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출생 : 1985년 2월 9일 (37세), 서울특별시
국적 : 대한민국
학력 : 학동초 - 경원중 - 야탑고 - 경희대
신체 : 185cm, 80kg, O형
포지션 : 2루수, 1루수, 외야수
투타 : 우투좌타
프로입단 : 2003년 2차 9라운드 (전체 72번, 두산)
소속팀 : 두산 베어스 (2007~2022)
병역 : 예술체육요원
계약 : 2020 - 2022 / 19억원
연봉 : 3억원 (FA, 2022년)
등장곡 : Javi mula - Come on(Party favor remix)
응원가 : 나미 - 영원한 친구
가족 : 아버지 오병현, 어머니, 여동생 오혜원, 조카
2. 개요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하루만을 보고 1년을 버텼습니다.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 데일리 MVP 선정 후 인터뷰 다.
前 두산 베어스 소속 우투좌타 내야수. 두산 베어스의 원클럽맨이었다.
준수한 타격, 빠른 발, 뛰어난 야구 센스를 보유한 교타형 야수다.
초중반기에는 잦은 비신사적 플레이와 거친 욕설로 타팀 팬들에겐 비난을 받았으나, 경력이 쌓여갈수록 욕설과 비신사적 플레이도 많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이 지난 2019년 이후로는 극심한 에이징 커브를 맞으며 고전했고, 끝내 반등하지 못하면서 2022년을 끝으로 현역을 마감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몸이 조금 뻣뻣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하는 야구를 보면 뻣뻣한 몸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안 믿긴다.
"2014년 4월, 두산의 트레이닝 코치였던 스즈키 토시유키 트레이너 다.
자타공인 국대급 수비력과 그만의 엄청난 야구센스가 그의 야구 스타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4. 타격
타격에 관해서 빠른 발+호리호리한 체격+센스있는 주루와 많은 도루 수로 인해 단타 생산에 주력하는 똑딱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타자다.
데뷔 후 2010년까지는 홈런이 하나도 없었으나 주전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고 나면서부터는 은근히 높은 장타율을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2013년에는 순장타율이 .150을 넘겼고, 2013년부터 3년간은 장타율 4할대를 유지했으며 2015년에는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최주환에게 밀려나고 타율이 처참히 떨어진 2017년에도 330여 타석에서 홈런을 7방 때려냈다.
잠실이 홈인 것을 생각하면 중장거리 타자까진 애매하지만, 똑딱이까지는 절대 아닌 수준, 김태형 감독의 타격 지론에도 딱 맞다.
'덕 래타' 코치의 강의를 들은 2018년에는 타격기술까지 발전하여 5할의 장타율을 8월 1일 기준 기록하는 중. 다만 이 풀스윙 때문에 삼진이 은근히 많고 볼넷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2015년 이후의 기록만 보면 'O-swing%'가 리그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삼진이 많은데, 이는 풀스윙 때문에 전반적인 콘택트율 자체가 낮은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커리어 하이'를 갱신한 2018년 기록도 마찬가지. 이순철 해설위원도 오재원이 욕심을 버리고 간결한 스윙을 하면 리그 타격왕 경쟁을 할 선수라고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팬들은 오재원이 타격 슬럼프일 시기에 굉장히 답답해하는데, 이 인간이 컨택을 못 해서 컴팩트한 스윙을 안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똑딱이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김재환이나 오재일같은 거포 타입인 것도 아니라서, 출루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제발 풀스윙 좀 그만 하고 적절하게 컨택 위주의 스윙도 해 보라고 팬들이 거의 빌다시피 한다.
실제로 컨택 위주의 스윙을 한 날을 보면 안타를 괜찮게 뽑아내는 걸 볼 수 있는데 그러고 또 얼마 안가 풀스윙 일관을 해대니 팬들은 답답함을 넘어서 화남을 느낄 정도.그리고 이 풀스윙 덕에 헛스윙 삼진을 당할 때 정말 심하게 비틀댄다.
