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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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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14일 (29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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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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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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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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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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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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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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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76 (상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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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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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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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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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 | |YTN 사이언스TV |
1. 개요
YTN은 공명정대한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YTN은 뉴스와 생활정보를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공정한 보도와 비평을 통해 올바른 여론형성에 이바지하겠습니다.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스마트시대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전 세계로 생방송되는 한국의 뉴스채널 YTNYTN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을 준수합니다.
1995년 3월 1일부터 개국한 대한민국의 24시간 보도전문채널.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76 (상암동)에 있다.
YTN은 뉴스와 생활정보를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공정한 보도와 비평을 통해 올바른 여론형성에 이바지하겠습니다.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스마트시대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전 세계로 생방송되는 한국의 뉴스채널 YTNYTN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을 준수합니다.
1995년 3월 1일부터 개국한 대한민국의 24시간 보도전문채널.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76 (상암동)에 있다.
2. 역사
2.1. 개국 전
사실 YTN 탄생의 씨앗은 1991년부터 있었는데, 그 해에 새 연합통신 사장이 된 현소환이 본격적으로 전파매체 진출을 추진한 게 시초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정간법상 뉴스통신사의 타 매체 진출이 금지되어 있는 데다 전파매체 진출이 허용된다 해도 방송사 설립에 따른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다.
다행히도 노태우 정부 말기에 논의돼 오던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사업이 김영삼 문민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됨에 따라 언론사의 케이블TV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연합 측은 이미 '뉴스통신과 방송의 결합'을 위해 1991년 7월 1일부터 '방송뉴스 서비스'를 실시하여 KBS, PBC, MBC 등지에 방송문장체 기사를 송고했다.
다른 한편으로 연합은 '음성뉴스 서비스'도 구상하여 그 정지작업으로 1992년 6월 15일부터 이계진 아나운서를 전문강사로 초빙해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방송기사 작성 요령과 방송뉴스 전달법을 강의했고, 본사 사옥 9층에 방송스튜디오를 차려 한 달간 녹음연습을 시키고 7월 7일 오후 5시 30분부터 음성뉴스 서비스를 개시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각 방송사에 송출했다.
이 시간 외에도 긴급뉴스 발생 시 그때마다 수신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일요일과 공휴일엔 오후 뉴스만 보냈다.
연합측은 음성뉴스 서비스를 강화키 위해 11월 1일에 라디오뉴스부를 신설해 같은 달에 교통방송, 1993년 2월에 서울방송, 1994년 4월에 불교방송, 6월 기독교방송, 9월 극동방송과 신규계약을 각각 체결해 서비스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갔다.
이후 연합은 음성뉴스 서비스의 위상 향상에 고무되어 1993년 5월 17일부터 KBS와 제휴해 연합측 편집국 내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KBS 2TV <생방송 전국은 지금> 1/2부 3분 아침뉴스 코너에 연합 정치/사회부 기자들을 직접 출연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24시간이 모자라는 뉴스통신기자 업무 외에 추가로 처음 접하는 방송 리포트까지 하는 강행군을 치루게 되었다.
당시 출연 기자들은 전날 밤에 그날의 주요뉴스를 정리한 후, 새벽 5시에 출근해 새 소식과 조간신문 시내판을 최종 확인한 후 방송시간 전까지 오디오 연습에 열중하는 등 철저한 사전 준비 후 생방송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으로 뉴스통신 기자도 조금만 훈련하면 방송 리포트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는데, 실제로 몇몇 연합 출신이 지상파 TV에 진출해 맹활약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본론으로 되돌아가 얘기하자면, 연합통신은 1992년 3월 1일부터 케이블TV 뉴스프로덕션 참여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하고 연구기획을 하기 위하여 산하에 '방송연구위원회'를 설치해 위원장에 김기주 전 MBC 이사를, 상근위원직에 전희섭 방송뉴스부 차장, 강일중 지방1부 차장대우, 최영재 외신1부 기자 등 4명을, 비상근위원으론 양재홍 편집부국장, 이영인 부국장대우 겸 데이터통신 부장 등 2명을 각각 임명하였다.
이에 앞서 2월 18일 오후 7시부터 4시간 동안 본사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사장 휘하 임직원 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케이블TV 뉴스공급업 추진과 관련한 설명회가 열렸다.
이 설명회에서 전희섭 위원이 먼저 케이블TV 사업 관련 설명을 함으로써 이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러한 설명회를 통해 사측은 적극적으로 케이블TV 사업을 추진키로 결정하였다.
이 사업이야말로 연합통신의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전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뉴스공급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단하였다.
이어 연합측은 6월 23일에 케이블TV 종합뉴스프로덕션 사업 참여와 관련한 전 사원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사원 중 99.3%나 되는 597명이 찬성한다고 밝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찬성 사원 중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으로 인한 임금동결까지도 감수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558명으로 92.9%가 되어 새 케이블TV 진출사업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한편 사내 방송연구위는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해 나갔는데, 가장 중요한 건 외국 케이블TV 방송사들의 운영현황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해외출장팀을 파견하였다.
먼저 같은 해 4월 22일부터 5월 8일까지 케이블TV 종합뉴스프로덕션 설립과 관련한 연구 조사를 위해 김기주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출장팀 4명을 미국에 파견해 미국 내 케이블TV 및 방송사의 시설과 운영현황 등을 조사했는데, 당시 이들이 방문한 곳은 CNN, APTV, CNBC, WTN, PBS,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등이었다.
이후 11월 9일부터 열흘 간 이영인 등을 주축으로 한 해외출장팀 5명은 일본 아사히TV 등 케이블TV 관련 9개사를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들은 일본 방문 후에도 바쁘게 움직여 11월 22일부터 한 달여간 이영인 등 해외출장팀 6명은 프랑스 ARD 등 7개사, 독일 SEB 등 8개사, 벨기에 RTBF 등 3개사, 영국 BBC 등 10개 사를 방문했고, 돌아오는 중 홍콩에 들러 STAR TV 등 2개사에 들러 자료를 수집하였다.
또 1993년 4월 10일부터 19일간 김무기 기술자문위원 등 간부 3명이 전미방송협회(NBA) 주최 연례전시회 참관을 위해 다시 미국을 방문해 LA 지역 케이블TV 방송국도 방문하였다.
한편 자금 문제 역시 전 연합 사원이 봉급을 동결하는 걸로 해결됐는데, 밤을 새워 가며 여섯 차례 사원토론을 거친 끝에 1993년 4월에 사원봉급 2년 동결안이 75.1%의 절대적 지지로 채택되었고, 5월 27일에 본사 1층 로비에선 '연합의 살길 모색'이란 이름으로 케이블TV 참여에 관한 대토론회를 열어 전 사원들은 자정을 넘길 때까지 열띤 토론을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당월 31일부터 사흘 간 전국 5개 지국을 돌며 순회설명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와 설명회를 통해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 진출에 대한 전 사원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7월 15일에는 케이블TV 사업에 관해 종합뉴스 보도 부문에 대한 참가신청서를 공보처에 접수시켰다.
그 결과 연합을 중심으로 한 12개 업체들의 컨소시엄인 '연합TV뉴스'가 단독 신청을 한 것이다.
뉴스보도 쪽은 YTN 외에 매일경제신문사 등 26개사 컨소시엄인 매경유선방송과 KBS문화사업단 등 2개사가 참가신청서를 냈지만, 이들은 각각 경제뉴스 부문과 문자방송 부문으로 범위가 국한되어 있어서 종합뉴스 부문인 YTN하곤 상대가 안 되었다.
당시 연합을 주축으로 YTN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 및 개인은 쌍방울, 제일산업, 한국관광공사, 한국상업은행, 민중병원, 성원토건, 장규찬 새한미디어 고문, 전남일보, 일동제약, 보성주택, 한림제약 등이었다.
당시 YTN의 자본금은 3백억 원으로 컨소시엄 참여 업체 및 개인 지분율은 연합 측이 30%로 최대주주가 되었고, 쌍방울, 제일산업, 관광공사, 상은 등 4개 업체가 각각 10%, 그리고 민중병원이 21억 원을 출자해 7%를 지녔다.
성원, 장규찬, 전남일보 등에 각각 5%, 일동-한림제약에 각각 3%, 보성주택에 2%가 배정되었다.
8월 31일에는 케이블TV 종합뉴스분야 프로그램 공급업체로 선정되어 9월 1일에는 현소환 사장 주재로 YTN 컨소시엄 12개 업체 제3차 운영위원회를 열어 먼저 뉴스프로그램 공급업 선정과정에 대한 경과보고를 알린 후 1995년 초에 방송을 개시한다는 목표를 내세워 인원 선발, 장비 도입, 방송훈련 실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케이블TV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하였다.
