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출생 : 1963년 12월 6일 (58세), 전라북도 정읍시
본관 : 행주 은씨
재임기간 : 제21대 경기도 성남시장,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가족관계 : 1남 2녀 중 둘째
학력 : 서울신림초등학교 (졸업) 신림여자중학교 (졸업)미림여자고등학교 (졸업)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 학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 석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 박사)
혈액형 : O형
종교 : 성공회 (신명: 세실리아)
의원 대수 : 19
경력 :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정책실장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부의장민주당 노동담당 원내부대표제19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제21대 경기도 성남시장 (민선 7기)
2.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인이다.
노동 전문가이며 더불어민주당 소속 19대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으로 재임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3번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초선 의원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를 놓고 새누리당의 이준석 당시 비상대책위원과도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열띤 토론을 벌인 바 있다.
2012년 6월부터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비롯해 박원순 시장 희망서울 정책자문, '청년유니온' 자문 등 노동문제에 관한 다양한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내의 노동분야 전문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2015년 7월 20일, 전날에 있었던 국가정보원 직원 공동성명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본인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 글을 통해 20여 년 전에 안기부로부터 매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심장 판막 이탈증, 폐렴, 폐결핵, 종양, 장염, 후두염 및 밀실공포증과 고소공포증에 시달렸으며, 이후 결핵이 장결핵으로 악화되어 교도소에서 장을 50cm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후 인터뷰에서 체포되는 과정에서 허리를 심하게 걷어 차여 그 후유증으로 만성 척추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감옥에 복역하는 중에도 여러 번 구타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후유증 때문인지 유산도 했다고 한다.
체포 되었을 때 국제엠네스티에서 양심수로 지정하였고, 건강이 악화되자 적절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1995년 7월 엠네스티에서 법무부 장관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한편 전 세계 회원들에게 긴급 행동(Urgent Action)을 발행하여 국제적 문제가 된 바 있다.
1 2다.
3. 생애
해병대 중령 출신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꽤 유복하게 자라왔다고 한다.
동네가 서울특별시 관악구여서 자신과 달리 친구들 상당수는 판자촌에서 자랐다.
그로 인해 인상적인 사건을 2번 겪었다고 한다.
하나는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놀다가 친구를 장난 삼아 밀었더니 벽을 뚫고 옆집으로 나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벽이 뚫린다는 것 자체에서 놀랐고, 그 점에서 자신의 집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중학교 때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을 찾아 갔더니 흙집에서 세를 살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은 부유하게 자랐었기에 당시 그런 생활수준의 격차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성공회 서울교구 영등포성당에 출석했던 신자이다.
한때는 수녀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만류로 수녀의 길을 포기하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로 진학했다.
이후 줄곧 노동문제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4.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
1992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의 핵심 인물로 분류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복역하였다.
은수미는 본명이 아닌 조명혜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사노맹의 정책실장 겸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고, 약 6년간 복역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기 사면 및 복권되어 출소했다.
사노맹에서 함께 활동하고 비슷한 기간 옥살이를 했던 백태웅은 미국유학을 갔지만, 은수미는 1998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에 복학하여 졸업한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다.
5. 한국노동연구원
2005년 2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여의도에 있는 한국노동연구원에 재직하게 된다.
그가 처음 입사할 당시, 운동권 경력으로 기관에서 부담스러워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워커홀릭 기질과 노동 이슈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으로 엄청난 연구 프로젝트를 소화하고, 여러 편의 연구 보고서와 연구 논문을 냈다.
주로 노동문제,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여성노동, 노동유연화와 노사 관계 등의 전문가로 활약하였으며, 이때에만 해도 신문 기고 글 쓰는 것 외에 언론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중적 유명세는 전혀 없었지만, 업계에서는 노동 부문 전문가로서 상당히 인지도가 높았다.
그에 힘입어 민주통합당의 상위 번호 공천을 받게 된다.
6. 19대 국회의원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은수미가 노동 문제 비정규직 분야 전문가이며 관련 정책 입안 능력도 탁월하다고 밝혔다.
인기 시사 팟캐스트 방송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 비정규직 탄생을 합법화시켰던 신한국당(지금의 새누리당)의 노동법 날치기를 다뤘던 편에 출연해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부당 대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7.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혹자는 말한다.
테러방지법이 되더라도 사람이 밥은 먹고 살겠지.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주인으로서의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어떤 억압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테러방지법이) 그런 것을 못 하게 할 수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누차 얘기하는 것.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연설에서.다.
2월 24일, 테러방지법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에 참여할 것으로 의견을 밝혀 많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그것도 이종걸 원내대표가 계획들 중에서 밀었던 필리버스터에 대해 김광진 의원이 총대를 매고 나서겠다고 자청하자 이에 "아마 우리가 질 겁니다.
하지만, 우리부터 지는 게 낫지 어떻게 국민더러 지라고 합니까?"라고 말하며 김광진 의원에게 힘을 보태 필리버스터를 가능케 했다.
김광진 의원이 약 5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하며 버텨주는 동안 충분한 자료를 모은 다음, 2월 24일 오전 2시 30분 필리버스터 3번째 발언자로 발언을 시작했다.
박한상 전 의원의 10시간 15분의 기록을 넘기고, 12시 48분에 필리버스터를 끝냈다.
마무리 발언이 특히 큰 반향을 일으킨 탓인지, 다음 날 오전까지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등재되어 있었다.
종전 기록은 전날에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같은 당의 김광진 의원이 세운 5시간 34분이다.
이 최장 기록 이후 은수미 의원의 고문 후유증이 여러 언론에서 재조명되었다.
훗날 이 건 이종걸 의원이 12시간 32분으로 깨고, 2020년에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12시간 47분으로 기록을 깨버렸다.
이 당시 새누리당의 김용남 후보가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민주당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상승되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수원시 병은 민주당에게 넘어가고 만다.
▲ 마무리 발언 영상발언 이튿날 저녁의 LA 타임스 월드 섹션의 헤드라인이다.
필리버스터 보도에 사진이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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