다른 팀에서 '헛스윙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하주석과 박용택보다 더한 수준이며, 일부에서는 나가시마 시게오를 떠올리기도. 두산 선수들이 오재원의 타격폼을 흉내 낼 때 이 비틀거림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다.
5. 수비 및 주루
주로 2루수, 간간히 1루수로 출장하지만 내야 전 포지션의 소화가 가능하다.
아마추어 시절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프로 입단 후에는 유격수, 3루수 백업으로도 종종 나왔었으나 프로에서 유격수, 3루수 붙박이로 뛸 만큼의 강견은 아니라서 2루수, 1루수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도 어깨만 좀 안 좋을 뿐 다른 수비 센스는 탁월하며, 빠른 발만큼이나 수비 범위도 상당히 넓다.
전임 주전 2루수 고영민에 이어서 잔디 위 2익수 수비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데, 본인의 말로는 고영민과 정근우의 수비에서 장점만을 뽑아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주로 같이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유격수 김재호와 함께 2010년대 중반 두산의 내야 수비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매 경기 수비 시프트의 (물론 100% 다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을 감독이나 수비코치의 개입 없이 둘이서 어떻게 할 지 결정한다고 한다.
참고로 이 유격수 - 2익수 시프트의 주 희생자는 다름 아닌 최형우. 일명 '최형우 시프트' 움짤모음 오재원은 삼나쌩 클럽의 일원인데 수비에서도 그런 셈이다.
두산 육상부 소속다운 빠른 발에 위시한 주루센스 역시 뛰어나다.
'11시즌에는 리그 도루왕을 거머쥐었고, 2013~2015시즌에 3시즌 연속 30도루를 기록하였다.
승부욕이며 근성도 엄청나서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는 밑에서 서술. 본인 역시 수비와 주루에 있어서는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단적인 예시로 2013년 한국시리즈 직후 했던 인터뷰에서다.
Q: 그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 결정적 장면 가운데 플레이오프 3차전 9회 초가 있습니다.
당시 LG는 1사 2루 동점 기회를 잡았는데요. 그때 기자석에서 2루수였던 재원 씨를 집중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재원 씨가 1루수 오재일을 1루 라인 쪽으로 붙도록 지시하더군요. 혹여 1·2루 간으로 타구가 날아갈까 염려했는지 오재일은 순간 머뭇머뭇했지만, 재원 씨가 가슴을 두들기며 ‘나를 믿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더군요. 결국 오재일은 1루 라인 쪽으로 빠지는 타구에 대비해 수비 위치를 조정했고, 재원 씨는 유격수 김재호와 센터 쪽으로 빠지는 타구를 잡기 위해 2루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내야 수비위치 조정은 ‘보이지 않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오재원: 확신이 있었어요. 좌익수 임재철, 우익수 민병헌이면 국내 최고의 강견들이었어요. 가뜩이나 1사 2루면 외야진이 전진수비를 펼쳐요. 외야로 웬만한 타구가 가면 충분히 홈 승부가 가능한 상황이었죠. 여기다 당시 투수가 ‘포크볼러’ (정)재훈이 형이었어요. 포크볼은 대부분 배트 앞부분에 맞으면 1·3루 라인 쪽으로 흘러가거든요. 그리고 또 고려한 게 타자였어요.Q: 타자?오재원: 그때 타석에 정성훈 선배가 섰어요. 좋은 타자시잖아요. 정 선배의 타격 자세를 보니까 포크볼에 속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해선지 평소보다 다리를 조금 드시더라고요. 그 자세로 스윙하면 십중팔구 중견수 앞 타구가 나올 것 같았어요. 좌·우익수 쪽 타구면 모를까 중견수 쪽 타구가 나오면 사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재호한테 그랬어요. “우리는 무조건 중견수 쪽 타구를 막자.” 그리고 1루수 오재일한테 “1루 라인 쪽으로 붙으라”고 했어요. 1·3루 라인 쪽을 흐르는 타구가 나오면 무조건 2루타 이상일 게 뻔했거든요. 처음엔 재일이가 고개를 갸웃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슴을 두들기면서 “나 한 번 믿어보라”고 했어요. 1·2루간, 3·유간 타구는 좌익수와 우익수의 어깨를 믿기로 했죠.Q: 예상이 정확히 적중했습니다.
