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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란? 어떤 일이 있어서 핫할까? (재산,등번호,나이,골에는)

by 채은아빠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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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이름 : 박지성朴智星 | Park Jisung
출생 : 1981년 3월 30일 (41세),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국적 : 대한민국
본관 : 밀양 박씨 (密陽 朴氏)
신체 : 175cm
직업 : 축구선수 (윙어, 미드필더 / 은퇴)홍보대사, 축구행정가
소속 : 선수 :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 PSV 에인트호번 (2013~2014 / 임대), 기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2020 / 앰버서더)SBS (2018, 2022 / 해설위원)대한축구협회 (2017~2018 / 유스전략본부장)전북 현대 모터스 (2021~ / 클럽 어드바이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21~ / U-16 코치)
국가대표 : 100경기 13골 (대한민국 / 2000~2011)
등번호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1번, 7번교토 퍼플 상가 - 12번, 7번PSV 에인트호번 - 21번, 7번, 33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3번퀸즈 파크 레인저스 - 7번주발오른발(양발)학력세류초등학교 (졸업)안용중학교 (졸업) 수원공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체육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종교불교부모아버지 박성종(1958년생), 어머니 장명자(1959년~2018년)배우자김민지(2014년 7월 24일 ~ 현재)자녀딸 박연우(2015년 11월 19일생)아들 박선우(2018년 2월생)응원가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Billy Ray Cyrus - Achy Breaky Heart# : 등번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1번, 7번교토 퍼플 상가 - 12번, 7번PSV 에인트호번 - 21번, 7번, 33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3번퀸즈 파크 레인저스 - 7번 : 주발 : 오른발(양발) : 학력 : 세류초등학교 (졸업)안용중학교 (졸업) 수원공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체육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 : 종교 : 불교 : 부모 : 아버지 박성종(1958년생), 어머니 장명자(1959년~2018년) : 배우자 : 김민지(2014년 7월 24일 ~ 현재) : 자녀 : 딸 박연우(2015년 11월 19일생)아들 박선우(2018년 2월생) : 응원가 :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Billy Ray Cyrus - Achy Breaky Heart#
등번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1번, 7번교토 퍼플 상가 - 12번, 7번PSV 에인트호번 - 21번, 7번, 33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3번퀸즈 파크 레인저스 - 7번
주발 : 오른발(양발)
학력 : 세류초등학교 (졸업)안용중학교 (졸업) 수원공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체육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
종교 : 불교
부모 : 아버지 박성종(1958년생), 어머니 장명자(1959년~2018년)
배우자 : 김민지(2014년 7월 24일 ~ 현재)
자녀 : 딸 박연우(2015년 11월 19일생)아들 박선우(2018년 2월생)
응원가 :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Billy Ray Cyrus - Achy Breaky Heart#

2.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스포츠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1호다.
2000년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PSV로 돌아와 1년을 뛰고, 무릎 부상 여파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국가대표로서는 2002년 월드컵 주전 멤버부터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장 등까지 맹활약했다.
은퇴 이후엔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구단 앰버서더 등으로 다년간 활동, 축구 행정가로도 경험을 쌓다 2021년부터는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의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이다.
동시에 런던의 QPR에서 U-16 코치도 겸하면서 코치 자격증을 따기 위한 연수도 하고 있다.

3. 행적 요약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정착한 부모와 살았으나 태어난지 몇년 안되어 아버지의 사정으로 어릴 땐 부친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에서 자랐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원시로 이사하여 수원 산남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축구부 해체로 이후 세류초등학교로 전학갔다.
이후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명지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명지대 1학년 재학 중이던 2000년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입단하여 프로 데뷔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히딩크호의 황금세대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강 조별리그 본선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후반 70분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견인하는 등 2002년 4강 신화를 이끌고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81분 극적인 동점골로 프랑스에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했고, 대한민국 월드컵 역대 최초 원정 첫승이라는 기록을 새로 썼으며,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대회 32강 조별리그 본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월드컵 역대 최초 원정 16강 진출과 월드컵 최종 15위라는 대기록을 이끌었다.
