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출생 : 1990년 9월 5일 (31세), 경기도 부천시 중구 도당동(現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국적 : 대한민국
본관 : 경주 김씨 (慶州 金氏)
신체 : 164cm, 47kg, 240mm, O형
가족 : 아버지 김현석(1958년생), 어머니 박미희(1958년생),언니 김애라(1987년생)
배우자 : 고우림
학력 : 신흥초등학교 (졸업)도장중학교 (졸업)수리고등학교 (졸업)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 체육학사)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과정 재학)
종교 : 가톨릭 (세례명: 스텔라)
소속 : 올댓스포츠
종목 : 피겨 스케이팅
상훈 : 국민훈장 모란장(2012년 수훈)체육훈장 청룡장(2016년 수훈)
MBTI : ESFJ
은퇴 : 2014년 2월 21일
2. 개요
대한민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리스트이다.
3. 평가
"신이 내린 재능이다.
이런 재능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김연아가 연기한 걸 보고 나면 난 그냥 코치하는 걸 집어치우고 싶다.
그녀가 등장해서 한 동작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난 일어나서 경기장을 나가고 싶어진다.
"- 알렉산더 줄린(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코치이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아이스 댄스 은메달리스트), 2007 컵 오브 러시아 당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 테드 바튼(Ted Barton, 신채점제를 창시하는 데 참여한 인물)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직후
"김연아의 연기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렸다.
기술적으로 모든 걸(The Whole Package) 갖췄다.
"- 크리스티 야마구치(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김연아는 토탈 패키지다.
내가 그녀의 연기를 볼 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없다.
"- 도로시 해밀(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김연아는 아무 약점이 없다.
그 누구하고도 김연아를 비교해보라. 김연아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 어떤 제도에서든, 장소에서든, 시간에서든, 승리는 그녀의 차지다.
"- 스캇 해밀턴(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Long live the queen!"-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 톰 해먼드(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
"지금 이 순간은 피겨 스케이팅 역사의 위대한 한 순간이다.
김연아는 나비처럼 사뿐히 경기장을 즈려밟고 갔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해설 중다.
"김연아는 역대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다.
완벽한 안무로 10점 만점에 10점, 20점 만점에 20점,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을 것이다.
25년간 피겨 스케이팅을 해설하면서 이런 연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2013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캐나다 SRC 해설 중다.
"이 선수의 스케이팅은 참 쉬워보이고, 아름답고, 가슴 아프죠."- 2013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미국 UNIVERSAL SPORTS 해설 중
"언제 어디서든지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면 항상 놀라운 고요함이 흐른다.
여러분이 어떤 위대함을 마주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영국 BBC 해설 중다.
"대회라기보단 차라리 대관식이었다.
"- AP 통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다.
"데이빗 홀버스텀은 마이클 조던에 대해 말하길 '농구를 평생 5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조던을 보면 이 사람이 주목해야 할 사람인 것을 바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목요일 김연아가 바로 그랬다.
"- 뉴욕 포스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다.
1970년대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봐왔지만 은퇴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한 선수는 처음이다.
"- 장 크리스토프 베를로(Jean Christophe Berlot, 아이스네트워크 기자)다.
"그녀는 내가 본 가장 빠른 스케이터다.
"- 미셸 콴(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다.
"사람들이 김연아를 '유나 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난 그녀를 매우 좋아한다.
내가 지금 젊은 선수였으면 김연아를 본으로 삼았을 것이다.
"- 이리나 슬루츠카야(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다.
"그녀는 이미 시스템이 존재하던 곳에서 나타난 단순한 재능 있는 스케이터가 아니다.
어떤 피겨의 전통도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 등장해 한국인으로서 어떤 경우에서든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무슨 메달을 따든 그녀가 하는 건 다 최초가 아니었나? 올림픽에서 온 국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어야 했던 순간의 그 부담감을 생각하면 매우 놀랍다.
우리(프랑스)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싱글 부문 금메달이다.
"- 필립 펠리에(프랑스의 유럽선수권 해설위원), 2010 세계선수권 해설 도중다.
"(김연아의 점프처럼) 리듬을 타고 가볍게 날아서 부드럽게 착지하는 점프는 남녀 선수 통틀어 본 적이 없다.
"- 야마다 마츠코(아사다 마오의 前 코치)다.
"앞으로 보실 합계 점수를 구분하는 기준표입니다.
