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출생 : 1952년 2월 7일 (70세), 충청남도 천안시
국적 : 대한민국
거주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본관 : 순천 김씨
직업 : 기업인
현직 : 한화그룹 회장한화 이글스 구단주
학력 : 서울장충초등학교 (졸업)장충중학교 (졸업)경기고등학교 (졸업) 멘로 대학 (경영학 / 학사) 드폴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 석사) 서강대학교 (경영학 / 명예 박사)
부모 : 아버지 김종희, 어머니 강태영
형제자매 : 누나 김영혜남동생 김호연
배우자 : 서영민
자녀 : 장남 김동관차남 김동원삼남 김동선
종교 : 성공회 (세례명: 프란시스)
2.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한화그룹 회장, KBO 리그 한화 이글스 구단주.
3. 생애
1952년 2월 7일 한화그룹의 창업주 김종희와 강태영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종희는 생전에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 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
”며 “어차피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 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 호연지기를 키울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1981년 김종희가 지병인 당뇨병 합병증과 신부전증 등으로 고생하다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한국화약그룹을 이끌게 되어 재계서열 6위 초거대 기업으로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다.
남동생 김호연과 10여년간 상속 다툼을 벌인 끝에, 김호연이 빙그레를 가지고 독립했다.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바뀐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B2C가 아닌 한국화약보다야 식품회사인 빙그레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광고 효과가 있기 때문에 빙그레 이름을 붙였던 것. 비슷한 사례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경우가 있다.
누나 김영혜도 1996년 제일화재를 이끌고 독립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제일화재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다시 한화그룹에서 인수합병했다.
장인은 내무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서정화 국민의힘 상임고문. 큰아버지 김종철도 1980년대 한국국민당 총재를 지낸 정치인이며, 작은아버지 김종식도 정치인이다.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범한화가는 꽤 독실한 모태 성공회 신자들이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어머니와 아내도 독실한 신자다.
국내에는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보다 인지도가 다소 밀리는 성공회에서 가장 유명한 신자일 듯. 소년 시절엔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 활동을 했으며, 1997년에는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었고, 성공회대에 일부 대금을 면제해 주는 형태로 대학본부 건물을 지어주어서, 건물 이름이 승연관이 되었다.
한때 건물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다.
4. 의리왕
언론에서 의리 있는 남자라고 자주 다룬다.
화끈한 성격으로 유명해서 고객에 대한 신용과 의리를 강조한다.
한화그룹의 가족적인 분위기나 그에 따른 회장님의 여러 일화를 봐도 그렇다.
이는 부전자전이다.
이리역 폭발사고 때 아버지 김종희는 자기 재산 90억 전부(지금 물가가치로 무려 5,000억원 이상)를 피해자와 이재민들을 위하여 사용했다.
지금의 90억과 1977년 당시 90억의 가치가 천지차이임과 이후에 벌어진 다른 대형사고에서 사건 책임자들이 사과만 하고 물질적인 지원을 해준 적이 거의 없음을 생각하면 대단히 양심적인 케이스다.
참고로 1978년에 완공된 저 유명한 은마아파트의 분양가가 당시 돈으로 2,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지금 시세로 비교해 보면 100배는 차이가 나나 대략 계산해도 50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서울 프라자호텔 전면 리모델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텔 문을 3개월 동안 닫게 하자, 개장공사가 끝날 때까지 쿨하게 모든 직원(600여명)에게 60일 혹은 90일이나 유급휴가를 줬다.
또한 IMF 외환위기 당시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넘길 때 돈을 20~30억원 덜 받더라도 100% 고용승계를 반드시 지키라는 조건으로 매각협상을 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자금지원도 하고, 진보적인 학회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진보지(예를 들어 월간 말)에 꾸준히 그룹 광고를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과 신학 등에서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한 대학인 성공회대를 후원하고 있고 재정지원 뿐만아니라 성공회대 학생들을 갤러리아 등 계열사에 인턴으로 고용해주고 정식 채용까지도 해준다.
이사장까지 지냈다.
아무리 성공회 신자라지만 재벌 총수가 진보 성향이 강한 대학, 더 정확하게는 학교 경영권이나 금전적 혜택을 기대하지 않고 이런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성공회 교리가 워낙 국내 개신교나 사회 전반의 시선에서 리버럴해 보이고 사회적으로 추태로 비난받는 일에 거의 끼지 않는 덕이 클뿐, 대부분의 성공회 신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다.
