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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대한 소개 (주가,서비스센터,배당금,채용)

by 채은아빠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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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창립일 : 1969년 1월 13일
창업주 : 이병철
대표이사 : 한종희, 경계현
임원진 : 회장 공석 (권한대행 이재용 부회장)회장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회장)부회장 이재용 (권한대행 체제) 대표이사 부회장 한종희 (DX부문장) 대표이사 사장 경계현 (DS부문장)사장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 박학규 (경영지원실장) 사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기타 사외이사 제외)
주소 : 본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 (매탄동) 삼성디지털시티, 사업장 : 삼성디지털시티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 (매탄동)구미1사업장경상북도 구미시 1공단로 244 (공단동)구미2사업장경상북도 구미시 3공단3로 302 (임수동)기흥사업장(나노시티)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로 1 (농서동)화성사업장(나노시티)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로 1-2 (반월동)온양사업장(나노시티)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배방로 158 (북수리)광주사업장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단6번로 107 (오선동)평택사업장경기도 평택시 삼성로 114 (고덕동)서울연구소 • 종합기술원서울특별시 서초구 성촌길 56 (우면동)미국연구소665 Clyde Avenue, Mountain View, CA 94043인재개발원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로 59 (서천동)삼성디자인교육원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 725 (논현동) : 삼성디지털시티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 (매탄동) : 구미1사업장 : 경상북도 구미시 1공단로 244 (공단동) : 구미2사업장 : 경상북도 구미시 3공단3로 302 (임수동) : 기흥사업장(나노시티)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로 1 (농서동) : 화성사업장(나노시티) :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로 1-2 (반월동) : 온양사업장(나노시티)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배방로 158 (북수리) : 광주사업장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단6번로 107 (오선동) : 평택사업장 : 경기도 평택시 삼성로 114 (고덕동) : 서울연구소 • 종합기술원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성촌길 56 (우면동) : 미국연구소 : 665 Clyde Avenue, Mountain View, CA 94043 : 인재개발원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로 59 (서천동) : 삼성디자인교육원 :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 725 (논현동)
삼성디지털시티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 (매탄동)
구미1사업장
경상북도 구미시 1공단로 244 (공단동)
구미2사업장
경상북도 구미시 3공단3로 302 (임수동)
기흥사업장(나노시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로 1 (농서동)
화성사업장(나노시티)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로 1-2 (반월동)