9월 24일에 YTN 이사회는 현소환 연합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 후, 28일에는 공보처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장을 받아 공식 출범하였다.
또 이사회는 YTN과 연합측 TV 관련 조직을 5개 실/국으로 나누고 20개 부서로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연합에서 YTN에 파견되는 인력과, 경력 및 무경력 신입사원을 합쳐 모두 34명으로 인력구성을 갖추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 사옥의 일부를 YTN에 할애하고 전 사원이 YTN 설립작업에 동원되었다.
연합측은 그해 10월 6~7일 양일간 전 사원을 대상으로 TV 뉴스방송과 관련된 조직 및 인력확보 계획, 양사간의 업무체계 등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YTN 이사회 측에서 결정한 조직구도에 따르면 연합 측엔 기획조정실, 취재보도국, 광고영업국 등 3개 실/국이 신설되어야 하며, YTN 산하 보도제작국 및 방송기술국과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케이블TV용 뉴스물과 기획물을 제작해 YTN에 공급하게 되어 있다.
또한 TV뉴스 관련부서가 양사로 이원화되는 데서 오는 혼란을 방지키 위해 연합 취재본부장이 YTN 보도제작국장을 겸해 연합 취재제작국과 YTN 보도제작국을 총지휘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10월 27일, 연합은 수송동 사옥과 세종문화회관에서 'YTN 현판식' 및 창립기념 리셉션'을 각각 열어 사내외에 YTN의 출범을 널리 알렸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리셉션에선 황인성 국무총리, 이만섭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각 당 대표, 정부 고위인사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 1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1994년 2월 14일에 연합-YTN 양측은 경력사원 57명, 신입사원 36명, 타사 채용사원 6명 등 총 99명을 신규 채용해 연합 채용인원 중 37명을 YTN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신규채용자 99명 중 연합통신 업무에 전념할 사원은 41명, YTN에 배치되어 근무할 사원은 58명이었다.
특히 연합측은 스카우트자를 뺀 경력 및 신입사원에겐 각각 '연봉직'과 '레지던트' 사원제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신규 채용자들에겐 연합이건 YTN이건 어떤 곳에 근무하더라도 통신 및 TV취재/편집능력을 모두 갖추도록 하여 연합통신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YTN에서 일하는 사원들 역시 연합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레지던트 교육기간은 사회부 17주, 지국순환 근무 1주, 방송교육 4주 등 총 26주에 걸친 교육을 이수했다.
또 경력사원의 경우 사회/경제부 각각 3주, 방송교육 4주 등 총 17주의 교육을 이수받고 업무 현장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합 측은 YTN 사업추진으로 축적된 관련 기술과 사업능력을 최대한 활용토록 하기 위해 1994년 4월 27일에 무역업 및 무역대리점업으로 등록했다.
이는 YTN 기자재 수입에 따른 업무대행으로 수입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다.
연합 측은 7월 4일 임시주총을 열어 정관을 개정해 '통신업'을 새로 추가시켜 한통이나 데이콤처럼 정보제공 및 원거리통신사업에 나섰다.
이는 당시 미국에 이어 일본에까지 통신-케이블TV 연계 등 복합미디어 추세와도 부합되어,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토대를 마련케 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또 연합측은 본격적인 케이블TV 시대에 대비해 '방송용역과 기타 용역업'에도 진출해 YTN 등 이와 관련된 종합유선방송사 등에 시청각 제작물을 제공하는 사업도 전개키로 하였다.
연합은 YTN 출범과 함께 자본금 3백억 원의 30% 중 절반인 45억 원을 1993년 9월 8일 1차로 출자한 데 이어, 1994년 4월 28일 2차로 나머지 45억 원을 출자해 총 90억 원의 출자를 마쳤다.
이리하여 연합은 YTN 주식 중 30%를 지닌 최대주주로써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합측은 1995년 3월 1일 YTN 첫방송을 목표로 방송장비를 들여오고, 인력을 확충하고, 광고국을 신설하는 등 다각적으로 업무를 추진해 나갔다.
먼저 1994년 8월 1일에 산하 광고사업국을 신설해 기획관리부-TV광고부(YTN 광고 전담)-출판광고부 3개 부서로 구성했고, 9월 중순부터 일본제 소니 BVA400A 일체형 ENG카메라 등 방송장비 2천여 점을 구입해 10월 말부터 설치/완료 후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YTN은 연합 수송동 사옥 9~12층 및 지하층 일부를 사용했는데, 스튜디오는 12층에 두었다.
이로써 '한국의 CNN'을 표방하는 YTN은 3년여 간의 준비 끝에 세계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위성뉴스 취재시스템(SNG)과 뉴스룸 전산 자동화시스템, 첨단 편집 및 송출장비를 모두 갖추었다.
또한 CNN 등 세계 유명방송사와도 뉴스공급계약을 체결해 완벽하게 전세계의 뉴스를 커버하는 방송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정간법상 뉴스통신사의 타 매체 진출이 금지되어 있는 데다 전파매체 진출이 허용된다 해도 방송사 설립에 따른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다.
다행히도 노태우 정부 말기에 논의돼 오던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사업이 김영삼 문민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됨에 따라 언론사의 케이블TV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연합 측은 이미 '뉴스통신과 방송의 결합'을 위해 1991년 7월 1일부터 '방송뉴스 서비스'를 실시하여 KBS, PBC, MBC 등지에 방송문장체 기사를 송고했다.
다른 한편으로 연합은 '음성뉴스 서비스'도 구상하여 그 정지작업으로 1992년 6월 15일부터 이계진 아나운서를 전문강사로 초빙해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방송기사 작성 요령과 방송뉴스 전달법을 강의했고, 본사 사옥 9층에 방송스튜디오를 차려 한 달간 녹음연습을 시키고 7월 7일 오후 5시 30분부터 음성뉴스 서비스를 개시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각 방송사에 송출했다.
이 시간 외에도 긴급뉴스 발생 시 그때마다 수신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일요일과 공휴일엔 오후 뉴스만 보냈다.
연합측은 음성뉴스 서비스를 강화키 위해 11월 1일에 라디오뉴스부를 신설해 같은 달에 교통방송, 1993년 2월에 서울방송, 1994년 4월에 불교방송, 6월 기독교방송, 9월 극동방송과 신규계약을 각각 체결해 서비스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갔다.
이후 연합은 음성뉴스 서비스의 위상 향상에 고무되어 1993년 5월 17일부터 KBS와 제휴해 연합측 편집국 내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KBS 2TV <생방송 전국은 지금> 1/2부 3분 아침뉴스 코너에 연합 정치/사회부 기자들을 직접 출연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24시간이 모자라는 뉴스통신기자 업무 외에 추가로 처음 접하는 방송 리포트까지 하는 강행군을 치루게 되었다.
당시 출연 기자들은 전날 밤에 그날의 주요뉴스를 정리한 후, 새벽 5시에 출근해 새 소식과 조간신문 시내판을 최종 확인한 후 방송시간 전까지 오디오 연습에 열중하는 등 철저한 사전 준비 후 생방송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으로 뉴스통신 기자도 조금만 훈련하면 방송 리포트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는데, 실제로 몇몇 연합 출신이 지상파 TV에 진출해 맹활약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본론으로 되돌아가 얘기하자면, 연합통신은 1992년 3월 1일부터 케이블TV 뉴스프로덕션 참여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하고 연구기획을 하기 위하여 산하에 '방송연구위원회'를 설치해 위원장에 김기주 전 MBC 이사를, 상근위원직에 전희섭 방송뉴스부 차장, 강일중 지방1부 차장대우, 최영재 외신1부 기자 등 4명을, 비상근위원으론 양재홍 편집부국장, 이영인 부국장대우 겸 데이터통신 부장 등 2명을 각각 임명하였다.
이에 앞서 2월 18일 오후 7시부터 4시간 동안 본사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사장 휘하 임직원 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케이블TV 뉴스공급업 추진과 관련한 설명회가 열렸다.
이 설명회에서 전희섭 위원이 먼저 케이블TV 사업 관련 설명을 함으로써 이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러한 설명회를 통해 사측은 적극적으로 케이블TV 사업을 추진키로 결정하였다.
이 사업이야말로 연합통신의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전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뉴스공급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단하였다.
이어 연합측은 6월 23일에 케이블TV 종합뉴스프로덕션 사업 참여와 관련한 전 사원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사원 중 99.3%나 되는 597명이 찬성한다고 밝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찬성 사원 중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으로 인한 임금동결까지도 감수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558명으로 92.9%가 되어 새 케이블TV 진출사업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한편 사내 방송연구위는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해 나갔는데, 가장 중요한 건 외국 케이블TV 방송사들의 운영현황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해외출장팀을 파견하였다.
