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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웨이팅룸 가방 나이키 신발 사이즈 에어포스 지갑 응모 카드지갑 팔찌

by 채은아빠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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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2. 개요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3. 상세

루이 비통의 태생은 귀족적 DNA로부터 출발하며 여행 트렁크를 만드는 기술과 그 헤리티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루이 비통의 정식 회사명인 Louis Vuitton Malletier에서 Malletier는 Malle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Malle이 트렁크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인식되어 있고, 카테고리별로 자체 공방을 가지고 있으며 외주생산을 하지 않는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브랜드이다.
다만, 밑의 설명을 봐도 과연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개인의 생각에 달려있다.
명품으로서 높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보단 과도한 상업화로 인한 여러 논란이 있기 때문.전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영향으로 예술가와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가 많다.
컬래버레이션 중 가장 대중에게 유명한 것은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타카시와 함께 한 수퍼플랫 모노그램(Superflat monogram)과 스테판 스프라우스와 함께 한 그래피티 시리즈가 있다.
그 외에도 리처드 프린스 등의 거물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영감 받은 디자인들로 제품에 위트를 더하고 있다.
펜디, 크리스찬 디올, 고야드, 구찌 등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반복되는 모노그램이 아시아에서 특히나 인기가 있는 브랜드이다.

4. 평가

루이 비통은 오랜 기간동안 세계 명품 브랜드중 총 매출 1위의 브랜드이며,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대명사 격으로 통하는 브랜드이다.
201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1위 명품 브랜드로 뽑혔다.
샤넬, 에르메스와 함께 세계 3대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이다.
LVMH(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라는 초대형 시계/의류/주류 그룹의 자회사인데 역시 이 LVMH의 자회사인 모엣 샹동에서는 퀴베 돔 페리뇽이라는 샴페인도 만들고 있으며 헤네시는 김정일이 좋아했다는 코냑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집어삼키기로 유명하다.
톰 포드 시절 구찌를 집어삼키려다 실패하기도 했으며, 펜디,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벨루티, 셀린느, 불가리, 겐조, 로로피아나 등 많은 명품 브랜드들을 인수했다.
가족 경영으로 유명한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다행히도 뒤마 일가는 팔 생각이 없는 듯. 이 모든 것은 LVMH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때문인데 비통 일가가 이 사람한테 주도권을 넘긴 것을 그렇게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아르노 회장은 최근 명품 브랜드들이 장인정신이나 퀄리티보다 매출과 이익에 집중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과 같이 인건비가 싼 곳에서 90% 만든 후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완성만 하여 Made in France, Made in Italy 라고 붙일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사기성 짙은 전략 등은 모두 다 이 사람이 먼저 시작한 것. 그러한 이유 때문에 루이 비통은 공장 생산으로 돌리기 시작한 샤넬과 더불어 에르메스와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다만, 명품 브랜드로서의 정체성과 품질에는 많은 비판을 받아도 상업화로 인한 성과는 위대하다.
브랜드 가치 순위는 항상 루이 비통이 석권하고, 매출도 1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상업화, 대중화 정책 병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5. 역사

