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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아빠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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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시청 소재지 : 중구 세종대로 110
하위 행정구역 : 25구
면적 : 605.2㎢
인구 : 9,493,211명
인구 밀도 : 15,688.71명/㎢
GDP : $4,053억 (2020)
1인당 GDP : $42,215 (2020)
교육감 : 진보 : 조희연 (3선)
상징 : 시화 : 개나리, 시목 : 은행나무, 시조 : 까치
지역번호 : 02
IATA 도시 코드 : SEL
ISO 3166-2 : K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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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요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 최대 도시다.
지방자치법의 특별법으로 법률상 대한민국 제1의 도시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 유일 특별시이며, 수장인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국무회의 참여권 및 발언권이 있다.
서울은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보다도 인구가 약 3배 더 많은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종주도시이다.
역사적으로도 백제, 조선, 대한제국의 고도이자 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다.
기원전 18년 백제가 현 송파·강동 지역에 도읍을 정한 후 492년간 한성백제 시대가 이어졌다.
이후 475년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하였는데, 북쪽에 기반을 둔 국가인 고구려는 기존 백제의 한성에서 북쪽으로 한강을 건너 현 광진·성동·구리 일대를 거점으로 삼아 고구려의 북한산군 남평양으로 지정했고, 이후 서울은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553년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신라의 한산주 한양군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약 250년간 개경 이남의 남경이었다.
조선시대에는 510년 동안 조선 및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부였고, 이어 70여년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로서 지위를 차지하는 도시로 한국사에서 도합 1070여년간 수도로서 기능을 하였고 부수도 기간까지 합치면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의 고도이다.