3개의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모두 1골씩 득점하여 3연속 골을 기록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이자 FIFA 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다 Man of the Match기록을 갖고있으며 대한민국 역대 FIFA 월드컵 본선 최다 승리와 본선 최다 득점기록 등의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로 한국 축구를 빛낸 자랑스러웠던 스트라이커 중 한 사람이다.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으나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장한 직후 만 29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히딩크호 23인 엔트리에선 차두리와 더불어 2002 월드컵 당시까지 K리그에 소속된 적이 없는 단 2명뿐인 멤버다.
다만 차두리는 10년 넘게 지난 뒤 FC 서울에 입단하여 2골을 넣었다.
따라서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하게 K리그 출장경력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클럽에서는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한 이후 일본 1,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월드컵을 거치며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로 이적했다.
네덜란드 시절 초기에는 부진과 리그 부적응이 겹쳐 부상 재활보다도 고통스운 시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리그에 적응한 뒤 주전 자리를 꿰차고 팀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 달성에 기여했다.
이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던 EPL의 명문 빅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다.
그리고 정착에 성공하면서 맨유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이자 최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선발 출전,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FIFA 클럽 월드컵우승을 한 선수이며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5인)와 UEFA 올해의 팀 후보(55인, LM 3위)로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후보 50인에도 선정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교토 시절과 국대 초창기에는 윙백과 중앙 미드필더로 시작해서 2002 월드컵을 전후로 교토에서도 윙포워드로 정착했고, PSV 시절은 쭉 윙포워드로 뛰었다.
코엘류호와 본프레레호에서는 많이 차출되진 않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빈도수가 늘기 시작했고, 아드보카트호가 출범했던 2006월드컵 직전까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다가 월드컵 본선에서는 다시 4-3-3의 윙포워드로, 그후 허정무호가 출범하고는 4-4-2의 왼쪽 윙어로 가장 많이 출전했다.
맨유에서는 4-4-2의 윙어를 가장 많이 소화했고 이따금씩 4-3-3의 윙포워드로도 출전했다.
09/10 시즌과 10/11 시즌에는 때때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세컨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말년으로 접어들수록 중앙으로 스위칭하는 움직임이 잦더니 맨유 말기와 QPR, PSV 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번갈아가며 출전했다.
공격수라는 의견과 미드필더라는 의견이 자주 충돌하는데, 공격 진영 수비 진영 가릴것 없이 뛰어다니는 스타일이다.
다만 본인이 가장 오랫동안 뛰었던 팀에서의 역할이 미드필더에 조금 더 가깝고, 본인의 성향도 미드필더 성향이다.
커리어를 통틀어 박지성의 장점은 왕성한 활동량과 전방압박, 포지션 대비 상위권의 수비력,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적인 경합,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유틸성, 공간 이해를 통한 오프 더 볼과 연계라고 할 수 있다.
PL 스탯을 기준으로 박지성의 평균 90분당 태클 성공 횟수는 3회, 태클 성공률은 73%, 인터셉트 2회, 리커버리 4회, 경합 성공률은 54%에 달하며, 이러한 수비적 능력을 통해 상대 풀백의 공력력을 차단하거나 중원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데에 보탬이 된다.
풀타임 기준 평균 10~11km를 자랑하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전방에서부터 조여오는 숨막히는 공격적인 압박 축구(전방 압박)를 구사할 수 있게 하며 무엇보다 압박 타이밍이 좋아 높은 지점에서 볼을 탈취하거나 드리블 하는 선수 시야 밖에서 나타나 공을 탈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높은 공간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공격 상황 시 동료의 공간을 창출하거나 미드필드 싸움에선 패스 활로를 열어주며 상대의 공격 시엔 예측을 통해 패스 길목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
이러한 좋은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세컨볼을 마무리하거나, 신장이 크진 않아도 간간히 헤더 득점을 나오기도 했다.