오재원: 임재철 선배와 (민)병헌이, 포수 (최)재훈이가 잘한 덕분이었어요. 이기고 나서 우리 선수들한테 그랬어요. “이게 야구냐? 그래 이것이 야구다!”라고요(웃음).Q: 입대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든 야구선수가 그렇듯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여부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많은 야구전문가는 재원 씨를 대표팀 2루수 후보로 꼽고 있습니다.
오재원 : 2루수요? (양손을 흔들며)아닙니다.
제 자린 하나밖에 없어요.Q :어디…?오재원 : 백업이죠(웃음).Q :자신만의 경쟁력을 이야기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오재원 : 저 같은 도루왕 출신 대주자가 어디 있습니까(웃음). 수비도 진짜 자신 있어요. 주루, 수비는 맡겨만 주시면 120% 활약을 펼칠 각오와 자신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했었다.
이미 그 이름난 두산 수비진의 사령관이었던 셈이다.
또한 2015년 FA 계약 후 인터뷰에서도 "구단에 절 어필한 부분은 수비였습니다.
(중략) 김재호와 함께 수비에서만큼은 팀에 공헌을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도 제 다리가 건재하는 한 수비에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6. 허슬 플레이 및 야구 센스
황재균: (도쿄 대첩 당시 타석 영상을 보며)펜스도 안맞았는데 저걸 빠던을 한다고? (웃음)심수창: 근데 저런 퍼포먼스가 있기 때문에 자기 팀 선수들은 좋아할거 같아.황재균: 저런거 좋아요. 대표팀에 있으면 이런 파이팅이나 이런 게 엄청 좋아요.심수창: 상대팀에겐 기분 나쁠수 있지만, 자기팀 선수들은 힘을 얻을수 있잖아.황재균: (오재원 같은 스타일은)같은 팀에 있으면 좋아요.스톡킹 EP.26-3 황재균 편 中
오재원 특유의 센스와 근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는데 2015년 8월 9일 잠실더비의 이 영상이다.
오재원, 합의 판정으로 간 역동적인 홈 태그 피하기.1루 주자 김현수가 런다운에 걸리면서 시간을 끌어줬고 그 틈을 타 3루 주자 오재원이 홈으로 파고들었는데, 처음엔 아웃으로 선언되었다가 합의판정을 요청하고 판정이 번복되었다.
합의판정을 어필하면서 최경철이 플레이를 확실히 끝내지 않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홈플레이트를 찍는 건 덤. 알고 보니 상대팀 포수 최경철이 공을 반대쪽 손으로 잡은 채 빈 글러브로 태그를 했고, 오재원이 태그를 피하면서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바로 벤치에 합의판정 사인을 보낸 것이었다.
끝까지 끈질기게 홈에서 승부한 오재원은 이 날만큼은 갓재원 칭호를 듣게 되었고, 최경철은 해당 플레이에서 주루방해 홈블로킹+블루투스 태그+끝까지 아웃이라고 우기기까지 3단 콤보를 시전, 판정이 번복되자 그 때서야 합의판정 제한시간 10초가 지났다고 항의한 LG 양상문 감독과 함께 사기꾼이라며 제대로 까였다.
첨언하자면 당시 직관하던 팬들은 오재원이 합의판정을 신청하자 하다하다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누구도 세이프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최경철의 글러브가 빈 글러브였던 걸 발견한 사람이 홈에서 정신없이 태그를 피하고 있던 오재원이었던 것이다.
