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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근황 윤석열 고현정 김건희 최근 변영균 검사 안나 삼풍백화점

by 채은아빠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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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이름 : 신정아(申貞娥)
출생 : 1972년 4월 28일 (50세),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본관 : 평산 신씨
신체 : 168cm
학력 : 중경고등학교 (졸업)캔자스 대학교 (서양화과 / 중퇴)
가족 : 2남 1녀 중 셋째
종교 : 불교 → 개신교

2. 개요

전직 동국대학교 미술사 교수,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2007년 광주광역시 비엔날레 디렉터.학력 검증의 시발점이 된 사람으로, 예일 대학교 출신 미술사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사칭하며 이 위조된 거짓 학력을 기반으로 한국 미술계와 문화계의 요직을 차지하며 유명 인사가 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생존자 중 1명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건 이후 2016년에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이사로 임명되어 2018년에 미국에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하였다.

3. 초기 생애

1972년 4월 28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아버지 신희태(1994년 사망)와 어머니 이원옥 슬하 2남 1녀 중 셋째로 출생했다.
고향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했으며, 1991년 중경고등학교를 졸업한 것까지는 확실하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캔자스 대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영어 실력이 나빠서 바로 학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랭귀지 스쿨(파운데이션 과정)을 2년 다녔다고 한다.
캔자스 대학교 측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1992년 봄부터 1996년 가을까지 5년간 다녔으나 3학년 과정에서 중퇴했다고 한다.
즉, 캔자스 대학교의 학부 과정에 입학했던 것은 확실하게 사실로 보이지만, 졸업을 못 했다.
이유는 영어 실력 미달.미국에서 학위를 따지 못한 신정아는 실제로는 최종 학력이 고졸이었지만,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신화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녀의 거짓말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나쁜 의미로 창대했다.

4.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시절

1997년, 신정아는 금호미술관에 자신이 미국 캔자스 대학교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금호미술관 측에서는 일단 이력서를 받아두었다가 전시장 영어 안내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신정아의 영어 실력은 별볼일 없었다고 한다.
일단 영어 실력 미달로 캔자스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으니...그런데 그해 말, 박영택 수석 큐레이터(현 경기대학교 교수)와 박정구 큐레이터(현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가 관장과 마찰을 빚고 미술관을 그만둔다.
이때 일개 알바생에 불과했던 신정아가 큐레이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박영택 교수는 후에 "금호미술관에서 신정아를 채용한 것은 큐레이터를 단순한 박물관 관리자로 생각하던 금호그룹 고위층의 무지의 결과입니다.
"라고 말했다.
2001년 5월 28일, 그녀가 기획한 전시회 기간 중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신정아는 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전시회 이후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사고와 퇴사는 관계가 없었다.
실상은 금호미술관 박강자 관장이 "큐레이터 신정아가 한 학기 더 다니면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는다더라"고 하자, 박성용(2005년 작고)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이 "그렇다면 회사를 이미 그만뒀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이에 박 관장이 "인터넷 과정으로 이수한다"고 하자, 당시 예일대 한국 동문회의 회장이기도 했던 박 회장은 "예일대에 그런 과정은 없다.
당장 사표 받아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예일대 경제학 박사이다.
이때부터 신정아의 허위학력에 대한 소문이 미술계에 퍼졌으나, 이를 본격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호그룹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들에게 득될 것이 없었으므로 쉬쉬했다.
허위학력에 속아 큐레이터를 고용했다가 잘랐다고 소문이 난다면, 누가 그 미술관을 신뢰하겠는가?신정아는 다시 위조된 학력과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경력을 활용하여 성곡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취직하였는데, 성곡미술관에 스스로 찾아가 무조건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5. 동국대학교 입성

신정아의 학력에 대한 의혹은 이미 동국대학교 조교수 임용 당시부터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사 및 미술 관련 미학 분야는 한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 모두 선·후배이거나,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바닥이 좁고, 특히 미술사(art history)에서는 예일대가 미국 최고 명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박사 프로그램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갑자기 미술계에 등장하였던 신정아라는 사람이 예일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이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예일대를 진짜로 졸업하고 2004년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의 장진성 교수는 "확실히 신정아가 거짓을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일대의 실수도 있었고, 또한 그녀가 워낙 정·관·재계의 고위인사들과 얽혀 있었으므로, 그녀의 허위사실에 대하여 쉽게 의혹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장진성 교수의 인터뷰다.

6. 수면 위로 오르는 의혹들

2005년에 조교수 임용과정에서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들이 신씨에 대한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동국대 이사진들은 신씨를 계속 두둔했고, 때문에 동국대 측은 예술대학 교수들의 반발을 피해서 신씨를 교양교육원으로 발령을 내주었다.
이 학력위조 의혹 때문에 동국대 측에서는 예일대에 우편을 통하여 이에 대한 확인을 의뢰했는데, 정말로 예일대에서 팩스를 통해 확인해 줬다.
동국대 측에 팩스로 보냈던 박사학위 증명서는, 예일대 대학원 부학장 파멜라 셔마이스터가 서명한 진본이다.
나중에 사태가 커지자, 이러한 오류를 일으킨 까닭에 대해 셔마이스터 부학장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착오였다”고 해명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신씨는 "예일대에 연줄이 있는 학위 브로커가 있고, 난 거기에 희생된 것"이라며 자신은 음모의 희생자라며 옹호하였다.
나아가 본인의 학위가 명백하게 조작된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 신씨는 "나는 브로커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역시 거짓 해명이었다.
2007년 7월 4일에 신정아가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학력위조에 대한 의혹이 퍼져나갔다.
이 때 감독으로 발탁된 과정 역시 수상하기 짝이 없다.
당시 후보 8명 중 신정아는 꼴찌였다.
영어도 형편없던 데다가 미술 행사 진행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동 1위 후보 2명이 탈락한 이유는 경험 부족과 의사소통 능력의 부재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부산 비엔날레 감독과 국제 미술행사 포럼 진행자 출신이었다.
아무리 낙하산 인사를 임용한다고 해도 연줄뿐만 아니라 최소한 기본기 정도는 제대로 갖춘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신정아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7. 결국 학력위조가 사실로 드러나다

연합뉴스에서 이미 캔자스 대학교 학사 및 석사 학위가 거짓이라는 뉴스를 발표하였고, 결국 7월 11일 동국대가 기자회견으로 "신정아는 예일대에 다닌 적이 없음"을 발표함에 따라, 신정아의 학력은 전부 허위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학력위조가 드러나자, 예일대와 동국대가 나란히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신정아는 1심, 2심 재판에서 학력 위조와 미술관 공금 횡령으로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서 파기환송되었고, 파기환송심에서 재차 1심으로 돌려보냈다.
.2009년 11월 파기환송 2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미 4월에, 1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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