3. 상징





4. 외국어 표기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중화권(中華圈)에서 부르는 표기/명칭에 대한 내용은 서우얼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에 대한 내용은 문서를의 번 문단을의 번 문단을의 부분을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다.
서울은 한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오래 전부터 서양에 잘 알려진 도시였기에, 서양에서는 각 언어권마다 자체적으로 표기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프랑스어/영어 표기는 각각 Séoul/Seoul인데, 영어 표기 역시 프랑스어 표기에서 diacritics만 뺀 것이다.
Séoul은 세(Sé)울(oul)로 분석되는데 불어 음운체계에서 한국어 발음과 가장 가깝게 철자를 고른 것이다.
이 Seoul이라는 표기는 로마자 표기가 중구난방인 한국어 고유명사 표기 중에서는 상당히 일관성 있게 유지되고 있는 편으로, 한국인이 영어 등의 라틴 문자 사용 언어로 글을 쓸 때 한국의 다른 지명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나 해당 언어권에서 원래 쓰는 철자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경주를 Kyung-joo라고 쓴다거나), 서울은 그렇게 하는 경우를(굳이 예를 들자면 Suh Wool이라거나) 거의 찾기 힘들다.
예전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의하면 서울은 Sŏul이 되는 고로 영어권의 한국 지도에 Seoul(Sŏul)로 병기되어 있는 사례도 있다.
(또는 기호를 생략한 Soul 소울) 이것은 영어 철자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의한) 현지어 철자를 병기한 것이다.
영어권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Rome(Roma), 러시아 지도에서 Moscow(Moskva)이라고 나온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 Soul이라 나왔다고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 지도 제작자들이 정확한 것이다.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당시에도 서울이 아닌 쎄울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어에서는 Seúl로, 포르투갈어에서는 Seul로 표기하며 독일어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불어 철자를 그대로 따르되, 부호는 뗀 Seoul로 쓴다.
네덜란드어로는 ㅜ 발음을 oe로 적기 때문에 Seoel이라고 표기한다, 발음은 세울 내지는 쎄울로 발음한다.
네덜란드어의 u는 프랑스어처럼 /y/ 발음.헝가리어로는 Szöul이라고 표기하고 '쐬울'이라고 읽는다.
헝가리어에서 s는 영어의 sh와 같은 발음이고 ㅅ 발음은 sz로 표기한다.
이는 서울의 옛 독일어 이름인 Söul에서 유래된 것. 독일어는 초기에 한국어의 ㅓ를 ö로 옮겼던 적이 있다.
로마자의 모음에 해당하는 문자들 중 직접적으로 'ㅓ'소리를 담고 있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비영어권의 경우 Se-(o)ul로 음절을 나누어 대부분 '쎄울'이라고 발음하는 편이지만 영어권의 경우 비슷한 철자의 단어인 'Soul'과 비슷하게 '써을'이라고 발음한다.
실제로 영어권 외국인들도 Soul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지 "북한은 Seoul(소울)이 없어서 실패한 거다"라는 아재개그를 종종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어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京城(けいじょう, 경성)라고 부르다가 1948년 서울특별시로 지정되면서부터 '서울'의 음을 딴 ソウル로 표기를 바꿨다.
재밌게도 Seoul의 영어식 발음에서 Soul of Asia를 이끌어냈듯 일본어에서 영혼을 뜻하는 Soul도 서울과 똑같은 ソウル를 쓰기 때문에 서로 중복된다.
중국어에서는 서울이 한국어 고유어인 탓에 서울이 공식 이름이 된 해방 이후에도 漢城/汉城(Hànchéng, 한청)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서울대학교로 보내는 우편물이 한성대학교로 잘못 가거나 또는 그 반대가 생기고 한성(漢城)의 중국식 발음인 한청과 서울의 발음상의 괴리로 혼선이 많이 생기면서 곤란해하자, 2005년 1월 19일 발음이 서울과 유사하며 으뜸되는 곳(수도)이라는 뜻을 지닌 首尔(首爾, 수이, Shǒu’ěr, 서우얼) 이라는 한자로 당시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의 공식 중국어 표기를 발표했다.
처음에 중화권이 보인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협의도 없이 首尔로 바꿨다고 불만이 있었던 듯 하지만, 신화통신 등 각종 중국어 매체들이 首尔 표기를 채택하면서 현재는 널리 쓰이고 있다.
러시아어로는 '세울'이라는 발음에서 Сеул이라는 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실제 발음은 е가 연모음인 점과 강세의 영향으로 '씨울'에 가깝다.
한국어를 키릴 문자로 옮기는 대표적인 체계인 콘체비체 체계에 따르면 Соуль로 적는 것이 맞으나 이미 굳어진 표기라서 그런지 러시아를 포함한 키릴 문자 사용 언어에서는 대부분 Сеул을 쓰고 있다.
아랍어로는 'سيول'또는 'سول' 이며 발음은 앞에서부터 '씨울', '쑤울' 정도이다.
표준 아랍어에서는 모음이 'a', 'i', 'u'밖에 없으므로 모음에 해당하는 부분이 많이 바뀐다.
알바니아어로는 '서울'을 'Sëul'로 표기한다.
서울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로마자로 표기할 때 굳이 행정단위를 명시해야 한다면 ‘-si’를 붙인다.
‘-teukbyeolsi’라고 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듯.다.

5. 지명의 어원

'서울'은 본래 한국어의 순우리말로서 '한 나라의 수도(首都)', 곧 '국도(國都)'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따라서 고유명사로서의 쓰임과 별개로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 D.C.이다', '영국의 서울은 런던이다', '조선의 서울(셔울)은 한양이다'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1946년 지명이 '경성부'에서 '서울시', 다시 '서울특별자유시'로 바뀐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고 고유명사 '서울(특별시)'의 용례가 대두되어 일반명사인 '서울'은 일상 회화에서는 점차 쇠퇴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면 지명인 '서울특별시'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유명사가 된 일반명사의 사례이다.
남한의 시군구 이상 행정구역 중에서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이기도 하다.
'서울'이라는 어휘의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학설이 있다.