먼저 같은 해 4월 22일부터 5월 8일까지 케이블TV 종합뉴스프로덕션 설립과 관련한 연구 조사를 위해 김기주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출장팀 4명을 미국에 파견해 미국 내 케이블TV 및 방송사의 시설과 운영현황 등을 조사했는데, 당시 이들이 방문한 곳은 CNN, APTV, CNBC, WTN, PBS,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등이었다.
이후 11월 9일부터 열흘 간 이영인 등을 주축으로 한 해외출장팀 5명은 일본 아사히TV 등 케이블TV 관련 9개사를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들은 일본 방문 후에도 바쁘게 움직여 11월 22일부터 한 달여간 이영인 등 해외출장팀 6명은 프랑스 ARD 등 7개사, 독일 SEB 등 8개사, 벨기에 RTBF 등 3개사, 영국 BBC 등 10개 사를 방문했고, 돌아오는 중 홍콩에 들러 STAR TV 등 2개사에 들러 자료를 수집하였다.
또 1993년 4월 10일부터 19일간 김무기 기술자문위원 등 간부 3명이 전미방송협회(NBA) 주최 연례전시회 참관을 위해 다시 미국을 방문해 LA 지역 케이블TV 방송국도 방문하였다.
한편 자금 문제 역시 전 연합 사원이 봉급을 동결하는 걸로 해결됐는데, 밤을 새워 가며 여섯 차례 사원토론을 거친 끝에 1993년 4월에 사원봉급 2년 동결안이 75.1%의 절대적 지지로 채택되었고, 5월 27일에 본사 1층 로비에선 '연합의 살길 모색'이란 이름으로 케이블TV 참여에 관한 대토론회를 열어 전 사원들은 자정을 넘길 때까지 열띤 토론을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당월 31일부터 사흘 간 전국 5개 지국을 돌며 순회설명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와 설명회를 통해 케이블TV 뉴스채널 사업 진출에 대한 전 사원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7월 15일에는 케이블TV 사업에 관해 종합뉴스 보도 부문에 대한 참가신청서를 공보처에 접수시켰다.
그 결과 연합을 중심으로 한 12개 업체들의 컨소시엄인 '연합TV뉴스'가 단독 신청을 한 것이다.
뉴스보도 쪽은 YTN 외에 매일경제신문사 등 26개사 컨소시엄인 매경유선방송과 KBS문화사업단 등 2개사가 참가신청서를 냈지만, 이들은 각각 경제뉴스 부문과 문자방송 부문으로 범위가 국한되어 있어서 종합뉴스 부문인 YTN하곤 상대가 안 되었다.
당시 연합을 주축으로 YTN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 및 개인은 쌍방울, 제일산업, 한국관광공사, 한국상업은행, 민중병원, 성원토건, 장규찬 새한미디어 고문, 전남일보, 일동제약, 보성주택, 한림제약 등이었다.
당시 YTN의 자본금은 3백억 원으로 컨소시엄 참여 업체 및 개인 지분율은 연합 측이 30%로 최대주주가 되었고, 쌍방울, 제일산업, 관광공사, 상은 등 4개 업체가 각각 10%, 그리고 민중병원이 21억 원을 출자해 7%를 지녔다.
성원, 장규찬, 전남일보 등에 각각 5%, 일동-한림제약에 각각 3%, 보성주택에 2%가 배정되었다.
8월 31일에는 케이블TV 종합뉴스분야 프로그램 공급업체로 선정되어 9월 1일에는 현소환 사장 주재로 YTN 컨소시엄 12개 업체 제3차 운영위원회를 열어 먼저 뉴스프로그램 공급업 선정과정에 대한 경과보고를 알린 후 1995년 초에 방송을 개시한다는 목표를 내세워 인원 선발, 장비 도입, 방송훈련 실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케이블TV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하였다.
9월 24일에 YTN 이사회는 현소환 연합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 후, 28일에는 공보처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장을 받아 공식 출범하였다.
또 이사회는 YTN과 연합측 TV 관련 조직을 5개 실/국으로 나누고 20개 부서로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연합에서 YTN에 파견되는 인력과, 경력 및 무경력 신입사원을 합쳐 모두 34명으로 인력구성을 갖추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 사옥의 일부를 YTN에 할애하고 전 사원이 YTN 설립작업에 동원되었다.
연합측은 그해 10월 6~7일 양일간 전 사원을 대상으로 TV 뉴스방송과 관련된 조직 및 인력확보 계획, 양사간의 업무체계 등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YTN 이사회 측에서 결정한 조직구도에 따르면 연합 측엔 기획조정실, 취재보도국, 광고영업국 등 3개 실/국이 신설되어야 하며, YTN 산하 보도제작국 및 방송기술국과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케이블TV용 뉴스물과 기획물을 제작해 YTN에 공급하게 되어 있다.
또한 TV뉴스 관련부서가 양사로 이원화되는 데서 오는 혼란을 방지키 위해 연합 취재본부장이 YTN 보도제작국장을 겸해 연합 취재제작국과 YTN 보도제작국을 총지휘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10월 27일, 연합은 수송동 사옥과 세종문화회관에서 'YTN 현판식' 및 창립기념 리셉션'을 각각 열어 사내외에 YTN의 출범을 널리 알렸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리셉션에선 황인성 국무총리, 이만섭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각 당 대표, 정부 고위인사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 1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1994년 2월 14일에 연합-YTN 양측은 경력사원 57명, 신입사원 36명, 타사 채용사원 6명 등 총 99명을 신규 채용해 연합 채용인원 중 37명을 YTN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신규채용자 99명 중 연합통신 업무에 전념할 사원은 41명, YTN에 배치되어 근무할 사원은 58명이었다.
특히 연합측은 스카우트자를 뺀 경력 및 신입사원에겐 각각 '연봉직'과 '레지던트' 사원제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신규 채용자들에겐 연합이건 YTN이건 어떤 곳에 근무하더라도 통신 및 TV취재/편집능력을 모두 갖추도록 하여 연합통신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YTN에서 일하는 사원들 역시 연합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레지던트 교육기간은 사회부 17주, 지국순환 근무 1주, 방송교육 4주 등 총 26주에 걸친 교육을 이수했다.
또 경력사원의 경우 사회/경제부 각각 3주, 방송교육 4주 등 총 17주의 교육을 이수받고 업무 현장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합 측은 YTN 사업추진으로 축적된 관련 기술과 사업능력을 최대한 활용토록 하기 위해 1994년 4월 27일에 무역업 및 무역대리점업으로 등록했다.
이는 YTN 기자재 수입에 따른 업무대행으로 수입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다.
연합 측은 7월 4일 임시주총을 열어 정관을 개정해 '통신업'을 새로 추가시켜 한통이나 데이콤처럼 정보제공 및 원거리통신사업에 나섰다.
이는 당시 미국에 이어 일본에까지 통신-케이블TV 연계 등 복합미디어 추세와도 부합되어,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토대를 마련케 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또 연합측은 본격적인 케이블TV 시대에 대비해 '방송용역과 기타 용역업'에도 진출해 YTN 등 이와 관련된 종합유선방송사 등에 시청각 제작물을 제공하는 사업도 전개키로 하였다.
연합은 YTN 출범과 함께 자본금 3백억 원의 30% 중 절반인 45억 원을 1993년 9월 8일 1차로 출자한 데 이어, 1994년 4월 28일 2차로 나머지 45억 원을 출자해 총 90억 원의 출자를 마쳤다.
이리하여 연합은 YTN 주식 중 30%를 지닌 최대주주로써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합측은 1995년 3월 1일 YTN 첫방송을 목표로 방송장비를 들여오고, 인력을 확충하고, 광고국을 신설하는 등 다각적으로 업무를 추진해 나갔다.
먼저 1994년 8월 1일에 산하 광고사업국을 신설해 기획관리부-TV광고부(YTN 광고 전담)-출판광고부 3개 부서로 구성했고, 9월 중순부터 일본제 소니 BVA400A 일체형 ENG카메라 등 방송장비 2천여 점을 구입해 10월 말부터 설치/완료 후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YTN은 연합 수송동 사옥 9~12층 및 지하층 일부를 사용했는데, 스튜디오는 12층에 두었다.
이로써 '한국의 CNN'을 표방하는 YTN은 3년여 간의 준비 끝에 세계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위성뉴스 취재시스템(SNG)과 뉴스룸 전산 자동화시스템, 첨단 편집 및 송출장비를 모두 갖추었다.
또한 CNN 등 세계 유명방송사와도 뉴스공급계약을 체결해 완벽하게 전세계의 뉴스를 커버하는 방송체계를 확립하였다.
2.2. 개국 후
장비를 전부 갖춘 YTN은 1995년 1월 5일에 시험방송을 거쳐 3월 1일, 케이블TV 본방송과 동시에 개국하였다.