195점 이상은 '경이로움'이고 '뛰어남'(180~194점)과 '매우 좋음'(170~179점)에 해당하는 점수도 나와 있습니다.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210점 이상의 단계. 바로 김연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미국 NBC 중계 중다.
"어떻게 하면 김연아가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선물이에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미국 NBC 해설 중다.
"나는 당신(김연아)의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 모두 매우 즐겁게 보았고, 당신의 금메달 연기의 우아함과 경기력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빙상 위에서나 밖에서나 올림픽 정신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 힐러리 클린턴, 김연아에게 보낸 편지 중다.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영국의 로열 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유명 발레리나들의 연기를 많이 봐왔지만 김연아의 표현력은 오히려 그들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 장일범(음악평론가, KBS 1FM 가정음악 진행자)다.
“운동만 하면서 달려온 사람, 김연아에게서 ‘세계 퀸’의 거만함은 없었다.
도리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김병만다.
"코스트너와 아사다는 '우리가 어떻게 연아를 따라갈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닌 시니어로 올라오는 신예들을 어떻게 막을까를 생각해야겠죠."- 로빈 커즌스(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남자싱글 금메달리스트), BBC 2013 세계선수권 해설 중
"그녀는 언제나 퀸 유나(Queen YU-NA)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단지 올림픽 은메달을 더 가졌을 뿐이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미국 NBC 해설 중다.
스펙타클한 광경이다.
천사와도 같은 포즈다.
- 2013 세계선수권의 한 이탈리아 해설자의 해설 중다.
하느님, 맙소사. 정말 굉장하다.
- 2013 세계선수권의 한 미국 해설자의 해설 중다.
피겨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 성화봉송 당시 배기완 아나운서의 멘트다.
저는 항상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존경하기도 하고 경외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분들이 질문할 때는 언제나 '나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습니다.
연아가 없었다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수 생활에 임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시 만난다면 연아와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위해 영어와 한국어를 배울 생각도 있습니다.
- 일본 스포츠 잡지 '넘버' 中 아사다 마오 인터뷰다.
4. 국내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에 한국에서의 피겨 스케이팅은 말 그대로 관심없던 종목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야말로 빙상 스포츠 중에서도 레이스에만 특화된 나라였지, 피겨계에는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도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만약 김연아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계속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로 남았을 것이다.
그만큼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실제로 주니어 시절 김연아가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때 포털의 뉴스 댓글에는 '시니어에서 입상해야 진짜 실력이지, 설레발치지 마라'는 악플도 많이 있었다.
사실 악플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입장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김연아 이전에도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라고 스포츠 뉴스에 소개되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렇게 소개된 인물 중 특출나게 두각을 보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김연아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언론의 과한 설레발 전례 때문에 생긴 부정적인 견해였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김연아의 전성기 이후 차세대 피겨 선수들이 김연아만큼 대회를 제패하거나 이에 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 본의 아닌 부작용을 낳게 되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도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던 유럽이나 미국,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피겨계에서는 겨우 올림픽 출전권만 얻어서 그마저도 최하위권만 기록하는 수준이었다.
피겨 스케이팅이 리듬체조나 싱크로나이즈 종목과 같이 예술성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스포츠라는 특성 상, 발레리나 같은 체형과 미모가 부각되며 대중에게 어필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 + 부상 + 타국과의 비교 + 연습방해 영상 등 + 피날레로 편파판정 논란까지 합쳐져서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타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선수로서의 업적을 떠나 개인적인 선행과 기부 활동 또한 많이 알려져 현재 김연아의 위치는 2000년대 등장한 스포츠 스타 중에서 최고의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인사라고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피겨요정, 국민 여동생 등 온갖 별명을 보유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나이에 주목을 받은 박태환도 취약한 종목에서의 성공 + 잘생긴 외모 덕에 함께 주목을 받고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소리를 들으며 광고를 같이 찍기도 했다.
인기 종목인 축구가 당시 국제대회에서 부진하고 있던 시기라 "축구장에 물 채워서 태환이 수영장으로 쓰고 겨울엔 얼려서 연아 스케이트장으로 써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피겨요정을 뛰어넘은 '피겨 여왕'이나 '연느'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당시 그녀의 전국적 인기는 국내의 웬만한 탑급 한류 K 팝스타들도 뛰어넘을 정도였다.