  • 국어학계에서는 대개 서울이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徐羅伐)'에서 변형되었다고 본다.
    서라벌(徐羅伐)은 역시 고대 한국어의 순우리말을 음역한 것이다.
    당시에도 한자어 서라벌(徐羅伐)을 지금과 같이 서라벌로 읽었을지 아니면 다르게 읽었을 지는 명백하지 않고, 현대와는 약간 다르게 발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참고로 신라 시대에는 서라벌을 서벌(徐伐)로 표기된 기록도 제법 있다.
    신라 시대의 서라벌, 서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셔ᄫᅳᆯ → 셔울 → 서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서라벌이란 쇠(金) 벌(野)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자세한 어원은 불명. 참고로 신라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도 서라벌, 사로국 등 'ㅅㄹ' 계통의 이름이 어원으로 추정되므로, '신라'와 '서울'이라는 두 낱말이 거슬러 올라가면 동일 어원인 셈이기도 하다.
  • 서라벌(徐羅伐)은 역시 고대 한국어의 순우리말을 음역한 것이다.
    당시에도 한자어 서라벌(徐羅伐)을 지금과 같이 서라벌로 읽었을지 아니면 다르게 읽었을 지는 명백하지 않고, 현대와는 약간 다르게 발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참고로 신라 시대에는 서라벌을 서벌(徐伐)로 표기된 기록도 제법 있다.
    신라 시대의 서라벌, 서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셔ᄫᅳᆯ → 셔울 → 서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서라벌이란 쇠(金) 벌(野)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자세한 어원은 불명. 참고로 신라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도 서라벌, 사로국 등 'ㅅㄹ' 계통의 이름이 어원으로 추정되므로, '신라'와 '서울'이라는 두 낱말이 거슬러 올라가면 동일 어원인 셈이기도 하다.

 

  • 이 밖에 고려의 전신인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의 고유어 지명 '쇠벌'이 서울이 되었다는 설,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의 이명이 '소부리(所夫里)'인데 이것이 '소벌(소홀)'의 음차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변하여 서울이 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결국에 어떤 수도 지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일반명사 '서울'이 되었고, 다시 '서울특별시'를 지정하면서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점은 같다.
    고구려의 '졸본', 발해의 '솔빈', 고려의 수도 개성의 옛 이름인 '송악'의 이명 '송도(솔벌)' 역시 후보로 제기되고 있다.
    고구려어 지명에도 현대 한국어 '서울'에 대응되는 단어가 존재한다.
    옛 예맥계 국가가 존재했던 강원도 북부에서 창고를 '수을(首乙; sul, suri)'이라고 했는데, 이 단어의 한역(漢譯)을 '서울 경(京)' 또는 '곳집 경(𢈴)'으로 달았으며, 고상식 창고(고상 건축)는 '부경(桴京)'이라 하고 작은 창고는 '경(京)'이라 한다는 대목이 중국 문헌에 나온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 훈독을 보면 이 단어들은 전부 훈독으로 읽은 것으로 보이고 소, 술, 수리라고 발음된 것으로 보이며 곧 현대 한국어 '서울' 에 대응된다.
    만주쪽 고구려 지명(고구려 창암성 = 양암성) 보면 푸를 창(蒼), 곳집 창(倉), 푸조나무 량(椋)이 모두 훈독 대응되는데 이는 모두 '부소' 라 발음됐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부여계 언어인 옛 백제 사비성의 성곽 역시 '부소산성'이라 불리는 것을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 고구려어 지명에도 현대 한국어 '서울'에 대응되는 단어가 존재한다.
    옛 예맥계 국가가 존재했던 강원도 북부에서 창고를 '수을(首乙; sul, suri)'이라고 했는데, 이 단어의 한역(漢譯)을 '서울 경(京)' 또는 '곳집 경(𢈴)'으로 달았으며, 고상식 창고(고상 건축)는 '부경(桴京)'이라 하고 작은 창고는 '경(京)'이라 한다는 대목이 중국 문헌에 나온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 훈독을 보면 이 단어들은 전부 훈독으로 읽은 것으로 보이고 소, 술, 수리라고 발음된 것으로 보이며 곧 현대 한국어 '서울' 에 대응된다.
    만주쪽 고구려 지명(고구려 창암성 = 양암성) 보면 푸를 창(蒼), 곳집 창(倉), 푸조나무 량(椋)이 모두 훈독 대응되는데 이는 모두 '부소' 라 발음됐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부여계 언어인 옛 백제 사비성의 성곽 역시 '부소산성'이라 불리는 것을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 원로 배우 오현경 씨가 들은 얘기로는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를 모시고 북악산에 올라갔는데 당시가 3월이라 주변 산에 모두 눈이 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땅이 마치 눈의 울타리 안에 있는것 같다고 해서 '설울'이라고 했다가 서울이 되었다고 한다.
    오현경 씨는 서울 출신으로 적어도 당시까지 그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다.

