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출생 : 1958년 7월 2일 (64세),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現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신분 : 미결수 (2022년 9월 22일 ~ 현재)
현직 : 제21대 국회의원국민의힘 용인시 갑 당협위원장
재임기간 : 제7대 경기도 용인시장,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본관 : 하동 정씨 문헌공파
학력 : 포곡국민학교 (전학)신갈국민학교 (졸업)신갈중학교 (졸업)유신고등학교 (졸업)경희대학교 (행정학 / 학사)경희대학교 (국제경영학 / 석사)강남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용인대학교 (행정학 / 명예박사)
가족 : 배우자 황미희, 슬하 1남 1녀
병역 :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신체 : 173cm
지역구 : 경기 용인시 갑
의원 대수 : 21
소속 위원회 : 환경노동위원회
주요 경력 : 제7대 경기도 용인시장경희대학교 테크노경영대학원 겸임교수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단장용인문화재단 이사장한국기업경영종합연구원 수석연구원중앙일보 수도권 취재본부장용인YMCA 실행이사용인의용소방대연합회 명예회장용인시장애인체육회 회장용인시기흥구배드민턴협회 명예회장용인시 줌마렐라축구단 총단장
2.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이전엔 중앙일보 수도권취재본부장 등을 지낸 언론인이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민선 6기 제7대 경기도 용인시장을 지냈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현재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구는 경기도 용인시 갑이다.
2022년 9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구속 수감 중이다.
3. 정치 입문
1958년 7월 2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에서 태어났다.
포곡초등학교 재학 중 기흥면으로 이주하여 신갈초등학교, 신갈중학교, 수원유신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경희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동대학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를 하였다.
간혹, 경희대학교 캠퍼스 출신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연고지가 수원-용인지역이라 생긴 오해인 듯하다.
확인 결과, 서울캠퍼스 출신이다.
경희대학교 학부 졸업 후,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수도권 취재본부장 등을 지냈다.
특히 용인시의 난개발로 인한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당차량사업소 내부에 전철역 설치 제안끝에 보정역 지상임시역사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덕분에 철도청의 편견을 깨고 용인시 교통난 해소한 공으로 감사패를 받았다.
이후에는 삼성전자, 한화생명 등에서 고문으로 근무하다가,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4. 용인시장 당선
한나라당으로 처음 입당하여, 후에 새누리당 중앙당 수석부대변인, 새누리당 경기도당 수석대변인, 새누리당 용인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친이계의 박준선과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용인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김민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년 후인 2014년에 제6회 지방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경기도 내에 여당 당선자가 적은 상황이었음에도 약 47.5% (18만 8,787표)의 지지를 받아 새정치민주연합의 양해경 후보와 현직 시장인 무소속 김학규 후보를 등 다른 후보들을 큰 표차로 따돌리고 민선 6기 제7대 용인시장에 당선되었다.
5. 경기도 용인시장
2014년 7월 1일에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역대 모든 용인시장들과 달리 구설수가 전혀 없어서 재선은 시간문제라고 기대되었다.
만약 재선에 성공하면 역대 최초의 재선 용인시장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용인시민들의 많은 기대를 받으며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다시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백군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고, 이리하여 이번에도 용인시엔 재선 시장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재선에만 실패했을 뿐, 퇴임 후 모두 구속된 전대 시장들과는 달리 상당히 좋은 시정 평가를 받았고, 실제 득표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보다 되레 많았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역대급으로 참패한 탓에 대세를 뒤집지 못한 게 주요 패인이었다.
개인 능력만으로는 박근혜 정부 탄핵 여파와 도널드 트럼프 - 김정은의 미북정상회담 이슈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당장 보수의 심장으로 통하는 구미시에서까지 민주당이 승리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래도 각종 계파갈등, 상당한 비호감도 등 자유한국당이 존폐 위기에 처했던 당시 수도권 대도시에서 개인기로 40% 이상 득표율을 가졌으니 고양시, 수원시, 성남시 등에 출마한 여타 한국당 후보들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비단 수도권 뿐 아니라 웬만큼 보수세가 강한 지역들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득표율을 가져온 지역 자체가 거의 없었다.
용인은 특히 경기도 100만권 대도시라서 특히 눈에 띄었을 정도였다.
고로 보수당 입장에서 여타 지역들은 참패 수준이었다면, 용인은 선전했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여담으로, 선거 과정에서 '젊다!ㆍ깨끗하다!ㆍ일 잘했다!' 구호를 내세웠다.
공식 포스터에도 나올 정도로 강조. 이중 '젊다!'는 상대 후보들에 비해 젊다는 것을 어필한 것이고, '깨끗하다!'는 말 그대로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아온 역대 시장들과 다른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 잘했다!'라는 구호는 과거형이라는 점에서 좀 특이할 수 있는데, 시장 재임 시절의 시정에 대한 호평을 지지로 연결하려고 했던 것으로 읽힌다.
실제로 40% 넘는 유의미한 득표를 받았다는 점에선, 이러한 '인물론' 식 선거 전략이 꽤 먹힌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다른 대부분의 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당색을 지우고 무소속에 가까운 모습을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것 또한 비호감도를 낮추는 데에 역할했을 것이다.
그 덕분인지 2년 후 총선에서 무난히 용인시 갑 후보가 되었고, 당선까지 되었다.
6. 행정 및 정책
민선 6기 용인시장 재임 시절에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추진했다.
전임 용인시장들이 대개 구속과 부정 평가를 피하지 못해서, 업적을 남긴 용인시장으로 존재감이 큰 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인시 최대 난제였던 경전철 환승할인 가능하게 한 것과 채무제로 선언이 있다.
특히 용인은 빚 많은 도시로 유명했어서, 이 두 가지는 큰 호평을 받았다.
7. 사람들의 용인
- '사람들의 용인' 슬로건 #
- 용인시 마스코트 '조아용' #
정찬민 시장 대에 용인시의 대표 슬로건과 마스코트가 탄생시켰다.
시정 비전이었던 해당 슬로건은 용인 죽전의 랜드마크인 아르피아타워와 기흥역에 새겨지는 등 적극 홍보된 편이다.
시장이 바뀌면서는 '사람중심 새로운 용인'으로 일부 수정되었고, 조아용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재디자인된 상태이다.
최근 들어 조아용은 용인시 공식 상징물로 등록되면서 완전히 출세했다.
다.
- 용인시 인구 100만 도시 달성 : #
인구가 100만 명을 넘으면 대도시 특례를 적용받아 행정적 지원이 한 단계 격상된다.
재정비촉진지구 지정과 계획을 결정할 수 있고, 시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설립할 수 있는 승인권도 갖게 되고, 늘어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시장 1명도 더 늘릴 수 있는 등 행정 조직도 확대된다.
정찬민 시장은 내실 있는 용인시가 될 수 있도록 도시경쟁력을 강화하고 항상 시민의 입장에서 계획하고 실천하겠다고 하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