따라서 매우 보수적인 신자들도 많을 뿐더러 극우나 '태극기부대' 성향인 신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과 그 일가도 성공회 신앙을 갖고 있다.
1995년 뉴욕 미주본부로 발령을 보냈지만 교통사고로 하반신 척수마비가 되어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 이모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키고 계속 근무하도록 미국 지사로 보내주었다.
또한 징역 기간이 끝나자 그 동안 심려끼쳐 죄송하다며 한화 전 직원에게 보너스를 얹어주기도 했다.
최말단 갤러리아백화점 캐셔가 받은 돈이 무려 50만원.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북한의 잠수한 경로를 한국에 유출해줘 간첩 혐의로 처벌받은 재미동포 로버트 김은 감옥도 가고 한국 정부도 선을 그어서 어려운 상태였는데 딱히 인연도 없던 김승연이 애국 동포라고 생활비를 대줘서 어려움을 넘겼다.
1999년 지금은 대전의 자랑이 된 대덕테크노밸리가 세워진 것도 김승연의 결단 덕분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우승 축하 파티에서, 홍선기 전 대전시장으로부터 산업단지로 개발하려는데 한화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다.
사업성이 낮다며 그룹 내부에선 난색을 표했지만, 김승연은 대전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업분석과 시행을 지시했다.
그 결과 2018년 기준 연매출 18조원, 임직원 35,000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2003년 6월 30일 전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던 진정필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등지자 그 동안 누적되었던 치료비와 장례비까지 모두 지원했다고 한다.
2009년 4월 예술의전당은 한화그룹의 후원 10주년을 맞아 감사의 뜻으로 종신회원증을 전달했다.
후원에 어려움을 겪은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를 위해 10년 동안 단독으로 후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관지 파열로 8강전을 포기한 복싱 선수 백종섭에게 위로금 3,000만원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후 1년 지난 2011년 3월 20일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46명의 천안함 희생자 중 36명의 유족이 희망했으며, 이중 2010년도에 취업을 희망한 가족 5명 전원이 입사해 다니고 있으며, 2021년 현재 7명이 한화그룹에 근무하고 있다.
2015년 2월 총 12명이 각 계열사에서 근무중이며, 2월 초에 2명을 추가채용하였다.
즉 5년 동안 꾸준히 채용 중이라는 것.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개념찬 행보인데, 한화 이글스 경기에 천안함 유가족을 초청하여 시구, 시타 행사도 진행하고 의리의 한화, 천안함 유가족 초청 행사 실시 한화, 현충일 홈경기에서 천안함 유가족 특별 시구·시타 실시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천안함 견학도 하고 한화그룹, 대전 초ㆍ중등 학생과 '천안함' 견학 임직원들이 천안함 묘역을 찾아가기도 한다.
천안함 묘역 찾은 한화임직원도 역시나 유가족들을 초대해 격려했다.
천안함을 잊지 않고, 그 유족들을 확실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1년 9월 14일,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있던 최동원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치료비는 물론 그룹 차원에서 장례식 비용 지원을 지시했다.
이 모습은 최동원의 친정팀이던 롯데의 행태와 그야말로 극과 극의 비교가 되며 야구 팬들과 여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한편 팀이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당시에는 전 직원들에게 수십만원씩 특별 포상금을 준 바 있다.
그것도 정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직이며 미화직이며 한화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줬다.
2014년 한화건설의 이라크 공사 현장을 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광어회 600인분을 떠 가지고 비행기로 실어갔다고 한다.
사막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하니 사막이라 회를 먹고 싶어한다는 말에 "그럼 여기서 떠 가지고 가지."라며 쿨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2015년 7월 3일 울산광역시 소재 한화케미칼 폭발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6명이 숨지자, 한화그룹 임직원에 준하는 보상을 지시했다.
비슷한 사례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은 보상에서도 차별받는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번에도 의리있게 대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아래에 서술할 무지막지한 흑역사들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게 잊혀지지 않고 이미지의 일부로 강하게 자리잡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보 때문인지 다른 재벌가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이미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상술한 사례 이외에도 긍정적인 미담들이 여럿 나오기 때문에, 돈만 많고 개념없는 졸부가 아니라, 자기만의 특이한 원칙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지 튈 수 있는 복잡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가장 크다.
김승연이 이렇게 의리를 강조하는 성향을 지니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이자 한화그룹 창업주인 김종희의 영향이 크다.
