부품을 서방에 의존하고도 성능이 떨어지는 데다 안전성마저 문제시되고 있다.
현재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것은 서방 경쟁기종이 아예 없는 초대형 화물기이고 그나마도 우크라이나 국적의 안토노프 제품이다 보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는 생산과 판매가 막힌 상태이다.
그나마 항공무기 쪽에서는 Su-47같은 전진익 실험기나 Su-57같은 스텔스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세계 각국에 수출할 만큼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시장 규모가 큰 민수 분야에서는 캐나다나 브라질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대부분 국가가 국가원수 전용기로 서방제 비행기를 쓰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산 비행기인 Il-96을 사용한다.
대통령이 모범을 보인다는 제스처긴 하지만 못 믿을 정도로 부실한 기술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여객기와 수많은 전폭기를 생산해낸 품질로 시장성만 되면 얼마든지 베스트셀러를 뽑아낼 기반은 된다는 뜻이다.
헬리콥터의 경우 군사헬기는 안정성과 유틸성 등 소프트 스팩과 유지비가서방제에 비해 떨어지지만, 싼 도입가격과 무식할 정도로 강한 내구도와 내구연한, 극한의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우수한 적응성으로 인해 현재에도 많은 국가에서 산불 진압 등 민간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산림청 소방헬기만 봐도 불곰사업때 들어온 기종으로 도배가 될 정도. 또한 냉전 당시에는 헬리콥터를 통한 대규모 전술도 구사했을 만큼 여러 기종을 체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 3세계나 민간헬기 분야에선 인기가 높다.
다.

 

6.3. 우주산업

 