박지성의 공간 창출은 두가지 방법인데, 하나는 본인의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켜 동료가 공을 받거나 침투할 공간을 만들거나, 상대가 자신에게 붙을 때까지 기다린 후 동료에게 패스를 건내 공간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포지션이 좌,우를 구분하지 않은데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수 있어 때때로 세컨톱이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경기 중에 포지션 스위칭 또한 자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능적인 파울 유도 능력으로 어떻게든 공격권을 유지시켰고 동료와의 연계 또한 수준급이라 박스 근처에서 연계를 통한 찬스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공격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공수 밸런스와 전술적인 움직임이 중요해지는데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박지성은 공수 밸런스를 맞추는데에 가장 적합하며 퍼거슨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기용했던 이유이다.
박지성의 플레이 스타일을 두고 영국의 대형 정론지 중 하나인 더 가디언에서는 박지성을 두고 당시 새로운 유형의 윙어인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관련 기사단점으로는 윙어로서 빈약한 공격포인트 생산 능력이다.
나름 공격적 재능이 살아있었던 J리그나 에레디비시에서 조차 리그 공격포인트 10개를 넘기지 못했다.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도 밸런스가 좋지 않아 선수들과의 경합에서 우위를 점히지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슈팅과 발목 힘이 좋지 않은 편인데, 때리더라도 골대를 벗어나거나 힘없이 골키퍼에게로 향한다.
이 때문인지 공격형 미드필더로 정착하진 못했다.
기본적으로 박지성은 박스 안팎에서의 과감한 슈팅보다는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를 선호했고 그로 인해 애초에 슈팅을 적극적으로 때리려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빅 찬스 생성 능력 또한 부족하다.
좌우로 벌리거나 동료와의 연계를 통한 패스의 퀄리티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방을 통한 과감한 스루패스나 택배 크로스는 많이 나오지 않으며 안정적인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선호한다.
게다가 무릎 부상 이후로는 역동적이었던 1대1 돌파 능력 또한 많이 죽어 사이드에서 돌파를 시도할 법한 순간에도 동료에게 백패스를 건네는 일이 자주 나온다.
잦았던 부상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박지성의 무릎 부상은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 부상이 자주 발생하여 스쿼드에 포함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었다.
맨유에서는 월드클래스 수준의 공격진과 함께해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지만, 본인이 공격적으로 이끌어 가야 했을 QPR에선 이러한 단점들이 부각되었다.
거기다 역습 가담은 확실했지만 자신의 전진 능력은 뛰어나지 않아 역습 상황에서 백패스를 하는 등 본인이 공격의 주체가 되는 경우에 템포를 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본적인 주력은 무릎 부상 이전엔 폭발적이었으나 무릎 부상 이후로는 평균적인 수준에 미쳤고, 피지컬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키핑과 드리블이 단점이라고 꼽는 사람도 있지만, 공을 건네받아 안정적으로 넘기는 수준은 되고 동료를 이용한 탈압박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이 모자른 반쪽짜리 선수였다면 수준 높고 빠른 템포와 거친 몸싸움을 자랑하는 프리미어 리그와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활약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 시절 맨유에 7년이나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박지성의 장점과 단점이 본인의 주 포지션인 윙어의 통상적인 역할과는 상반되고, 그러한 장단점이 아주 뚜렷히 구분되어 현재까지도 여러 매체나 함께했던 동료들이 언급하는 특이한 유형의 선수이다.
다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클럽과는 조금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기본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크랙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다만 박지성의 자서전에 따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공격적 능력이 본인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조연의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자신이 주연의 역할을 맡아야 하니 상반된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5. 전술적 가치 및 입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교토 퍼플 상가 시절에서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했었다.
PSV 에인트호번 시절에는 초반에는 부상보다 힘들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힘겨운 시기가 있었지만, 적응한 후에는 거의 풀타임 주전으로 출장했다.
체력 관리 차원에서 결장시킬 정도. 당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움직임이 왕성하고 역동적이었다.
공격 시에는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볼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 공간을 찾아 움직였고 수비 시에는 전방부터 압박을 전개하고 윙백과의 뛰어난 협력 플레이를 보여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서 공격과 수비에서 공헌하였으며, 중요 경기에서는 맨 마킹 등의 임무를 부여받기도 하였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현역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유럽과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수준 높은 구단이었으며 매 시즌 타 구단보다 컵대회를 훨씬 많이 치르는 트레블 목표의 우승권 빅클럽이었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극심한 미드필더진의 로테이션은 필수였기도 하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핵심 주전급 선수를 제외하곤 늘 로테이션 시스템을 고집했다.