온양사업장(나노시티)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배방로 158 (북수리)
광주사업장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단6번로 107 (오선동)
평택사업장
경기도 평택시 삼성로 114 (고덕동)
서울연구소 • 종합기술원
서울특별시 서초구 성촌길 56 (우면동)
미국연구소
665 Clyde Avenue, Mountain View, CA 94043
인재개발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로 59 (서천동)
삼성디자인교육원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 725 (논현동)
국가 : 대한민국 (다국적 기업)
규모 : 대기업
유형 : 이동전화기 제조업
시가총액 : 455조 2,200억원 (KRW)
| (뉴스룸) | (반도체) | | |
기업 정보 자본금8,975억 1,382만(KRW) (2021년 기준)매출액연결: 279조 6,047억 9,862만 5,087원 (2021년 기준)별도: 199조 7,447억 490만 4,913원 (2021년 기준)영업이익연결: 51조 6,338억 5,561만 9,779원 (2021년 기준)별도: 31조 9,931억 6,185만 2,043원 (2021년 기준)순이익연결: 39조 9,074억 5,031만 5,391원 (2021년 기준)별도: 30조 9,709억 5,395만 7,558원 (2021년 기준)자산총액연결: 426조 6,211억 5,816만 2,146원 (2021년 기준)별도: 251조 1,121억 8,409만 7,521원 (2021년 기준)부채총액연결: 121조 7,212억 2,650만 3,635원 (2021년 기준)별도: 57조 9,184억 5,170만 9,702원 (2021년 기준)상장여부상장기업시장정보상장시장유가증권시장 (1975년 ~)런던증권거래소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편입지수코스피KRX100KOSPI200종목코드KS: 005930 (보통주)KS: 005935 (우선주)직원 수266,673명 (2022년) : 자본금 : 8,975억 1,382만(KRW) (2021년 기준) : 매출액 : 연결: 279조 6,047억 9,862만 5,087원 (2021년 기준)별도: 199조 7,447억 490만 4,913원 (2021년 기준) : 영업이익 : 연결: 51조 6,338억 5,561만 9,779원 (2021년 기준)별도: 31조 9,931억 6,185만 2,043원 (2021년 기준) : 순이익 : 연결: 39조 9,074억 5,031만 5,391원 (2021년 기준)별도: 30조 9,709억 5,395만 7,558원 (2021년 기준) : 자산총액 : 연결: 426조 6,211억 5,816만 2,146원 (2021년 기준)별도: 251조 1,121억 8,409만 7,521원 (2021년 기준) : 부채총액 : 연결: 121조 7,212억 2,650만 3,635원 (2021년 기준)별도: 57조 9,184억 5,170만 9,702원 (2021년 기준) : 상장여부 : 상장기업 : 시장정보 : 상장시장 : 유가증권시장 (1975년 ~)런던증권거래소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 : 편입지수 : 코스피KRX100KOSPI200 : 종목코드 : KS: 005930 (보통주)KS: 005935 (우선주) : 직원 수 : 266,673명 (2022년), 자본금 : 8,975억 1,382만(KRW) (2021년 기준), 매출액 : 연결: 279조 6,047억 9,862만 5,087원 (2021년 기준)별도: 199조 7,447억 490만 4,913원 (2021년 기준)
영업이익 : 연결: 51조 6,338억 5,561만 9,779원 (2021년 기준)별도: 31조 9,931억 6,185만 2,043원 (2021년 기준)
순이익 : 연결: 39조 9,074억 5,031만 5,391원 (2021년 기준)별도: 30조 9,709억 5,395만 7,558원 (2021년 기준)
자산총액 : 연결: 426조 6,211억 5,816만 2,146원 (2021년 기준)별도: 251조 1,121억 8,409만 7,521원 (2021년 기준)
부채총액 : 연결: 121조 7,212억 2,650만 3,635원 (2021년 기준)별도: 57조 9,184억 5,170만 9,702원 (2021년 기준)
상장여부 : 상장기업
시장정보 : 상장시장 : 유가증권시장 (1975년 ~)런던증권거래소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 편입지수 : 코스피KRX100KOSPI200, 종목코드 : KS: 005930 (보통주)KS: 005935 (우선주)
직원 수 : 266,673명 (2022년)

