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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에 민감한 당신을 위한 김성한에 대한 모든 것

by 채은아빠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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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출생
1958년 5월 18일 (64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학력
군산중앙초 - 군산중 - 군산상고 - 동국대
포지션
1루수
3루수, 2루수, 유격수 (1982)
투수 (1982~1983, 1985~1986)
투타
우투우타
신체
178cm, 85kg
프로입단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멤버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2~1995)
지도자
해태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1996)
해태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1997~2000)
해태-KIA 타이거즈 감독 (2001~2004)
군산상업고등학교 감독 (2004~2005)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9)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2013~2014)
해설위원
MBC ESPN 해설위원 (2007~2008)
광주CMB 해설위원 (2010~2012, 2017~ )

1. 개요

 

前 해태 타이거즈 야구선수. 현역 시절 주 포지션은 1루수다.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멤버로, 은퇴할 때까지 해태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타이거즈의 원클럽맨이다.
KBO 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10승-10홈런, 30홈런, 20-20 클럽, 통산 1,000안타, 통산 2000루타, 통산 700득점 등 기록을 달성했다.
1983년부터 1999년까지 16년 간 통산 최다안타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2022년 현재 스탯티즈 기준 통산 wRC+가 3천 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 가운데 20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오랜 기간동안 선보였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11번.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하다가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로 자리를 옮기며 감독직을 이어받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감독이자 KIA 타이거즈의 첫 감독이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군산상고 시절부터 4번타자 겸 투수로 활약하였다.
특히 그의 활약상은 2학년이던 1976년에 빛났는데, 동갑이자 1년 선배였던 김용남과 함께 대통령배 야구대회 우승을 견인함은 물론 황금사자기 야구대회에서 투수와 유격수를 소화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하였고 가을에 열린 우수고교 초청 야구대회에서는 고교야구 3대 투수 중 하나였던 김시진과 맞붙기도 했다.
그러나 하필 같은 팀의 김용남이 고교 3대 투수로 꼽히던 스타였기 때문에 정작 스포트라이트는 김용남이 다 받았다.
4번타자 투수 김성한도 이름값은 높았고 어디 가서든 에이스 자리는 꿰찰 만한 능력이었지만, 같은 팀에 김용남이 있고 그의 라이벌이 최동원, 김시진이었으니 자연스레 관심에서 비껴나 조력자 포지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해 군산상고가 김성한이 투타 및 수비 전반에서 활약해줬기에 호성적을 낼 수 있었음은 이견이 없다.
당시 김용남과 김성한이 있는 군산상고의 마운드는 76년도 고교야구 뉴스 하면 꼭 나올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타자로서의 기여도까지 합하면 김성한은 군산상고에서 제일 가치있던 선수였다.
이후 3학년 때도 한일간 고교야구 대회에 선발되는 등 활약을 펼치며 동국대에 진학했다.
동국대에서도 3~4번타자로 주로 출장하며 투타 양면에서 고른 활약을 보였지만 팔꿈치 부상 등으로 인해 2학년부터는 투수로서의 출장이 점점 줄고 우익수나 지명타자로 나오는 경기가 늘기 시작했다.
3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투수로 등판하는 경기가 종종 있었으나 4학년 때는 투수 등판이 거의 없어 한미간 대학야구전 대표팀에 외야수로 선발되었을 정도였다.
이후 졸업을 앞두고 한일은행 야구단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막 창설된 프로를 선택, 고향팀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2.2. 프로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3.1. 타자

 

트레이드마크인 오리궁뎅이 타법.엉덩이를 뒤로 내민 상태로 타격을 하는 특이한 타격폼으로 인해 오리궁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타격폼이 정형화되지 않아 각종 기상천외한 타격폼이 넘쳐났던 당시 기준으로 봐도 이상한 타격폼으로 유명했다.
이는 아마시절 유독 스윙스피드가 느렸던 김성한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을 거듭한 끝에 완성 된 것으로 원래 동국대 시절에는 느린 스윙스피드를 보강하기 위해 배트를 비스듬이 기울여 번트를 칠 듯이 흔들거리다 짧게 끊어치는 타격을 했다고 하는데, 이게 알루미늄 배트로 치는거라 반발력이 좋아서 홈런이 잘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무대로 올라가니 나무 배트로는 도저히 대학시절의 끊어치는 타격이 안돼서 타격폼을 스스로 연구했다는데, 그게 바로 오리궁뎅이 타법이다.
간결한 스윙을 통해 정확도를 높이면서도 자신의 강점인 뛰어난 펀치력을 살릴 수 있었다.
다.