개국 첫날 를 신설해 3.1절 보신각 타종 현장을 생중계했고, 케이블TV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리포트 시리즈를 내보냈다.
개국 당시에는 케이블TV 회선이 많지 않아 인지도 따위 없고 그저 듣보잡 뉴스채널로 시작했으며 그런 뉴스 전문 채널의 위력도 얕잡아보던 때였으며, 재정상황도 열악했다.
당시 연합에 몸담았던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이문호의 견해에 의하면, 초기 운영 과정에서도 이미 삐걱거렸는데, 지상파와 겨루어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고자 하는 '적극론'과, 듣보잡이래도 좋으니 연합만의 정서대로 확실히 우리 것을 만드는 데 주력하자는 '방법론'의 차이가 노정되었는데, 적극론은 "방송을 우선 안정시키려면 방송 전문가에게 맡기자. 우리끼리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주물럭거리다 끝장난다"는 것이었고, 다른 쪽은 "그냥 듣보잡이라도 좋으니 같은 회사라는 동질감을 유지시키자"는 것이었다.
결국 YTN은 전자를 택했고, 개국 4개월 후인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YTN의 운명을 뒤바꾸었다.
당시 YTN 측 서울가정법원 출입 기자였던 공채 2기 이상순 기자가 최초로 본사에 제보하여 8분 만에 속보를 내보내고 취재진이 생존자를 구출해 내며 또한 자체적인 사망자 집계 등 케이블TV 초창기 뉴스 전문 채널의 위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처음 1주일간은 다른 뉴스도 광고도 전부 안 보내고 오로지 삼풍백화점 뉴스만 24시간 내내 틀었다.
워낙 듣보잡 시절이다보니 차라리 삼풍백화점 사고 전용 방송을 자처했었던 것이 효과를 불렀다.
자료의 양도 방대하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지역민방 신설로 인해 제3방송사로 성장한 SBS,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신뢰도가 급상승했던 JTBC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개국 초기에는 연합뉴스의 전신인 연합통신 소속이어서 YTN을 '연합 TV 뉴스'라고 불렀다.
그래서 YTN은 본래 Yonhap Television News의 약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연합뉴스와 무관해졌기 때문에 그냥 YTN일 뿐 약칭이 아니다.
한때 Yesterday Tomorrow Now를 쓰기도 했고 지금은 Your True Network, Yes! Top News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그냥 역 두문자어로 만든 일종의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이지 정식 명칭은 아니다.
개국 초기 주요 프로그램은 스트레이트 뉴스 를 비롯해 매 시간 30분마다 했던 헤드라인뉴스 프로 <뉴스메모>, 분야별 특화뉴스 프로 , 밤 9시마다 했던 심층분석 뉴스토크 프로 <채널24 집중조명>이 있었고, 산업기상정보, 레저일기예보, 세계기상정보 등 특화 일기예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다른 한편으로 YTN은 세계화를 앞당긴다는 모토에 따라 지상파 종합뉴스 외신판인 <월드24>를 낮 12시 40분과 밤 8시 40분에 각각 20분씩 내보냈다.
이 방송은 세계 주요도시 특파원이 전달하는 세계뉴스와 미국 CNN 등 전세계 제휴방송사 핫뉴스를 소개했고, <위성통역실>이란 프로는 피터 제닝스, 톰 브로커 등 외국 유명 기자나 앵커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YTN은 위와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경영 측면에선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러일으켰다.
케이블TV는 당시 초창기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돈만 오지게 처먹는 하마와도 같았다.
당시 회선망 확충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가입자가 늘어나지 않았고, 더 나아가 광고수입은 적은데 시설투자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어 적자만 누적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효율적 방송을 위해 야심차게 스카우트한 KBS 출신과 연합 출신 기자들 사이의 갈등, 어느새 주류를 이룬 KBS파에 대한 연합파 기자들의 소외감 등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후술할 정부의 사장 경질 압력도 지속되어 개국 1년 6개월만에 현소환 사장은 케이블방송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계속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데다가 수익구조의 허약성으로 인해 언제 손익분기점을 넘길지는 알 수가 없어서 더 이상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나 자신감이 없었다.
결국 현소환 사장은 1996년 9월 12일 임시주총에서 겸임직을 내놓았고, 외부 인사인 정주년 전 한국국제협력단 총재가 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현소환 연합 사장은 19일 사원총회에서 YTN과의 사실상 분리를 선언했고, 양사 간의 관계가 재정립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 측은 일단 광고, 파견인력, 시설 임대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관련 계약을 두고 YTN과 협상을 벌였는데, 가장 큰 핵심은 광고사업국 및 파견인력 처리 문제 였다.
두 달 간의 협상 끝에 양사는 3개항에 합의했는데, 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잔류 또는 복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맡긴다.
잔류/복귀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잔류자에 대한 급료와 호봉은 언론사 근무경력을 기준으로 양식과 상식선에서 맡긴다.
이에 따라 연합측은 YTN 파견자 59명을 대상으로 한 의사타진 결과 17명은 연합 복귀, 42명은 YTN 잔류로 최종 확정하였다.
11월 15일자로 연합측은 복귀자 17명을 각 부서에 재배치하는 한편, YTN 잔류자 42명을 의원면직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와도 관련해서 엉뚱한 일이 터지고 말았는데, 바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이 YTN을 연합에서 분리시키고 YS의 측근 김우석 전 건설부장관을 사장으로 앉힐 계획을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당시 현소환 사장이 김현철을 만나 조목조목 불가 이유를 설명하자 김현철은 관계기관을 총동원해 현 사장을 축출하는 데 열을 올려온 것이었다.
이 사실은 1997년 초에 측근이던 박경식 의사가 김현철의 YTN 사장 인사문제 개입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그런 와중에 YTN의 운영난은 계속되어 설립 당시 자본금 3백억에 달하던 회사가 1995년 개국 첫해 240억 원, 1996년 320억 원 등으로 적자 행진을 기록하다 1997년 IMF 사태로 광고도 줄고 더 이상 기자 채용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봉급마저 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1997년 상반기부터 증자하거나 매각하는 등 살 길을 강구하던 YTN에게 구원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한국전력공사였다.
이는 앞으로 얼마를 더 쏟아부어야 할지 모르는데 연합으로선 증자할 길이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공기업 중 한전은 이미 NO(Network Opreator)로써 케이블TV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YTN 경영 정상화와 케이블TV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란 입장이 강조되었다.
한편 연합 측은 1997년 3월 19일 제16회 정기주총 및 이사회에서 현소환 대신 동료인 김영일 전무를 사장직에 앉혔다.
신임 사장 김영일은 연합통신의 당면과제로 안정적 재정기반 마련, 전망있는 신규사업 참여, 통신시설 현대화, 국내외 취재망 확충 등을 설정했는데, 이 과제 속에는 당시까지 해결이 안 된 YTN과의 관계정립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특히 재정기반의 안정을 위해선 YTN 지분 30%를 지닌 연합으로선 그 동안 출혈이 컸던 만큼 손실보단 이득이 나는 쪽으로 원만히 타결을 보는 게 급선무였다.
먼저 연합은 1997년 3월 31일부터 YTN의 광고를 전담해 오던 광고사업국을 폐지하고 소속 인원 13명을 YTN으로 이직시켜 완전 분리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고, 6월부터 한전정보네트워크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노조 역시 투자액+α를 전제로 매각 원칙에 찬성을 표명했다.
처음에 연합 측은 YTN이 한국의 CNN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납득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YTN은 여타 PP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연합도 타 주주와 격이 다르며, YTN 소유 시 돈으로 계량할 수 없는 한전 위상의 급격한 신장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한전정보네트워크 측은 YTN이 원금도 다 날리고 빚이 얼만데 뭔 이자까지 챙기려 드느냐면서 원금만 줘도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한전은 특히 "빚이 7백억 원에 이르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니 서두를 필욘 없다.
시간 끌수록 값이 떨어진다"는 둥 협박성 공세를 펼쳤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월 27일, 한전정보네트워크가 230억 원에 합의하자며 기본합의서 초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고, 연합이 이를 수락하여 합의가 이루어졌고, 9월 2일에 230억 가량의 가계약을 체결해 두 회사는 마침내 결별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9월에 장명국 내일신문 운영위원장이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1백억 원 증자를 실현했다.