2. 개요

Inspire the World, Create the Future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는 대한민국에 본사를 두고 전자제품을 제조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다국적 기업이다.
창사 이래로 세계 시장에서 매우 큰 성공을 이루어냈으며, 현재 가장 인지도 높은 한국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3. 설명

주소지 상 본사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 (매탄동) 삼성디지털시티다.
이전에 본사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근처의 삼성타운에 있어 본사가 삼성타운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2016년, 미래전략실을 제외한 삼성타운에 있는 사무동까지 모두 삼성디지털시티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임과 동시에 삼성의 메인 사업부이기도 하다.
코스피 시장의 최대 거물. 신제품 판매 부진 소식만으로 NYSE, 나스닥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닛케이의 시총마저 1% 이상 쪼그라들게 하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로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일단 시가총액만 무려 600조원을 넘겼으니... 삼성전자 보통주 한 종목이 코스피 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합치면 삼성전자 보통주 주가가 고점 대비 75% ~ 80%대인 2015년 10월 11일 기준으로도 200조 원을 넘어 2015년 10월 11일 기준 시가총액 2위부터 5위까지 차지하는 나머지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삼성전자를 절대 넘길 수 없고, 삼성전자 보통주를 제외한 10위까지 포진한 기업들까지 합쳐도 넘길 수 없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140여 개의 삼성전자 본사와 계열사와 자회사를 모두 포함한 매출을 전부 합쳐놓은 연결 매출액이다.
연결재무제표라는 것은 일단 자회사들의 실적을 지분에 상관없이 모회사의 실적에 합산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연결재무제표 상 당기순이익을 구한 후 모회사에 귀속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눠 표기하는 정도에 그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10조원의 매출과 1조원의 순이익을 냈고, 70%의 지분을 차지하는 자회사인 A사가 5조 원의 매출과 3,00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면 연결재무제표는 매출 15조 원 / 당기순이익 1조 3,000억 원으로 계산 후 당기순이익에서 지배주주인 삼성전자의 몫 1조 2,100억원(1조원 + 2,100억원(3,000억 × 0.7)이라고 계산하고 나머지 900억원은 소수주주지분으로 처리한다.
실례로 2010년도 상반기 코스피 상장사들의 연결매출 합은 약 3,900억 달러, 동기 GDP는 4,455억 달러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결합된 기업들의 매출을 합하면 이미 GDP를 넘어버린다.
저런 논리대로라면 나머지 대중소 비상장기업들 영세업체, 개인사업자들은 다 놀거나 GDP를 깎아먹었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GDP의 정의는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일정한 기간(보통 1년)에 걸쳐 새로이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부가가치 또는 모든 최종재의 값을 화폐단위로 합산한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이라면 각 단계에서의 부가가치 상승분을 더 하는 것으로 매출금액이 단계마다 과장되어 나와 과 기업들의 매출액과 GDP의 상관관계는 별로 없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으로 계산하게 되면 한 나라 안에서 중간재가 생산될 경우, 이를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 대기업에 딸려있는 모든 하청기업은 GDP에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각 경제주체들의 매출액을 다 더해버리면 GDP를 가볍게 넘는 일이 생겨버리는 것이며 이를 통해 매출액을 가지고 GDP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DRAM, 플래시 메모리 및 하드디스크, SSD, 메모리 카드 등의 반도체 부분과 LCD 디스플레이, PDP 디스플레이, OLED 디스플레이 등의 디스플레이 부분, 그리고 TV, DVD 플레이어, 블루레이 플레이어 및 홈시어터 시스템, 셋톱박스 및 프로젝터 등의 영상가전 부문, 휴대폰,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등의 휴대용 가전, 데스크탑과 모니터, 노트북, UMPC, ODD 기기, 프린터 및 복합기, 팩스, 태블릿 컴퓨터 등의 컴퓨터 사업부문,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전기오븐, 진공 청소기와 에어컨 등의 가전부분 등 60종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이유로, 항상 반독점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일기업이기도 하다.
삼성그룹 전자/전기사업부문 핵심 계열사이지만 삼성전자 자체도 상당한 문어발을 자랑한다.
삼성그룹에서도 가장 큰 계열사이며, 주력 사업분야는 B2B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및 모바일 비메모리 반도체, 그리고 B2C 분야에서는 스마트폰 및 각종 가전 부문이 뽑힌다.
무선통신장비는 화웨이, 에릭슨, 노키아 등에 이어 세계 6위 업체이다.

4. 1969년

1968년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이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1969년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했으며 1969년 12월 삼성전자-산요전기-스미토모상사와의 합작법인인 삼성-SANYO전기가 지금의 삼성디지털시티 부지에 설립되었다.
사실 삼성이 동양방송을 소유하던 시절이니까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대규모로 만들어 팔면 TV 수상기와 라디오의 대수가 늘어나게 되고 삼성전자에서 생산된 TV와 라디오를 구입한 고객들이 TBC 프로그램을 시청/청취하면 삼성에게 더 많은 광고료가 들어오는 구조가 되어 삼성이 이중, 삼중으로 이득을 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전자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 삼성과 럭키금성은 사돈 지간이었다.
1957년 삼성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가 럭키금성 구인회의 3남 구자학과 결혼했다.
이병철과 구인회는 같은 경남 출신이면서(이병철은 의령, 구인회는 진주) 진주 지수보통학교 동문 관계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자녀끼리 혼사도 맺었지만 삼성의 전자 사업 진출을 계기로 양가의 밀월 관계가 망가진다.
삼성은 과거부터 비료, 조미료, 설탕, 밀가루, 모직, 언론 등의 사업에 진출하며 중앙정보부의 비호 아래 정경유착으로 세를 확장하던 대표적인 기업이다.
동시에 LG의 전신인 럭키금성은 화학, 전자 등 삼성과 다른 분야에 진출해 있었다.
그런데 이병철이 1969년 4월 27일자 중앙일보에 <전자공업의 오늘과 내일>이란 칼럼을 기고해 전자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하자 럭키그룹의 구인회는 사돈이 하는 분야에 끼어들어서 경쟁하려 한다며 진노했다고 한다.
이숙희는 이 상황 때문에 집안에서 곤란한 상태에 빠져, 여러 차례 친정에 와서 아버지 이병철에게 전자 사업에 대해서 하소연을 했고 이병철은 딸이 시가(媤家) 편만 든다며 분노해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이때 데릴사위처럼 계열사 중앙개발 및 호텔신라 대표를 맡았던 구자학도 삼성을 떠나 럭키로 복귀했다.