하지만 전술상 필요한 경기, 특히 수비를 두텁게 가져가야 하는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자주 선발로 출전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윙어로서 뛰어난 개인 능력을 활용한 돌파 등의 공격적 능력이 크게 강조되진 않고 수비적인 역할에 치우쳐져 있었다는 것.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의 7시즌간 평균적으로 14~15위권의 출전시간을 보장받았으며 시즌 출전 2000분을 넘긴 시준은 05/06 , 08/09 , 10/11 시즌 3개 시즌뿐이다.
10/11시즌과 08/09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 선발출전 및 리그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데다 팀도 리그에서 우승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 05/06시즌은 본인이 가장 많이 출전했지만 팀은 칼링컵 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06/07 , 07/08 시즌은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이상을 날려 많은 출전을 하지 못했으나 각각 출전시간대비 높은 공격포인트 , 챔피언스리그 맹활약 등의 성과가 있었다.
09/10시즌은 초반-중반에는 그야말로 암울했지만 1월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11/12 시즌은 영과 나니, 발렌시아에게 완전히 밀려 부상이 없음에도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2012-13 시즌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의 이적이 확정되고 팀을 떠날 때 그에게 편지 한통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에 2007년 심각한 무릎 수술관련기사을 한 박지성의 무릎 부상을 늘 염두에 뒀기 때문에 박지성이 원하는 출전시간을 못 채워줘 미안하며 충성심있고 열심히 뛰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관련기사맨유의 레전드인 폴 스콜스도 이런 박지성의 맨마킹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스콜스는 "훈련장에서 최악의 선수가 누군지 아는가. 박지성이다.
정말 악몽이었다.
나를 마크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붙어 다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라고 말했다.
이어 "박지성이 피를로를 상대한 일을 기억하는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하루 종일 체력을 유지했다.
"라고 언급했다.
당시 똑같은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박지성만큼의 태클과 마킹 능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박지성만큼의 수비가담과 활동량을 가졌고, 더욱 빠른 스피드/뛰어난 크로스 능력으로 공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 조합은 10-11 시즌 맨유가 강팀과의 대결에서 계속 이길 수 있었던 이유이며 언론에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퍼거슨은 보통 오른쪽에 발렌시아를 배치하고 그 뒤를 수비적인 풀백을 기용해서 발렌시아의 적당한 수비가담과 뛰어난 공격능력을 부각시켰고 왼쪽에는 공격능력이 뛰어난 에브라를 배치시켜서 박지성의 공격력 부족을 메꾸고 에브라가 올라간 빈공간 커버를 박지성에게 시켰다.
강팀 상대로는 이게 황금 밸런스지만 약팀을 상대로는 수비력에 덜 신경써도 되고 공격력을 끌어올려야되기 때문에 박지성보다 훨씬 공격적인 나니가 기용되었던 이유기도 하다.
현대축구에서 윙어는 단순히 측면공격 뿐 아닌 적의 측면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도 겸하는데다 한쪽 측면이 공격을 나가면 다른 한쪽 측면은 포지션을 지키며 2선 라인을 조율하는 편이 안정적이다.
PSV 시절 04/05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러한 능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전 시즌 챔스 준우승팀이었던 모나코와의 16강 경기에서 에브라를 발랐고 리옹전에서도 이영표와 협력으로 좌측을 밀어버렸다.
특히 4강인 AC 밀란전에서 혼자서 한쪽 측면을 휘젓다시피 하면서 1인 압박축구를 펼친 장면은 유명하다.
2009년 5월 5일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선 아스날의 측면 공격수 시오 월콧을 경기장에서 지워버렸는데 그 날 월콧은 평점 4점을 받았다.
맨유 시절 박지성이 강팀과의 경기에 많이 나온 이유가 이것이다.
강팀들끼리 붙을 때는 약팀이랑 할 때와는 다르게 개인 능력으로 찍어누르는 플레이를 할 수 없고 더 강한 팀과 할 때는 더더욱 그럴 수 없다.