그러나 주식 매각 후 연합과 YTN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사무실 임대료 등 13억 원이 체납된 상태에서 YTN은 월 1억 5천만 원의 전재료가 너무 비싼 만큼 재조정하되 1997년 12월 이전 전재료 미불금 16억 원을 탕감하자고 나왔으나, 연합 측은 임대료와 전재료 등 50억 원에 달하는 미수금을 깎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결국 그해 12월 1일부터 연합측은 YTN과 맺은 전재계약을 단절해 버렸고, 이는 2001년 하반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공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YTN은 1998년 12월 말부터 한전 330억원, 담배인삼공사 440억원, 한국마사회 200억 원 등 1100억 원을 2차 증자해 자본금이 일거에 1500억 원으로 늘어 만성적자 상황에서 점차 벗어났고, 1999년 3월에 이르러선 흑자를 달성하였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백인호 당시 사장이 2001년에 "김대중 대통령은 YTN 제2창업자"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었다.
2000년에는 체신공제조합으로부터 남산 서울타워를 인수하여 사업영역을 정보통신/관광/통신시설 임대업에까지 확장했고, 이듬해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고 2002년 전 이동통신사에 뉴스서비스를 확대했다.
2003년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해외 위성방송의 실시간 방송을 개시하고 2004년 3월 30일에는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무비플러스와 코미디TV를 운영하던 월드와이드넷을 인수하여 'YTN미디어'로 사명을 바꾸고, 무비플러스를 'YTN스타'라는 연예채널로 만들었지만, 개국한 지 1년 만에 iHQ에 지분을 넘기고 이후 2008년에 사명도 'CU미디어'로 바뀌었다가 2014년 10월 iHQ와의 지분 합병이 이루어져 iHQ의 미디어부문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는 수송동에서 남대문 사옥으로 이전해 연합뉴스와의 동거에서 탈피했다.
2005년에는 서울타워를 'N서울타워'로 재개장하면서 영업권을 CJ엔시티에 임대했고, 지상파 DMB 채널인 mYTN이 개국하여 DMB로도 방송되고 있고, 2006년에는 방송 10만 시간을 돌파했으며 야후! 코리아에서 생방송도 개시했다.
2007년 9월에는 과학채널 YTN 사이언스가, 2008년 4월 30일에는 YTN NEWS FM이 개국해 YTN 뉴스를 24시간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보도 내용이 나가다가 가끔 도중에 종료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방송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출력은 5kW로 허가되어 있으며, 송신소는 경기 안양시 삼성산에 설치했다가 2010년 3월에 성남시 청계산으로 이전했다.
2011년부터 HD 방송을 실시했다.
YTN뉴스의 HD마크는 상당히 늦게 뗐는데 2013년 4월까지 HD 마크를 사용했다.
즉 2013년 4월까지 적지만 SD방송은 있었다.
2011년 7월에는 24시간 날씨전문채널인 YTN Weather가 개국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기상, 날씨 전문 채널이 생기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번이 최초인 줄 아는데) 2번째다.
지난 2000년 날씨예보기업 웨더뉴스에서 기상채널을 만들었다가 2년여 만에 흑역사로 들어간 기억이 있다.
이후 2017년 1월부터 장르 변경과 함께 채널명이 YTN LIFE로 바뀌었다.
마포구 상암동 DMC에 신 사옥을 건립하여 2014년 4월 7일에 이전하였다.
. 이에 맞춰 로고도 바꿨다.
YTN 신 사옥 근처에는 2014년 9월 1일에 MBC가 이전했다.
기존 중구 남대문로5가 YTN타워는 매각이 추진되어, 2014년 12월 19일 한 부동산 투자회사에 2,310억 원에 매각됐다.
2015년에 iHQ 미디어부문(옛 YTN미디어)의 CUBE TV 개국 준비 과정이 진행되면서 두 회사간의 관계가 다시 어느 정도 이어진 듯 보인다.
CUBE TV의 사무실이 상암동 YTN 뉴스퀘어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국 기자회견도 이곳에서 열렸다.
이후 iHQ에서 YTN WORLD와 프로그램 방영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또한 AXN Korea의 사무실도 YTN 뉴스퀘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iHQ 미디어부문 온라인판 기사가 YTN을 통해 공급되기도 하고 K STAR의 기자가 YTN에 출연하는 등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2015년 4월부터는 YTN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 오프닝에 N서울타워와 상암동 YTN 신 사옥 건물이 등장하며, 2015년 6월부터 YTN은 창사 2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신설하였다.
6월에는 "강소기업이 힘!이다.
"와 7월에는 YTN 국민 신문고가 각각 수/목 오후 10시에 방영하였다.
특히 국민신문고는 매주 진행자를 연예인이나 방송인을 출연시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쉬웠으나 이들 프로그램이 수/목 10시 편성이 뉴스 프로그램의 진행이 어려운데다가 지상파는 드라마 편성을 하는 관계여서인지 이들 프로그램은 10월 개편부터는 수/목 9시로 변경되어 방송 중에 있다.
강소기업이 힘!이다는 진행자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으나 YTN 국민 신문고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포맷을 바꿔 유석현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2015년 10월 5일부터는 개편으로 인하여 호준석의 뉴스인을 제외한 모든 뉴스의 진행자가 교체됐고, 2017년까지 개편이 계속되는 와중에 모든 뉴스의 진행자가 교체됐지만 호준석의 뉴스인은 살아남았다.
2018년 4월 현재 뉴스인은 오점곤이 진행한다.
2018년 12월 3일자로 개편을 단행했다.
주요 개편사항은 평일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5개 프로(굿모닝 와이티엔, 뉴스N이슈, 더 뉴스, 뉴스Q, 뉴스나이트) 를 중심으로 개편했고, 5개 뉴스 프로와 뉴스출발과 940뉴스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YTN24를 방송하며 주말/공휴일엔 뉴스와이드와 YTN24를 중심으로 단순화시켰다.
이 개편을 통해 노종면이 10년만에 YTN 앵커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2020년 6월 1일 개편을 통해서 정시 편성이 깨어졌다.
하지만 편성표를 유심히 보면 경쟁 보도채널인 연합뉴스TV와 대응 편성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개국 첫날 를 신설해 3.1절 보신각 타종 현장을 생중계했고, 케이블TV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리포트 시리즈를 내보냈다.
개국 당시에는 케이블TV 회선이 많지 않아 인지도 따위 없고 그저 듣보잡 뉴스채널로 시작했으며 그런 뉴스 전문 채널의 위력도 얕잡아보던 때였으며, 재정상황도 열악했다.
당시 연합에 몸담았던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이문호의 견해에 의하면, 초기 운영 과정에서도 이미 삐걱거렸는데, 지상파와 겨루어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고자 하는 '적극론'과, 듣보잡이래도 좋으니 연합만의 정서대로 확실히 우리 것을 만드는 데 주력하자는 '방법론'의 차이가 노정되었는데, 적극론은 "방송을 우선 안정시키려면 방송 전문가에게 맡기자. 우리끼리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주물럭거리다 끝장난다"는 것이었고, 다른 쪽은 "그냥 듣보잡이라도 좋으니 같은 회사라는 동질감을 유지시키자"는 것이었다.
결국 YTN은 전자를 택했고, 개국 4개월 후인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YTN의 운명을 뒤바꾸었다.
당시 YTN 측 서울가정법원 출입 기자였던 공채 2기 이상순 기자가 최초로 본사에 제보하여 8분 만에 속보를 내보내고 취재진이 생존자를 구출해 내며 또한 자체적인 사망자 집계 등 케이블TV 초창기 뉴스 전문 채널의 위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처음 1주일간은 다른 뉴스도 광고도 전부 안 보내고 오로지 삼풍백화점 뉴스만 24시간 내내 틀었다.
워낙 듣보잡 시절이다보니 차라리 삼풍백화점 사고 전용 방송을 자처했었던 것이 효과를 불렀다.
자료의 양도 방대하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지역민방 신설로 인해 제3방송사로 성장한 SBS,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신뢰도가 급상승했던 JTBC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개국 초기에는 연합뉴스의 전신인 연합통신 소속이어서 YTN을 '연합 TV 뉴스'라고 불렀다.
그래서 YTN은 본래 Yonhap Television News의 약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연합뉴스와 무관해졌기 때문에 그냥 YTN일 뿐 약칭이 아니다.
한때 Yesterday Tomorrow Now를 쓰기도 했고 지금은 Your True Network, Yes! Top News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그냥 역 두문자어로 만든 일종의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이지 정식 명칭은 아니다.
개국 초기 주요 프로그램은 스트레이트 뉴스 를 비롯해 매 시간 30분마다 했던 헤드라인뉴스 프로 <뉴스메모>, 분야별 특화뉴스 프로 , 밤 9시마다 했던 심층분석 뉴스토크 프로 <채널24 집중조명>이 있었고, 산업기상정보, 레저일기예보, 세계기상정보 등 특화 일기예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다른 한편으로 YTN은 세계화를 앞당긴다는 모토에 따라 지상파 종합뉴스 외신판인 <월드24>를 낮 12시 40분과 밤 8시 40분에 각각 20분씩 내보냈다.