5. 1970년대

1970년 삼성-산요전기 측은 흑백 TV를 생산해 이듬해 파나마에 처음 수출했고, 삼성전자도 1970년 백색가전 및 음향기기를 생산했다.
1973년 삼성전자는 삼성일렉트릭스를 합병한 후 이듬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고, 1975년 삼성산요가 '삼성전기'로 바꿨다가 1977년 삼성전자에 합병되었다.
1977년 흑백 TV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1978년 업계 최초로 미국에 현지법인을 뒀고, 1979년 한국 최초로 VTR과 전자레인지를 생산했다.
참고로 당시 한국 내 라이벌은 금성사와 대한전선-대우전자, 화신소니, 화신전기, 아남전자 등이 있었다.
흑백TV(이코노)와 냉장고(하이콜드), 세탁기(은하)같은 백색가전을 만드는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당시는 대일무역 정상화 이전 시절, 즉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 시절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이 직접 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때문에 삼성과 같은 기술력이 없는 기업도 일본 기업의 기술과 제품을 라이센싱하여 제조해 판매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일제보다 품질이 떨어졌지만 애초에 한국 내수시장에는 일제 제품이 없으니 당연히 한국 제품끼리만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냉장고 방식에 대한 일화가 상당히 유명했는데 삼성과 금성은 간냉식, 대한전선은 직랭식을 채택했었다.
문제는 직랭식은 구조적 특성 상, 성에가 끼기 쉽고 냉동 효율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졌는데 삼성에서 당시 간냉식을 채택한 하이콜드 냉장고를 내놓으면서 "서리가 없어요"란 캐치프레이즈로 대한전선을 디스했고 금성도 눈표냉장고로 미투 마케팅을 펼치면서 결국 혼자 직랭식을 택한 대한전선은 경쟁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가전사업부가 대우그룹에 인수되어 대우전자가 된다.
초기 대우전자 냉장고가 직냉식을 채택했다는 증거는 대우 로얄 120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코노TV도 순간수상이란 점을 강조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스위치 켜면 화면이 바로 나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진공관식 흑백TV는 브라운관 전자총 부분을 20초 ~ 1분정도 예열시켜줘야 화면이 나오는 방식이었는데 당연히 전기도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
당시 생활 수준과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제 아무리 TV를 가질만한 수준의 가정이라도 열뻗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처음으로 스위치 켜자마자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는 TV를 내놓으니 절전형TV라며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즉 삼성은 이때부터 상당한 마케팅 수완과 광고전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6. 1980년대

1980년대만 해도 삼성이 일본의 전자기업들을 추월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이 트리니트론과 워크맨, VHS 등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뽐내던 시기였다.
이건희는 "양은 우리가 제일인데, 기술은 소니가 최고다.
언제 따라가겠나?"라고 말했고 삼성전관(현 삼성SDI) 사장에게 "다른 요구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하나, 소니를 따라 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한 디지털 기반으로 바뀐 오늘날 삼성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자산업의 아이콘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30년 전 삼성에 기술이전을 해준 산요전기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80년 삼성반도체를 합병한 후 반도체 개발에 적극 나서며 같은 해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했고, 1983년 미국 뉴저지 주에 현지 TV공장을 차린 뒤 1984년 사명을 삼성전자(주)로 변경했다.
1986년부터 '휴먼테크'라는 기업 PR 카피를 내세우며 같은 해 세계 최소형/최경량 4mm VTR을 개발했고, 1987년 경기도 용인군 기흥읍에 삼성종합기술원을 열었다.
1988년 미국 마이크로 파이브 사를 인수하며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하고 1989년 부문별 대표이사제 개편 후 광주전자를 설립하였으며, 정보통신부문에서 컴퓨터사업을 별도 부문으로 독립시켰다.
1986년부터 <휴먼테크>라는 기업 PR 카피를 내세웠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지금 잘 쓰이지 않지만 오늘날도 삼성 주관의 휴먼테크 논문 대상 등에 알게 모르게 남아있다.

7. 1990년대

1991년 휴대폰 개발 후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고, 국내 최초로 양키본드를 발행하고 전사 통합경영 체제로 조직을 개편했다.
1994년에 256M D램, 1996년에 1G D램도 최초로 개발했다.
1997년 30인치 TFT-LCD를, 1998년 128MB SD램 / 128MB 플래시 메모리. 1999년에 MP3 휴대전화 및 3D TFT-LCD 모니터를 세계 최초로 각각 개발해냈으며, 인텔로부터 1억불 투자를 받았다.
다른 한편 1998년에 부천 전력용 반도체공장을 페어차일드코리아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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