위의 예시도 마찬가지고 합의판정 성공률이 엄청나다.
오재원이 울상을 지으며(…) 네모를 그리면 거의 100% 성공이라고 봐도 되는 수준이다.
본인의 아웃/세이프 판단에 확신이 있는지 심판의 판정이 나오기 전에 아웃임을 확신하고 덕아웃으로 먼저 들어가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대개 아웃 판정이 난다.
또한, 수비 시에 센스가 매우 뛰어나다.
최정의 추가 진루를 막은 페이크 동작으로 유명하며 포수의 도루 저지 송구가 빠졌을 때 빈 글러브를 가지고 태그하는 것처럼 주자에게 갔다 대서 주자를 속여 추가 진루를 막는 플레이가 자주 나온다.
1루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낮은 궤도의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나오면 순간적으로 공을 원바운드 처리해 직선타를 병살타로 만드는 플레이도 심심찮게 보여준다.
야구를 보는 눈과 센스가 워낙 탁월하기에 은퇴 후에도 지도자 혹은 교육자로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 많은 이들이 예상한다.
7. 우리혐
2015년 플레이오프 5차전 이후 야갤에서 극적인 이미지 급상승이 일어나게 되는데, 투수로 등판한 나성범의 초구에 혀를 내두르는 순진한 모습에 반한 야갤럼들이 갑자기 우리혐, 혐블리, 커혐둥이 등의 별명을 지어주면서 갑자기 재평가가 일어났다.
때 마침 평상시에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였다는 점도 재발굴되면서, 야갤돌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국가대표로 프리미어 12에 출전하게 되자 국혐이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프리미어 12 도중에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직접 던져줬다고 한다.
오재원은 왜 배팅볼을 던졌을까 이유는 팀내 배팅볼 투수들이 힘들까봐서라고. 같은 대회 중 불펜 포수들에게 삼겹살 파티를 열어줬다고 한다.
이름 없는 유니폼 입고 궂은 일 마다않는 ‘불펜 포수’ 4인방심지어 어떤 KIA팬이 우리혐 디시콘을 만들어서 돡갤에 보급해주기도 했다.
혐 디시콘 만들어왔다 이제는 우리혐 사진 한장만 올리면 야념글에 등극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 같다.
우리혐 셀카봤냐? 심지어 이 셀카는 돡갤에서 야갤로 수출된 게 아니라 야갤이 가장 먼저 올린 셀카다.
야갤 개념글이 사실상 야구와 상관없는 코갤러들이 정복한 상태라는 점에서 꽤나 놀라운 일.2015년 11월 19일, 일본과의 프리미어 12 4강전에서, 3대 0으로 패색이 짙던 9회 초 대타로 나와서 선두타자 안타를 때려내면서 막혀 있던 타선의 혈을 뚫었고 한국의 대 역전극의 서막을 열어 젖혔다.
한국이 4대 3으로 역전 하고 타자일순된 후 2사 만루에서 다시 타석에 들어섰는데, 그는 이 빠던으로 일본 선수들과 팬들의 멘탈을 박살내버리는데 성공했다.
비록 담장을 넘기진 못했지만, 빠던 한방으로 야갤돌 자리를 완벽히 굳히는데 성공했다.
실제 경기 직후 일본 주요 포탈사이트에 올라온 일본 네티즌들의 의견 중 경기 중 가장 굴욕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순간을 '역전된 순간'이 아니라 '오재원의 빠던'을 본 순간으로 꼽는 의견들이 꽤 많았다.
심지어 그가 9회초 대타로 나와 첫 타석 안타 및 득점 후 타자일순으로 다시 두번째 타석을 맞이하게 되었을때는 2ch에 '쟤는 대체 뭐냐? 그냥 무섭다', '수염 기르고 좌타자인 게 한국의 이치로 느낌이 난다.