미르(Мир) 우주정거장, 1998년소련 시기 미국과 함께 선도적인 우주기술을 보유한 국가였다.
구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우주유영, 우주정거장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우주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었다.
특히 소련 시절 핵전력 보강을 위한 ICBM과 체제 우월 경쟁을 위해 국가적으로 우주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구 소련 해체 이후에는 NASA도 부러워하는 소유즈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우주여행 산업을 통해 동서양의 갑부들에게 우주 경험을 시켜주면서 새로운 우주산업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 또한 받았다.
갑부들만 터는게 아니라 셔틀 퇴역한 후에는 자기 힘으로 우주인 못 보내는 NASA한테도 소유즈 한 좌석당 수천만불씩 삥뜯고 있다.
어지간한 우주비행사들은 NASA 우주선보다 소유즈가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인정했을 정도. 승차감은 아무래도 셔틀이 좋을지 몰라도 조종 난이도가 불합리할 정도로 높고 사고 위험이 큰 셔틀보다는 어지간한 사고가 발생해도 조치를 잘하면 귀환할 수 있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소유즈 쪽이 신뢰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어지간한' 우주비행사들이라 함은 우주비행사를 제일 많이 뽑는 NASA에서 선발된 미국인들을 말한다.
7인승 셔틀을 운용하던 NASA의 역사적 특징 때문에 NASA는 셔틀 시대에 우주비행사 한번씩 모집할 때마다 적게는 십수명에서 스무명대, 많게는 서른명 넘게 선발했지만 그들이 러시아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셔틀보다 소유즈를 더 선호했다.
또한 아직까지도 최고급 굴절망원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광학계(렌즈)는 주로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이제는 과거지사로 지금은 우주항공에 있어서도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소련은 미국에게 밀리지 않았다.
우주왕복선 같은 비싼 우주발사체를 운용하고 SDI 같은 미친 짓거리를 하다가 STS-51-L 챌린저 참사 같은 희대의 쇼크를 맛보면서도 미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소련에 비하면 화수분이었지만 소련도 우주정거장 미르와 우주왕복선 부란을 개발하며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주요 설계국들이 떨어져나가고 경제난으로 재정수입이 크게 줄었으며 따라서 지원도 크게 줄어 월급이 푼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주요 인재들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러시아의 우주산업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즉 80년대에는 밀리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경제 위기가 치명타가 되어 우주 개발이 정체되어 버린 것이다.
2000년대 이후로 경제를 회복하면서 우주개발 예산을 급격히 늘렸지만, 그동안 투자한 돈의 단위 자체가 이미 너무 벌어졌다.
2008년 미국이 439억 달러를 우주에 퍼부을 때 러시아는 고작 35억 달러를 투자했을 뿐이다.
2011년에는 65억 달러로 늘어났고 미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420억 달러선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건 마찬가지. 그리고 이런 예산 차이가 구 소련 붕괴 이후 20년이나 계속되었다.
현재 러시아가 우주개발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로켓과 우주선을 비롯한 발사체 분야고, 인공위성이나 위성 응용 서비스, 이를 보조하는 지상 시설 면에서는 미국에게 상대가 안 된다.
당장 위성 시장의 7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예산 규모로 따지면 사실 러시아의 경쟁상대는 미국보다는 유럽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나마도 로스코스모스는 발사체 분야에서는 ESA보다 우월하지만 위성 분야에서는 밀리는 판이고.사실 10년 가까이 경제상황이 막장으로 치닫았던 나라에서 소련시절의 항공우주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기초과학 강국이란 이미지 또한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10년은 실력있는 학자들이 다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게다가 연착륙한 것도 아니고 단숨에 바닥으로 쳐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황이었으니...NASA 우주인들이 소유즈를 타고 ISS에 가는 것도 러시아의 기술이 미국보다 나아서가 아니다.
소유즈가 값싸고 신뢰성 높으며 안전한 우주선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반은 1950-60년대 기술이며, 첨단 기술의 우주선은 아니다.
결국 소련 이후 불황을 맞은 러시아는 대규모로 돈을 쓸 수가 없어서 검증된 소유즈를 계속 사용하면서 원가절감을 한 반면, 미국은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 냉전이 종식되자 러시아와의 경쟁이라는 예산 확보 명분이 사라지고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 경제도 어려워지자 줄줄이 프로젝트가 취소당했다.
결과적으로 소유즈식의 1회용 캡슐 우주선인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으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덧붙여 기술 혁신의 가능성 면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뒤쳐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마저도 불안한 게 러시아의 고급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데 항공 우주 분야가 그 중에서도 특히 타격이 크다고 한다.
새로 유입되는 젊은 인력이 태부족한 실정이니, 침체는 불가피한듯. 러시아의 우주산업 전문가이자 스타트업의 CEO인 파벨 루진은 개혁이 없다면 러시아의 우주 능력 상실은 명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주항공 산업을 상업화하는데 명백히 실패했다.
현재 러시아의 상업 위성 시스템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처참한 수준이다.
또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상업 발사체 시장에서 러시아의 점유율은 절반을 넘었으나 2018년 기준 미국의 민간 기업들에 밀려 점유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지구 저궤도 운송 사업을 국가 기관이 주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임무는 현재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ULA 같은 민간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NASA의 주력 분야는 SLS 같은 외우주 탐사 로켓과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 등이다.
그리고 스페이스X는 팰컨 헤비와 스타십을 통해 외우주 미션까지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로스코스모스가 일국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임에도 타국의 민간기업과 모든 영역에서 경쟁해야 할 형편이 되어버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러시아의 우주산업과 기술이 형편없는 수준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교상대가 미국이라 그렇지 러시아도 세계 최상위권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주강국이라 불리는 중국, 유럽(ESA) 보다 우주기술에서 우위인 부분이 많으며 우주산업 규모역시 유럽(ESA)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당연히 인도, 일본 등 2류 우주개발국들과는 압도적 우위에 있으며 대한민국,UAE와 같은 신생 우주개발국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결론적으로 러시아가 소련시절에 비해서 국가적 역량이 부족해 냉전때와 같이 미국과 경쟁할 정도는 아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세계 2위권의 우주개발국가라는 것이다.
로고진 러시아 연방 우주청장은 2018년 11월 6일에 달표면에 장기 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로보트 아바타의 도움을 받아 달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심각한 정체상황과 더불어 러시아 연방 우주국의 심각한 비리, 횡령도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달이나 화성 탐사용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초대형 로켓발사체 개발을 2028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

 

7. 사회

 

러시아 문화 자체는 불청객들에게 그렇게 차가운 문화는 아니다.
물론 전쟁 시기에는 서로 모두를 경계하거나 불청객으로부터 집 지키는 게 일이었지만, 1861년까지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내 재산, 내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1861년, 농노해방령이 시행되기 바로 직전까지 수백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은 인구의 약 91% 정도가 농노 혹은 소작농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예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개인 재산도 일부 허용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땅이 아닌 주인의 땅에서 농사를 짓기에, 정말 순수한 자신만을 위한 개인 공간은 없었다.
근대에 농노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근대화가 조금씩 진행되어 이러한 경향이 약해져 갔으며 중산층에서도 내 것, 내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후 여러 전쟁과 소련 붕괴 같은 사회가 혼란해지는 사태를 여러번 겪어서 러시아인들이 호전적이고 자신의 안전 침해에 민감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대부분의 타 유럽 지역에서는 이러한 봉건적인 문화가 빠르면 16세기, 늦게는 18세기에 정리되어 상당수의 농민들이 도시로 가 일을 하며 자신들의 공간과 삶을 만들거나, 미지의 타지(他地)로 가서 모험, 개척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문화가 퍼지기도 했다.
이렇듯 19세기 중반~말까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했던 러시아와는 다르게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거쳤기에 같은 주제에 대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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