이 방송은 세계 주요도시 특파원이 전달하는 세계뉴스와 미국 CNN 등 전세계 제휴방송사 핫뉴스를 소개했고, <위성통역실>이란 프로는 피터 제닝스, 톰 브로커 등 외국 유명 기자나 앵커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YTN은 위와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경영 측면에선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러일으켰다.
케이블TV는 당시 초창기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돈만 오지게 처먹는 하마와도 같았다.
당시 회선망 확충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가입자가 늘어나지 않았고, 더 나아가 광고수입은 적은데 시설투자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어 적자만 누적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효율적 방송을 위해 야심차게 스카우트한 KBS 출신과 연합 출신 기자들 사이의 갈등, 어느새 주류를 이룬 KBS파에 대한 연합파 기자들의 소외감 등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후술할 정부의 사장 경질 압력도 지속되어 개국 1년 6개월만에 현소환 사장은 케이블방송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계속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데다가 수익구조의 허약성으로 인해 언제 손익분기점을 넘길지는 알 수가 없어서 더 이상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나 자신감이 없었다.
결국 현소환 사장은 1996년 9월 12일 임시주총에서 겸임직을 내놓았고, 외부 인사인 정주년 전 한국국제협력단 총재가 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현소환 연합 사장은 19일 사원총회에서 YTN과의 사실상 분리를 선언했고, 양사 간의 관계가 재정립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 측은 일단 광고, 파견인력, 시설 임대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관련 계약을 두고 YTN과 협상을 벌였는데, 가장 큰 핵심은 광고사업국 및 파견인력 처리 문제 였다.
두 달 간의 협상 끝에 양사는 3개항에 합의했는데, 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잔류 또는 복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맡긴다.
잔류/복귀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잔류자에 대한 급료와 호봉은 언론사 근무경력을 기준으로 양식과 상식선에서 맡긴다.
이에 따라 연합측은 YTN 파견자 59명을 대상으로 한 의사타진 결과 17명은 연합 복귀, 42명은 YTN 잔류로 최종 확정하였다.
11월 15일자로 연합측은 복귀자 17명을 각 부서에 재배치하는 한편, YTN 잔류자 42명을 의원면직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와도 관련해서 엉뚱한 일이 터지고 말았는데, 바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이 YTN을 연합에서 분리시키고 YS의 측근 김우석 전 건설부장관을 사장으로 앉힐 계획을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당시 현소환 사장이 김현철을 만나 조목조목 불가 이유를 설명하자 김현철은 관계기관을 총동원해 현 사장을 축출하는 데 열을 올려온 것이었다.
이 사실은 1997년 초에 측근이던 박경식 의사가 김현철의 YTN 사장 인사문제 개입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그런 와중에 YTN의 운영난은 계속되어 설립 당시 자본금 3백억에 달하던 회사가 1995년 개국 첫해 240억 원, 1996년 320억 원 등으로 적자 행진을 기록하다 1997년 IMF 사태로 광고도 줄고 더 이상 기자 채용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봉급마저 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1997년 상반기부터 증자하거나 매각하는 등 살 길을 강구하던 YTN에게 구원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한국전력공사였다.
이는 앞으로 얼마를 더 쏟아부어야 할지 모르는데 연합으로선 증자할 길이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공기업 중 한전은 이미 NO(Network Opreator)로써 케이블TV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YTN 경영 정상화와 케이블TV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란 입장이 강조되었다.
한편 연합 측은 1997년 3월 19일 제16회 정기주총 및 이사회에서 현소환 대신 동료인 김영일 전무를 사장직에 앉혔다.
신임 사장 김영일은 연합통신의 당면과제로 안정적 재정기반 마련, 전망있는 신규사업 참여, 통신시설 현대화, 국내외 취재망 확충 등을 설정했는데, 이 과제 속에는 당시까지 해결이 안 된 YTN과의 관계정립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특히 재정기반의 안정을 위해선 YTN 지분 30%를 지닌 연합으로선 그 동안 출혈이 컸던 만큼 손실보단 이득이 나는 쪽으로 원만히 타결을 보는 게 급선무였다.
먼저 연합은 1997년 3월 31일부터 YTN의 광고를 전담해 오던 광고사업국을 폐지하고 소속 인원 13명을 YTN으로 이직시켜 완전 분리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고, 6월부터 한전정보네트워크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노조 역시 투자액+α를 전제로 매각 원칙에 찬성을 표명했다.
처음에 연합 측은 YTN이 한국의 CNN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납득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YTN은 여타 PP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연합도 타 주주와 격이 다르며, YTN 소유 시 돈으로 계량할 수 없는 한전 위상의 급격한 신장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한전정보네트워크 측은 YTN이 원금도 다 날리고 빚이 얼만데 뭔 이자까지 챙기려 드느냐면서 원금만 줘도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한전은 특히 "빚이 7백억 원에 이르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니 서두를 필욘 없다.
시간 끌수록 값이 떨어진다"는 둥 협박성 공세를 펼쳤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월 27일, 한전정보네트워크가 230억 원에 합의하자며 기본합의서 초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고, 연합이 이를 수락하여 합의가 이루어졌고, 9월 2일에 230억 가량의 가계약을 체결해 두 회사는 마침내 결별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9월에 장명국 내일신문 운영위원장이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1백억 원 증자를 실현했다.
그러나 주식 매각 후 연합과 YTN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사무실 임대료 등 13억 원이 체납된 상태에서 YTN은 월 1억 5천만 원의 전재료가 너무 비싼 만큼 재조정하되 1997년 12월 이전 전재료 미불금 16억 원을 탕감하자고 나왔으나, 연합 측은 임대료와 전재료 등 50억 원에 달하는 미수금을 깎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결국 그해 12월 1일부터 연합측은 YTN과 맺은 전재계약을 단절해 버렸고, 이는 2001년 하반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공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YTN은 1998년 12월 말부터 한전 330억원, 담배인삼공사 440억원, 한국마사회 200억 원 등 1100억 원을 2차 증자해 자본금이 일거에 1500억 원으로 늘어 만성적자 상황에서 점차 벗어났고, 1999년 3월에 이르러선 흑자를 달성하였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백인호 당시 사장이 2001년에 "김대중 대통령은 YTN 제2창업자"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었다.
2000년에는 체신공제조합으로부터 남산 서울타워를 인수하여 사업영역을 정보통신/관광/통신시설 임대업에까지 확장했고, 이듬해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고 2002년 전 이동통신사에 뉴스서비스를 확대했다.
2003년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해외 위성방송의 실시간 방송을 개시하고 2004년 3월 30일에는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무비플러스와 코미디TV를 운영하던 월드와이드넷을 인수하여 'YTN미디어'로 사명을 바꾸고, 무비플러스를 'YTN스타'라는 연예채널로 만들었지만, 개국한 지 1년 만에 iHQ에 지분을 넘기고 이후 2008년에 사명도 'CU미디어'로 바뀌었다가 2014년 10월 iHQ와의 지분 합병이 이루어져 iHQ의 미디어부문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는 수송동에서 남대문 사옥으로 이전해 연합뉴스와의 동거에서 탈피했다.
2005년에는 서울타워를 'N서울타워'로 재개장하면서 영업권을 CJ엔시티에 임대했고, 지상파 DMB 채널인 mYTN이 개국하여 DMB로도 방송되고 있고, 2006년에는 방송 10만 시간을 돌파했으며 야후! 코리아에서 생방송도 개시했다.
2007년 9월에는 과학채널 YTN 사이언스가, 2008년 4월 30일에는 YTN NEWS FM이 개국해 YTN 뉴스를 24시간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보도 내용이 나가다가 가끔 도중에 종료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방송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출력은 5kW로 허가되어 있으며, 송신소는 경기 안양시 삼성산에 설치했다가 2010년 3월에 성남시 청계산으로 이전했다.
2011년부터 HD 방송을 실시했다.
YTN뉴스의 HD마크는 상당히 늦게 뗐는데 2013년 4월까지 HD 마크를 사용했다.
즉 2013년 4월까지 적지만 SD방송은 있었다.
2011년 7월에는 24시간 날씨전문채널인 YTN Weather가 개국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기상, 날씨 전문 채널이 생기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번이 최초인 줄 아는데) 2번째다.
지난 2000년 날씨예보기업 웨더뉴스에서 기상채널을 만들었다가 2년여 만에 흑역사로 들어간 기억이 있다.
이후 2017년 1월부터 장르 변경과 함께 채널명이 YTN LIFE로 바뀌었다.
마포구 상암동 DMC에 신 사옥을 건립하여 2014년 4월 7일에 이전하였다.