조선시대의 기록 중에는 서울을 지금처럼 음차하여 '徐蔚(서울)'이라고 표기한 것도 있다.
이를 근거로 이미 훨씬 옛날부터 서울을 '한 나라의 수도가 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해좌전도'의 경우 '경(京)' 이란 낱말로 서울을 지칭했는데 한국어에서 '상경' 등의 어휘가 아니라 단일한자로 된 '지명'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이를 서울이라고 읽었다고 보기도 한다.

6. 지명 변천사

고대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하고 한강을 낀 데다 드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삼국시대에는 원래 백제의 수도였으나 치열한 국경 전쟁을 거쳐 고구려, 이후 신라의 땅이 되었다.
세 국가 모두 서울 지역을 가졌을 때 전성기를 맞았을 정도.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 가문의 연고지인 개성을 수도로 삼았지만 이후 남경(서울) 천도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추진 시기와 맞물려 국운이 기울면서 유야무야되었다.
고려에 이어 조선이 개국한 후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서울은 다시 한반도 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조선 왕조는 물론 대한제국까지 500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삼았다.
일제 때 잠시 경성부(京城)로 개칭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 망명정부를 꾸렸지만, 명목상 수도는 서울로 두었다.
1946년에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서울'로 개칭되고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그대로 수도가 되었다.
북한도 1948년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규정하였으며, 1972년 헌법을 개정해 수도를 평양으로 바꿀 때까지 명목상의 수도를 서울이라 하였다.
다만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한양 또는 한성이라고만 불렀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이라 부르다가 해방 후 서울로 불렀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한성부 또는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부상의 공식 지역 명칭이었을 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저 수도이기 때문에 일반명사로서 서울이라 불렸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으며, 서울이 일반명사에서 점차 고유명사가 되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꽤나 길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나온 하멜 표류기에도 서울은 Sior로 표기되어 있다.
이미 조선시대에 한양이라는 공식 명칭보다 서울이라고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사극의 등장인물들은 서울을 한양이나 경성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증에 맞는 자연스러운 설정일 수 있다.
근세 이후 '서울'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역사에 대하여는 역사 문서로.참고로 이름을 바꾸고자 한 시도도 있었다.
외솔 최현배는 1955년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에 불과하므로 서울의 공식 명칭을 그저 서울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서울의 이름을 고치자고 건의했고 이승만도 생각 끝에 이름 공모를 했다.
그런데 이때 아첨꾼들이 이승만의 아호인 "우남(雩南)"을 서울의 새 이름으로 삼자고 주장한 것. 물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워싱턴 D.C.의 사례를 들어 제안한 것이었으나, 이를 들은 외솔이 장난치냐면서 길길이 날뛴데다가, 이승만 본인조차도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여 거부하였고, 직접 “한도(韓都)”라는 이름을 대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당선되면서 이 계획은 유야무야되어 서울은 그저 서울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7.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 경도 한성부
  • 양천현
  • 금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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