실력이 제대로 피어난 2009-10 시즌 때는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자동차, 가전제품(ex. 에어컨), 핸드폰, 화장품, 악세사리, 금융광고 등등)로 광고계를 휩쓸어, 피겨 프로그램 보면서 김연아를 보고, 잠시 광고타임 동안 김연아를 보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김연아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인기가 신기했는지 외신에서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아닌 락스타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은퇴한 지 오래인 현재까지도 꾸준히 한국 피겨 스케이팅계에 관심을 보이고 기여하는 인물이다.
국민적 관심도가 김연아를 계기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것에 더해, 김연아 본인 역시 잠정 은퇴 수준이었던 공백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이유도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김연아의 존재로 인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다.
이들이 바로 소위 말하는 '연아 키즈' 세대로, 김연아 시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선수 풀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많은 유망주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활동 이외에도 국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시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녀의 활약 이후로 수많은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들이 생기고 있고, 범국민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또한 그녀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으로 밝힌 컴백 이유 중 하나가 '후배들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였다.
피겨계에 금전적 지원 및 여러 가지로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하다.
후에 한국 피겨계의 대모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다.
골프계에서의 박세리와 여러모로 위치가 비슷하다.
2012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48%로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스포츠 역사를 뒤져봐도 국내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운동선수는 손가락에 꼽는다.
상술했듯 한국에선 생소한 종목인 피겨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천재라는 점,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은퇴한 지금도 전 세대에게서 뜨거운 국민적 사랑을 받고있는 인물이며 여러 레전드 선수들과 더불어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웠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5. 국외
전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도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며 그녀를 통해 피겨의 역사가 다시 쓰인다는 평을 했던 외국 해설의 말처럼 김연아는 엄청난 기술력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살아있는 레전드로 회자된다.
신채점제 이후 그야말로 완벽한 교과서를 써내려간 선수이자 기준이 되는 선수로서, 지금이야 웬만한 중상위권 여자선수들이 쇼트에서 70점을 그냥 넘기지만 김연아는 오래도록 깨지지 않던 여자 싱글 쇼트 70점 중반대의 벽을깬 선수다.
외신과 전문가 해설진 이전의 역사적인 선수들까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전무후무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김연아의 연기 스타일에는 북미 쪽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고 아예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최대 판매량 2002년의 티켓 판매량 28,664장을 제치고 29,477장을 팔아 최고 판매량을 세우기도 했다.
2010년 10월 2일과 3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아이스 쇼는 1주일 뒤에 미국 방송국 NBC를 통하여 전국에 녹화중계되었다.
자국 선수인 에반 라이사첵의 아이스 쇼조차 1년 후에 방송했다.
아이스 쇼 표 역시 2일치가 전부 매진되기도 했다.
또 NBC 방송을 들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자주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한국에서 워낙 불모지였던지라 국내에서 주목을 못 받았을 때 아사다 마오의 대항마로서 제일 먼저 김연아에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마오의 우승을 가로막는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우호적이진 않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때를 비롯한 시니어가 많은 경기에서 마오가 실력과 멘탈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김연아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 방송을 들어봐도 김연아를 여왕(조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흥했고, 순정만화 《유리가면》에 빗대어 마야와 아유미로 VS놀이를 하면서 비교떡밥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언론보도 및 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 마오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며 또래들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타고난 천재"로, 김연아를 "하루 종일 연습만 하면서 친구도 없는 음울한 기계"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도 하며 "예술(예쁘고 밝은)의 마오 vs 기술의 연아"로 구도를 만들었단 의견도 있다.
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우뚝 일어선 김연아와,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아사다 마오의 환경차이 덕도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주니어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였고 아사다 마오도 알려진 만큼 가정환경이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요즘에는 드래곤볼의 카카로트와 베지터의 라이벌 구도로 빗대어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진 듯하다.
그러다 시니어에 올라와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으로 충격을 안기자, 마오를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기술의 천재", 김연아를 "표현력의 천재"로, "기술의 마오 vs 예술의 연아"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연아의 기술도 만만치 않았고 그게 이후 점수로도 드러나, 2008년까지만 해도 둘의 전적은 아사다 마오가 근소하게 앞섰으나 2009년부터는 김연아가 크게 앞서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의 2010년 스포츠스타 검색어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유튜브를 들어가 보면 김연아 응원 댓글 중 중국어로 쓰여 있는 것도 꽤 많이 찾아 볼 수 있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웨이보 계정에는 김연아를 "한국의 피겨 역사를 새로 쓴 왕자(王者)"라고 소개하는 동영상이 올라갔을 정도다.
금메달 수상 이후 자신이 동경하던 미셸 콴과 교류가 많다.