. 이에 맞춰 로고도 바꿨다.
YTN 신 사옥 근처에는 2014년 9월 1일에 MBC가 이전했다.
기존 중구 남대문로5가 YTN타워는 매각이 추진되어, 2014년 12월 19일 한 부동산 투자회사에 2,310억 원에 매각됐다.
2015년에 iHQ 미디어부문(옛 YTN미디어)의 CUBE TV 개국 준비 과정이 진행되면서 두 회사간의 관계가 다시 어느 정도 이어진 듯 보인다.
CUBE TV의 사무실이 상암동 YTN 뉴스퀘어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국 기자회견도 이곳에서 열렸다.
이후 iHQ에서 YTN WORLD와 프로그램 방영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또한 AXN Korea의 사무실도 YTN 뉴스퀘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iHQ 미디어부문 온라인판 기사가 YTN을 통해 공급되기도 하고 K STAR의 기자가 YTN에 출연하는 등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2015년 4월부터는 YTN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 오프닝에 N서울타워와 상암동 YTN 신 사옥 건물이 등장하며, 2015년 6월부터 YTN은 창사 2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신설하였다.
6월에는 "강소기업이 힘!이다.
"와 7월에는 YTN 국민 신문고가 각각 수/목 오후 10시에 방영하였다.
특히 국민신문고는 매주 진행자를 연예인이나 방송인을 출연시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쉬웠으나 이들 프로그램이 수/목 10시 편성이 뉴스 프로그램의 진행이 어려운데다가 지상파는 드라마 편성을 하는 관계여서인지 이들 프로그램은 10월 개편부터는 수/목 9시로 변경되어 방송 중에 있다.
강소기업이 힘!이다는 진행자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으나 YTN 국민 신문고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포맷을 바꿔 유석현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2015년 10월 5일부터는 개편으로 인하여 호준석의 뉴스인을 제외한 모든 뉴스의 진행자가 교체됐고, 2017년까지 개편이 계속되는 와중에 모든 뉴스의 진행자가 교체됐지만 호준석의 뉴스인은 살아남았다.
2018년 4월 현재 뉴스인은 오점곤이 진행한다.
2018년 12월 3일자로 개편을 단행했다.
주요 개편사항은 평일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5개 프로(굿모닝 와이티엔, 뉴스N이슈, 더 뉴스, 뉴스Q, 뉴스나이트) 를 중심으로 개편했고, 5개 뉴스 프로와 뉴스출발과 940뉴스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YTN24를 방송하며 주말/공휴일엔 뉴스와이드와 YTN24를 중심으로 단순화시켰다.
이 개편을 통해 노종면이 10년만에 YTN 앵커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2020년 6월 1일 개편을 통해서 정시 편성이 깨어졌다.
하지만 편성표를 유심히 보면 경쟁 보도채널인 연합뉴스TV와 대응 편성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3. 상징
3.1. 로고
YTN 개국 이전 로고 | YTN 로고(1995-2000... |
개국 이전 로고 (1993년 ~ 1995년)
|
1세대 로고 (1995년 ~ 2000년)
|
YTN 로고(2000-2014... | YTN 로고 |
2세대 로고 (2000년 ~ 2014년)
|
3세대 로고 (2014년 ~ 현재)
|
3.1.1. 중장기 비전 (2014~ )
- 비전
- 핵심가치
3.1.2. 아젠다(방송지표)
- 다시 뛰는 코리아 (2004)
- 2005 비전 코리아 희망을 열자! (2005)
- 더불어 사는 우리 함께 가는 대한민국 (2006)
- Upgrade Korea: 나눔, 상생, 화합 (2007)
- 새출발, 희망한국! 화합과 도약 (2008)
- 희망한국, 힘모아 미래로! (2009)
- 글로벌 리더 G20 코리아! (2010)
- 행복한 사회 스마트 코리아 (2011)
- 나누는 행복, 따뜻한 사회 (2012)
- 도전과 혁신, 희망 한국 (2015)
- 힘찬 도약, 미래로! (2016)
- 상식·원칙·정의 바로 서는 대한민국 (2017)
- 올바른 사회, 희망찬 내일 (2018)
4. 지배구조
주주명
|
지분율
|
한전KDN
|
21.43%
|
한국인삼공사
|
19.95%
|
미래에셋생명
|
14.98%
|
한국마사회
|
9.52%
|
우리은행
|
7.40%
|
우리사주조합
|
0.20%
|
4.1. 민영화 추진
한겨레측에서 YTN의 지분인수 의지를 밝혔다.
2020년 10월 8일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가 공식적으로 밝혔는데, "한겨레 뉴스룸을 디지털뉴스룸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또한 젊은 독자와 교감하려면 영상 뉴스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에서 대구MBC의 지분 매매 과정을 민영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으로 보았듯이 YTN의 지분 매매도 민영화로 보게 된다면 매각 과정이 쉽지 않아보인다는 전망도 있었다.
현재 한국경제와 한국일보도 각각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지만, YTN 내부에서는 한국경제의 정파성을 이유로 들어 벌써부터 협상에 배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다만 한국경제TV와의 시너지를 본다면 같은 영상매체 사업자끼리 손을 잡아 파이를 키우고 손실을 줄여야 한다는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이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단 한국경제와 한국경제TV의 YTN 지분은 4.76%고, 인수TF까지 꾸렸다고.한겨레는 여당 의원실을 통해 YTN 대주주가 되는 것에 대해 법적 문제가 없는지 현실 가능성을 검토했고, 김현대 한겨레 사장은 지난 5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보도PP·종합편성채널 등 모든 선택지를 열어 놓고 나아가야 한다.
자금 조달은 상당 부분 자력으로 가능하다”고 밝히기 까지 했다고 한다.
한겨레에 매각하는 것을 골자로 기재부가 YTN의 지분 매각추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공기업을 상대로 의견까지 청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YTN 사내외 모두 청와대와 기재부가 준 공영언론사인 YTN 지분 매각설을 꺼낸 이후 주식시장이 혼탁해졌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주식이 2배가량 치솟으면서, YTN 사내에서도 "청와대와 방통위원장 등 여러 사람이 짜고 한겨레에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YTN을 준다"는 얘기까지 나왔기 때문에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대선에서, 총선에서 이겼다고 방송이 전리품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공기업 지분 30% 액면가는 500~600억원, 경영권 프리미엄, YTN 보유 부동산 등을 고려한 시장가는 2000억원까지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어 일부 노조원들을 정말 정부가 매각하려 한다면 YTN 구성원 모두 나서서 결사 항쟁할 것이라며 파업 의지도 밝혔다.
민영화를 할 거면 KBS와 MBC 등 공영방송사 전체를 놓고 봐야 하는데 YTN만 판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등 감정적인 반응도 쏟아졌다.
일부 시민단체나 언론노조 내부에서는 YTN을 민영화 할 것이 아니라 SBS를 공영화 하라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점점 일이 커지고 있다.
YTN 내부에서는 9월 한 달 간 한겨레 신문이 인수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이미 돌았는데, 근거로 언론 지형에서 종합편성채널을 운영하는 4개의 언론사가 모두 보수적인 색채라는 이유를 들어 정부에서도 균형을 실어줄 수 있고 무엇보다 민간 상업방송의 주식을 정부 공기업이 가지고 있다는 게 정부의 방송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한겨레의 경우 우리사주조합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특정 기업이나 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것.마침 YTN 노조는 "한국경제 YTN 지분 매입 운운, YTN에 대한 모욕"이라며 "현대차와 LG, SK, 삼성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지분 절반 이상을 소유한 이 경제신문이 YTN 인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저 ‘부동산 쇼핑’ 차원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오마이뉴스에서도 꾸준히 "'전경련 기관지'가 YTN 인수?" 노조·시민단체 반발 등의 기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여론은 급격히 한겨레 편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민영화와 별개로 2023년 이후에 세종시에 신사옥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겨레와 비슷한 시기에 세종시에 진출할 계획인데, 가칭 YTN 세종센터는 뉴스를 넘어 뉴미디어 시대에 시민들에게 스튜디오를 대여해줄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다만 사업 협약을 세종시장과 맺은건 사실이지만,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2020년 10월 8일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가 공식적으로 밝혔는데, "한겨레 뉴스룸을 디지털뉴스룸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또한 젊은 독자와 교감하려면 영상 뉴스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에서 대구MBC의 지분 매매 과정을 민영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으로 보았듯이 YTN의 지분 매매도 민영화로 보게 된다면 매각 과정이 쉽지 않아보인다는 전망도 있었다.