 

3.2. 투수

 

투수를 했을 때 제구력과 피해가지 않는 공격적인 피칭, 경기 운영능력이 돋보였다.
김성한 본인은 투수로서 자신의 강점으로 변화구와 제구력을 뽑았다.
컨트롤 타입 투수였다고.주로 사용했던 변화구로는 슬라이더, 커브를 던졌고 슈트도 많이 써먹었다고 한다.
구속은 당시가 스피드건이 많이 없었을 때라 따로 기록이 존재하진 않고, 김성한 본인은 (잘 던질 땐) '한 140km 초반 정도 던지지 않았을까' 라고 회고하긴 했지만 어쨌든 구속보다는 제구력이 돋보였다고 한다.
더불어 배트 스윙이 간결했던 것처럼 팔 스윙도 짧았다고.다.

 

4. 은퇴 이후

 

 

4.1. 해설자 경력

 

2006년 미국 연수를 끝내고 난 2007년엔 팀 후배 이순철과 함께 MBC ESPN 해설위원이 된다.
2008년까지 활동. 2010년부터 광주CMB 해설위원을 시작하였다.
2014년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에서 물러나자 CMB광주방송 KIA 타이거즈 홈경기 해설을 다시 맡게 되었다.

 

4.2. 그 외 활동

 

2008년 7월 광주광역시 상무지구에서 중식당 하이난을 오픈해 부인과 같이 운영했으며 식당일을 돕고 계신다고. 심지어 손님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직접 손님들 차 발레파킹 해주러 온다.
2012년 7월경 교원그룹의 상조 브랜드인 '물망초'의 광고에 김용철 전 롯데감독과 함께 출연하여 주목받기도 했다.
광고 슬로건인 "떠나도 남는다 가슴에 남는다"가 김성한 본인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터라 짠해지는 느낌이다.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에서 물러나 야인이 다시 되고, 2014년 2월 무렵 음료광고를 하나 찍었다.
뿐만 아니라 KBS광주, 광주MBC, CMB 등 지역 방송국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등 지역 방송인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입담이 상당히 좋다.
2021년 광주MBC의 유튜브 오리지널 컨텐츠 전설의 타이거즈에도 출연하였다.
선동열 감독이 부진한 성적으로 계약기간이 끝나고 사실상 재계약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을 때는 새 감독 후보군으로 오르는 듯 했었으나 선동열의 재계약으로 결국 소문으로 끝났다.
그러나 선동열이 2014년 10월 25일에 사퇴하면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비록 흑역사가 존재했지만 2년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김성한 감독이 복귀하면 환영할 기아팬들이 많을 듯하다.
하지만, 김기태가 부임하는 바람에 복귀는 당분간 요원해졌다.
그리고 상무지구에 차렸던 중국집 '하이난'을 넘겨주고, 나주혁신도시 휴먼스프라자 4층에 새롭게 '더 하이난'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중국집을 열었다고 한다.
중국집도 하면서, 나주시의 유소년야구와 아마야구 육성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한다.
요즘엔 야구칼럼을 쓰는데, 김성한의 눈이라는 타이틀로 엑스포츠뉴스에서 연재를 하고 있다.
상당히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논점으로 글을 풀어나가서 한번 읽어볼 만 하다.
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연설을 했다.
영상 이 때문에 2018 시즌이 끝나고 kt wiz의 단장으로 선임된다는 썰이 네티즌은 물론 선수단 내에서도 돌았고, 정권에서 앉힌 낙하산 단장이라고 야구팬들에게 비난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김진욱 감독과 임종택 단장이 모두 나가면서 새로 인선된 단장으로 이숭용 타격코치가 확정되면서 김성한 전 감독이 kt 단장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이번엔 진천선수촌의 새로운 선수촌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2018년 12월 19일에 전해졌다.
하지만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이 소식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대중의 반응은 당연히 안좋다.
야구팬들은 모두 김성한의 배트 폭행 사건을 기억하고 있고, 최근 심석희 폭행사건으로 체육계의 폭행 악습들을 끊자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와중에 폭행에 앞장서던 사람이 선수촌의 촌장으로 낙점 되었기에 반발은 더 커져가는 중. 2019년 1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신치용, 김호곤과 함께 선수촌장 복수 후보로 올라있다고 한다.
SBS의 보도에 따르면 김성한은 2017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식 지지했고 TV 찬조연설자로 나섰음에도 유세 활동이 보잘것 없던 사람들에 비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측근들을 체육회 요직에 앉혔다가 정부와 여권에 미운털이 박힌 이기흥 회장이 김성한을 통해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하는 보은 인사 차원의 내정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체육계 인사들의 대부분 불만스럽게 애기하는 의문점은 태릉선수촌과 전혀 관련없는 프로출신 사람이 회장 유력시가 되는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한국 스포츠 망치는 현 정권 낙하산 인사사실 보은인사 시비보다는 구타사건으로 인해 선수촌장에서 낙마한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다른 구타사건이 연일 지상파 뉴스를 타던 와중이니 더더욱. 구타사건만 아니었다면 사실 보은인사 논란은 다른 사례에서 흔히 보듯이 무시할 법도 했는데, 선수 구타라는 악질 범죄행위 이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체육계에 역풍을 몰고 오기 좋은 기록이다.
이후 신치용 고문이 2019년 2월 7일부로 선수촌장이 확정됨에 따라 없는 일이 되었다.
2019년 12월 10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김응룡의 팔순연을 개최하였다.
팔순연을 통해서 과거에 소원했던 선수들과도 풀었다고 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김응룡, 이순철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지원유세하였다.
2021년 10월 3일 한화전에서 시타를 했다.
2021년 11월 19일 전설의 타이거즈 라이브 방송에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김종모, 방수원과 같이 출연했다.
다음날에는 광주 시내에서 라이브 출연 멤버 6명 및 김응용 감독이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기념 카퍼레이드를 재연하였다.
그의 여러 인터뷰 중 하나(2020)2021년 7월부터 지역민방인 KNN에서 제작했던 섬마을 할매가 시즌3로 들어오며 광주방송과 공동제작으로 바뀌며 이만기와 함께 MC로 출연중이다다.