결국 전술적이고 팀플레이로서 평가되는 요인들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돼있으므로, 맨유 공격루트에 많은 옵션을 제공하고 전술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박지성을 출전시키는 것이다.
박지성은 이런 팀의 의도에 잘 부응하며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박지성이 이런 역할을 통해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경기들은 대표적으로 2008년 UCL 4강 바르셀로나전, 2009년 UCL 4강 2차전 아스날전, 2010년 UCL 16강 AC밀란전, 2011년 UCL 8강 첼시전, 10-11 EPL 리그 후반기 첼시전 등이 있다.
역설적으로 부족한 공격력 때문에 상대적 약팀과의 대결에는 기용 1순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역할로 나왔음에도 부진한 경기도 있었다.
EPL 11-12 시즌 후반기 맨시티전이 대표적인 케이스. 퍼거슨 감독의 자서전을 보면 맨시티전에서 야야 투레를 봉쇄시키기 위해 박지성을 출장시켰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사냥감을 쫓아다니는(marauding run)' 능력이 필요했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투레를 봉쇄하는데 실패했고 이 경기가 끝나고 해외 언론의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2010년 이후 축구 전술에서 각광받는 게겐프레싱, 두줄수비 등 공격형 윙어라도 수비가담을 안하면 욕먹는 전술들이 트렌드화 되고 또한 2010년대 중반 이후 3백 전술이 큰 유행을 하게 되면서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 공격에 다재다능한 윙백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가자 많은 축구팬들은 박지성을 다시금 한번 떠올렸다.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맨마킹 능력, 준수한 공격까지 갖춘 선수중 대표주자다보니 오히려 현대 축구에서 빛을 보지 않았을까 라는 점이다.
현지에서도 박지성과 퍼거슨의 은퇴 후 여러 호사가들과 전문가들이 박지성 같은 좋은 수비가담과 높은 전술적 이해도를 가진 선수가 지금의 맨유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6. 대회 기록

  •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J2리그: 2001천황배: 2002
  • J2리그: 2001
  • 천황배: 2002

 

  •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2013~2014)에레디비시: 2002-03, 2004-05KNVB 베이커: 2004-05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3
  • 에레디비시: 2002-03, 2004-05
  • KNVB 베이커: 2004-05
  • 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프리미어 리그: 2006-07, 2007-08, 2008-09, 2010-11풋볼 리그컵: 2005-06, 2008-09, 2009-10FA 커뮤니티 실드: 2007, 2008, 2010, 2011UEFA 챔피언스 리그: 2007-08FIFA 클럽 월드컵: 2008
  • 프리미어 리그: 2006-07, 2007-08, 2008-09, 2010-11
  • 풋볼 리그컵: 2005-06,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2007, 2008, 2010, 2011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7-08
  • FIFA 클럽 월드컵: 2008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4위: 2002AFC 아시안컵 3위: 2000, 2011
  • FIFA 월드컵 4위: 2002
  • AFC 아시안컵 3위: 2000, 2011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7. 개인 수상

  • 발롱도르 후보: 2005 #
  •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2004-05 ##
  • UEFA 올해의 팀 후보: 2005 (LM 3위) # #
  • FIFA 월드컵 원더풀 골 베스트 8: 2018 #
  • 유로스포츠 월드컵 명예 리저브: 2010 #
  • FIFA 올해의 최우수 아시아 선수: 2008 #
  • AFC 아시안컵 우수 선수 4인: 2011 #
  • J리그 디비전 1 올스타: 2002 #
  • J리그 디비전 1 올해의 우수 선수: 2002 #
  • MLS 올스타전 MVP: 2011 #
  • K리그 올스타전 MVP: 2014 #
  • KFA 올해의 선수: 2010
  • KFA 올해의 골: 2002, 2010
  • AFC 아시아 월드컵 역대 베스트 XI: 2020 #
  • AFC 아시아 월드컵 영웅: 2020 (1위) #
  • PSV 100주년 레전드: 2013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달의 선수: 2009년 03월, 2010년 11월ㆍ12월
  • 슈퍼매거진 슈퍼어워드 올해의 아시아 축구선수상: 2008 #
  • IFFHS 올타임 아시아 드림팀: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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