현재 한국경제와 한국일보도 각각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지만, YTN 내부에서는 한국경제의 정파성을 이유로 들어 벌써부터 협상에 배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다만 한국경제TV와의 시너지를 본다면 같은 영상매체 사업자끼리 손을 잡아 파이를 키우고 손실을 줄여야 한다는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이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단 한국경제와 한국경제TV의 YTN 지분은 4.76%고, 인수TF까지 꾸렸다고.한겨레는 여당 의원실을 통해 YTN 대주주가 되는 것에 대해 법적 문제가 없는지 현실 가능성을 검토했고, 김현대 한겨레 사장은 지난 5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보도PP·종합편성채널 등 모든 선택지를 열어 놓고 나아가야 한다.
자금 조달은 상당 부분 자력으로 가능하다”고 밝히기 까지 했다고 한다.
한겨레에 매각하는 것을 골자로 기재부가 YTN의 지분 매각추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공기업을 상대로 의견까지 청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YTN 사내외 모두 청와대와 기재부가 준 공영언론사인 YTN 지분 매각설을 꺼낸 이후 주식시장이 혼탁해졌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주식이 2배가량 치솟으면서, YTN 사내에서도 "청와대와 방통위원장 등 여러 사람이 짜고 한겨레에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YTN을 준다"는 얘기까지 나왔기 때문에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대선에서, 총선에서 이겼다고 방송이 전리품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공기업 지분 30% 액면가는 500~600억원, 경영권 프리미엄, YTN 보유 부동산 등을 고려한 시장가는 2000억원까지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어 일부 노조원들을 정말 정부가 매각하려 한다면 YTN 구성원 모두 나서서 결사 항쟁할 것이라며 파업 의지도 밝혔다.
민영화를 할 거면 KBS와 MBC 등 공영방송사 전체를 놓고 봐야 하는데 YTN만 판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등 감정적인 반응도 쏟아졌다.
일부 시민단체나 언론노조 내부에서는 YTN을 민영화 할 것이 아니라 SBS를 공영화 하라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점점 일이 커지고 있다.
YTN 내부에서는 9월 한 달 간 한겨레 신문이 인수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이미 돌았는데, 근거로 언론 지형에서 종합편성채널을 운영하는 4개의 언론사가 모두 보수적인 색채라는 이유를 들어 정부에서도 균형을 실어줄 수 있고 무엇보다 민간 상업방송의 주식을 정부 공기업이 가지고 있다는 게 정부의 방송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한겨레의 경우 우리사주조합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특정 기업이나 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것.마침 YTN 노조는 "한국경제 YTN 지분 매입 운운, YTN에 대한 모욕"이라며 "현대차와 LG, SK, 삼성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지분 절반 이상을 소유한 이 경제신문이 YTN 인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저 ‘부동산 쇼핑’ 차원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오마이뉴스에서도 꾸준히 "'전경련 기관지'가 YTN 인수?" 노조·시민단체 반발 등의 기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여론은 급격히 한겨레 편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민영화와 별개로 2023년 이후에 세종시에 신사옥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겨레와 비슷한 시기에 세종시에 진출할 계획인데, 가칭 YTN 세종센터는 뉴스를 넘어 뉴미디어 시대에 시민들에게 스튜디오를 대여해줄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다만 사업 협약을 세종시장과 맺은건 사실이지만,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5. 사옥
5.1. YTN타워 (2004 ~ 2014)
YTN타워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7 (남대문로5가) 구 YTN타워. 연합뉴스 사옥에서 세들어 살다가 2004년에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의 YTN타워로 본사를 이전하게 된다.
지금은 KB부동산신탁에 매각되어서 '와이즈타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 빌딩 16~18층에는 한국일보가 입주해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 3번 출구.1993년 회사 설립때부터 사용된 연합통신 사옥을 떠난 후 가진 첫 독립 건물이었다.
한때 본사였던 중구 남대문로5가의 YTN타워가 서울역과 숭례문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간추린 뉴스가 나오거나 광고 목록이 뜰 때 항상 나오는 풍경이 서울역, 숭례문, 그리고 계열사인 N서울타워다.
2014년 4월 마포구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긴 뒤에도 카메라는 철거하지 않았는지 계속 쓰이고 있다.
지금은 KB부동산신탁에 매각되어서 '와이즈타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 빌딩 16~18층에는 한국일보가 입주해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 3번 출구.1993년 회사 설립때부터 사용된 연합통신 사옥을 떠난 후 가진 첫 독립 건물이었다.
한때 본사였던 중구 남대문로5가의 YTN타워가 서울역과 숭례문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간추린 뉴스가 나오거나 광고 목록이 뜰 때 항상 나오는 풍경이 서울역, 숭례문, 그리고 계열사인 N서울타워다.
2014년 4월 마포구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긴 뒤에도 카메라는 철거하지 않았는지 계속 쓰이고 있다.
5.2. 뉴스퀘어 (2014 ~ 현재)
YTN 뉴스퀘어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76 (상암동) 층수 Information 18 17 16 미르미디어 15 케이블TV VOD(홈초이스) 14 13 한국미즈노 12 11 10 9 미래전략포럼TF팀, 마케팅국, 미디어사업국, 해설위원실, 기술국, 기술연구소, 선거단 8 YTN 라디오, RS-1~4, YTN DMB, TBS 테레비 7 대표이사, 상무이사, 감사, 기획조정실, 경영지원실, 총괄상무, 감사팀, 대회의실 6 편성팀, 종합편집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YTN 바로세우기 및 미래발전위원회, YTN 사이언스 5 시청자센터, 홍보시청자팀, 심의팀, 통합주조정실, 신호분배실, INSIDE YTN(홍보 투어코스), YTN2 4 보도국 편집에디터, 앵커팀, 디자인센터, TV-ST 1~3, 1~3부조정실, 디지털스튜디오, 디지털미디어랩, 분장실, 출연자대기실 3 보도국, 영상취재1·2부, 영상편집부, 영상아카이브팀, 디지털뉴스센터 2 글로벌뉴스센터, TV-ST 5·6, 5부조정실, YTN PLUS 1 YTN홀, INSIDE YTN(홍보 투어코스), 오픈스튜디오, 체험스튜디오현재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는 YTN 뉴스퀘어 신사옥.다.
5.2.1. 지하철역
- 수색역
- 디지털미디어시티역
5.2.2. 버스
- 디지털미디어시티 쪽 : 서울 버스 171, 서울 버스 172, 서울 버스 271, 서울 버스 470, 서울 버스 673, 서울 버스 710, 서울 버스 760, 서울 버스 771, 서울 버스 6715, 서울 버스 7013A, 서울 버스 7013B, 서울 버스 7019, 서울 버스 7711, 서울 버스 7715, 서울 버스 7730, 서울 버스 7737, 서울 버스 9711, 서울 버스 마포18, 고양 버스 730, 고양 버스 733, 파주 버스 7101, 공항버스 6012
- 수색역 쪽(굴다리 이용 약 10분 소요) : 서울 버스 270, 서울 버스 700, 서울 버스 740, 서울 버스 750, 서울 버스 7017, 서울 버스 7021, 서울 버스 7025, 서울 버스 7212, 서울 버스 7611, 서울 버스 7714, 서울 버스 7726, 서울 버스 7727, 서울 버스 7738, 서울 버스 7739, 고양 버스 66, 고양 버스 72, 고양 버스 77, 고양 버스 82, 고양 버스 075, 공항버스 6005
6. 역대 사장
- 초대 현소환 (1993. 9~1996. 9)
- 2대 정주년 (1996. 9~1998. 5)
- 3대 장명국 (1998. 9~1999. 8)
- 4대 백인호 (1999. 8~2003. 5)
- 5~6대 표완수 (2003. 5~2008. 5)
- 7대 김재윤 (2008. 5~2008. 7)
- 8대 구본홍 (2008. 7~2009. 8)
- 9~10대 배석규 (2009. 8~2015. 3)
- 11대 조준희 (2015. 3~2017. 5)
- 12대 최남수 (2017. 12~2018. 5)
- 직무대행 김호성 (2017. 6.~2017. 12, 2018. 5.~2018. 9)
- 13대 정찬형 (2018. 9~2021. 9)
- 14대 우장균 (2021. 9~)
7. 앵커, 기상캐스터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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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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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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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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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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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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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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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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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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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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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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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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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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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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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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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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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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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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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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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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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
|
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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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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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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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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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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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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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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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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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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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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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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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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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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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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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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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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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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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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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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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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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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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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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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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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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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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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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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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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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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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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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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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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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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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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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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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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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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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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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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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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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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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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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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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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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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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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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사이언스 앵커: 문지현, 조진혁
- YTN 라디오 아나운서: 이현웅, 최휘, 박귀빈, 이우영, 김영민, 노효상, 양수진
- 기상캐스터: 김수현, 유다현, 권혜인, 신미림, 박현실, 홍나실, 윤수빈, 원이다,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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