5. 스포츠 기여
해외에서도 여러 스포츠단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폰서로 활동하면서 구장 광고권을 따내기도 했고 축구에도 볼튼 원더러스나 함부르크 SV, 유벤투스 FC의 스폰서 계약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추어 복싱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복싱에도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1982년부터 1988년,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복싱협회장을 역임했다.
사실 야구단 창단 전부터 시작하고 있던 게 아마복싱 후원이었다.
사격에도 관심을 두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한화그룹이 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아 자금 지원을 해 주는 등의 활동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사격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의 호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딱히 본인이 관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나, e스포츠 구단인 한화생명e스포츠도 팬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6. 한화 이글스
2012년 5월 16일, 한대화 당시 감독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는 모습.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부문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지만 한화 이글스 구단주답게 유독 야구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1999년 한화 이글스가 창단 첫 우승을 확정 짓던 한국시리즈 5차전 당시엔 일반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가 FA인 이범호를 놓치는 일을 포함하여 몇 가지 사고를 터뜨리자 2011년 5월 프런트를 전면 교체하고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팬들에게 약속했다.
아예 본인의 비서진을 통해 야구단을 관리 하려는듯 하며 직접 잠실 야구장에 행차해서 팬들에게 "김태균이 잡아올게"라고 단번에 OK 사인을 내는 등.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한화 프런트가 물갈이 된 신호탄이었던 이범호 KIA행 사건은 한화그룹 전체가 수사당국의 표적이 되어 돈을 풀 수가 없었던 시기를 지난 직후였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그 당시엔 구단 사장까지 조사 받으러 나갔던 일도 있었다.
2014시즌 한화가 또 최하위에 그치자 김성근을 데려와 달라는 팬들의 영상 릴레이, 1인 시위가 빗발쳤다.
프런트 측에서는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내부승진을 밀었으나, 김승연의 강력한 요청으로 2014년 10월 25일, 기어코 한밭구장에 김성근을 데려온다.
게다가 16일 뒤인 2014년 11월 10일부로 구단 대표이사에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김충범을 내정하는 초강수를 덤으로 두기도 했다.
2015년 FA시장에서도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2016년 들어 한화 이글스가 그렇게 팬들이 불러서 뽑은 감독의 독단적인 전권 장악, 미치광이 혹사와 시대착오적 전략, FA 영입 선수들의 잇다른 먹튀, 노쇠화 되어버린 선수층 등으로 다른 팀 다 상위권 다툼 벌일 동안 혼자 하위권에서 노닥거리며 팀이 나락에 빠짐과 동시에 야신이라 칭송받은 자의 더러운 실체가 드러나자 프런트를 무시한 권력 남용, 당장의 성적에 눈이 멀어 팀의 미래를 내다버린 선택 등으로 나쁜 의미로 재평가를 받으며 비판받고 있다.
김승연의 문제점은 허구연이 지적한 바 있듯이 일단 야구를 좋아하긴 하나 정작 야알못이라 팀의 현실을 모른다는 것. 이 때문에 한대화와 김응용 등을 연달아 거치며 팀을 추슬러야 하는 선택의 순간 별 생각없이 유명인사(김성근)에게 의존해 버렸고, 그 결과가 토탈 700억 쏟아붓고 7위 경쟁한 16시즌의 한화다.
매년 100억대의 적자가 나는 프로야구단에 끊임없이 투자를 해 주는 애정은 분명 높이 살만하나 팀의 내실을 키우기보단 당장 성적에만 눈이 가서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2017년 5월 23일에 김성근이 자진 사퇴의 탈을 쓴 경질로 퇴출됐다, 김성근과 단장과의 마찰로 인한 여러 일들에 격분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거 말고도 구단 내부에서도 특타를 좋지 않게 보았다고 한다.
결국 그룹 차원의 내부감사 때 자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 후 경질이 됐다.
사실 야구단을 챙기기 시작한 직후에도 김승연 회장이 직접 구단의 경영에 간섭을 하진 않았고, 비서진을 통해 소식을 전달 받고, 몇몇 중요한 안건들에 대해서만 본인이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1일 벤치 클리어링이 빌미가 되어 그룹감사가 진행 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를 들은 뒤 격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팀 내부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리빌딩을 비롯한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을 감독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여서 한용덕을 감독으로 임명하는데 동의 했으며, 한용덕은 오랜 부진에 시달렸던 한화 이글스를 포스트 시즌으로 진출 시키는데 성공했다.
시즌 순위 3위, 최종 순위 3위다.