 

5. 사건사고

 

 

6. 여담

 

  • 워낙 인기가 많았던 선수라 선동열 못지 않게 다양한 영상 매체에 출연하였다. 1992년 티코 광고부터 1998년 개봉된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도 코치 역으로 출연하여 이 분을 떠오르게 하는 대사를 쳤다. 물론 손발이 오글거리는 발연기를 피하기 힘들었지만, 야구팬들은 덕분에 김응용 감독까지 같이 어색하게 치는 개그를 감상할 수 있다. 카메오 출연으로 원래 출연료가 없었으나 김응룡 감독이 영화 제작자에게 '출연료 안 주나?' 질문에 김응룡 감독에게는 1천만원, 김성한 코치에게는 7백만원을 입금시켰다고 한다. 김성한은 사실상 조연급인데 출연료가 서로 바뀐느낌이다.
  • 1982년 김성한의 포지션은 투수 + 내야유틸이라는 인식이 강한 편인데, 원래는 3루수였다. 고교 때 유격수로도 출전한 경력이 있었던데다 초미니한 해태 선수단에서도 주전 야수 막내라 땜빵을 자주 한 탓.
  • 투타겸업 때문에 투수 계약금, 타자 계약금을 따로 받았다는 카더라가 돌았는데 김성한 본인이 말하길 "해태가 어떤 구단인데..." 다만 메리트 제도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안타에 승리투수까지 다 해먹고 130만원을 따 가기도 했다고 한다.
  • 1983년 시즌, 타임 요청을 받아주지 않은 김광철 주심과 말싸움을 한 짤방이 유명하다. 자세한 스토리는 기사 참조.
  • 짬뽕에 관한 일화가 있다. 원래부터 김성한 본인이 짬뽕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현역 시절에는 본인의 타격감이 좋지 않다 싶으면 구단 직원 또는 고교-대학 직계 후배를 구장에 일찍 불러서 짬뽕 한 그릇 사주고 배팅볼을 던지게 하면서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김성한이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추가로 설명하길 짬뽕도 사주고 짜장면도 사주고 영수증이 없어서 얼마 어치를 사줬는지 모르나 본인이 사준 짜장면과 짬뽕을 안 먹은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또 코치 시절엔 당시 신인급 야수였던 이호준과 장성호를 일찍 불러 짬뽕 한 그릇을 먹이고 훈련시켰던 야구에 열정적이었던 사람이다. 김성한 홈런은 짬뽕국물 덕이었네 잠실 야구장 원정 때 시합 전 짬뽕을 먹고 1경기 2홈런을 때리는 걸 본 기자가 기사를 썼고, 바로 다음 원정이었던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해태 팬이 꼬깃꼬깃 접은 1만원권을 김성한에게 쥐어주며 '이 돈으로 짬뽕 사먹고 홈런 쳐달라'는 말에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결국 그 날 경기에서도 홈런을 때렸다. 지금은 중국집을 경영하고 있으니 짬뽕과의 인연은 야구계를 떠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
  • 연차가 높던 시절, 해태의 라커룸에는 개인당 의자가 배치된 대신 평상이 있었는데 신입들은 눈치 보여 앉지도 못하는 평상에 누워 있거나 앉아서 부채를 부쳤다고 한다. 상기 언급한 짬뽕도 베테랑들만이 라커룸에서 시켜먹을 수 있었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엠스플 텔레비전 9화 참조.
  • 어린 시절의 가난 탓인지 자산 관리에 신경을 기울였다. 김봉연이 술회하기를 야간 경기를 마친 다음날 선수들은 피곤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김성한은 이른 아침부터 땅을 보러다녔다고 한다. 기사에 언급된 피아노 대리점에서 피아노를 1호로 구입한 사람이 김봉연이었다.
  • KBO 최초의 원조 멀티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이건열이 1루수 연습을 하러 1루에 가면 김성한이 '아따 너는 저기(외야)로 가라잉~' '외야수로 시합 뛸 수 있는디 1루에 뭣하러 오냐 이xx가…'하며 쫓아냈다고 한다. 이건열은 해태 입단 전 포수와 1루수로 활약했는데 해태에 입단하고 보니 고교-대학 직계 선배인 김성한이 1루를 지키고 있었고 결국 유격수를 뺀 내야 전 포지션과 코너 외야 포지션을 떠돌아야 했다. 이건열이 주전 1루 자리를 잠시나마 꿰찼던 시점은 김성한이 은퇴한 후다.