', '뭔가 큰 거 하나 할까봐 불안하다.
' 등 그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의견들까지 나왔을 정도. 그러니 그의 빠던 순간부터 타구가 잡히기 전까지 그들의 심정이란 긴 설명 필요 없이 정말 참담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걸로 2015년 시즌 내내 안좋던 이미지를 급호감으로 바꾼건 덤.이에 "오열사" "오세 바티스타" 등의 별명도 생겼다.
별명들이 기발하고 신선하고 웃기며 거기에 본인 캐릭터성이랑 조화를 이루면서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된 케이스다.
심지어 기사까지 떴다.
1000만 안티의 마음을 돌렸다는 표현을 썼다.
기사로 모자라서 SBS 스포츠 뉴스에 단독 인터뷰까지 떠버렸다! SBS, 오재원, 비호감 악동에서 근성의 화신으로.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비호감 이미지에서 국민 타자로 이미지가 세탁된 이용규, 정근우 등의 길을 걸어갈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팬들은 "다른 팀일때는 되게 짜증났는데 우리 팀이 되니까 되게 든든하다"는 의견이다.
프리미어 12 대회를 끝내자마자 황재균, 손아섭 등과 함께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사복을 입고 온 다른 선수들과 달리 혼자서 두산 베어스 야구잠바를 입고 훈련소에 입소했다.
이 때 오재원은 FA신청을 낸 상태였는데, 이렇게 되면 훈련기간 도중 우선협상기간이 지나버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4주훈련을 마치고 나오면 원소속팀 두산과 다시 협상을 할 수 있게 돼서 사실상 두산과 재계약하겠단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예상대로 수료식 후 두산과 FA계약을 무사히 마쳤다.
2016년 스프링캠프 때는 홍성흔이 '네 안티 나한테 왔다'며 축하(?)해 주었고 신의 한 수였다며 프리미어 12의 오재원을 따라하기도 했다.
오재원은 skySports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과의 마음이 통했던 거 같다고 했다.
오열사로 안티팬 청산했다는 말에는 좀 있으면 안티는 또 생긴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4일 경기, 김성근에 의해 굴려진 송창식이 대량실점을 하게 되자, 자기 타석에서 루킹삼진으로 물러났는데, 오히려 더이상의 혹사를 막아주었다며 매너삼진의 호응을 얻는 등 조금씩 이미지가 호감형으로 바뀌는 중. 이때 은호새 (은근히 호감가는 새끼) 라는 호칭도 생겨났다.
아까 매너삼진 영상을 보고 밑에 있는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Be호감도 있다.
이후 2020년 7월 15일 송창식이 은퇴를 선언하자 이 날의 모습이 다시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이 뿐 아니라 2016년 4월 21일 경기에서는 공을 놓친 뒤 자신의 플레이를 자책하며 글러브를 패대기 치는 장면이 나왔는데 작년 같으면 인성 드립이 나왔을 장면에서 오히려 "프로라면 저런 승부욕도 필요하다.
", "실책하고 나서 실실 쪼개는 것보다는 낫다.
"면서 오히려 칭송을 받는중.이러한 컬트적인 인기에 힘입어 오재원 마이너 갤러리가 생겼다.
주소.이후 17년을 거치면서 특유의 여과 없는 표현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종종 있었으나 2016년 이전만큼 욕을 먹은 적은 없었고, 특히 2018년 시즌 들어와 성적과 이미지가 동시에 커리어 하이를 찍으면서 16년에 뒤집은 이미지가 더 확고해졌다.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 처리를 당한 일이나 올스타전에서 이대호의 부적절한 행동을 즐겁게 패러디하는 등 줏대와 센스를 겸비한 모습을 보여주며 오재원에 대한 평가는 베어스를 넘어 KBO 전반에서 계속 좋아지고 있다.
이정도면 KBO의 안티 히어로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지경이다.
야구 외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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