콴은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우정을 과시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이후 훈련 장소를 콴의 훈련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적이 있으며, 김연아의 새 코치였던 피터 오퍼가드는 콴의 언니인 카렌 콴의 남편이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페어 동메달리스트다.
미국 내에서 연간 3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어린이를 위한 세계연감 2011'의 2010년 판에서는 저스틴 비버, 드류 브리스와 함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진도 찍었다.
세계적인 할리우드의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와 가수 리한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연아를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 소재를 둔 '여성 스포츠 재단(Women's Sports Foundation)' 에서 주는 '2010 올해의 여성 스포츠선수 상(2010 Sportswoman of the Year)' 을 수상했다.
이는 아시아인 여성 운동선수로서는 사상 최초다.
타임스에서 뽑은 '2010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0인' 중 영웅(Heroes) 부문에서 빌 클린턴에 이어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2번째로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UNICEF International Goodwill Ambassador)로 선정되었다.
전현직 국제친선대사 중 스포츠스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요한 올라브 코스(노르웨이),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영국), 조지 웨아(라이베리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스위스),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세레나 윌리엄스(미국)가 선정된 적이 있다.
IOC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어로 김연아 생일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올렸다.
해외 피겨 스케이터 중에서는 그레이시 골드와 리쯔쥔이 김연아의 열성 팬이었다.
그 외 김연아가 호스트가 되어 주최한 아이스쇼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에서도 관심과 호감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 외에도 발표하는 프로그램마다 관심을 모으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선수들이 동작을 따라하는 경우가 잡히기도 한다.
한국인 최초로 올타임 레전드 클럽에 가입이 되어 마이클 펠프스, 나디아 코마네치 등과 함께 도하 골스 포럼에 참석했다.
6. 총평
현역 활동 당시 데뷔부터 은퇴까지 최정점에 있었던 선수로서 세계신기록만 11회 경신한 압도적인 스케이터다.
2009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면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자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에 "Long live the Queen!"이라는 문구가 김연아의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는가 하면, AP통신은 "경쟁이기보다는 즉위식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마치자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톰 해먼드 캐스터가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이라고 외치며 찬탄했다.
이 말은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김연아의 선수 생활을 관통하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한마디로 기록되었다.
또한 출전했던 모든 국내외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었던 일명 올포디움의 소유자이며, 쇼트와 프리 중 하나는 반드시 '1위'를 차지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2006-07 시즌 이후부터 2013-14 시즌까지 그야말로 10여년 간 피겨계를 지배하고 군림했던 전설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전 시대 피겨계를 장악했던 전설들에게도 극찬을 받았으며,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존경받고 있다.
기술성, 피지컬과 예술성, 멘탈까지 약점이 없는 토탈 패키지로서 피겨 스케이팅에서 소위 4대 주요 국제대회라고 불리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사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을 모두 제패했다.
4개의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후 이 대회들을 모두 제패한 여자 싱글 선수로는 김연아가 최초다.
세계신기록만 11회를 세우면서 여자 싱글 선수 최초로 200, 210, 220점대를 돌파했고 경쟁 선수들을 20점 이상의 점수 차 로 따돌리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경이로운 실력을 갖춘 덕에 타국에서조차 최고의 선수로 대접받았었다.
부상을 극복하고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과 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타 현역 탑싱들을 제외하고 미셸 콴, 카타리나 비트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견되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동시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중에서는 독보적 위치에 속하며, 시대를 풍미한 스케이터로 평가받는다.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며, 빙판 위를 쓸어버리는 진정한 여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출전해서 경기를 했다 하면, 대부분의 대회에서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아내고 신기록 작성까지 해주며 그야말로 피겨계를 주름잡던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명 스포츠 언론이나 해설진들은 그녀가 시니어 데뷔를 하고 은퇴하던 시즌까지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김연아가 참가하는 대회 or 김연아가 참가하지 않는 대회로 구분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이전까지는 출전도 잘 못한 나라에서 어디서 이런 거물이 튀어나왔냐'고 신기하게 여기는 말이 나온다.
김연아가 은퇴한 이후 국제대회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나올 때마다 '김연아가 이끌고 온', 또는 '물꼬를 튼' 선수라고 언급된다.
현재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토대가 탄탄해졌다.
김연아가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해외 해설은 항상 김연아를 언급한다.
7. 기부
현재까지 총 기부 내역을 합산하면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금은 총 22억 원, 유니세프 외 기부금은 총 28억 원, 합쳐서 50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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