  • 홍현우의 수비력 향상에 일조했다. 수비 연습 시 3루수인 홍현우가 송구를 하면 정면으로 오는 것만 받고 옆으로 오는 것은 받지 않았으며 뒤로 빠진 공은 홍현우가 뛰어가 주워와서 공손히 김성한의 글러브에 갖다 바쳐야 했다. 물론 머리통 한 대씩 맞는 건 당연.
  • 여러 호남 주민들이 그렇듯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는 전북지역 유세에 동참하고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 연설도 했다. 해당 동영상. 이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
  • 1958년생으로 원래는 77학번이어야 하지만, 1년 유급으로 인해 1978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58년 개띠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이만수와 같은 케이스다.
  • 프로야구 창설이 없었다면 실업팀 한일은행에 입단하려 했다고 한다. 프로 출범 당시 한일은행과 가계약까지 마쳐놓고 계약금도 받은 상황이었다고.
  • 조카가 시각장애인 가수인 이민석이라고 한다.
  • 동국대의 대표적인 선수였으나, 정작 본인은 동국대에 가는 걸 굉장히 싫어했었다고 한다. 원래는 당시 영남대 감독이던 배성서가 동국대로 이적해서 자연스럽게 동국대로 갔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원래 가고 싶은 대학교가 있었지만, 동기생 6명을 받아준다는 조건으로 교사들과 야구부 감독의 강권으로 간 것이라 굉장히 원망스러웠다고.
  • 해태 타이거즈의 동계훈련으로 잘 알려진 호랑이와의 눈싸움을 벌이는 해태 선수 3명 중 1명이다.
  • 슬하에 2남(범진, 범수)이 있다. 장남은 포항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공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았다. 김성한은 차남이 야구선수가 되길 바랐으나 초등학교 때 야구부 생활이 힘들다고 관뒀다.
  • 지역해설을 맡기도 했던 CMB에서 김성한의 맛집홈런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 이정훈과 매우 닮았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해태
80
318
.305
97
(3위)
17
(5위)
4
(4위)
13
(4위)
69
(1위)
48
10
17
.506
.340
1983
96
339
.327
(3위)
111
(4위)
20
0
7
40
59
(3위)
13
42
.448
.402
(3위)
1984
98
365
.258
94
16
2
12
41
48
7
43
.411
.336
1985
105
400
.333
(3위)
133
(1위)
29
(1위)
1
22
(1위)
75
(2위)
66
(2위)
8
45
.575
(1위)
.400
(3위)
1986
104
404
.280
113
(4위)
16
0
18
(2위)
57
(5위)
64
(2위)
10
38
.453
.340
1987
81
306
.314
96
22
(3위)
0
15
(3위)
46
43
3
33
.533
(3위)
.378
1988
104
404
.324
(3위)
131
(1위)
12
0
30
(1위)
89
(1위)
72
(2위)
16
42
.577
(1위)
.382
1989
118
414
.280
116
(3위)
18
0
26
(1위)
84
(2위)
93
(1위)
32
(3위)
93
(1위)
.512
(1위)
.407
(2위)
1990
89
331
.281
93
17
2
11
49
61
14
45
.444
.361
1991
112
411
.294
121
25
(3위)
5
23
(3위)
83
(4위)
69
16
66
.547
(5위)
.388
1992
117
410
.261
107
18
0
15
59
62
6
44
.415
.331
1993
107
362
.273
99
23
(5위)
0
6
52
45
4
33
.387
.331
1994
45
157
.236
37
10
0
1
14
17
4
12
.318
.288
1995
82
229
.179
41
4
0
8
23
15
0
18
.301
.236
KBO 통산
(14시즌)
1338
4850
.286
1389
247
14
207
781
762
143
571
.471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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