루이 비통의 역사는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21년 프랑스 안쉐라는 작은 마을의 한 목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목공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루이비통은 어렸을 적부터 파리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는데 14살이 되던 해 집을 나와 파리로 떠나게 된다.
땡전 한 푼 없었던 루이 비통은 4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갔는데 16살이 되던 1837년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
이후 당시 파리에서 가방 제작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무슈 마레샬 아래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루이 비통의 섬세하고 특별한 기술은 곧장 유명해졌고 귀족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많은 양의 짐을 싸는데 탁월한 기술을 갖췄던 루이 비통은 프랑스 왕실 황후 외제니 드 몽티조의 전담 패커로 일하기 시작했다.
외제니 황후의 후원하에 파리 뇌브 데 카푸신 4번가에 자신의 이름을 건 포장 회사를 개업했다.
이는 오늘날 루이 비통의 뿌리가 되는 회사이다.
당시 트렁크는 현대에서 흔히 만들어지는 사각형이 아니었다.
볼록하게 생겨 차곡차곡 쌓기 힘든 모양새였는데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평평하게 만들어져 마차에 쌓기 편리한 구조였다.
모양 뿐만 아니라 기존의 나무재질에서 루이 비통만의 목공기술을 살려 특별제작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라는 소재로 만들어져 가볍기도 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트렁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기존 매장에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1859년 파리 근교 아니에르에 공방을 세웠다.
아니에르에 있는 이 트렁크 공방은 지금까지도 트렁크 제작을 하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1885년에는 영국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매장을 열면서 첫 해외지점도 오픈했다.
루이 비통의 획기적인 기술과 명성은 아들 조르쥬 비통에게도 이어졌다.
1886년 소매치기들이 가방을 쉽게 열지 못하도록 가방에 자물쇠를 부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너무나도 완벽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잠금장치 기술은 아직까지도 요긴하게 쓰이는 중이다.
루이 비통의 대성공으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의 모조품들이 판을 치자 1888년 새로운 재질의 제품을 개발한다.
이때 나온 것이 루이 비통의 대표적인 제품인 다미에 캔버스이며, 다미에 캔버스의 모조품들도 끊임없이 나오자 1896년 루이비통의 상징적인 패턴 모노그램 캔버스가 탄생했다.
조르쥬는 모노그램 제품들을 들고 튀니지 사막을 횡단하며 견고성을 시험할 정도로 힘을 쏟았다.
창업주 루이 비통이 죽고 경영권을 이어받은 조르쥬 비통은 회사를 더욱더 성장시켰다.
1914년에는 샹젤리제 거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제품 매장인 7층짜리 매장을 세웠다.
2013년 11월 마크 제이콥스가 떠나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렌시아가를 맡고 있던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가 임명되었다.
전임인 마크 제이콥스는 새 일자리 대신 자신의 두 레이블에만 집중. 루이비통의 클래식 팬들은 마크 제이콥스가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브랜드를 밀고 나가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낮게 만들었다는 평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떠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한편, 2011년부터 남성 부문을 이끌던 킴 존스가 2018년 가을, 겨울 콜렉션을 끝으로 디올로 건너가며 루이 비통을 떠나고,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가 새 수석 디자이너가 됐다.
이게 굉장히 파격적인게 일단 버질 아블로는 가격대가 낮은 브랜드가 아니긴 해도 역사 역시 굉장히 짧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수장을 한 반면에, 럭셔리 중에서도 하이엔드급 브랜드인 루이 비통의 남성 부문 디자인 수장이다보니 인사조치가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평. 거기에 루이 비통 역사상 첫 흑인 디자이너라는 점 역시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6. 제품

루이 비통은 남성복이나 여성복, 신발 등의 의류도 만들고 시계, 주얼리, 향수, 휴대폰 케이스, 열쇠고리, 연필, 필통, 볼펜, 수첩, 여행가이드 등등 이것 저것 다 만들며, 가방이나 지갑의 디자인도 모노그램 패턴 디자인이 아닌 다미에, 아주르, 에삐 등 여러가지 패턴 디자인이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백에 의한 매출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심하게 가방만 팔렸었다.
2018년 이후로 의류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하이엔드 카테고리(워치주얼리, 향수, 트렁크, 악어백 등) 성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또한 고급화 전략을 펼치면서 핸드백 부분에서도 루이 비통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었던 모노그램 핸드백의 비중을 줄이고 카퓌신 같은 고가의 레더 라인을 대표 상품으로 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아서 길거리를 걸어가거나 지하철을 타면 루이 비통 가방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정말 흔하다.
또한 한때 스피디 백 같은 경우 길을 가다가 3초 마다 한 번씩 보이는 수준의 시절도 있었고 2000년대 중후반에는 '3초 가방', 또는 한국에서 가장 흔한 여성 이름을 따서 '지영이 백'이라는 별명도 붙었었다.
물론 전문가나 예민한 사람이 아닌 이상 모조품인지 진품인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사실 고가의 루이 비통 백이 아무나 쉽게 살 수 있는 가방도 아니고, 길거리에 저 정도로 흔한 것이 말이 안되기는 한데, 모조품이 많은 것 또한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백이 흔하게 보이는 현상에 일조했다.
모조품 등급으로는 C급, B급, A급, SA급 (스페셜 A), 미러(mirror)급, 커스텀급, 1:1급이 존재한다.
실제로 동네 재래시장의 옷가게를 보면 짝퉁 루이 비통 모노그램 패턴 가방을 대놓고 진열해서 파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다.
자세히 보면 박음질이나 원단 등의 퀄리티는 많이 떨어지는 가품이며, 시장에서 장을 보던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주로 구매하는 편이라 지금의 판매되지 않는 투박한 디자인의 구형 제품들이나 루이 비통 패턴을 이용한 새롭게 창작된 디자인의 짝퉁이 많은 편. 또한 루이 비통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루이 비통은 위조품의 유통이 가장 많은 브랜드 중 하나이며, 가품 가방 판매처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7. 기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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