2018년 한화 이글스가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자, 11년간 비밀번호를 찍을때 기다려준 팬들에게 고맙다며 장미꽃 1만3000송이를 선물했는데, 장미꽃 구입에 든 비용 4000만원을 전부 개인 사비로 털었으며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아내 서영민 여사와 장남 김동관 전무 등 가족들을 대동하고 직관하러 왔다.
기사 그리고 2018시즌 종료 후 아예 팬들에게 그 동안의 암흑기 속에서도 팀을 믿고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는 한화 이글스 단독 광고를 제작해 지상파 황금 시간대에도 편성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때문에 광고 단가가 매우 비싸기로 유명한 주말 저녁드라마 시작 전 광고 타임때 여러 대기업들의 주력 제품 광고 사이에 한화 이글스 광고가 등장해 여러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한화는 또다시 하위권에 쳐졌다.
2020년에는 한용덕 감독이 14연패를 기록한 뒤 사퇴를 하고 연이어 임명된 최원호 감독 대행이 4연패를 더해 굴욕적인 프로야구 역대 최다연패 타이기록인 18연패 기록하였고 2020년 시즌은 창단 첫 해 기록한 승률 0.290에 이어 역사상 2번째 최저 승률인 0.326를 기록하면서 마무리하게 됐다.
이로인해 구단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달 받은 뒤엔 아예 구단 대표이사에게 구단주 대행을 맡겨 야구단의 운영을 존중 하기로 했다.
그동안 간간히 비서진을 통해 구단의 중대사를 결정 해오던 방식도 폐지하고, 구단에게 운영 전권을 맡겼다.
KBO 리그 구단주 중 유일하게 팀의 지분을 직접 가지고 있다.
이글스 구단 지분 중 10%에 해당하는 3만주가 김승연의 소유인데 2020년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1993년 구단 법인명을 한화 이글스로 바꾸는 과정에서 법인 등기를 새로 뗐는데 이후 현재까지 이를 팔지 않았다고 한다.
2019년 대전 신구장 건립 사업이 확정되자 430억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7. 일가의 깨끗한 병역사항
자신은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했고, 아들 셋도 병역 의무를 이렇다 할 잡음 없이 깔끔히 마쳤다.
이는 한화의 근원이 한국화약이라는 방위산업체이기 때문에 병역 문제에 대해선 확실하게 해야한다는 김승연 회장의 지론 때문. 병역 관련 의혹이 존재하는 다른 재벌가 총수와 자제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부분 중 하나. 장남 김동관과 차남 김동원은 각각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처럼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했다.
다트머스 대학교를 나온 3남 김동선은 현역 출신은 아니지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승마 금메달리스트로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았으므로 별다른 논란이 없다.
김동선은 꾸준히 승마 선수로 활동하며 2010, 2014년에도 모두 금메달을 땄고 2016 리우 올림픽에도 대표로 출전했다.
다만 병역기피로 의심을 받을 만한 과거가 있는데, 1995년 5월~1996년 12월 사이에 당시 주한 그리스 대사의 양아들로 들어가면서 그리스로 귀화했었다.
한화그룹 측에 따르면 "그리스 대사가 (김)동선이를 친아들처럼 귀여워해서 잠시 양자로 보내줬다"고 했다.
그리스와 한화의 관계는 선대 때부터 매우 좋다.
당장 주한 그리스 대사관이 20년 넘는 기간동안 한화그룹 본사 건물에 입주해 있다.
선대 회장 김종희가 그리스의 주한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고, 김종희가 사망하자 그리스는 김승연에게 해당 직위를 승계시켰을 정도다.
재벌가의 병역 문제가 비리 의혹 때문에 불거지는 것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병역비리 문제와 김승연 일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여기에 지금은 빙그레로 분리해 나간 동생 김호연 일가도, 김호연 본인은 김구의 차남인 전 공군참모총장 김신의 사위이며, 장인처럼 공군 장교로 복무해 중위로 만기전역했다.
김호연의 차남 김동만 역시 공군 장교로 복무했고 심지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누나 김영혜도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김호연의 장남은 공익 근무로 복무를 마쳤다.
이는 한화의 모체인 한국화약의 주 업무인 화약제조업에 방산 산업이 포함되어 있는 영향이 크다.
방산 관련 업체에서 병역 비리가 나면 보통 문제가 아니게 되는 만큼, 한화가 한화로 존재하는 한 한화가에서 병역과 관련 된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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